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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에서 ‘로’ 생겨, 연기에 도움돼” <설계자> 강동원 배우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사실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설계된 범죄라면?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보이게 조작하는 ‘삼광보안’ 팀의 이야기를 그린 이요섭 감독의 신작 <설계자>는 이런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강동원은 극중 ‘삼광보안’ 팀의 리더 ‘영일’ 역을 맡았다. 전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2023)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냉철한 설계자로 완벽 변신한 강동원과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2010년에 개봉한 고천락 주연의 홍콩영화 <엑시던트>가 원작이다.
꽤 오래 전에 봤다.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처음 봤고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다시한번 봤다.?원작이 굉장히 습하고 끈적한 느낌이라면 우리 영화는 좀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아무래도 기후의 영향도 있는 거 같다. (웃음)

전작 <천박사>와는 확연히 상반되는 분위기의 장르와 캐릭터인데.
<설계자>가 <브로커>(2022) 바로 다음에 촬영했던 작품이었다. 장르적인 변화가 필요했던 거 같다. 찍으면서도 재밌었고 살인을 설계한다는 설정이 신선해서 좋았다. 실제로도 음모론을 믿는 편이라 더 재밌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든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끔 내가 음모를 만들기도 하고. (웃음) 그래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청소부’의 존재를 확신하는 ‘영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에선 ‘삼광보안’ 팀 멤버들의 전사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데.
디테일한 서사는 사건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시나리오에 넣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각본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전인 개발 단계에서도 팀원들의 과거사 부분은 거의 안 나왔다.

이 자리를 통해 살짝 알려주자면 영화에선 편집됐는데 팀원 중 한명인 ‘월천’이란 이름이 그냥 지어진 게 아니다. 월에 천 만원 벌어서 ‘월천’이다. (웃음) ‘월천’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만 짤막하게 나온다. ‘재키’는 ‘짝눈’과 함께 삼광보안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점만’은 소년원 출신에 어린 나이지만 가정이 있고, 돈이 필요하다는 게 영화에서 알려주는 전부다.

촬영할 당시에 동료 배우들에게는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영일’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성향을 지닌 냉철한 기업가이고, 팀원들의 결핍을 이용해 이들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일’은 ‘월천’이 자신을 사모하는 걸 알고 그 마음을 이용한다. ‘월천’의 대사 중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재키’도 그렇다. 어떨 때는 ‘재키’에게 과하게 냉정하게 굴면서도 작전에 들어가기 전엔 태도를 굽히고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나. ‘점만’도 마찬가지다. 아직 초짜라 긴장한 ‘점만’에게 다정하게 “오늘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것도 ‘점만’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당근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잘 보면 그 장면에서 ‘영일’이 살짝 이상하게 웃고 있다. (웃음)

여담이지만 당신의 결핍은 무엇인가.
솔직히 결핍이 별로 없다. 오랜 친구들은 내가 꼬인 데가 없어서 좋다고 하더라. 예전엔 희로애락에서 로(怒)?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좀 생긴 거 같다. (웃음) 감정의 폭도 넓어지고 깊이도 더 깊어진 거 같다. 원래는 굉장히 무던한 성격이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여러 경험과 사건이 쌓이고 그러면서?로라는 감정을 서서히 알게 됐다. 그 덕분에 ‘영일’이라는 캐릭터를 더 잘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극중 ‘영일’이 ‘재키’와 대화하던 도중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있다. 예전엔 그렇게 연기 못 했을 거다. 촬영하면서 진짜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미숙 선배님이 진짜 무서웠다고 하시더라. (웃음)

사실 ‘영일’이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지 않다. 대체로 냉정하고 과묵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영일’ 역할이 그래서 쉽지가 않았다. 대사는 별로 없는데 클로즈업은 많고 또 감정적으로는 계속해서 긴장감을 가지고 가야하니까. 감정 변화가 극적이지는 않지만 ‘영일’의 의심이 쌓이고 점차 히스테릭해지는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감정을 준비하고 연기했다. 체중도 68kg까지 감량했다. 후반부에 가서 감정선을 더 가져갈까, ‘영일’이 완전히 미치는 건 어떨까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눈 뒤에 지금의 선을 지키게 됐다. 여기서 더 나갔어도 재밌었을 거 같다. (웃음)

액션이나 몸 쓰는 장면이 많지는 않다. 육체적으로는 비교적 수월했을 거 같은데. (웃음)
‘영일’이 영화 내내 말없이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지 않나. 클로즈업을 잡고 있을 때 눈을 깜빡거리면 보는 입장에서 되게 신경 쓰인다. 그래서 오래 눈을 뜨고 있느라 눈이 시릴 때가 많았다. 잘 보면 눈이 빨갛게 충혈됐을 거다. (웃음) 작은 프레임 안에서 연기하는 것도 진짜 힘들었다. 움직임에 집중하다가 대사나 호흡하는 걸 까먹기도 했다. (웃음)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이종석이 분한 ‘짝눈’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영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이종석 배우가 흔쾌히 출연해 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끼리 왜 두 남자가 한 집에 살고 있는지, 어떤 전사를 가지고 있고 무슨 관계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하지만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않았다. 둘 다 가족 없이 자랐기에 ‘영일’이 ‘짝눈’에게 집착한다고만 생각했고 연기도 그렇게 했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 이 부분에서 호오가 나뉠 수도 있겠다.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일’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바뀔 거다. 진짜 ‘영일’이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혹은 ‘영일’의 망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다양하게 해석해 주면 좋을 거 같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즐겨 하는 편이다. <파묘>의 장재현 감독과는 <검은 사제들>을,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과는 <가려진 시간>을 함께했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의 <의형제>와 <리멤버>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에도 출연했다. <설계자>도 이요섭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신인 감독님들은 의욕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같이 작업하면 즐겁다. 감독님의 첫 작품인?<범죄의 여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요섭 감독님에게는 소녀 같은 미가 있다. 소년 아니고 소녀다. (웃음) 굉장히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고 순수하다. 현장에서도 차분하시고 조용한 편이신데 가끔 빵빵 터뜨릴 때가 있었다.

올해 개봉한 <파묘>와 <범죄도시4>가 천만 관객을 넘기면서 극장가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극장 생태계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안 오는 게 큰 걱정이었다. <천박사>가 추석 시즌 1위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년 대비 관객 수가 절반에도 못 미쳤으니까. 그런데 올 들어 <파묘>와 <범죄도시4>이 연달아 천만 관객을 달성하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됐다. <설계자>도 많이들 보러 와주셨으면 한다. (웃음)



사진제공_AA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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