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열아홉 액션스쿨에 구경갔던 고교생은 스무살, 학교를 졸업 후 바로 액션 세계에 입문했다. 부모님 각서를 받아오라는 정두홍 감독의 말에 따라 아버지의 친필 각서를 받아서 제출했다. 어린 나이에 확실하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아들이 대견했고, 그만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선배의 오더와 주어진 역할에 묵묵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무술 감독 제안이 들어왔다.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완수한 덕분이었다. 넷플릭스 <황야>로 연출 데뷔한 무술 감독 허명행 감독 이야기다. 120편이 넘는 영화의 액션을 담당했지만, 연출로서는 신인인 허 감독. 이번 <황야>는 마동석 배우가 지닌 유연한 면모, 즉 파워풀한 액션과 나름의 귀여움, 특유의 개그코드를 글로벌에 알린다는 확실한 의도 하에 만든 영화라고 소개한다.
액션은 화끈하지만, 서사가 약하다는 평인데 반응은 좀 살펴보고 있나.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마동석 배우의 장점, 그러니까 유머와 액션을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한 의도를 담은 작품이라 이에 집중하다 보니까 서사가 아쉽다는 평가가 따르는 듯하다.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인지한 부분이다.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서 등장인물인 ‘남산’(마동석), ‘지완’(이준영), ‘양기수’(이희준) 등의 서사를 디벨롭했으나 이를 영상적으로 풀려다 보니, 1시간 45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다 들어오지 않더라.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OTT를 통해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세계에 알리자는 의도에 맞춰 서사를 덜어낸 부분이 있다. 액션 장르인 만큼 액션을 좀 더 보여주는 것이 좋겠더라.
기획했던 내용을 다 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원래 어느 정도였나. 꼭 1시간 45분을 고수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2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27년 차 무술 감독 출신으로서 그간 액션이 주가 되는 영화를 볼 때 2시간이 넘어가면 피로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경험상 오락용, 재미로 즐기는 영화는 1시간 50분을 넘기지 않는 편이 좋더라.
공개 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에 올랐으니, 의도가 성공한 셈이다! 이번 <황야>는 허명행 감독과 마동석 배우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이후 나올 <범죄도시4>의 전초전 격이라 관심도가 높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액션을 도맡아 왔지만 연출은 처음인데, 과연 청신호가 될는지 좀 의문이다. (웃음)
일단, 마동석 배우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나만의 기획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아서 기분 좋다. (웃음) <범죄도시3> 개봉 전에 이미 만든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포칼립스 장르인 <황야>는 <범죄도시>와는 결이 다르다. 기획부터 OTT 영화로 방향을 잡은 건 좀 더 세게 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마동석 배우의 액션과 개그코드는 가져가되 <범죄도시> ‘마석도’보다 강한 버전으로 가고자 했다. <범죄도시>가 형사인 마석도가 남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라면, <황야>는 제압이 아닌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 그러니까 초토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액션이라 더 세고, 보다 더 잔인한 면이 있다. 거듭 애기하지만, 국내 관객은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로벌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마동석 배우 이외에 이준영, 안지혜, 박지훈, 노정의 등 신선한 얼굴을 캐스팅했는데 주안점은.
아포칼립스 액션물인 만큼 대역을 쓰고 싶지 않아서, 일단 액션을 잘 소화하는 배우가 우선이었다. ‘권 상사’역의 박지훈 배우는 원체 액션을 아주 잘하는 분이고, ‘은호’ 중사역의 안지혜 배우는 국내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소화해 낼 분이 없고, 대역 없이 해서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닌 앞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웃음) 이준영 배우 역시 라이징 스타에 몸놀림이 무척 뛰어나더라, 한마디로 감각이 좋다. 액션이 서툰 배우와 할 경우 컷을 분할해 여러 번 나눠 찍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배우들 덕분에 원테이크로 가져간 부분이 많았다.
액션 연출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서스펜스와 기승전결이다. 이 캐릭터들이 왜 싸우는지, 액션의 이유가 중요하다. 싸울 이유가 성립했다면, 이후는 그들이 갖고 있는 기술로 어떻게 서스펜스 있는 액션을 만들지 고민한다. 개인적으로 사람 심리 같은 리얼 베이스 작품을 선호한다. 그간 참여한 작품 중 누아르 장르 혹은 누아르적인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두홍 감독의 뒤를 이어 무술감독에서 연출까지, 처음부터 연출을 염두에 두었던 건가. 이러한 영역의 확장은 후배 액션 감독이나 배우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현재 정두홍 감독님이 대표로 있는 서울액션스쿨을 영화제작사로 만드는 걸 목표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등 10년 이상 빌드업해 왔었다. 동시에 무술감독으로서 마동석 배우와 여러 작품을 찍었는데, 그간에 (내가) 액션의 앞뒤 상황을 연출하고 빌드업하는 걸 보고 연출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지 연출 제안을 주셨더라. 그렇게 <황야>를 함께 하게 됐다. 후배들을 위한 사명감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 알다시피 액션배우는 온갖 부상을 달고 사는 데다 배우로서의 수명도 짧다. 무술감독도 마찬가지다. 후배들과 면담해 보면, 최고의 무술감독 이후의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번 <황야>가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한다. 후배들에게 제작자, 연출자로의 물꼬를 터준다는 데 의미가 크다.
어떻게 액션의 길에 입문하게 된 건가. 초반에는 직접 출연도 했는데…
초등학교 때까지 태권도했는데 중학교 진학하면서 운동하기 싫어서 더 이상 하지 않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사실 <황야>의 ‘권 상사’역의 박지훈 배우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이 친구가 먼저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정두홍 감독님을 알았고, 나는 그를 통해 정두홍 감독님과 인연을 맺었다. 고3 때 처음으로 액션 스쿨에 구경갔다가 너무 흥미로워서 졸업 후 바로 스무살 때 입사했다. 당시 정두홍 감독님이 부모님의 각서를 받아오라 하시더라. (웃음) 아버지가 별다른 말씀 없이 써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확실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대견해하신 것 같다.
입사해서는 무술감독이 되겠다 뭐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다만 주어진 오더를 묵묵히 잘 따르고자 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잘 밟아 나가니 정두홍 감독님이 다음 세대로 나를 염두에 두셨는지 무술 감독을 제안 주시더라. 너무 감사하고 기뻤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오더가 오면 최선을 다해 완수하라고, 그래야 다음 작품이 주어진다고 조언하곤 한다. 첫 작품은 드라마 <남자의 향기>(1998)였고, 그 다음이 영화 <쉬리>(1999) 였다. 드라마를 제외하고 한 120여 편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드라마 제외하고 120편이 넘다니! <공공의 적> <올드보이> 단역부터 <신세계> <아수라> <부산행> <범죄도시> <유령>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에 참여했는데 최애 작품을 꼽는다면. 또 준비 중인 작품 소개도 부탁한다.
리얼 베이스는 <신세계>나 <아수라>, 또 좀비 세계관은 <킹덤>이나 <부산행>을 좋아하는데 이건 장르마다 다 다르다. 지금 개발 중인 시나리오와 기획 중인 작품은 몇 편 있고, 다음 연출작은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 현재 <약한영웅> 시즌2, 드라마 <벌크> <눈물의 여왕>의 무술 감독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웃음)
무수히 많은 액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영상이나 공연 등을 많이 소비할 것 같은데 어떤가.
특별히 많이 보거나 찾아보지는 않고, 일이 아닌 시청자(관객)로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편이다. 주로 앉거나 누워서 동작을 상상하곤 한다. 후배에게도 늘 하는 말이 ‘절대 동작을 직접 하면서 액션을 짜지 말라’고 한다. 직접 하면서 동작을 짜면 한계가 생기는 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돼서 그렇다. 또 그러다 보면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큰 그림을 먼저 그리는 편이다. 어떤 레퍼런스보다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범죄도시 4>가 시리즈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다. 축하드리고,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에게 살짝 힌트 준다면.
개인적으로 <범죄도시> 1편이 지닌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런 면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누아르와 코믹의 균형이 좋지 않나 싶다. 또 액션은 시리즈 중 제일 자신 있다! 영화제 초청은 처음이라, 그것도 만장일치로 초청을 받았다고 하니, 얼떨떨하면서도 기쁜데 실감은 잘 안 난다. (웃음)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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