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어느 작품이든 아쉬움이 없는 건 없어요.”라는 김남길, 1920년대 간도를 배경으로 한 웨스턴풍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 주인공 ‘이윤’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찾는다.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도, 국내에선 드물게 접하는 웨스턴 장르의 시대극이라는 점과 선과 악의 획일화된 대립구도를 탈피한 색다른 접근법을 극의 매력으로 꼽는다. 평소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댓글이나 리뷰를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지만, 완성된 극을 보며 셀프 피드백을 한다는 김남길을 만났다. 극을 향한 칭찬과 배우를 향한 애정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며 자아도취를 경계한다는 그이지만, <도적>은 시즌2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어필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웨스턴 장르로 일단 참신한 그림이다.
웨스턴 장르가 꼭 서양의 콘텐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도라는 광활한 평야를 배경으로 일본군, 중국 마적, 그리고 조선인들이 모여 총과 칼을 휘둘렀던 시기라 동양권에서도 충분히 실재했던 광경이겠더라. 국내 대표적인 웨스턴 영화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캐릭터에 보다 더 초점을 맞췄다면 <도적: 칼의 소리>(이하 <도적>)은 시리즈인 만큼 간도를 배경으로 한 풍경과 스토리를 보다 많이 담았다.
<도적>의 어느 면에 끌렸나.
‘이윤’(김남길)을 비롯해서 독립군 대 일본군의 획일화된 대립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매력 있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시대의 기회를 잡은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좋았다. 일본 장교로 독립군을 잡는 데 앞장서는 ‘광일’(이현욱)조차 어떤 여지가 있는 인물이고, 마적단도 그렇고 일반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다. 일본 영사관인 ‘오오카’(정무성)도 마찬가지다. 그가 조선인과 독립군을 쫓는 이유는 천황에 충성이고 뭐고, 오로지 자기가 빨리 무사히 귀국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여러가지 심정을 지닌 복잡한 인물이라 하겠다. 그간 많은 콘텐츠가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몸을 바친 분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니, <도적>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서 교과서에서 배운 수준 정도의 지식으로 편하게 임할 수 있었다. (웃음)
극 중 간도는 어떤 공간일까.
누군가는 야욕을 불태우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또 지키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집결한 곳이다. 각자의 야망과 욕망이 얽히고설킨 장소다 보니 네 편과 내 편이 명확하지 않다. ‘틀린 게 아닌 다른’ 방식의 문제라 촬영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1920년대, 아시아 간도라는 지역에 이런 일이 있었겠구나 하며 관심있게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노비 출신 일본군에서 간도의 수호자로 거듭난 ‘이윤’을 연기했다.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해 나갔나.
간도 도적단의 리더지만, 중립을 지키는 캐릭터라 생각했다. 내면의 상처와 어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밝게 행동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런 모습이 자칫하면 전형적으로 비출 수 있어서 그렇지 않도록 신경 썼다.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죽음으로만 죗값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라 좋았다. 개인적으론 좀 답답한 면도 있는 캐릭터였다.
어느 면이 답답하든가.
글쎄, 나 같으면 ‘나를 따르라’ 하며 앞장서기도 했을 것 같은데, 너무 통달한 사람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하는 스타일이라… (웃음) 촬영하며 ‘리더는 꼭 웃기지 말아야 하냐고, 좀 웃겨도 되지 않겠냐’고 하니 감독님 왈 그건 ‘김남길’이라고 하더라. 김남길이 아닌 이윤이 되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김남길’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를 꼽는다면. 또 이윤은 ‘남희신’(서현)을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보이는데…
드라마 <열혈사제>나 <명불허전>, 영화 <보호자>도 어느 정도 현실의 김남길이다. 현대극이라 내가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물론 이윤도 김남길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긴 하다. 사실 이윤의 순애보 역시 좀 답답한 부분이었고, 그 사랑의 감정을 어디까지 표현할지 고민했었다. 짝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질 거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시대를 관통하며 산 인물이라, 마음속에 노비 출신이라는 바리케이트가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죽기 전에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갈등도 있지 않았을까. 글이 약간의 수정을 거치면서 이윤-희신의 서사 중 빠진 부분이 있는데 그렇기에 더욱더 시즌2가 나와서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시즌2를 위해 아껴 둔 이야기가 많나 보다! (웃음) 에피소드가 9개로 이루어진 꽤 긴 시리즈임에도 이야기의 진전 혹은 담고 있는 내용이 적다는 인상이었다. 다음 시즌을 위한 포석인 건가.
요즘 흐름에 맞춰서 좀 더 빠르게 전개하거나 이야기를 진척시켜 나갈 수도 있겠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자체가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는 내용이라 조금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배우의 호흡이나 이야기 흐름이 상대적으로 느려서 그들의 서사가 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생각의 여지를 둔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나 캐릭터 서사에 있어서 시즌2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윤의 눈빛 연기와 액션, 두 가지가 주요 관람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대놓고 ‘나 너무 힘든 과거가 있어’가 되면 안 되어서 이런 눈빛 연기가 힘들다. 말했듯이 이윤은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고, 일본군이었던 시절 자행한 악행으로 죄의식에 억눌려 사는 인물 아닌가.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려고 ‘충수’(유재명)를 찾아갔고, 그의 ‘너도 참 얄궂은 세상을 만났구나, 가족을 죽게 하지 않았다면 한 번 안아줬을 텐데’라는 말을 듣고 위로받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인물이다. 이후의 성장과 발전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의 이윤을 더욱더 어둡고 완전히 침잠한 모습을 보이려 했었다. 심지어 대사가 안 들린다고 할 정도였다! (웃음)
윈체스터 액션이 시그니처인데, 잘 돌리더라.
그 무거운 걸 왜 자꾸 돌리라고 하는지! 그 시대 영화를 보면 꼭 총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심지어 액션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사실 앞에서 그냥 쏘면 될 것을 꼭 한 번 돌리고 쏘는데, 그냥 쏴 보니 너무 밋밋해서 그림이 잘 나오지 않더라. 덕분에 쏘고 돌리고, 돌리고 쏘고 또 누군가와 대결할 때 돌리고 쏘는 등 참 다양한 상황에서 돌리고 또 돌렸었다. (웃음)
‘언년이’(이호정)와 액션 씬이 여럿으로 합이 참 잘 맞던데, 실제 촬영하면서는 어땠나.
너무 좋았다. 호정이가 평소 참 발랄한데 이런 발랄함이 액션 동작에도 그대로 묻어나더라. 이윤과 언년이가 처음으로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이때는 이윤이 리더가 되기 전이라, 좀 더 자유롭게 해학적으로 풀어나간 것 같다. 이후 다시 대결할 때는 상황에 맞는 감정을 담는 등, 컨셉에 맞춘 액션 티키타카가 재미있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아마존 프라임에 서비스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아일랜드>와 이번 넷플릭스 <도적> 등 연이어 글로벌 시청자를 찾고 있다. 글로벌 팬의 반응이 체감되나.
솔직히 잘 체감되지 않는다. (웃음) 서비스되는 플랫폼보다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OTT가 아니라도 작품이 좋으면 해외에서 찾아보는 시청자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니,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일종의 책임감도 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3년 10월 19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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