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송중기와 누아르, 의외의 조합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누군가는 ‘송중기 건달 영화 되게 하고 싶었나 보다’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보단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의 작품을 너무나 하고 싶었고 또 기다렸다. 그 타이밍에 <화란>을 만나 운명이라고 느꼈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볼 때의 느낌이 들더라.
또 내가 <무뢰한>을 너무 좋아해서 열 번이 넘게 봤는데 그 영화를 보면 김남길 선배가 전도연 선배를 좋아하는 건지 안 좋아하는 건지 굉장히 헷갈린다. 그 묘하고 양가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마침 <화란>도 같은 사나이픽쳐스 작품이더라.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웃음) 이 작품에서도 ‘치건’이 ‘연규’를 도와주는 건지 망쳐놓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지 않나. 처음 대본을 봤을 때 그런 면에서 <무뢰한>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도전하는 장르인데 걱정은 없었나.
사실 나는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왠지 매니지먼트 대표님이 허락을 안 할 것 같더라. 다행히 허락을 받았지만. (웃음)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일단은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이 작품은 유난히 큰 책임감이 느껴진다. 개런티도 안 받았는데도 말이다. (웃음)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노개런티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정식으로 출연 제안을 받기도 전에 역으로 내가 하고 싶다고 먼저 어필한 작품이었다. 처음 시나리오는 훨씬 더 어둡고 진득하고 날 것이었다. 내가 이 작품에 참여하면 손익분기점도 높아질 거고, 그 탓에 영화가 가진 매력까지 변질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출연료를 안 받겠다고 선언한 거다. 대신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님이 제작에 내 이름을 올려주셨다. (웃음)
당신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이야기가 ‘연규’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치건’은 그의 주변인으로 그려진다.
<화란>이 ‘치건’의 영화로 보이면 안 된다. 영화에는 정답이 없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만 ‘치건’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사빈 씨는 아무래도 관객분들에게 많이 알려진 배우가 아니고 나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배우이기에 주객이 전도될까 봐 걱정되더라.
사빈 씨가 메인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그의 플로우를 존중하고 또 조심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연규’의 서사와 감정에 오롯이 따라가면서 리액션하는 데 집중했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중간중간 내 야망이 튀어 나오고, 뭘 자꾸 하려고 하는 모습이 나올 때도 있더라. (웃음) 최대한 그런 부분을 누르고 사빈 씨를 힘 있게 받쳐주려고 노력했다.
홍사빈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사빈 씨는 정말 의젓하더라. 긴장한 티도 안 냈다. 황정민 형님 회사에 있는 배우인데 형님한테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 거긴 까불면 혼난다. (웃음) 정말 바르고 단단하고 연기적으로도 뛰어난 친구라 도와줄 부분이 많이 없었다.
‘하얀’ 역의 형서 씨도 함께한 장면은 많이 없지만 기억에 남는다. 형서 씨는 가수 활동하면서 유명해진 친구라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하얀’ 캐릭터에 형서 씨 본인의 색깔이 덧입혀져서 작품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형서 씨 덕분에 이야기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거 같다.
신인 김창훈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주변에서 신인 감독인데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그래서 더 신선할 것 같았다. 실제로 ‘연규’와 ‘치건’의 관계성, 가정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기존 상업 영화의 문법을 벗어나 신선했고 현장에서의 작업도 정말 좋았다. 작품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가득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로기완>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을 때 칸에 가게 됐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 중요한 감정 신을 찍어야 했는데, 순간 모든 스태프를 다 껴안으면서 흥분했었다. 진상이 따로 없었다. (웃음) 칸이 영화를 만드는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당연히 칸에 가고 싶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칸에서 많은 분들이 <화란>을 좋아해주셔서 그간의 고생을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칸에서 호평을 받은 만큼 국내 반응도 궁금하겠다.
확실히 유럽에서 더 좋아하는 색채의 작품인 거 같긴 하지만 그곳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국내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있다. (웃음) 불확실한 것들을 현실로 이뤄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화란> 또한 나를 믿어준 많은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결과물로 이어지길 바란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도 궁금하다. 어떤 반응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칸에서 아내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함께 상영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득남 소식을 알렸는데.
결혼 당시 아내에 대한 이상한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사실이 아닌데 상처 받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실제로 화가 나기도 했고 그래서 오히려 무반응으로 대처했다. 그게 문제였던 거 같다. 그 또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인데 상처만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소통이 부족했던 거 같다.
내 오랜 소원이 아버지가 되는 거였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또 건강하니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아이가 막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실감은 잘 안 난다. 좀 더 착하게 잘 살고,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배우로서도, 아빠로서도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앞으로 작품을 촬영할 때 더 진지하게 임할 거 같다.
사진제공_하이지음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