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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욕심 많은 배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허준호 배우
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귀신을 믿지 않지만 퇴마사 일을 하고 있는 ‘천박사’(강동원) 앞에 영력을 사냥해 세력을 늘리는 엄청난 힘의 악귀 ‘범천’(허준호)이 등장한다. 강동원이라는 톱스타의 존재감에 전혀 밀리지 않고, 자칫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판타지스러운 캐릭터를 본인만의 카리스마로 완벽하게 소화해낸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 허준호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천박사>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빠른 속도감에 '우와'하고 감탄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재미다. 순식간에 볼 수 있는 대본이라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문제는 체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몸이 어떤지, 내 체력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영화의 액션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예전보다 몸도 많이 느려졌고 와이어를 매달고 날아다니는 액션이라 겁이 나더라. 액션은 보통 한 동작을 10번 이상 촬영하는데, 감정 연기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액션은 솔직히 걱정됐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다들 왜 안하냐며 강력하게 추천하더라. (웃음)

완성된 액션을 실제로 보니 어떻던가.
좋은 시스템과 콘티, 스태프들의 배려 덕에 걱정과 달리 액션 장면을 잘 찍을 수 있었다.
판타지 액션이 처음은 아니다. <중천>(2006) 때도 이런 장르 연기를 했었지만, <천박사> 같은 액션 촬영 기법은 처음이었다. 일을 쉬고 있던 지난 10년간 한국영화가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는 걸 실감했다. 사실 내가 떠나기 전의 촬영 시스템은 조금 어수선했는데 돌아와서 새롭게 경험한 프로덕션은 배우 입장에서 훨씬 더 좋게 느껴지더라. (웃음)

예를 들어 후반부 액션 신은 동굴의 입구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이동해가며 액션이 이어지는 설정인데, 처음부터 한 동작씩 차근차근 계산해서 찍었다. 전신을 촬영하고 그걸 확대해서 디테일을 보여주는 예전의 방식이 아니라 손이면 손, 다리면 다리 부분부분 쪼개서 디테일하게 촬영했다.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이라면 체력 관리를 해서 앞으로도 계속 액션을 할 수 있겠다는 욕심도 생겼고. (웃음) 옛날 영화보다 CG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다. 이런 수준 있는 현장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던지. (웃음)

그 장면에서 같이 액션 합을 맞춘 강동원 배우는 어땠나.
동원이는 요만큼만 해도 멋져 보이지 않나. 팔만 뻗어도 예쁘다. (웃음) 강동원, 조인성처럼 팔다리가 긴 친구들은 선이 고와서 액션이 훨씬 예쁘다. 촬영하면서 동원이한테 얼마나 많이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사실 이번에 악역을 맡은 만큼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일부러 거리를 좀 뒀다. 게다가 내가 선배인 만큼 뭔가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후배들에게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김성식 감독 첫 작품인 만큼 다 같이 하나로 뭉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뒤에서 그걸 지켜만 봤다. 굳이 그 자리에 끼지 않아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동원이한테 ‘안 되겠다, 우리 골프 치러 가자!’ 하고 먼저 다가갔다. (웃음) 다행히 동원이도 골프를 좋아해서 금세 친해졌다.

본래는 후배 배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인가.
다들 선배라는 존재는 어렵지 않나. 나도 안 친한 선배와 5분 이상 같이 못 있는다. (웃음) 그래서 나도 후배들과 있으면 먼저 빨리 떠나주려고 한다. 아무래도 남들이 내가 좀 다가오기 힘든 얼굴이라고, 불편한 얼굴이라고 하니까. (웃음) 특히 악역을 맡을 때는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다른 배우들과 조금 더 거리를 두는 편이다. 이전에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를 할 때도 남주인공을 맡은 배인혁 배우와 촬영이 끝나는 날까지 얘기를 안 했다. 다 끝나고 나서야 다가가서 안아주고 그랬다. (웃음) 현장에서 내 모토는 귀찮은 사람 되지 않기다. 나는 현장에서 군림하지 않는 사람, 그림자 같은 사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연출을 맡은 김성식 감독은 이번이 첫 장편 연출인데 현장에서 어땠나.
내공이 있더라. 현장에서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못 봤다. 첫 연출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슴에 찔리는 얘기를 들으셨을 텐데 잘 버티고 잘 넘기셨다. 늘 보면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너무 멋진 분이시다. 물론 기존 감독님들이 편하고 좋지만 신인 감독님은 현장이 잘 안 돌아가더라도 열정이 있어서 좋다.

완성도 높은 액션뿐만 아니라 강렬한 악역 연기로도 호평 받고 있는데.
대본에 써진 걸 그대로 연기했을 뿐이다. (웃음) 나는 대본에서 벗어나는 건 잘 안 한다. 감독님이 주문하신 대로 한다. ‘범천’을 연기하면서 고민한 지점은 그가 빙의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빙의를 하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하니까 그런 지점을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다.

분장에 관해서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을 위해서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연구했으니 나이를 떠나 나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않겠나. 특히 ‘범천’은 특수 분장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미술팀과 감독님에게 분장을 더 많이 해야할 거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독특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서 분장을 꽤 했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분장 시간이 더 걸리더라. (웃음) 요즘은 피부에 얇게 붙이는 방식이다 보니 분장하는 데 평균 반나절 정도 걸렸다.

언론시사회 당시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범천’을 연기하며 쇠사슬에 묶인 압박감까지만 표현했다. 그런데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게 그냥 쇠사슬이 아니라 불 타는 쇠사슬이더라. (웃음) 그래픽은 후반 작업으로 추가됐는데 촬영 당시에는 쇠사슬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 몰라서 그 뜨거움을 표현을 못한 게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나중에 김성식 감독을 슬쩍 꼬집으면서 '찍을 때 이야기해줬으면 더 표현했을 텐데'라고 말했더니 감독은 그때 연기도 괜찮았다고 하더라. (웃음)

그렇게까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시사 직후 모두가 입을 모아 당신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았나.
돈 만원을 주고 영화 보러 집을 나서서 돌아올 때까지 4~5시간은 걸린다. 관객들이 그렇게 소중한 돈과 시간을 내주는 건데 나는 디테일하게 신경 쓴 연기로 보답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관객이 시간을 내주는 만큼 나도 설렁설렁 연기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보여드려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고, 그래야 떳떳할 수 있다.

지난 5월 넷플릭스 <사냥개들>을 공개했고 <천박사> 이후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할 예정이다. 올 한해 동안 세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게 됐는데.
과거 한 번의 공백기를 겪은 만큼 바쁜 지금이 정말 좋다. 거짓말처럼 옛날이 기억 안 난다. (웃음) 지금 정말 평안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영화는 흥행 사업이고 배우는 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나. 배우가 가진 티켓 파워가 중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나를 사람들이 여전히 찾아주고 계속해서 연기할 수 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리고 여전히 욕심도 많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젊었을 때 비해 마음에 여유만 조금 생겼다뿐이지 욕심은 여전하다. (웃음) 내 또래 배우 중에 현역 액션 배우가 별로 없지 않나. 앞으로도 또 액션 역할을 주면 진짜 열심히 할 거다. (웃음)


사진제공_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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