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아빠는 딸>과 드라마 <환혼> 등에서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색하지 않게 웃음을 주도했던 정소민이 로맨틱 코미디 <30일>로 관객을 찾는다. 영화 <스물>의 파트너였던 강하늘과, 영화 <위대한 소원> <기방도령> 등 코믹에 진심인 남대중 감독과 의기투합했다. 이혼까지 D-30! 교통사고로 인해 모기 같이 하찮고 성가시게 하는 존재인 남편 ‘정열’과 동시에 기억을 잃어버린 황당한 상황에서도 꾸밈없고 당당한 직진녀 ‘나라’로 분한 정소민을 만났다. 캐릭터와 상황의 앙상블에서 오는 웃음을 일구려 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동반 기억 상실이라는 다소 판타지적인 설정에서 출발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시나리오의 어느 부분에 끌렸나.
일차원적인 워딩일 수 있지만, 일단 재미있었다. 한 번에 후루룩 읽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책(시나리오)의 독자로서 무엇보다 재미있고 잘 읽히느냐가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캐릭터를 살펴보는 편이다.
영화 <아빠는 딸>(2016), 드라마 <환혼> 등을 보면서 코미디를 아주 잘 소화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나라’역을 연기하면서 주안점은.
일부러 웃기기보다 ‘나라’라는 캐릭터와 어떤 특정 상황의 시너지를 잘 표현하려 했었다. 캐릭터와 상황의 앙상블이라고 할지, 예를 들면 야구장 씬의 경우 ‘나라’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웃기지 않았을 것 같다. 실제의 나라면 그렇게 행동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캐릭터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
정말 그랬다. 나라의 저돌적이고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면이 가장 크게 다가왔었고, 이 부분을 캐릭터의 큰 줄기로 삼았었다. 평소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라 (웃음) 연기하면서 후련하고 통쾌하더라. 실제로 닮은 면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한 선택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점,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는 건 비슷한 것 같다.
돌고 돌아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라가는 와중에 ‘기억 찾기 프로젝트’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남대중 감독의 남다른 유머 코드가 읽히던데 곁에서 보니 어떻든가.
기발하면서도 현실적인 포인트를 잘 포착하시는 분이다. 사실 ‘정열’(강하늘)이 나이트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감독님의 친구분이 그랬다는 거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재미있게 하고 즐겁게 하는 걸 좋아하신다. 웃음 타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데 이런 면이 진정한 고수가 아닌가 한다. (웃음) 왜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개그 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고, 사람들이 ‘뭐에요~’ 하고 심드렁하게 반응해도 그 자체로 재미있어 하신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크고 따뜻한 분이라 현장 분위기 자체를 편안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남 감독이 당신에게 의견을 많이 구했다던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일까.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열어 두셨었다. 특히 ‘나라’와 그 친구들(송해나, 엄지윤)이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여자들이 평소 대화할 때의 분위기 등에 대해 잘 모르니 여러 의견을 달라셨고, 말씀드리니 정말 많이 반영해 주셨다. 예를 들면, 세 친구가 스크린 골프 치는 장면에서, 친구가 ‘정열’이를 욕하자 나라가 ‘욕해도 돼, 내가 허락한다’고 하는 대사가 있다. 원래는 없었는데 나라라면 같이 욕할 것 같아서 추가된 대사다.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스물>(2015) 이후 강하늘 배우와 다시 호흡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스물> 커플의 미래 모습 같다는 반응이 꽤 있다.
개인적으로 반대의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아주 많은 분이 <스물>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을 주시더라.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상상해 볼 법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
나중에 또 10년이 지나서 강하늘 배우와 다시 호흡을 맞출 생각은 없나.(웃음)
우리끼리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격정 멜로는 너무 식상하니 ‘걱정 멜로’가 어떨지 하고 말이다. 서로 중년의 삶을 걱정해 주는 이야기가 좋겠다고 농담했다.
강하늘 배우는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필모를 차곡차곡 쌓아 왔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그 변화를 체감했나.
‘강하늘’이라는 사람 자체를 놓고 보면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웃음) 배우로서는 당연히 그간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더욱더 여유로워지고 연기력도 높아졌지만, 개인 강하늘은 늘 똑같다.
강하늘 배우는 ‘놀리는 맛’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느 면에서 그런지 궁금하다!
서로 많이 놀렸는데, 이게 놀린다기보다는 장난을 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하늘 씨가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원체 편한 걸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현장에 늘 같은 옷을 입고 오면 나뿐만 아니라 현장 스탭 모두가 ‘빨래 안 하냐’고 하면 ‘옷이 여러 벌인 것’이라고 응수하곤 했었다. 기본적인 리액션이 큰 데다 반응이 원체 귀여워서, 놀리는 입장에서 자꾸 더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간 카리스마의 대명사 같은 조민수 배우가 ‘나라’의 엄마로 반전의 엄마 상을 보여준다. 웃음 터지더라.
정말 까도 까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초반 등장부터 반전이었고, 어느 정도 파악됐다 싶은 시점에서 또 예상을 뒤집는 행동을 한다. 게다가 끝까지 허를 찌르고! 신선하고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를 선배님이 너무 잘 소화해 주셨다. 이외에도 여러 선배님, 동료 배우들이 함께해서 더욱더 풍성한 웃음을 유발한 것 같다.
지극히 사랑했던 남녀가 결혼에 골인 후, 서로를 맹렬히 미워하며 이혼을 시도한다는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을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건 아주 큰 일이고, 이를 잘 유지한다는 건 더 큰 일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부부 생활을 잘해 나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서로 다른 환경의 성인이 만나서 맞추어 산다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거든. 이번 <30일>을 보며 역시나 결혼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닫았다.
영화나 시리즈 같은 콘텐츠를 즐겨 시청하는 편인가. 평소 일하지 않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쉴 때는 주로 다섯 살 조카와 같이 논다. 최근에 클라이밍을 시작했고, 한 5개월 됐는데 성취감이 큰 운동이더라. 영화나 드라마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주 본다. 힐링하고 싶으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웃고 싶을 때는 코미디, 조금 딥해지고 싶은 순간에는 시리어스한 드라마 등 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다양하게 챙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출연한 작품은 시간이 좀 지나야 다시 보게 되더라. 최근 본 영화 중 <오펜하이머>, <슬픔의 삼각형>이 좋았다.
<30일>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일상이 버겁고 지치다 보면 웃을 여유가 없지 않나. <30일>을 보며 단 두 시간만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어떤 배우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이야기다. 생각이라는 게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계속 변하더라, (웃음) 일단 지금은 다양한 역할과 더불어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아직 에너지가 많고 건강하니, 액션을 좀 더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무용을 전공해서 그런지 몸 쓰는 걸 좋아하고, 쓰면서 에너지가 생기는 편이다. 아직 차기작은 미정이지만, 완전히 열어 놓고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하려 한다.
사진제공. 마인드마크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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