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천박사>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어느 날 임필성 감독님이 류승완 감독님과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예전에 한 번 뵌 다음 오랜만에 다시 뵙는 거였다. 그날 류 감독님과 얘기를 하다가 ‘오컬트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꺼냈더니 괜찮은 시나리오가 있다면서 보내주셨다. 그게 이번 작품이었다. 설정도 신선하고 액션도 꽤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성식 감독님이 신인이지만 조감독을 오래 한 걸 알고 있어서 실력에 대한 의심도 없었다. 연출부에 계셨을 때 평판이 꽤 좋았다. (웃음)
그러고 보니 <의형제>, <검은 사제들> 등 신인 감독과도 자주 작업했다.
연출부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연출이 처음이어도 진행이 빠르다. (웃음) 게다가 나이도 나와 또래라 그런지 확실히 작업하면서 편한 부분이 있다. 김성식 감독님은 영화 전체의 밑그림이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수월하고 스무스하게 촬영을 진행했다. 봉준호, 박찬욱, 장항준 감독님 밑에서 오랜 기간 일해서 그런지 그분들 느낌이 날 때도 더러 있었다.
오컬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샤머니즘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일적으로만 관심이 있다. 소재 자체가 주는 특별함이 있지 않나. (웃음) 특히 무당 같은 경우 우리나라 토속적인 무속 신앙과 관련되어있다 보니 해외 관객에게 더 새롭고 특별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우리 영화가 오컬트라 해서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다. 재밌으려고 만든 영화고 캐릭터도 그렇게 무겁지 않다. ‘천박사’를 보면 <전우치>나 <검사외전>이 떠오를 수 있다. 그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그래도 똑같은 건 피하려고 했다. 가끔 너무 ‘전우치’ 같으면 다시 찍자고 하기도 했다. (웃음)
그렇다면 <전우치>, <검사외전>과의 차이는 어떻게 두려고 했나.
‘천박사’에게 가족과 관련된 사연이 있는 만큼 여러 레이어를 덧대고 그 안에 슬픔을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무겁게 가지도 않으려고 했다. 무당들이 굿하는 영상을 참고해서 그런 것들도 표현하려고 했고. 그런 영상 보면 무당 분들이 의뢰인들에게 막 화를 내지 않나. 그 지점도 설정에 좀 녹였다. (웃음) 의도한 건 아닌데 내가 예전보다 더 성숙해져서 달라 보이는 것도 있었다. 경험과 세월이 어느 정도 얼굴에 묻어나서 더 사연 있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
매 작품 ‘미모’로 화제를 모았다. (웃음) 이번에도 당신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배우가 얼굴이 잘 나오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겠나. (웃음)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선 얼굴에 세월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았다. 나이대보다 어려 보이고 미성숙한 캐릭터를 자주 맡았는데 앞으로 성숙한 역할을 더 맡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이번엔 성숙을 넘어 좀 아저씨 같아 보일 때도 있더라. (웃음)
‘전우치’나 ‘천박사’ 같은 유머러스하고 허당 기질 있는 캐릭터를 맡을 때 유독 빛을 발하는 거 같다.
내 성격 자체가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짓궂은 편인데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를 좀 더 선호하는 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코믹한 캐릭터를 맡을 때만 작품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웃음) 보통 심각한 장면을 찍으면 현장 분위기도 무거워지는데, 코미디 영화는 그런 게 없어서 좋다. 영화 찍을 때 힘든 건 다 비슷한데, 웃으면 덜 힘들게 느껴진다.
극중 대부분의 코믹한 장면이 ‘천박사’와 조수 ‘인배’(이동휘)의 호흡에서 비롯되는데.
동휘 씨와 함께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동휘 씨의 코미디는 내가 넘어서기 힘든 지점이 있다. 준비도 워낙 꼼꼼히 해오는 데다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애드리브도 엄청나다. 말빨로는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고 슬랩스틱처럼 몸 쓰는 건 내가 낫지 않을까 싶다. (웃음)
원래는 내가 극 초반부까지 가짜 퇴마사로 고객들에게 화를 내는 입장이었는데, 정민 씨와의 장면에서는 정민 씨가 오히려 우리에게 화내는 연기를 하는 무당 입장이었다. 정민 씨의 원맨쇼를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웃음) 그때는 정민 씨가 특별출연이라 호흡을 많이 못 맞춰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전, 란>으로 만나 원없이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아! 블랙핑크 지수 씨가 특별 출연으로 정민 씨와 같이 등장했는데, 정민 씨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사인을 받아가더라.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코미디와 함께 검술 액션도 선보였다.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액션이 크게 어려운 작품은 아니었다. 평소 무에타이나 주짓수 같은 운동을 즐기기도 하고, 전작들을 하면서 액션 연기의 기반을 닦아놓은 터라 따로 준비한 건 없었다. 이번에 함께하신 무술 감독님이 처음 같이 작업하는 분이라 작품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하긴 했는데 내가 썩 잘했는지 그 다음부터는 안 부르시더라. (웃음)
이번 작품 홍보를 위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도 출연했다. 19년 만의 예능이라고.
정말 오랜만에 예능에 나갔다. 영화 홍보하러 나왔다고 한 말은 편집됐더라. (웃음) 어쨌든 예능이라고 해도 토크쇼 같은 느낌이라 한 번쯤 그런데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영화에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예능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나가서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좋은 사람처럼 보일 거 같았다. 내가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닌데 좋은 사람으로 포장되는 느낌이 들더라. 한편으로는 이제 나이도 많이 먹어서 반응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웃음) 방송 나간 뒤에 생각보다 팬들 반응이 긍정적이라 기뻤다. (웃음)
2003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로 데뷔해 올해로 배우 활동 20주년을 맞았다. 앞으로의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면.
어떤 캐릭터든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고 그렇게 기억에 남고 싶다. 연기를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전보다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힘든 신이 와도 긴장하지 않고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는 한다. (웃음) 이제는 현장이 정말 재밌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도 있었는데, 그런 것 없이 일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늘 뉴스를 틀어놓고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려 한다. 그분들에게 영감도 많이 받는다.
오는 27일 <천박사>와 함께 <1947 보스톤>, <거미집>까지 한국영화 기대작 3편이 같은 날 동시에 개봉한다.
이런 경우가 잘 없는데 그만큼 영화 산업이 급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 배우들 모두 친분이 있는 분들이라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 (웃음) <천박사>는 다른 두 영화에 비해 가볍고 유쾌하고, 액션도 아마 제일 화려할 거다. 세 작품이 동시에 개봉하는 만큼 극장가에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기를 바란다.
사진제공_AA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