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시청자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내 성미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웃음) 나는 불안할 때 화를 낸다. 겁이 많아서 그렇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도 미팅 과정에서 불안감이 들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로서 마르고 닳도록 쓰이고 싶다.
배우 이한별, 나나와 한 캐릭터를 나눠 연기했다. 제작발표회에서 본인을 ‘모미C’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웃음)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동안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내가 예능 프로그램도 잘 안 나가고 SNS도 전혀 안 하다 보니 개인적인 생활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서 이미지가 고정돼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뭐가 됐든 항상 비슷한 역할만 들어오더라. 그러다가 이런 장르물 출연 제의가 들어온 거다. 게다가 작품도 너무 좋았다. 무조건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동안 항상 나 혼자 이고 지고 가는 역할만 했지 않나. (웃음) 그게 아니라서 좋았다. 여러 배우와 협력해야 하고, 심지어 하나의 캐릭터를 세 사람이 같이 연기해야 했다. 완전히 주연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오히려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마스크걸>에서도 내가 대활약을 했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웃음) 하지만 이번엔 세 명의 ‘김모미’ 안에 잘 녹아드는 게 목표였기에 만족하고 있다.
성형 전의 ‘모미’를 연기한 이한별 배우, 성형 후를 연기한 나나 배우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이한별 배우는 이게 데뷔작인데 굉장히 차분하고 내공 있어 보여서 첫 작품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작발표회를 할 때도 처음엔 너무 긴장해 보여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다’며 자기 생각을 요목조목 잘 얘기하더라. (웃음) ‘내공이 있는 배우가 되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가 궁금해졌다.
나나 배우와는 내가 스탠바이 하고 있는 상태에서 몇 번 만났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모미’ 상태로 예열을 하고 나온다는 느낌이 들더라. 나나 배우한테 부러운 게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장면을 가져갔다. (웃음) 교도소에서 사람을 때려서 독방에 갇혔다가 나와서 또 때리고 또 독방에 들어가는 그 장면! 배우로서 너무 욕심나는 장면이었다.
감옥에 간 뒤 10년이 흐른 시점의 ‘모미’를 연기했다. 짧게 자른 머리와 초췌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는데.
처음엔 좀 겁이 나서 머리를 그렇게 짧게 자르진 않았다. 그랬더니 초췌한 느낌이 영 안 살아서 감독님이 곤란해 하더라. (웃음) 그래서 아주 짧게, 뭉툭뭉툭 엉성하게 잘랐다. 그제서야 감독님이 만족하더라. 그동안 내가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나한테서 꼭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든 ‘모미’의 외적인 부분 외에 어떤 면에 집중했을까.
감옥에서 10년 보낸 사람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그려나갔다. 무엇보다 ‘모미’의 현 상태에 집중했다. ‘모미’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만을 생각했다. 현실이 그렇듯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려 했다. 그래서 이한별, 나나 배우가 연기한 ‘모미’의 ?은 시절 부분도 일부러 모니터링하지 않았다. 사실 내 연기도 잘 모니터링하지 않는 편이지만. (웃음)
‘모미’는 깊은 강 바닥 같은 인물이다. 평소에는 아주 낮은 텐션을 유지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크게 움직인다. 일단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면, 폭발적으로 쓰는 거다.
나는 항상 2등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너무 공감됐다. 물론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삶에 지장이 있었던 분들이 느끼는 디테일까지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미스코리아 때부터 <모래시계>, <선덕여왕> 등 잘 알려진 작품에서도 항상 주인공이 아니었고 나보다 더 예쁜 사람들에게 치이고 밀린 적도 있다. <모래시계>도 ‘태수’와 검사들의 이야기지 나는 곁다리였고, ‘미실’도 그렇다. '선덕여왕'이 타이틀이지 않나. (웃음) 여담이지만 <선덕여왕>에는 원래 25회까지만 출연하는 거였는데 계속 연장이 돼서 힘들었다. 제발 ‘죽여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당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신경질을 많이 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모미’나 나나 그렇게 상식적이지는 않다. (웃음) 그런 점이 닮았다. ?
감옥에서 나름대로 평온한 생활을 이어 나가던 ‘모미’를 움직이는 건 딸 ‘미모’(신예서)다.
‘모미’의 행동은 모성애로 해석될 수 있지만, 모성이란 사람마다 다 다른 형태로 발현되기 때문에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다른 작품들이 보여준 것과 비슷한 게 나올 거 같았다. 뻔한 모성으로 표현하면 클리셰 같고, 구태의연해질 거 같았다. 내가 연기한 지 30년이 넘다 보니 익숙한 내 연기가 그런 지루함을 배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새로운 모습과 표정을 보여주려 했다.
매체에서 모성은 항상 뜨겁고 아름답게 그려지는데 너무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모성을 그런 식으로 느끼지 못했고 ‘모미’에게 모성이 있는지 확신하지도 못했다. 내게 ‘모미’는 그런 감정보다 현실이 더 중요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사실 ‘모미’를 움직인 건 ‘미모’가 아니라 ‘김경자’(염혜란)라고 생각한다. 교도소에서 좋게 좋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미’의 영역에 ‘경자’가 침범한 거다.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한 끝에 모성을 드러내는 부분을 최대한 생략했다. 딸을 보고 살짝 미소 짓는 장면 정도, 그게 ‘모미’의 모성이라면 모성이다.
<마스크걸>을 기점으로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그동안 배우로서 반성을 많이 했다. 항상 작품으로 화제가 되고, 칭찬받고 싶은데 내 개인사가 그걸 뛰어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예뻐졌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데, 감사하면서도 그걸 누를 만한 배우로서의 활동이 없었다고 생각하니까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많이 쓰이고 싶다.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고 비중과 상관 없이 어떤 역할이든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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