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은 세 명의 배우가 ‘김모미’라는 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걸그룹 출신 나나와 출연 자체로 무게감을 지닌 고현정, 이 두 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행운의 주인공은 날 것의 신인 이한별이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늦깎이에 단편 영화 외에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가 마침내 기회를 잡은 것이다. 4개월의 캐스팅 기간을 거쳐 촬영과 공개까지 거진 3년을 <마스크걸>에 올인한 이한별이다. 지난해 10월 촬영을 끝낸 그는 일상으로 돌아가 아르바이트하며 다음 역할을 준비 중이다. 배우로서 살아남으려면 연기는 기본이고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에 명상과 글쓰기 등을 하며 미래의 시간을 가꾸고 있다. 혼자였던 그가 회사(에이스팩토리)에 들어가 <마스크걸>을 함께한 선배인 염혜란과 한식구가 된 것도 큰 변화다. 정신과 육체, 외부의 환경까지 정비한 이한별, 제2의 ‘김모미’를 기약하며 매진 중이다.
드디어 공개됐다. 몇 년이나 공 들인 결과물을 본 기쁨이 정말 컸겠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처음 출연한 작품이다.
그간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나 졸업 작품 같은 단편 영화에 출연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채널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처음이다. 정말 얼떨떨하다. 사실 글로벌 OTT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는데 공개 후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많고, 또 외국인 친구가 자주 <마스크걸>을 거론해 줘서 전 세계 시청자가 보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내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서 2부부터 재미있게 보고 나서야 1부를 볼 수 있었다. (웃음)
김용훈 감독이 프로필을 보고 연락했다고 들었다. 캐스팅되기까지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감독님이 캐스팅 범위를 광범위하게 잡으셨다고 들었다. 광고 에이전시와 제작사에 돌린 내 프로필을 보고 연락하셨다. 처음은 코로나 시기라 영상 인터뷰였고, 독백영상이랑 이미지를 요청 하셨었다. 사실 이런 큰 작품은 오디션조차 처음이라 원래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요청주신 자료를 몇 번 보낸 후 대면 오디션이 잡혔다. 인물 담당 조감독님과 먼저, 이후에 김용훈 감독님과 오디션을 진행했다. 이때도 준비하고 같이 맞춰보는 시간을 가져 봐도 되겠냐고, 안될 수도 있다고 하셨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오케이했고, 한 달 후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처음 연락받고 최종 합격까지 4개월 정도 걸렸다.
‘김모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언제쯤 알게 된 건가.
처음에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연출한 김용훈 감독님의 신작이라고만 들었다. 대면 미팅 후 <마스크걸>이라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 전체 시나리오를 받았다.
첫 번째 김모미는 ‘못생긴’ 외모를 가린 채 BJ로 소통하는 캐릭터다. 배우로서 어떤 프레임에 갇힐 우려가 있는 배역인데 망설임은 없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우선 기회가 온 것이 중요했다. 내가 맡을 역할이 왔다는 사실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내가 전형적인 미인상이 아니지만, (웃음) 그래도 분명히 소화할 캐릭터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 나라는 배우를 알아봐 줬고, 기회를 얻었다는 데 의미가 컸었다. 나중에 어떻게 보일지는 고민하지 않았고 현장에 나가 신나게 연기했었다. 공개 후 이런 맥락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생각해 봤지만, 중요한 건 기회를 잡았고 김모미라는 캐릭터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를 자양분 삼아 다음 작업을 이어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모미라는 인물에 어떻게 접근해 나갔나.
웹툰으로 볼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시나리오에서는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모미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요소(외모 등)로 꿈이 좌절됐지만, 얼굴을 가린 채 방송하며 자기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때론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연민이 느껴지더라. 꼭 외모만이 아니라 누구나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나 아픔 등이 있지 않나.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일들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행하는 또 다른 선택에 집중해 접근했던 것 같다.
마스크를 특수 제작했고, 여러 버전이 있었다고 들었다. 마스크만 썼을 뿐인데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신기해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웃음)
얼굴에 맞춰 제작했고 끈이 있어 고정하게 돼 있다. CG 등으로 끈을 감추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웃음) 아무래도 얼굴에 밀착되다 보니, 숨이 빠져나갈 부분이 없어서 자꾸 숨을 먹게 되고, 또 눈동자에 그림자가 지는 부분도 있어서 이런 문제점 등을 반영해서 계속 업그레이드시켰다. 코에 구멍을 뚫기도 하는 등 쓴 채로 연기하기 수월하도록 여러 버전이 탄생했다. 그리고 비주얼이 예뻐야 해서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잡히는 모습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하며 보완해 발전시켰다.
웹툰 속 주인공과 싱크로율이 높다는 의견이 많은데 의도한 스타일링인가.
모미가 복사기 앞에 서있는 씬이 첫 촬영이었다. 이때 모미의 느낌이 덜 사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다시 하는 등 스타일링을 리터치했었다. 원작의 느낌에 맞게 광대와 다크써클 등을 메이크업으로 부각시켰다.
이렇게 규모가 큰 작품은 처음인데 김용훈 감독이 따로 당부한 말이 있다면.
뭔가를 많이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이 작업을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감독님이 생각한 모미와 내가 맞닿는 부분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말이다. 간혹 내가 다르게 해석한 부분이 있으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또 연기에만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다른 배우 그러니까 나나, 고현정 배우가 연기한 모미를 보는 기분이 묘했을 것 같다. (웃음) 촬영 중에는 서로의 연기를 일부러 못 보게 했다던데.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모미를 굉장히 궁금해하면서 극을 봤었다. (웃음) 시나리오를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하더라. 이런 중반부의 강렬함을 지나 시간대가 점핑한 후반부는 많은 사건을 겪은 후 초연해진 모미의 모습에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런 초탈함이 배우의 얼굴에서 그대로 느껴져서 감탄했었다. 워낙에 존재감 있는 선배님들이라 모미를 묵직하게 이어가고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또 감옥 시퀀스나 엔딩씬에서는 내가 그렸던 모미보다 좀 더 시원시원한 면이 있어 후련하기도 하더라.
함께한 장면은 없지만, 촬영 외적으로 두 배우(나나, 고현정)와 호흡은 어땠나.
알다시피 촬영 현장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나나 배우와는 오가며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같이 ‘토요일 밤에’ 안무를 연습할 때는 고생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줬다. 또 제작발표회 당시 손잡아 준 건 물론이고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긴장을 풀게끔 자신도 이렇게 큰 자리는 여전히 떨린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줬다. 고현정 선배는 나중에 뵀는데 정말 꿈인가 싶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걸어오는 순간에도 현실감이 없어서… 어릴 때부터 TV에서만 봤던 분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그제서야 한 작품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실감이 날 정도였다.
‘주오남’ 역을 통해 연기 장인으로 등극한 안재홍 배우와 멋진 호흡을 선보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우선, 선배님의 ‘아이시테루(사랑해)’ 연기를 가장 가까이서 직관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웃음) 오남의 일본어 대사가 원래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선배가 이런 이런 부분에 추가하면 좀 더 덕후스러울 것 같다고 제안했고, 감독님이 여기에 맞춰서 대본을 수정해 주셨다. ‘아이시테루’ 대사도 원래 없다가 추가된 부분이다. 현장에서 선배가 이 대사를 하니 잠깐의 정적 후 완전히 빵 터졌었다. 또 평소 영화 <소공녀>를 좋아해서 오디션 볼 때 극 중 안재홍 선배의 독백을 했다고 하니, ‘그런 거 왜 하냐고, 하지 말라’고 하기도.(웃음) 내가 경험이 적으니 리딩할 때나 현장에서 미리 맞춰보자고 먼저 제안 주셨었다. 모미와 오남과의 마지막 씬은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장면인데 찍으면서 (내) 생각보다 훨씬 선배를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정도로 큰 도움을 주셨다. 이외에도 김가희 배우는 동갑이라 서로 친하게 지냈고, 장원영과 최다니엘 선배님 모두 스스럼없이 대해 주셨었다.
<마스크걸>에 출연하게 되며 에이스팩토리에 둥지를 틀었다고.
촬영 직전에 계약할 수 있었다. 빨리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고, 또 제작진도 준비할 거리가 많은데 내가 혼자 움직이는 걸 걱정하던 참이었다. 마침 좋은 배우가 많은 회사라 특히 평소 좋아하는 염혜란 선배가 있는 곳이라 망설임 없이 믿고 갔다.
염혜란 배우 이야기가 나와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김경자’로 분해 소위 화면을 씹어먹는 연기를 펼쳤다. 어떻게 봤는지.
영화 <빛과 철>도 그렇고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멋진 선배님이다. 카리스마와 존재감, 연기력을 지닌, 그야말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분이다. 촬영 현장을 몇 번 본적이 있는데 제작진과 스탭이 모니터링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넋을 놓고 감상하는 경지였다. 정말 대단했다. 글을 계속 읽고 질문하며 그 방향을 잡아 나가는 등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걸 새삼 알게 됐었다. 감독님도 염 선배의 연기를 보고 잘 배우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차기작은 정해졌는지 또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지난해 10월에 <마스크걸>의 촬영을 끝냈고, 일상으로 돌아가 아르바이트하며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다. 배우로서 살아남으려면 연기는 기본이고 마인드 컨트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에 명상과 글쓰기 등 미래의 시간을 가꾸는 중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은, 평소 독립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하는데, 영화 <소공녀> 같은 작품이다. 일상적이면서 감정의 결을 미세하게 쌓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또 아주 장르적이고 캐릭터적인 ‘김경자’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3년 9월 6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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