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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눈광’? 광기? 그런 캐릭터 아냐” <잠> 정유미 배우
2023년 8월 29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 <잠>은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남편의 이상 행동에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남편 ‘현수’(이선균)의 몽유병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아내 ‘수진’ 역을 맡은 정유미는 이번 작품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다른나라에서>(2012), <부산행>(2016)에 이어 네 번째로 칸에 입성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작품이 영화는 2019년 개봉한 <82년생 김지영>, 드라마는 2020년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이다.
사실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 (웃음) 복귀작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한 거 같고,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잠>의 어떤 점에 끌려 출연하게 됐나.
어느 날 갑자기 봉준호 감독님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봉 감독님과는 같이 작업해본 적이 없어서 섭외 전화인가 하고 신이 났는데 그건 아니었고, 시나리오 한 편을 읽어봐 달라고 하시더라. (웃음)

봉 감독님 소개로 만나게 된 시나리오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랜만에 간결하면서도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약 시나리오집이 나온다면 '이렇게 짧아?'라고 할 정도로 컴팩트했다. (웃음)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호기심이 들더라. 물론 의도적으로 봉 감독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 것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께 추천 받았으니 사심이 안 들어갈 수가 없더라. (웃음) 시나리오가 흥미로운데, 이게 내 생각인지 감독님의 영향인지 헷갈려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걸 쓴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유재선 감독님과 직접 만나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러브스토리’라는 표현이 좋았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궁금해지더라.

칸에서 공개된 후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코미디, 오컬트 등이 섞인 복합적인 장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나의 작품이 이렇게 여러 장르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신기하다. 내가 전혀 생각도 못한 장르들이 튀어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코미디가 가장 의아하더라. (웃음) 보는 분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재선 감독은 이번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다. 함께 작업한 소감은.
감독님은 곰돌이 같고 순둥순둥한데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편안함 사이에서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감독님이 가진 장점이다. 이번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발상도 너무 신선하고 상상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너무 궁금하고, 기회가 되면 또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

그런가 하면 이선균 배우와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 공연이다. 앞서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는 배우들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거처럼 보여도 현장에선 전혀 아니다. 소주잔 하나 놓는 위치까지도 신경 쓰며 디테일하게 연출하시고, 밀도도 엄청나다. 그래서 선균 오빠와 함께하는 회차는 적었지만 밀도가 높은 현장이었기 때문에 같이 연기하는게 많이 익숙해졌다. 호흡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오빠와는 현장에서도 말을 많이 안 했다. '어떻게 할 거야?'라는 말도 없었다. (웃음)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 보니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도 편하다.

극 초반 만삭의 임산부로 등장하는데, 이번이 첫 임산부 역은 아니지만 힘든 점은 없었나.
이게 정말 할수록 느는 것 같다. <부산행>에서는 좀비떼를 피해서 생존해야 하는 캐릭터였다. '만삭인데 어떻게 저렇게 뛰냐' 했는데, 그래도 살려면 뛰어야지 어쩌겠나. (웃음) <82년생 김지영> 때는 김도영 감독님께 의지를 많이 했다. 감독님께서 두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아주 자잘한, 진짜 육아를 하는 엄마가 어떤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유재선 감독님은 허리를 두드리라는 팁을 주시더라. 임신도 해본 적 없는 분이 어떻게 그런 걸 아는지 모르겠다. (웃음)

사실 전작 <82년생 김지영>에 이어서 한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 않겠냐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이 ‘지영’이 힘든 것을 안으로 삼키는 캐릭터라면 ‘수진’은 진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캐릭터라 결이 다르다고 설명하셨다. 거기에 공감이 갔고, 그에 맞춰서 연기하려고 했다.

시사 직후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웃음) 후반부로 갈수록 폭발하는 광기가 인상적이라는 반응이다.
광기에 대해 많이들 얘기해주시는데, 그걸 듣고 나니 내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졌다. 나는 광기를 생각하고 연기한 게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웃음) 비슷한 예시로 <염력>(2018) 때 영상이 요즘 ‘맑눈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돌아다니던데, 그 때도 광기를 연기한 게 아니었다. (웃음) 광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더 제대로 보여줄 수 있지만 두 경우 모두 그런 캐릭터로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뭘까.
들어오는 작품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면 감독님을 직접 만나뵙는다. 감독님과 결이 맞으면 그 다음에 같이 하자고 한다. 글이 매력 있어야겠지만, 글만의 매력으로 가는 건 아니다. 감독님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에서 제일 얘기를 많이 나누는 사람이 감독님과 상대 배우이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크니까 그런 것 같다.

차기작으로 SF 영화 <원더랜드>와 스릴러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가 내정돼 있다. ‘윰블리’ 정유미의 로맨스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나도 <로맨스가 필요해>의 한 장면을 따라해본 적이 있는데,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드라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만 못하더라. (웃음) 그 느낌도 안 나올 뿐더러 스스로 민망하더라. (웃음)

연기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됐다.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이 뭘까.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여전히 있다는 거 자체가 동력이 된다. 더 잘하고 싶게 만들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솔직히 말해 힘들 때도 진짜 많다. 한때 그만 둘까 마음 먹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니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더라. (웃음)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일하면서 좋은 부분이 7~80%, 힘든 부분이 2~30% 정도다.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는 거 같다. 이 일 안에서 밸런스를 지켜가며 하려 한다.

이 정도 경력이 쌓였는데, 연출에 도전해볼 계획은 없나.
전혀 없다. 연기나 잘해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웃음) 사실 브이로그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해서 접었다. 연출 기회가 주어질 거 같지도 않지만, 주어진다 해도 잘 못할 게 확실하다. (웃음)


사진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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