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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만족 드물어, 그게 동력”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보영 배우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잘되면 남 덕분, 안되면 내 탓인 편이에요” 박보영이 털어놓는다. 어려서부터 일하며 의례적인 칭찬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굳어진 것 같아 어떨 때는 힘들다고 고백한다. 러블리함의 대명사, 원조 ‘뽀블리’ 박보영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다. 그간 로코 장르에서 밝고 통통 튀는 캐릭터를 주로 선보여 온 그가 무게감 있는 디스토피아 드라마 속에서 재난에 마주해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명화’로 분해 단단한 얼굴을 선보인다. 귀여움과 동안의 이미지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박보영, 이제는 뽀블리와 동안을 자기의 고마운 개성으로 인정하게 됐단다. ‘명화’ 안에 딥하고 어두운 낯선 얼굴과 더불어 대중이 익히 기억하고 기대하는 얼굴 역시 섞여 있다고 확신하는 그, 자기 연기에 만족한 적이 드물다’는 높은 기준과 스스로에 엄격한 의외성을 드러낸다. 만족할 때까지 연기하기! 박보영이 꼽는 연기 동력이다.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다. 호평이라 기쁘겠다. (웃음)

사실 리뷰를 쭉 찾아보며 계속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웃음) 복귀라는 말이 좀 어색하지만,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작품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 만족스럽다. 행복하고, 이 영화를 내 필모에 남긴다는 자체로 기쁜 일이다. 내게도 어떤 굵은 글씨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CG와 VFX 등 후반작업을 거쳐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세 번 정도 멈추고 한숨 쉬며 봤던 부분이 있었는데 영화에 아주 잘 담겼더라. 또 이병헌, 김선영 선배를 비롯해 많은 분의 연기에 새삼 놀랍기도 했다.

한숨 쉰 부분은 어느 지점일까. 또 영화의 어떤 면에 마음이 끌렸는지.

시나리오에서 이슈가 불거지고 선택이 강요되는 답답한 상황이 닥치면 문득문득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남편 ‘민성’(박서준)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과연 이게 맞나 싶더라. 또 ‘영탁’(이병헌)의 실체가 드러날 때는 정말 ‘뭐지, 뭐야?’ 이러면서 읽었다. (웃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명화의 마지막 대사를 보고는 너무나 이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의 대사를 듣고 관객이 무언가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졌으면 하고 바랐다.

명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더불어 살 방법을 찾기를 바라는, 즉 공존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평면적으로 다가갈 여지도 있는데 연기 방향은 어떻게 잡아 나갔나.

재난상황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명화는 끝까지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라 시각에 따라 평평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극 중 일관된 스탠스를 지닌 인물은 명화밖에 없어서,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감독님은 명화라는 인물에 관해 매우 선명한 그림을 가지고 계신 듯했고, 이에 따라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셨다. “명화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이런 식으로 제안 주셨고, 이후 리허설하며 점차 가다듬어 나갔다.

엔딩의 대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했는데, 사실 엔딩에 관해서 시선이 엇갈린다. 희망인지 절망인지 의문을 표하는 이도 있고 한편으로는 너무 전형적이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엔딩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이는 어느 캐릭터를 따라가며 보느냐에 따라 갈라질 것 같다. 영화의 중요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시선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무척 들었던 부분이다.

엔딩의 톤을 잡는 게 쉽지 않았겠더라. 게다가 클로즈업까지!

사실 촬영하면서는 이렇게까지 클로즈업해야 할까 싶었지만,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이해되더라. 평소 내 연기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은지라 내가 나온 장면을 잘 보지 못한다. 게다가 그렇게 크게 나오니! 엔딩은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했고, 그만큼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으로도 마지막이었는데 많이 긴장하고 욕심을 부려서 그런지 테이크를 여러 번 가져갔었다. 대사가 없는 버전도 있었고, 좀 더 직접적인 대사나 그보다는 간접적인 대사 등 여러 버전으로 찍었다. 후반작업 하면서 감독님이 많이 고심하셨을 거다.

당신이 명화라면 어땠을까? 닮은 면이 있나. (웃음)

그의 생각과 행동에 공감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용기 내지 못할 것 같다. 내게 없는 강단이 있는 인물이지만, 충분히 납득하며 연기했다. 실제라면 아마도 여론에 휩쓸리는 주민 1이나 주민 2와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불만은 있지만, 차마 손 들어 말하지 못하는데 완전히 나다! (웃음)

명화를 연기하며 때때로 ‘박보영’이 나와 힘들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그랬던 건가.

명화보다는 좀 더 밝은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일을 할 때는 톤이 더 올라가는 편이다. 평소에 콧소리가 있는데, 이번에 나도 모르게 애교 섞인 말투가 나왔더라. 모니터링 해보니, 예를 들면 ‘오빠 빨리 들어와’에서 내 귀에는 ‘들어왕’ 이라고 들려서 계속 신경이 쓰였었다. 후시 녹음 때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다시 했을 정도다. 오롯이 명화이고 싶은데 이렇듯 평소의 (내) 모습이 튀어나와서 힘들었다고 했던 거다.

명화는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혹시 후사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명화는 잘 살았을까, 어디로 갔을까 등등 여러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뚜렷하게 잡히는 건 없더라. 평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편은 아니다. 마인드맵으로 치자면, 한 세 단계까지 가면 끝난다고 할까! (웃음) ‘어떻게 됐을까’ 하고 이후를 생각해 봤지만, 상상력이 마구마구 뻗어 나가지는 않더라.

이병헌 배우와 대립각을 세우며 연기 부담이 컸다고.

배우라면 연기 잘하는 선배들과 함께 작품하기를 당연히 원할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막상 마주하니까 선배님은 바로바로 답을 찾는 것 같은데 나는 정답이 보이지 않고, 그러다 보니 무력감도 느껴지고 그러더라.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이라 어디다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댔었다. 결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였다. ‘햇병아리이니 열심히 하다 보면 잘 하겠지’ 하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선배님들도 여전히 긴장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좀 극복이 되더라.

부부로 출연한 박서준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명화-민성 스토리가 인스타그램에서 화제라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 분이었다.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도 척척 맞아서 좋았다. 인스타그램은 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명화-민성 부부의 여러 모습을 극 중에서 못하니 번외로 보여주면 좋지 않겠냐고 말이다. 첫 만남에서 웨딩 촬영을 찍었는데 이때 (서준) 오빠가 많이 배려해줬다. 또 장난기가 많아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찍을지 제안을 여럿 해줬다. 나중에 보니 참 많이 찍었더라.

원조 ‘러블리’ 아닌가. ‘뽀블리’라는 애칭과 함께 그간 밝고 통통 튀는 캐릭터를 많이 해 왔는데 이번 명화로 새로운 얼굴에 도전했다.

뽀블리도 좋지만, 배우로서 이를 깨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그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전했었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이다. 180도 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당장, 한 번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 않나. 찬찬히 변주를 줘서 서서히 스며들고자 했었다. 명화에는 낯선 얼굴이 있긴 하지만, 그간 보여 왔던 얼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뽀블리’ 애칭이 예전에는 부담되기도 했었다. 우울하고 기분이 바닥을 칠 때도 왠지 늘 밝고 명랑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좋다. 예전에는 ‘동안’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이게 난데’ 라는 생각이다. 30대 중반으로 가면서 변화의 과정이 내 눈에는 보이지만, 여전히 동안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 듦에 대한 설렘 혹은 기대감이 있나. 또 동안을 유지하는 특별한 관리법이 라도?

나이 먹을수록 얼굴에서 세월이 묻어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의 선택지가 더욱더 넓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나이 듦에 따른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다. 아마 더 어렸다면 명화를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관리는… 20대 때는 관리라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고, 이제는 신경 쓰게 된다. 아무래도 보여지는 직업군이라 몸과 얼굴 관리 등을 통해 ‘잘’ 나이 먹어가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해보지 않은 장르가 너무 많다. 액션, SF, 로코 아닌 멜로 등 어떤 장르든 문을 한 번은 두드려 보고 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할 수 있는 연기가 많아질 거로 기대하는 한편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도전을 주저하는 나와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는 내가 충돌하는 거다. 박살나고 깨지면 슬프겠지만,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이런 부분이 쌓여서 성장해 왔고, 내 장단점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어느덧 17년 차 배우다. 연기 동력이나 열정은 어디에서 얻는지.

아예 하지 않으면 모를까 무언가를 한다면 성취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배드민턴을 친다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흔한 취미 하나 없다. (웃음) 망칠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잘하지 못할 거 같으면 아예 손도 안 대는 성향이라고 할까. 이런 내가 여하튼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어떤 기준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연기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젠가 ‘어, 이번에는 정말 잘했는데!’ 싶은 마음이 들 정도까지 하는 것, 그게 연기 동력이 된다.

스스로에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웃음)

어떤 작품이 잘 되고 칭찬받아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감독, 연출, 동료, 시기 등 여러 요인이 잘 맞아떨어질 때 (작품이) 잘 된다는 걸 알아서 그렇다. 어려서부터 일해서 그런지 칭찬받아도 그냥 의례적인 인사라고 생각했고, 이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해서인 것 같다. ‘잘 되면 남 덕분, 안되면 내 탓’인 성격이라 힘들기도 하고,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취미도 없고 자기 칭찬에 인색하고(?), 그렇다면 일상의 낙은 뭘까.

일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취미로 뭔가를 하려 하면 (말했듯이) 어느 순간 숙제처럼 돼 버린다. 승부욕이 세고 뭔가를 망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가끔 책들을 깨끗하게 본 후 (당근마켓에서) 저렴하게 처분하는데 책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기쁨이 있다. 또 책을 사 가는 분이 너무 행복해하니까, 이 행복을 주는 데 한때 중독됐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관객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어떻게 보느냐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겠지만, 다만 우리 영화가 재난과 오락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알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만약 재난 혹은 오락 영화를 예상했다면 기대와 달라서 당황할 수 있다. 이 사실만 인지한다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다양한 시선의 영화가 될 거다. 내가 느꼈던 여러 감정과 생각을 관객도 같이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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