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새로운 캐릭터를 보강해 돌아온 디즈니+ <형사록 2>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인물은 ‘연주현’이다. 요사이 연기 잘 하기로 손꼽히는 배우 김신록이 연기했다. 드라마 <방법>의 무당,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지옥행 고지를 받은 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막무가내 고명딸 등 연극무대에서 영상 매체로 영역을 확장한 후, 비교적 단기간에 그 존재를 각인했다. 김신록은 <형사록2>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이성민과의 밀도 높은 2인 씬을 꼽는다. OTT 활성화와 맞물린 ‘콘텐츠 다변화’의 수혜자를 자청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이성민과 한 프레임
“<형사록>은 김택록이라는 형사의 서사라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아주 잘 마무리한 서사죠.” 지난 26일(수) 종영한 <형사록 2>의 결말에 대한 김신록의 소감이다.
그가 <형사록2>를 제안받은 건 <재벌집 막내아들>의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이다. 아직 방영 전이지만, 업계에서 잘 뽑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고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잡아 끈 요인은<형사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택록’역의 이성민 배우였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췄지만, 둘만의 씬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아쉬웠던 차에 둘만의 밀도 높은 씬이 많아 좋았다고 한다.
“첫 촬영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긴장하며 촬영했는데 보면서 또 긴장되는 거예요. 쫄깃하고요.” 매주 공개되는 <형사록2>를 꼭 챙겨보고 있다는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처음 촬영한 장면이자 극 중 ‘택록’과 ‘주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시즌2에서 택록은 형사과에서 여청과(여성청소년)로 강제 전근당한다. 여청과 팀장은 새까맣게 어린 후배 ‘연주현’이다. 깍듯하게 선배 대접을 하는 듯하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할 말은 다 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한 어떤 완고함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두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한 덕분에 ‘주현’은 너무 얄밉게 다가오고, 후배에게 고개 숙인 ‘택록’에게는 없던 측은지심도 저절로 생길 지경이다.
“다른 분들은 이미 시즌1에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서 신뢰감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촬영하시더군요. 기세가 좋고 아주 프로페셔널한 현장이었어요. 전 처음이라 긴장한 데다 생각했던 동선이 아니어서 당황한 나머지 NG가 나는 거예요.”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건 역시 아버지(?)였던 이성민! ‘야 좀 기다려줘, 우린 같이 찍었었지만 얘는 처음이잖아!’라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줬다고. 그제서야 ‘긴장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는 김신록, 어느 정도 부담감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촬영현장에 IN 한 순간이었다고 떠올린다.
“감히 어떤 부분이 좋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예요. <형사록>이라는 작품 자체를 일구어내셨잖아요. 곁에서 지켜보며 감독님이 말씀한 ‘휴먼 장르물’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연출을 맡은 한동화 감독은 일찍이 <형사록>을 단순한 형사물이 아닌 휴머니즘 장르물을 지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과 사건의 연속과 이를 쫓는 과정에서 형사이자 인간인 ‘택록’의 면면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건에만 매몰된 장르물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이 보이고 느껴진다.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선배 이성민을 향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는 김신록이다.
# 압력과 바람
“많은 분이 오랜만에 깔끔한 얼굴과 담백한 연기라 좋았다고 해요. 오랫동안 알아 온 지인은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좋다고도 하고요.” <형사록2>의 주변 반응을 전하는 김신록, 이번 ‘연주현’은 직전 작품 <재벌집 막내아들> ‘진화영’과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전혀 딴판인 캐릭터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초반의 연주현은 한마디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다. 자신의 정보를 드러낼 수 없는 이면을 지닌 인물로 극의 시작과 동시에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형성하는 데 주효한 캐릭터다.
“연주현이 택록의 적인지, 친구인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시청자가 궁금하게 해야 했어요. 그래서 말이나 표정을 중의적으로 읽히도록 노력했어요.” 실제로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인 편이라는 그는 이러한 이중적인 연기가 기존의 캐릭터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드러내는 것과 숨기는 것, 어떤 편이 좀 더 어렵냐고 묻자 “마치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질문 같아요. 둘 다 매력이 있죠.”라고 우문에 현답을 내놓는다.
매번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평을 받는 김신록, 그가 캐릭터화되기 위한 첫 단계는 무얼까.
“캐릭터라이징이나 인물 구축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캐릭터마다 완전히 달라 보인다는 평가에 대해 오히려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되묻는 그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인물의 코어”다.
“압력과 바람” 이번 연주현의 코어다. “한 손은 주먹을 움켜쥐어 복수의 마음으로 견디어 낸다면, 다른 한 손은 펼친 채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바람을 통과시키는 상반된 감각과 에너지를 지닌 인물” 이렇게 연기한다면 속내를 알 수 없는 중의적인 인물이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이를 위해 극의 전개에 따라 스타일링도 사뭇 변화한다. 비밀 감사 임무를 맡고 택록을 의심하던 초기에는 오히려 유한 면모를 보이기 위해 음색이나 말투도 가볍고 밝게 가져갔다. 감사과 출신이라는 정체가 밝혀지고 난 후에는 좀 더 낮은 음성과 짙은 회장, 그리고 가죽 재킷 등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 연기란
<방법>, <지옥>, <재벌집 막내아들>에 이어 <형사록2> 그리고 곧 공개되는 디즈니+ <무빙>까지 안방극장과 넷플릭스와 디즈니+라는 글로벌 OTT 플랫폼을 종횡무진하는 그가 연극배우 출신인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4년 데뷔 이후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 왔고, 드라마 <방법> 이후 무대와 방송을 겸해 활동 중이다.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대중을 휘어잡으며 단기간에 소위 ‘수요’가 큰 배우로 성큼 자리매김했다.
“영상매체 시작인 드라마 <방법>(2020)이 운이 좋게도 OTT 활성화 시기와 맞물렸어요. 콘텐츠 다변화의 수혜자라 할 수 있죠.” <방법>(연상호 극본/ 김용완 연출)에서 김신록의 연기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연상호 감독의 감탄은 넷플릭스 <지옥>의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히트한 <지옥>에서 김신록은 자녀를 위해 순교를 택한 ‘박정자’로 분해 시청자에게 전율을 안겼다.
이번 <형사록2> 작업을 통해 영상의 특성, 특히 후반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았다는 김신록이다.
“현장에서 찍으며 지켜봤는데도 완성본을 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말이죠. 영상에 있어 후반작업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어요. 편집, 홍보·마케팅 등 후반작업을 거쳐 나온 <형사록>을 보고, 원래도 컸던 애정이 더 커졌어요.” (웃음)
평소 발성과 울림이 좋기로 유명한 그인데 이 또한 영상 매체의 특성 덕분이라는 김신록이다. “연극할 때는 사실 소리를 전달하느냐 못 하느냐가 관건이고 이에 압박감이 큰데요. 방송은 마이크가 소리를 모아주니까요. 마치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다가 풀어놓고 달렸을 때의 해방감이라고 할지, 편안함이 있더군요.”
“연극은 무대 위에서 배우가 후반작업까지 동시에 수행한다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연기+메이킹의 역할이죠. 카메라(영상) 연기는 후반작업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점이 매력이자 장점이에요.” 후반작업과의 조화를 위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김신록, 이번에 대선배인 이성민을 보며 그 능수능란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저서 ‘배우와 배우가: 두 번의 만남, 두 번의 이야기’를 출간했다. 배우 김신록이 질문하고 그간 4년여간 만난 스물다섯 명의 배우가 답한, ‘연기’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답을 수록한 도서다.
그에게 물었다. ‘연기란 무엇이냐고’
“연기는 ‘잘한다, 못한다’를 논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져요. 누구나 자기만의 연기를 한다는 거죠. 전 HOW보다는 WHAT의 질문을 많이 해요. 어떻게 하냐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죠. 제 경우 WHAT의 질문에 답을 찾으면 HOW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해결되더군요.”
연기에 대한 답이 매번 바뀐다는 그가 요즘에 얻은 최근의 답은 ‘연기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배우의 몸으로 탐색하는 일’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면 연기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사회, 과학 등의 책을 읽고 사회현상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한다. 공연과 촬영의 바쁜 일정에도 강연이나 글을 쓰는 등의 연기 외적 활동을 놓지 않는 이유다. 서로 다른 일이 영감과 시너지를 내고 꾸역꾸역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과 신기하게도 맞물린다는 김신록.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 ‘저런 얼굴도 있었어?’ 하고 ‘발견하는 기쁨’을 드리는 배우로 남고 싶단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3년 8월 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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