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공개 첫 주 글로벌 TOP 10 비영어 TV 부문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처음이라 긴장하기도 했고 또 요즘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다 보니 부담감도 없잖아 있었는데 <택배기사>가 순위권에 들었다고 해서 다행이다. 예전엔 관객 수와 시청률로 반응을 확인했는데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들은 시청률이 아니라 시청 시간이 지표가 된다고 해서 신기하더라. (웃음) SNS 반응도 열심히 살피는 편인데 <택배기사>가 많이 언급되더라. 예전과는 다른 세상인 거 같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는 것을 느낀다. (웃음)
동명 웹툰이 원작인데, 원작을 봤을까.
조의석 감독에게 처음 작품에 대해 전해 들었을 때가 3년 전 쯤이다. 지구 종말 이후의 세계관이 신선했고 개인적으로 SF나 디스토피아물을 해본 적 없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웹툰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일단 ‘류석’이라는 캐릭터가 원작에 등장하지도 않고, 웹툰을 보면 연기할 때 틀에 갇힐 거 같더라.
하지만 원작 팬들의 아쉬워하는 반응에는 공감이 간다. 아무래도 그 분들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크고 눈높이가 더 높지 않겠나.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나 역시도 노력했지만 만족을 못 시켜드린 거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의 서사를) 시리즈 6편에 맞게 줄이다 보니 캐릭터 서사나 기승전결을 중요시하는 국내 시청자들은 좀 아쉬워하는 것 같고, 해외 시청자들의 경우 산소가 없는 세계관을 비롯해서 설정 자체가 새롭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더라.
그러고 보니 OTT뿐만 아니라 6부작 시리즈도 처음이다.
배우 입장에서 6부작이나 16부작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요즘 시청자 분들의 선호도가 짧지만 속도감 있고, 또 임팩트 있는 콘텐츠로 옮겨가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1995년 데뷔해 30년 가까이 활동해 오면서 플랫폼의 변화와 더불어 체감되는 변화가 있다면?
현장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스태프들이 며칠 밤을 새면서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했다. 저녁 방송인데 그날 아침까지 촬영할 때도 있었고 대사를 하면서 존 적도 있다. (웃음) '감독님이 왜 컷을 안 하지?' 하면서 돌아보면 감독님이 졸고 계실 때도 있었다. 요즘은 전혀 다르다. 정해진 시간까지 촬영하고 끝낸다. 예전에는 모두 몸이 망가지면서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좋은 방향, 개선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의석 감독과 2002년 <일단 뛰어>에서 첫 호흡을 맞춘 뒤 20여년 만에 작품으로 조우하게 됐다. 그렇게 많은 변화를 겪고, 오랜 세월 후에 재회하게 되어 더욱 반갑겠다.
조의석 감독과는 감독과 배우이기 전에 오래된 친구다. 사실 같이 <일단 뛰어>를 할 때만 해도, 감독님도 데뷔작이고 나도 아직 신인일 때라 둘 다 예민하고 불안했던 탓에 마음 놓고 편해지진 못했다. 이후에 사석에서 자주 만나면서 어떤 작품이든 빨리 함께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더라. 다시 만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웃음) 이번 작품에 합류하게 된 것도 신뢰하는 친구와 오랜만에 같이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예전보다 성숙해진 배우와 감독으로 다시 만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첫 촬영을 앞두고는 기분이 묘하더라. (웃음) 자주 보는 친구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촬영 내내 좋았다.
조의석 감독이었기 때문에 <택배기사>를 선택한 건가.
물론 그것도 있지만 SF물에 내가 나오면 어떨지 막연히 상상하고는 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가 들어온 거다. 배우는 과거, 현대, 미래 모두를 여행할 수 있다.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큰 장점인 거 같다.
제작발표회 당시 ‘류석’은 빌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류석’은 정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인물이다. 감독님과 그런 점을 두고 많이 상의했다. 스토리 상으로는 ‘류석’이 빌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의 행동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자원은 한정돼 있고 산소 생성량도 제한된 상황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선택이 올바르진 않지만 ‘류석’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류석’이 외롭고 안쓰러워보이기도 했다.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면을 전부 표현하고 싶었지만 제한된 시간과 분량 안에 다 넣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첫 호흡을 맞춘 ‘5-8’ 역의 김우빈 배우는 어땠나.
남자답고 멋지더라. 성실하고 사람이 참 바르다. '가식인가?' 할 정도로 너무 괜찮았는데, 가식이 아니라 일관되게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걸 보고 ‘대체 김우빈한테는 뭐가 부족할까?’ 생각했다. (웃음)
우빈이는 조의석 감독과 <마스터>를 같이 했는데, 조 감독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다들 우빈이가 너무 괜찮은 친구라고 하더라. 누구 하나 우빈이 싫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웃음) 실제로 보니 선배들한테 잘하고 주변 사람들 챙기고 어른스럽더라. 오히려 내가 우빈이한테 배운 게 많다. 한동안 아파서 고생했는데 다행히 잘 회복했다. 병원에서 위험하다고 할 때도 있었다며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 너무 괜찮은 친구다.
이번 작품을 비롯해 드라마 <보이스4>, <플레이어> 등 장르물과 최근 화제가 된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내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2014년 개봉한 <인간중독>이다. 그 전엔 무조건 멋있고, 정의롭고, 착하고, 정형화된 역할만 하려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나도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고, 나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으로 바뀐 거 같다.
20년 넘게 연기하면서 생긴 송승헌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깨고 싶다. 그런 연기를 할 때 재밌기도 하다. 보는 분들이 '내가 알던 송승헌이 아니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그런 시도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20~30대 때는 현장 가는 게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현장 가는 게 재밌고 기다려진다. 이런 감정을 20대 때 느꼈으면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 선배들이 “나이 먹어야 안다, 철들어야 안다” 그랬던 게 이런 건가 싶다. (웃음) 안 해봤던 캐릭터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이런 모습도 어울리는구나’라고 인정 받고 싶다.
오랫동안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당신의 도전을 지켜볼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랐던 팬 하나가 어느 날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냈더라. (웃음) 마침 촬영이 없어서 참석한다고 밝히지 않고 결혼식장에 갔다. 신부대기실에 들어가 그 친구를 보는데 묘한 감정이 들면서 울컥하더라. 오래된 팬 분들을 볼 때마다 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채찍질하게 된다. 또 그 분들이 내 원동력이기도 하다. 팬들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게 행복하고 항상 감사하다.
사진제공_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