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극중 브로커 ‘상현’ 역을 맡은 송강호 배우가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내가 상을 받은 것보다 더 기뻤고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송강호 씨는 여태까지 칸 남우주연상을 받지 않았다는 게 의아할 정도의 배우다. 그동안 박찬욱, 이창동, 봉준호 감독님과의 작품으로도 충분히 상을 받을 만했는데 우연히 내 작품으로 받게 되어 한국 감독님들께 송구한 심정도 있다. (웃음)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수상에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박찬욱 감독과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다.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 <올드보이>와 경쟁했다. 당시 <아무도 모른다>의 주연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이번엔 송강호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고,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는 나와 동세대 감독이고 같은 아시아인 감독으로서 정말 존경하는 감독이다. 그래서 수상 소감을 들으며 정말 감동 받았다. 다만 울지는 않았다. (웃음) 극장 안이 더워 얼굴을 닦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박 감독님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을 때라 우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웃음)
기자간담회 때 배우들이 당신으로부터 손편지를 받았다고 하더라.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특별히 진정성을 담기 위해서나 아날로그적인 걸 선호해서가 아니라 단지 타자를 잘 못 쳐서 손편지로 대체한 거다. (웃음) 시나리오도 손으로 쓰는 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으로 쓰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편지에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는지, 캐릭터 전사는 무엇인지 등을 담았다. 두 브로커가 경찰에 체포된 뒤 작성한 진술 조서도 그 중 하나였다. ‘수진’(배두나)의 경우 유년 시절 성장 과정부터 영화의 시간적 배경 뒤에 벌어진 일들, 즉 시말서를 작성하는 부분까지 편지에 썼다. (웃음) 그러니까 결국 그냥 편지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편지를 통해 내 생각이나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배우들은 거기에 연기로 답했다. 물론 답장을 써준 배우도 있었다. 배두나, 이주영, 이지은 배우는 촬영이 끝난 뒤 짧은 손편지로 소감을 전해줬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등 국내 탑스타들의 캐스팅 소식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세 사람과는 예전에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송강호 씨와는 부산영화제에서 대화를 나눴고 강동원 씨는 신주쿠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뒤 여러 영화제에서 수차례 만났다. 배두나 씨와는 <공기인형>(2009)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직접 느낀 인상을 바탕으로, 그 배우들이 지닌 매력을 캐릭터에 반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현장에서 작업을 해보니 배우들이 정말 프로페셔널했고 거기에 굉장히 감탄했다.
형사 ‘수진’ 역의 배두나 씨는 내가 편지를 건넨 뒤 일본어로 쓴 오리지널 대본을 함께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와 일본어, 한국어 대본을 대조하며 봤다더라. 배두나 씨가 보기엔 일본어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가 번역 과정에서 사라진 지점들이 있었던 거 같다. 대사가 전형적인 한국 영화 속 형사 말투로 바뀐 부분도 있고, 원래 대사에서 미묘하게 표현된 게 사라진 것도 있어 한 번 더 점검하고 싶다더라. 그래서 ‘수진’의 모든 대사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네 시간 가량 가졌다. ‘이 뉘앙스는 이게 맞는 거 같다, 이건 원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된 거 같다, 해석된 대사가 감독의 평소 말투와 다르다’ 등 배두나 씨는 여러 의견을 제시했고 나는 공을 들여 수정을 해나갔다. 귀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지은 배우는 어땠나. 이번 작품이 첫 상업영화인데.
이지은 배우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사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일반적인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에 비해 정보량이 부족했을 거다. 상황 설명도 짧고 간결한 상태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보통은 현장에 들어가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며 각본을 수정해나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지은 배우는 내가 디렉팅을 하면 바로 내 의도를 캐치해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감이 좋은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
언어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늘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표현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갖고 있다. 소통에는 항상 그런 어려움이 수반되는 거 같다. 그런데 이건 사실 같은 일본어를 쓰는 일본 사람끼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100% 상대에게 전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섬세하게 전달하려 애쓰지만 그게 왜곡돼서 잘못 전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딱히 없다.
베이비박스라는 소재에 대해 처음 떠올린 게 6년 전이라고 밝혔다. 꽤 오래 전인데 그간 미혼모나 베이비박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까.
처음 플롯을 쓴 건 6년 전이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와서 준비작업을 시작한 건 2년 전이다. 서울에 온 뒤 직접 베이비박스 시설을 찾아가 취재하기도 했고 주변 관련인, 보육원 출신, 쉘터에서 함께 생활 중인 아이와 어머니도 만났다. 시설에서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도 만났고, 법 개정에 관여한 변호사, 아기 브로커를 직접 수사한 형사와 화상으로 연결해 취재하기도 했다.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두루 취재했고 옹호, 비판하는 입장 양측이 있다는 건 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닿은 건 보육시설 출신인 사람의 이야기다. 그분은 자신의 생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이 어른이 됐다. 하다못해 태어난 것부터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게 어머니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나도 그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떠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평소엔 잘 하지 않는 직접적인 대사를 쓰게 됐다.
이번 작품은 프랑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에 이어 두 번째 외국영화다. 일본, 프랑스, 한국에서의 작업 환경은 어떻게 다르던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는 나라마다 차이가 별로 없는 거 같다. 그래서 특별히 힘든 건 없었는데 작업 환경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하더라. 한국은 노동 환경이 잘 정비됐다. 노동 시간에 제약이 있고 휴식 시간이 보장돼 있다. 프랑스와 한국은 작업에 있어 일본보다 확실히 쾌적하다.
하지만 결코 일본에서의 영화 제작 환경이 어려워서 외국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웃음) 나름대로 이쪽 업계에서 오랜 기간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돼 있다. 다만 이번엔 운 좋게 해외 프로젝트가 두 번 연속으로 된 상황이었다. 해외 작업을 통해 얻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일본 제작 환경을 더 개선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권에도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기에 작업하고 싶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또 작업하고 싶다.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6),<어느 가족>(2018) 등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유독 많다. 이번 영화 역시 혈연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대안 가족을 다룬다.
스스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가족 이야기에서 매력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이자 아들, 배우자 등 사람 한 명이 가족 안에서는 복수의 역할을 맡게 된다. 가족이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을 제한적인 공간 내에서 그릴 수 있는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월에 따라 그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이 가족의 재미있는 지점이다. 누군가 결여되는 부분이 생겼을 때 다른 누군가가 메꿔 나가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
가족이란 내게 있어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해주는 튜브 같은 존재다. 가족적인 공동체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게 꼭 혈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비혼이라 해도 단순히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지탱하는 사회적 공동체가 주변에 존재한다. 이런 존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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