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드라마 <빈센조>와 영화 <낙원의 밤>, 대세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 급부상한 인기를 체감하나.
오늘 <빈센조>의 마지막 촬영을 끝냈다. 7~8개월간 촬영에 전념하다 보니 대중적인 인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다만 친구들이 자신의 주변인들 그러니까 부모님, 남자친구, 동생 등이 재미있게 보고 있다면서 연락 주더라. 이렇게 간접적으로는 느끼고 있다.
<빈센조>의 변호사 ‘홍차영’, <낙원의 밤>의 세상 끝에 서 있는 ‘재연’, 상반되는 캐릭터인데 스스로와 싱크로율은 어떤가.
연기하는 동안에는 그 인물로 살게 된다. 촬영할 때도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편이다. 그 시간만큼은 해당 인물에 물들어 있어 종종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도 있다. 사람은 어떤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지 않나. 내 안의 여러 면 중 재연을 만나면 재연의 면모를 극대화하고, 또 차영을 만나면 차영의 면모를 끌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연기하면서 미처 몰랐던 내 면면을 발견하곤 한다.
<빈센조>의 송중기와 <낙원의 밤>의 엄태구, 상대역과의 케미가 워낙 좋았다. 함께 연기하며 많이 배우고 동시에 자극도 받았을 것 같다.
두 분 모두 집중력이 뛰어나시다. 연기하는 순간에 모든 걸 쏟아붓는 게 옆에서도 느껴진다. 경력이 오래됐는데도 방심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자극을 받게 되더라. 중기 선배가 밖으로 발산하는 편이라면 태구 오빠는 조용히 안으로 에너지를 응축한다고 할지, 성향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매우 닮았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과 <빈센조>, 영화 <죄 많은 소녀>(2017)와 이번 <낙원의 밤>까지 넷플릭스를 통해 당신의 전작과 현재 진행작을 모두 접할 수 있다. 해외팬의 반응은 어떤가.
인스타그램을 만든 지 얼마 안 됐는데 해외 팬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반응의 규모가 (전 세계 대상이니) 확실히 다르다. 이번에 <낙원의 밤>이 TOP10에 진입하고, 좋은 리뷰와 댓글도 많다고 들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본격적으로 <낙원의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재연’은 기존 누아르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특히 엔딩에서 재연의 총격 시퀀스, 그 마지막 10분을 위해 영화가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화된 캐릭터인 데다 반전과 엔딩 신이 너무 좋았다. 공개 후 리뷰나 댓글을 찾아보고 있는데, 마지막 10분에 관련된 내용은 캡처해 잘 모셔 두고(?) 있다.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아 기쁘다. 원래도 누아르 영화를 좋아하고 학교 때는 홍콩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박훈정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다. (웃음) <마녀>의 ‘구자윤’(김다미)을 보고 감독님의 캐릭터 라이징에 믿음이 있었다. ‘재연’도 관객들이 좋아할 면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홍콩영화를 좋아했다니, 특히 애정한 작품이나 캐릭터가 문득 궁금하다.
대표적으로 <영웅본색>과 <무간도>를 재미있게 봤다. 주윤발 배우가 외삼촌과 정말 닮아서 어릴 때 아주 좋아했었다. 또 누아르 영화는 아니지만, <첨밀밀>의 미키마우스 아저씨가 생각난다. 친구를 하나 데리고 왔다면서 문신이 가득한 등 한가운데 미키마우스를 새로 문신해왔지 않나. 그 캐릭터 자체가 누아르 주인공처럼 각인돼 있다.
영화는 ‘태구’(엄태구)와 ‘재연’의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접근했는지.
감독님께서 젊은 남녀의 연애 감정으로 규정되는 걸 극도로 꺼려 하셨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 사이 오가는 감정은 연애 이상의, 좀 더 넓은 의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파악했다. 동지애, 연민, 측은지심 등 말이다. 태구는 삼촌과 단둘이 사는 재연을 보며 누나와 조카를 떠올렸을 것이고 재연은 가족도 조직도 아무것도 안 남은 태구를 보며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엄태구 배우가 워낙 낯을 가리는 거로 유명한데 아주 친해졌다고 들었다. (웃음)
<밀정>(2016) 때 단역으로 출연해서 안면은 익힌 사이였다. 이번에 만나니 오빠가 <죄 많은 소녀>를 아주 잘 봤다고 먼저 얘기해 줘서 원래도 열려 있던 마음이 더 활짝 열렸던 것 같다. 오빠와 나 모두 박 감독께 감사하는 마음이 컸고, (영화를) 서로 잘 살려보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대단히 강했다. (웃음) 감독님과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의기투합해서 맛집도 다니고 산책도 자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많이 나눴다. 태구로서, 재연으로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쌓이니 동료 의식도 점차 부풀더라. 그런 현실 속 케미가 영화에 녹아 있지 않을까 한다.
‘마 이사’역의 차승원 배우는 현장에서 어떻든가.
예능에서 보는 모습과 비슷했다. 아는 것도 많고, 재미있으셔서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어느 정도 긴장돼 있는 나와 태구 오빠는 물론 감독님까지 릴랙스하게끔 해주셨다. 그러다가도 슛이 들어가면 마 이사로 완벽하게 변신해 재치와 그 매력을 뽐내니, 함께 모니터링하면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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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준비는 얼마나 했으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좀 들려 달라.
비하인드라기보다 촬영한 후 몸이 정말 아팠다. 총을 쏠 때의 반동이 큰 데다 (봤겠지만) 계속 쏴야 해서 손가락도 많이 아팠다. 집에 갈 때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걷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래도 대충하지 않았다 싶어 마음만은 뿌듯했다.
감독님이 <마녀> 때 이미 총격 액션을 연출하셨던 터라 총 쏘는 자세 등에 대해 잘 알고 계셨고, 각이 잘 잡힌 폼보다 서툴지만 정확하게 총을 다루는 모습이길 바라셨다. 몸은 약하지만, 부단한 연습으로 인해 잘 쏘게 된, 언밸런스한 상황을 보이려 하셨다. 사격 연습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평소에도 계속 총을 손에 쥐고 있으며 익숙해지고 그 감각을 익히려고 했다. 처음 쏠 때는 소리와 반동이 너무 커서 정말 놀랐는데, 점차 익숙해지더라. 또 사격 연습 외에 근력을 키우려 운동을 열심히 했다.
해당 시퀀스는 통쾌하기보다 뭔가 처연하고 그러면서도 결연하고,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 점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다.
그때의 감정은… 들뜨지 않되 한없이 가라앉지도 않는 톤으로 가져갔다. 감정의 무게 중심을 사람의 심장 높이에 맞췄다고 할지, 내 마음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불길을 한 곳에 응축시켜 총 끝에 실어 뿜어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진짜로 손이 떨리며 감정이 몸으로 발산되더라. 연기할 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한 게 생각이 곧 몸으로 전달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또 주위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결연한 눈빛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재연이 술에 취해 도로를 내달리는 신과 태구가 재연에게 ‘나도 취향이 있다’고 말하는 신, 두 장면이 극 중 제일 말랑말랑하면서 웃긴 장면이 아닌가 한다.
아, 태구의 취향 신! 촬영하기 전에는 생각만 해도 어렵고 난처할 것 같았는데 막상 들어가니 NG 없이 바로 오케이 했던 것 같다. 술 취한 장면도 마찬가지다. 고민하다가 이왕 할 거, 난장을 피워보자고 작정하고 들어갔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촬영하면서는 그렇게 웃더니, 찍고 난 후에는 막 놀리더라. (웃음)
제주도의 풍광을 아름답게 포착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제주도 촬영 중 가족이 왔었다. 서귀포 숙소 근처의 공원에 가서, 예전 신혼여행 스타일로 사진도 찍고 즐겁게 보냈다. 어느 한곳이 특별했다기보다 동트기 전 하늘, 해지기 전 물든 노을 등 그냥 다 예쁘고 좋았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소리가 더 기억에 남는다. 멀리서 들리는 바닷소리, 창문을 열어 두면 가끔 들리는 빗소리, 작게 들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사람 소리 등이 유난히 많이 들렸다.
현실에서 혹은 작품 속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자신의 얼굴이 있다면.
웃는 내 얼굴을 좋아한다. 연기하면서 내가 이렇게 밝게 웃는 사람이는 것, 그런 모습을 지녔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울거나 화날 때의 표정과 음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통 잘 모르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작품 하면서 표정, 시선, 근육의 사용 등에 대해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역할 중에는 <죄 많은 소녀>에서 취조실 장면을 촬영 후 모니터링했을 때 정말 ‘영희’가 있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글(시나리오)을 보고 상상했던 얼굴과 카메라에 잡힌 얼굴이 상상보다 더 좋을 때도 반대로 더 안 좋을 때도 있는데, 상상했던 그대로 나올 때 굉장히 행복하다.
가볍게 묻자면,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어렵다. 힘들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죄 많은 소녀>의 ‘영희’를 꼽겠다. 당시는 내게 주어진 기회가 너무 적었을 때라 연출한 김의석 감독님께 작품을 끝낸 후 더 이상 연기하지 못한다 해도 배우로서 소원을 이뤘으니 충분하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영희’로 인해 연기의 기회가 계속 이어졌다.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동아줄 같은 캐릭터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혹 롤 모델이 있는지 궁금하다.
롤 모델은 하루하루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아직은 시작하는 입장이라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보다 많은 역을 경험하고 싶다. 글을 읽었을 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오케이다.
마지막 질문! 지칠 때 나만의 활력제가 있다면.
뻔한 대답이지만, 동료들과 일하고 얘기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잘 살고 있구나 싶고,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일을 끝마친 후 씻을 때 힘이 난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1년 4월 29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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