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 <고백>은 유례없는 방식의 유괴라는 화두를 던져 극 초반 관심과 몰입도를 높이는 작품이다. <초인> 이후 관객을 찾은 서은영 감독은 (학대당한) 아이를 드러내는 방식을 가장 고민했다고 전한다. ‘무결한 아동과 흠집내는 어른’ 구도에서 벗어나 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그 영향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 어떤 선을 넘나들어야 했다고 서 감독은 말한다.
오순-지원의 만남을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 양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전개와 추리극처럼 풀어내는 방식이 색다르면서도 흥미롭더라.
사회복지사와 경찰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아이로 귀결되는 이야기이다.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장르의 형식을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자칫하면 지칠 수가 있어 구성을 추리극처럼 가져가 호기심을 높이려 했다. 한편으로는 학대당하는 아이를 구할 수 있었는데 놓친 순간을 드러내 경각심을 환기한 점도 있다.
영어 제목이 ‘go back’이다. 한국어 ‘고백’과는 의미가 쉽게 매치되지 않는다.
‘고백’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뜻-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 이 맞다. 영어 제목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 영화의 구성과 어울리는 데다 예전으로 돌아가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심정과도 맞물려 고민 끝에 지었다.
아동학대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직접적인 계기가 있다기보다 사회고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항상 염두에 뒀던 주제라 자연스럽게 글로 쓰게 됐다. 영화 한 편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무겁고 피하고 싶은 주제를 맞닥뜨리고 그에 공감하고 어떤 반응이 형성된다면 점차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고백>이 그 과정에 작은 톱니바퀴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영화를 통해 화두를 던졌으니 관객이 호응해주기를 바란다.
|
주제의 측면에서 <미쓰백>과 <어린 의뢰인>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영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보기 힘들어 외면하는 관객도 분명히 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주제는 유사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 폭력과 아동 학대의 현장을 노골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상상하는 게 더 무섭고 끔찍하지 않나?(웃음)
‘보라’(감소현)는 서늘하다고 할지, 기존의 유사 콘텐츠에서 보던 학대 아동과는 좀 다른 결을 지닌 캐릭터다. 영악한 면도 보이고 자신을 아끼는 어른, 즉 사회복지사 ‘오순’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상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심사숙고한 지점이 바로 아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무결한 아이와 흠집내는 어른’이라는 기존의 구도에서 벗어나 우린 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그 영향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 그것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보라’는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면서 어떤 이면성을 지니고 있다. 가정 폭력과 학대가 그렇게 만든 거다. 하지만 결국엔 아이가 고백하고 그런 아이를 어른인 ‘지원’이 감싸주며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폭력과 학대의 결과가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포커스를 맞추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영화 공개 후 많은 분이 공감했다고 하는 걸로 보아 다행히 그 줄타기를 잘 한 것 같다.
아동학대 피해자인 ‘오순’ 입장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인 ‘보라’를 외면하지 못하고 아끼고 보살피는 것은 충분히 납득되나 ‘살인자’라는 짐을 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극단적 선택일 수 있다. 영화로서 캐릭터로서 봐 달라. ‘오순’은 어렸을 때 당한 학대의 기억에 어른이 되서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그 트라우마가 현재의 가치관과 행동의 일정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자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순’은 그 사건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자신의 임무 혹은 역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박하선 배우가 사회복지사 ‘오순’으로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보인다. 그는 출산 후 첫 영화라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 특히 엔딩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던데.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라 하선 씨의 연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다소 걱정했는데 새롭게 봐줘서 다행이다. 하선 씨와 처음 만난 자리였는데도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비슷한 면도 있고, 인간적으로도 호감이 가 같이하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결혼과 출산 후 휴식기라는 것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안한 거였다. 하선 씨에게 시나리오를 보낼 때, 왠지 이런 역을 해보고 싶어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과연 예상대로 전에 없던 역할이라고 정말 좋아하더라. <고백>의 엔딩 장면은 비록 본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경찰인 지원 역시 폭력의 피해자였다. 학교 폭력을 겪었고 이를 극복한 인물로 보인다. 오순과 지원 둘 다 자신들이 경험한 폭력을 막으려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보통 상처를 아는 사람이 그 상처를 위로한다고 말하지만, 쉬운 듯하나 절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소 견해는.
지원과 오순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은 같지만, 그 방식은 사뭇 다르다. 오순이 저돌적으로 자신을 던진다면, 지원은 좀 더 이성적으로 경찰이라는 위치와 테두리 안에서 행동한다. 다른 듯 비슷한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우린 대체로 정의롭고 상식적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을까. (웃음) 누군가는 돌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시스템안에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그 바람을 인물에 투영해 봤다.
정의롭고 상식적으로…동의한다! <초인>(2015)이후 두 번째 장편이다. 대략적인 준비 기간과 촬영 기간은.
말했듯 염두에 뒀던 주제라 그런지 <고백>의 경우 시나리오는 수월하게 쓴 편이었다. 2017년 시작해 완성 후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조금씩 수정했다. 촬영은 2018년 여름에 진행했다
문득 평소 글 쓰는 스타일이 궁금해진다. (웃음)
습관적으로 쓰는 편이다. 한예종 영상원 08학번인데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직장 다닐 때는 영화 리뷰를 정말 많이 썼었다. 영화제도 많이 다니고 막연하게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뒤늦게 영화로 진로를 변경했나 보다.
공대를 졸업 후 삼성반도체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때 참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렸던 것 같다. 사실 전공도 잘 맞았고 직장 생활에서 성취감도 있어 나름 좋았는데 영화라는 또 다른 꿈에 도전하고 싶었다. 회사와 사회생활도 꽤 잘했으니 영화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다시 말해 스스로에 대한 작은 확신이 있었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서른 살에 입학해 그만큼 더 열심히 했다.
해보니 어떤가.
하면 할수록 재밌고, 더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희열이 크다. 사실 회사 다닐 때, 그때 핸드폰 관련 업무를 했는데 내가 설계한 대로 나온 제품을 보는 기쁨이 컸는데 영화는 그 정도가 더 크다. <초인> 때 작은 극장에서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소통한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 이번 <고백>은 코로나 국면이라 GV 등의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열심히 시나리오 쓰고 또 다른 영화를 찍으려 구상하는 중이다. 창작자로서 창작물을 남기는 데서 오는 부담과 책임감이 무겁고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감정을 즐기게 된다. 그게 영화가 주는 희열인 것 같다.
향후 장르와 매체의 확장 가능성은. 또 어떤 제한이나 제약이 없다면 어떤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은가.
매체와 장르 모두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영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매체에 그에 걸맞은 콘텐츠에 도전하고 싶다. 친구들과 두 시간까지 필요 없는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얘기하곤 한다. 평소 공포 영화를 진짜 좋아한다. 주변에 좋아하는 이들도 많고 다양하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어 여건이 된다면 공포 영화를 꼭 만들어 보고 싶다. 또 VFX나 CG 등 기술에도 관심이 많다. 친구들과 가끔 농담으로 이과생을 위한 완전 이과형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농담하기도. (웃음)
마지막 질문!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영화를 많이 보는 한편 식물을 기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물과는 다른 또 다른 안정감을 주더라. 재작년부터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젠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식물도 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련 카페에 가입해 열심히 정보를 공유 중이다.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2021년 3월 3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