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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 <고백> 박하선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전 국민이 천 원씩 모아 1억 원을 모금한다면 아이를 풀어주겠다는 유괴범의 손편지가 방송국에 도착한다. 공교롭게 아버지로부터 학대받던 아동 ‘보라’가 사라지고 그 아버지는 죽은 채 발견된다. 평소 ‘보라’를 아끼던 사회복지사 ‘오순’의 행방 역시 묘연해진다.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 <고백>은 유례없는 방식의 유괴라는 화두를 던져 극 초반 관심과 몰입도를 높이는 작품. 박하선이 그 중심축인 ‘오순’으로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선다.

아동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회복지사 ‘오순’을 연기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심정적인 부담과 무게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텐데 어떤가.
출산 후 첫 복귀작으로 연기를 굶다(?) 해서 그런지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웃음) ‘오순’은 학대 아동 ‘보라’를 염려하고 구해주는 입장이라 심정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화가 지닌 메시지가 좋았다. 여름에 촬영해 더위로 고생했지만 힘들어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때 안 풀리는 장면이 세 씬 정도 있었는데 계속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습해서 잘 해냈다.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안 남은 드문 작품이다.

어떤 장면이 특히 어려웠나.
음, 거의 첫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오순’이 아침에 조깅을 하던 ‘지원’(하윤경)을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장면이다. “맞죠? 경찰?”이라고 지원에게 말하는 데 그 대사가 그렇게 잘 안 나오더라. 오순은 포스터 속 지원을 보고 알아본 건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또 ‘오순’이 ‘보라’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상에도 ‘보라가 지나간다. 오순은 본다’ 딱 이 정도로 표현돼 있는데 감독님이 좀처럼 OK를 안 해주더라. 이상하다 싶어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관성에 빠져 연기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조율한 연출 덕분에 연기가 잘 나온 것 같다. 또 하나는 선글라스다. 오순이 선글라스를 끼는 씬이 있는데 소품이 참 안 풀렸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웃겨 보이면 안 됐거든. 오순에게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고르는 게 어려웠다.
<고백>
<고백>

스키니한 바지와 티셔츠에 재킷, 그리고 올백으로 묶어 땋은 헤어 등 오순의 완고하면서도 우직한 성향을 반영한 스타일이 아닌가 한다.
의상팀이 요즘 친구들이 입는 컨셉에 맞게 준비를 잘 해줬다. 헤어스타일은 감독님이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같은 머리를 참고로 했으면 했다. 긴 머리지만 여성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도록 꽉 묶으라고 하셨다. 앞머리를 내리지 않고 쫙 올리면 편한 데다 캐릭터와도 잘 어울린다. 다만 얼굴의 윤곽이 다 드러나서 그렇지. (웃음) 옆광대와 턱이 있어 평소엔 머리를 내려서 가리는 편이거든. 그렇게 다 드러내니 시원한 감정도 들고 편하기도 하고, 또 17년 차 배우라 조금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오순은 지원과 처음 만나는 장면도 그렇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초점이 흐릿한 표정이다.
그 장면도 그렇고 엔딩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오순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을 끌어내려 했다. 잘 보면 오순은 사람과 대화할 때도 그 대상을 똑바로 보지 않을 때가 많다. 마주 보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거지. 한편으로는 숨기는 게 있는 입장이니 일부러 시선을 피한 것도 있을 거다.

오순-지원이 처음 공원에서 만난 날,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전 국민이 천 원씩 모아 1억 원을 모금한다면 아이를 풀어주겠다고 유괴범은 메시지를 보내고 마침 보라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유례없는 방식의 유괴라는 화두를 던져 극 초반 몰입을 높인다.
사실 너무 영화적으로 보일 것 같아 걱정했는데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해 이질감없이 느끼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유괴사건을 이렇게 활용한 게 새롭게 느껴졌고 부수적인 짜임새가 좋았다.

최근의 <미쓰백>(2018), <어린 의뢰인>(2019)에 이어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오순-지원의 만남을 출발점으로 해 과거와 미래, 양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전개와 추리극처럼 풀어내는 방식이 색다르고 흥미롭더라. 영화의 어떤 면에 끌렸나.
나 역시 영화의 진행 방식이 흥미로웠다. 더 좋았던 것은 사회적인 관심을 환기한다는 점이다. <도가니>(2011)로 아동학대가 이슈가 되고 그 파장이 커지면서 적지 않은 부분을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영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 책임감도 느꼈다. <밀정>(2016)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언젠가는 독립군을 연기해 보고 싶다. <고백>과 유사한 소재의 영화에 제안 받았으나 당시 임신 중이라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우리 영화는 학대 아동이 등장하지만,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아 보면서 불편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런 영화를 잘 보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편이라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또 엔딩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오순이 신비로운, 미스터리한 캐릭터 아닌가. 감독님께 왜 내게 제안했느냐고 물으니 아마도 미혼이면 안 줬을 것 같다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이라 더 잘 공감할 것 같았다고 하더라.

엔딩에 대한 기대감이라 하면? 또 완성본을 본 소감은.
시나리오에 ‘암전…고백 크레딧이 뜬다’ 이렇게 돼 있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바로 감독님의 전작 <초인>(2015)을 찾아봤다. 보니 감독님이 시나리오대로 엔딩을 끌고 갈 것이라는 믿음이 섰다. 이전에 엔딩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내 나름대로 미리 조사해 본 거지. (웃음) 완성본을 본 후 내가 출연한 영화이지만, 울림이 있다는 느낌이다. 메시지를 지닌, 적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라디오 ‘씨네타운’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 영화인지 깨닫게 된다.
# 예능, 드라마, 라디오 영화음악 MC, 최근 종영한 카카오TV <며느라기>까지 박하선은 결혼과 출산, 양육을 거치며 그 어느 때보다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출산 후 때때로 우울감을 겪기도, 불어난 몸을 원래로 복귀하기까지 애를 먹기도, 또 결혼 초기 부부관계에서 경험한 시행착오와 며느리로서 느낀 감정도 툭툭 던지는 그의 솔직한 입담에 귀를 기울여 본다.

<고백>이 출산 후 처음 출연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극 중 모습이 너무 슬림해서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관리 노하우를 풀어 놓는다면.
출산 후 한 번은 남편과 결혼식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내가 너무 살쪄서 못 알아보는 지인도 있었다. 또 그때는 살이 너무 안 빠져 카메오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내 경우는 출산 후 오히려 살이 많이 쪘다. 모유수유를 15개월 정도 하며 국과 밥을 삼시세끼 먹으니 살이 많이 찌더라. 수유를 멈춘 후 3개월 정도는 정말 안 빠져서 예전처럼 못 돌아갈까 무섭기도 했지만, 먹는 양을 줄이니 서서히 빠지더라. 식이 조절은 어릴 때부터 했는데 30대 들어서며 빛을 보는 것 같다. 노하우는 특별한 것은 없는데 얘기해도 지키는 사람이 드물더라. 밥은 반 공기 하루 두 끼, 아점과 다섯 시 반 정도에 먹는다. 그 사이에 곤약젤리나 우유 한 모금 정도 먹고 간식이 먹고 싶으면 밥을 포기한다. 운동을 따로 할 때는 간식도 챙겨 먹곤 하는데 촬영에 들어가면 특별히 운동을 못하니 먹는 거로 체중을 조절하는 편이다. 그리고 평소 계단을 이용하는데 한 번에 두 칸씩 올라간다! 이게 핵심이다. (웃음)

tvN <산후조리원>, 카카오TV <며느라기>, JTBC 예능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까지 매체를 넘나들며 맹활동 중이다.
결혼과 출산, 양육하면서 배우로서 입지가 좁아지기도 또 한편으로 넓어지기도 했다. 제안이 들어오는 것 중 선택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다기보다 재미있을 것 같으면 참여하는 편이다. 그간 안 했던 역할도 좋고, 익숙한 역할도 좋다. 이야기가 다르면 캐릭터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가 잘하는 역할이나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다양한 매체의 다채로운 캐릭터가 들어오니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려 한다. 예능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정말 즐겁게 하고 있다. 평소 집구경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일이 돼서 더 좋다. 집에 한이 맺힌지라(웃음), 집 없는 서러움을 너무 잘 안다. 월세, 전세 등 온갖 계약 형태로 다 살아봤거든.

<며느라기>가 얼마 전 누적 조회수 1,700만회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했다. ‘민사린’(박하선)이 너무 고구마 같다는 의견이 많다.
내가 봐도 답답해 조회수가 떨어지겠다 싶은데 오히려 올라가더라. 그래서 ‘하이퍼리얼리즘’이구나 싶었다. 그만큼 공감한다는 것 아닌가. 사실 요즘 여성처럼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작은 화면, 즉 모바일로 보는 숏폼 콘텐츠 특성상 좀 웃기게 간 부분도 있다.

‘며느라기(期)’를 보낸 지 얼마 안 된 1인으로서 그때를 돌아본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케익도 손수 만들어 가고 또 그때는 왜 그렇게 거절의 표현을 못 했는지! 복귀한 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그 시기가 지난 것 같다. 지금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편하게 말씀드린다. 부모님이 양육을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KBS 편스토랑에 출연 중인 남편 류수영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가 높다. 요리+스윗+멋짐까지! (웃음)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얘기는 나누는 편인가.
음.. 서로의 대본을 쓱 하고 보는 편이다. <산후조리원>도 <며느라기>도 재밌냐고 물으니 그렇다면서도 그다음부터는 따로 보더라. (웃음) <고백>은 아직 안 봤는데 아주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편이 젠틀하고 똑똑한 역보다 수더분한 시골 총각 같은 캐릭터를 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한 것도 그런 모습이었거든. 결혼 전 아직 썸 탈 당시, 하루는 강원도로 놀러 오라는 거다. 그때 가서 오토바이 뒤에 탔었는데 두툼하게 뱃살이 잡히는 게 아주 인간적이었다!

최고의 남편이라는 세간의 평도 있다.
최고의 아빠는 맞다. 아이를 진짜 잘 돌보고 요리도 잘한다. 편스토랑 회가 거듭할수록 음식도 점점 맛있어지고 퀄리티가 높아지고 있다. 진짜 셰프가 있는 느낌이다. 그게 연습을 많이 해야 하거든. 사실 남자도 요리하고 양육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특별히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닌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보다 남자의 육아와 가사 참여가 적을 때도 상대적으로 많이 하는 편이긴 했다. 그렇지만, 다 장단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직업상 주로 집에서 연애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도 막상 결혼하니 그래도 부딪히는 일이 많더라. 처음에는 많이 싸웠으나 요즘에는 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할까. 아이가 있으니 잘 살아야지.(웃음)

지난해 11월부터 SBS 파워 FM ‘씨네타운’의 MC로 영화 이야기와 음악을 전달하고 있다.
매주 세 편에서 다섯 편은 새 영화를 본다. 한국영화는 대부분 봤지만, 외국영화는 좀 약했는데 덕분에 많이 보게 됐다. 원래도 매일 밤 영화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루틴이었는데 일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더 좋은 것은 정말 좋은 영화가 어떤 건지, 이젠 어느 정도 보인다는 거다. (웃음)

한국영화는 대부분 ‘씨네타운’을 거치는 것 같던데, 인상에 남는 게스트를 꼽는다면.
최근에 출연한 염혜란 선배다. 평소 팬인 데다 <증인>에서의 그 광기 어린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 이번에 직접 뵙고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서 좋았다. 또 오정세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아주 수줍어해서 기억에 남는다.

생방송 진행인 데다 실시간으로 반응이 올라온다. 라디오 MC를 해보니 어떤가.
라디오 진행은 개인적인 로망이었다. 스케줄 상 엄두도 못 내다가 요즘엔 촬영을 대부분 4일만 하는 거로 자리잡는 추세라 덕분에 맡을 수 있었다. 라디오는 현재 4일은 생방송, 나머지는 녹화로 진행 중이다. 사람사는 이야기로 청취자와 소통하니 아주 재미있다. 사실 처음에는 생방송에 대한 울렁증이 심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오니 의식적으로 안 보려 하는 편이다. 간혹 악플이 보이면 타격이 크거든. 이게 드라마나 영화 등 콘텐츠에 대한 악플과는 또 다르더라. <산후조리원>과 <며느라기>를 통해 공감도가 높아진 분들도 늘었지만, 반면에 오빠(류수영) 팬이 많아지면서 때때로 공격하는 댓글도 있다. 그러다가 청취율 1위를 했다. 정말 감격해 울었다니까!

마지막 질문!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작년 초 그러니까 코로나 초기 때만 해도 남편과 나, 둘 다 일이 없어서 ‘어떡하냐, 우리’ 뭐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지금은 바빠져서 다행이다. 방송국, 인터뷰 등 하루에 서너 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날에는 회사에서 ‘아이돌 스케줄’이라고 농담하곤 하는데 지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 올해도 열일해야지!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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