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불괴물로 변한다는 발상이 참신하고, 한편으론 공감되더라.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음…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 꽤 지속됐었다. 전작 <파닥파닥>(2012)이 (흥행이) 잘 안돼 우울함에 술도 먹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거든. 당시는 운전하다가도 욱하고, 왜 표현하거나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지만 한바탕 폭발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영화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아이들과 놀던 중 장난감을 뺏긴 둘째 아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고 문득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순간, 마치 불타는 괴물 같아 보였거든. (웃음)
‘스트레스 킬러’, ‘스트레스 제로’ 등 스트레스 해소용 음료수가 실제로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일 텐데. (웃음) 영화 초반부, 사람들이 ‘스트레스 킬러’의 효과를 본 후 그 마시는 양을 점차 늘리는데 커피를 비롯한 기호식품에 알게 모르게 중독된 직장인의 모습이 떠오르더라.
말했듯 스트레스로 술을 많이 마셨었는데 먹을 때뿐 근원적으로 해소가 되는 건 아니더라. 무엇인가를 먹어 스트레스를 없애는 설정으로 가져갔고, 처음에는 알약으로 하려했었다. 그런데 알약이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데다 마시는 거로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와 음료수로 결정했다.
불괴물에 맞서 싸우는 히어로가 아빠에 아재 3총사인 것이 특색 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애니메이션 기획자이자 창작자 입장에서 스스로 공감이 안 되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내가 아빠이자 아재이기에 주인공도 그렇게 갔다. 두 아이의 아빠인 짱돌, ‘스트레스 제로’를 발명한 고박사, 자유로운 싱글 타조까지 3총사 모두에 내가 어느 정도 투영돼 있다. 뭔가 발명해 성공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욕구도 있고 또 ‘아빠 짱’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아빠의 판타지도 가지고 있거든.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작가, 피디가 모두 아재다 보니… 한마디로 아재들이 모여 (우리끼리) 재미있다면서 만든 결과물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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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변한 작은 불괴물부터 천재과학자 ‘준수’가 변한 거대한 불괴물까지 그 크기와 모습이 제각각이다. 특히 준수의 불괴물은 변하기 전 그의 뾰족한 헤어스타일을 연상시킨다.
불괴물은 둥글둥글한 형태와 뾰족한 형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강아지나 평범한 소시민이 스트레스를 받아 불괴물로 변한 경우는 대체로 둥그런 모양이다. 극 중 날카로운, 소위 빌런 같은 느낌을 주는 불괴물은 준수와 실험실의 쥐가 변한 케이스뿐이다. 사실 준수와 쥐가 변한 불괴물의 경우 디자인은 똑같고 크기만 차이가 난다. 자세히 보면 준수 연구실이 유리로 돼 있는데, 이건 쥐가 유리 상자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 거다. 그 안에 갇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를 주고 또 받고 있는 거지.
불괴물을 형상화하며 신경 쓴 지점은.
너무 무섭게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둥글둥글하게 간 이유다. 전작 <파닥파닥>이 작품성은 나름 인정받았으나 너무 우울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이번에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를 만들려 했는데 완전히 내 색채(?)를 빼지 못해 서늘한 부분이 때때로 있더라. 스탭들이 <파닥파닥> 때 감성이 묻어나온다고 때때로 지적하곤 했었다. (웃음) 그런 분위기를 상쇄하려고 신나는 배경 음악을 삽입해 분위기를 밝게 띄우려 했다.
불괴물이 도시를 파괴하고 3총사와 쫓고 쫓기는 시퀀스는 좀 과장하자면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았다!
일단 오락적인 만족감을 느꼈으면 했다. 또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졌기에 애니메이션이라도 어느 정도 퀄리티를 확보해야 했다. 액션 시퀀스에서는 웅장하게 오케스트라 느낌으로 음악을 사용했다. 불괴물이 움직일 때 잘 보면 밑에 쓰나미 같은 해일이 만들어지는 데 그 작업을 하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주 공들인 작업이다. 건물도 그렇다. 스펙터클하면서 시원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 쓸어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빗자루로 쓸 듯이, 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으면 했다.
신나고 웅장한 느낌의 배경음과 주제곡 등 음악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 영화와 비슷한 부류가 <고스터 버스터즈>로 약간 B급 정서를 품고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맛있는 불량품 같아 음악 감독에게 불량스러운 느낌이 들면서 주인공이 등장할 때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음악을 요청했더니 여러 곡을 보내주셨더라. 그중 선택했는데 다행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주제가를 부른 개그맨 문세윤은 <스트레스 제로>를 ‘아빠가 히어로가 되는 영화’라고 소개하는데, 당신에게 히어로는 누굴까.
개인적으로는 어머니다. 일상에서는 이웃을 위하는 평범한 우리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가령 코로나에 맞서 최일선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이나 봉사자들이 아닌가 한다.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뭉클뭉클해진다. 그와 같은 분들이 진정한 히어로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짱돌’, ‘타조’, ‘고박사’ 3총사 모두 평범한 이웃이지만,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불괴물에 맞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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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짚는다면.
어른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보며 공감할 것 같다. 불괴물에 맞서는 3총사의 활약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동시에 스트레스를 푼다면 좋겠다. 어린이들은 대체로 불괴물이 나오면 환호하더라. 그들에겐 몬스터를 잡는 영화로 다가가는 것 같다. 평소 우리 아이들도 내게 괴물놀이 하며 놀아 줄 때 제일 좋다고 하니 자녀와 같이 보면 만족도가 크지 않을까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감독은 어떤 의미에선 한 작품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말해 소재가 바뀌어도 비슷한 장면이 들어가게 되더라. <파닥파닥>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있는데 ‘준수’가 불괴물로 변하기 전, 우는 장면이다. 그리고 천 회장과 함께하는 장면에서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가 흐르는데 그 곡은 직접 선곡한 거다. 또 마지막에 짱돌 일행이 불괴물을 물리친 후 짱돌의 아내가 짱돌에게 다가가 피식 웃으며 꽉 안는 장면이다. 대사로 나오지는 않지만, ‘못 말린다, 그래 인정해 줄게’ 이런 마음을 드러내는 표정과 동작이다. 극 영화로 치자면 NG가 여러 번 났다고 할 수 있다. 거의 30회에 달하는 리테이크를 거쳤었다. 작업하던 애니메이터가 힘들지만, 마치 배우로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만족한 장면이다.
‘울게 하소서’는 평소 좋아하는 곡이라 나 역시 그 장면이 여운이 깊었다. 마지막에 천 회장이 ‘스트레스 킬러’에 이어 ‘슈퍼 워터’를 출시하는데 혹 2탄이 나오는 건가. (웃음)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거다. (웃음) 그런데 2탄에 대한 여운을 남기기보다 작가로서 또 감독으로서 <스트레스 제로>의 주제를 전달하려고 한 의도가 더 크다. 즉 영화는 끝났어도 스트레스는 계속된다는 거지. 우리 사회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는 음료나 다른 물질의 도움으로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것, 스트레스를 대하고 관리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대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코코몽’, ‘뽀로로’ 등을 제작한 302플래닛의 합작으로 만들었다. 3D 애니메이션인데, 제작 규모와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말했다시피 <파닥파닥> 실패 후 직원도 거의 없고 남은 인력으로 어떻게 제작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원래는 우리가 기획사로 302플래닛이 외주제작사로 미팅했었다. 302플래닛도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포부가 있던 차라 쿵짝이 맞아 시작했는데 그간의 백그라운드가 다르다 보니 처음에는 좀 삐걱댔던 게 사실이다. 그쪽은 베테랑인데 반해 나는 독립영화처럼 <파닥파닥>을 만들었던 터라 기존 시스템에 잘 맞지 않았다. 용어부터 다르고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한 5~6개월 지나니 익숙해지더라.
기획부터 치면 약 3년 반, 순수하게 작업한 기간은 한 1년 반 정도이다. 302플랫닛이 매우 효율적인 파이프라인을 인하우스화 해 예산을 확 줄일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번 작업을 통해 연출 등에 있어 아이디어를 얻는 등 많은 노하우를 축적했다. 영화에 투입된 작업자들도 내 것이라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열정을 쏟아부어 예산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아빠와 딸을 주축으로 한 <강철아빠>를 준비 중으로 지금 꽤 많이 진행했다. 로봇이 등장하는 SF액션 드라마인데 영화 <레옹> 같은 느낌으로 가려 한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어디까지나 가족용이다!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이란.
두 측면에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내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고 싶다. 외적으로는 사업적으로 발전 혹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스튜디오를 꾸려나가고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도 책임지는 입장에서 애니메이션 영역은 앞으로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20억 규모든 2,000억 규모든 그 크기에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작품을 제작할 때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었다. 그러다 요즘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네 살 막내딸이 어린이집 가기 전에 눈을 떠 출근하기 전의 나와 눈을 마주치면 깜박깜박하면서 나를 본다. 그 순간이 너무 좋다. 만감이 교차한다고 할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또 마스크를 내내 끼고 다니다가 가끔씩 들이쉬게 되는 외부 공기와 겨울 냄새를 맡을 때 소소하게 행복하다.
2021년 2월 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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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노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