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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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로 돌아왔다.
우선 좋은 작품을 만나 기쁘다. 성별과 관계없이 인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직은 세상이 남성 중심적이고 때문에 남성이 주체가 되는 작품도 많다. 언젠가는 여성과 남성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영화 분야에서도 성별의 균형이 맞춰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둘째 ‘미연’ 역이자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문소리 배우가 ‘희숙’ 역에 당신을 추천했다고.
사실 투자 문제로 몇 번이나 <세자매>의 제작이 엎어질 뻔했다. 그래서 투자를 위해서라도 주연에는 더 유명한 배우가 이름을 올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연이자 제작자로 영화에 참여한 문소리 배우가 나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희숙’ 역에 나를 추천했다더라. 어떤 역할이든 시켜만 주면 그저 감사하게 연기할 생각이었는데, ‘희숙’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맙고 기뻤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기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의외로 둘째인 ‘미연’에게 마음이 꽂히더라. 남편과 아이들, 언니와 동생까지 한 사람이 짊어진 무게가 너무 버거워 보였다. 우리 모두 늘 버거운 삶을 살지 않나.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미연’에게 감정 이입이 돼서 나도 모르게 그를 중심으로 영화를 봤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버릇없는 딸과 무책임한 남편에게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고,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희숙’ 역을 맡았다.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했나.
어떤 캐릭터를 맡든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어떻게 걷고 어떤 머리를 하고 있을지 등 외적인 부분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주위를 살피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46년 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친구, 선배 등 김선영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합을 해서 캐릭터를 완성한다.
‘희숙’을 구축할 때는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영덕에 계시던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서울에서 이사 와서 영덕에서 지내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주머니, 쓸쓸해 보이기도 했던 그 모습을 참고했다.
내적인 부분은 어떻게 구축했을까. 극중 난처한 상황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희숙’의 머쓱한 얼굴과 태도가 인상적이더라.
‘희숙’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도피, 회피 그리고 부정인 것 같다. 그는 고통이 일상적인 사람이라 힘든 것을 직시하지 못한 채, 늘 자신은 괜찮다며 웃어버리고 만다.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우리도 종종 웃음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런 순간이 극대화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회피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내몰리면 그제서야 눌러왔던 감정이 돌발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발현된다고 해석했다. ‘희숙’이 난처할 때마다 웃는 건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는데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거 같다. (웃음)
평소에도 촬영할 때 아이디어를 자주 내는 편인가.
말로 제안하기보단 일단 현장에서 바로 연기로 풀어본다. 감독님들이 내 연기에 디렉션을 하면 그 때부터 조율해서 맞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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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숙’에게 공감과 이입이 많이 되지만 결코 좋은 엄마는 아닌 거 같다. 자녀는 부모의 불행을 답습한다고 믿는다. ‘희숙’은 불행한 사람이고, 딸의 불행 또한 근원은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슬프지만 그런 엄마들이 의외로 많다. 이 시대에, 또는 지난 시대에, 앞으로의 시대에도 그럴 거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실제로 어떤 엄마인가.
나의 행복이 아이에게도 전달된다고 믿기에 자녀를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내 행복과 편안함, 휴식이 가장 먼저이다. 다만 가끔 지나치게 내 중심적인 선택을 내리는 거 같기도 하다. (웃음) 갑자기 딸과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다.
가족은 선택할 수도, 끊어낼 수도 없다는 점에서 굴레 같다. 때로는 존재 자체가 폭력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나의 선택과 가치관으로 관계를 개선할 수는 있다. 우선 내가 먼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자매>의 메가폰을 잡은 이승원 감독과는 부부다. 그와는 앞서 여러 편의 연극에서 배우와 연출자로 호흡을 맞춰왔는데.
이승원 감독과 함께 극단 나베를 운영 중이다. 남편이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연극 여러 편에 지난 10년 간 배우로 참여했다. 영화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작업했다. 이젠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호흡이 잘 맞는다. (웃음)
오랜 시간 가까이서 지켜본 이승원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이승원 감독과 웃음 코드, 좋아하는 영화 장르, 연기에 대한 가치관이 무척 비슷하다. 그리고 감독으로, 작가로서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승원 감독의 연극을 보길 바란다. 그가 가진 블랙코미디 정서가 뛰어나다. 기절할 만큼 좋고 재미있다. (웃음)
이승원 감독과 극단을 운영하며 무대에 서는 건 물론 단원들에게 연기 디렉팅도 한다고 알려졌는데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라 생각하나.
평소 연기의 진정성을 가장 강조하고 단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나 또한 단 몇 초만 화면에 나오더라도 연기에 굉장한 신경을 쏟는다. 그 어떤 역할이라도 허투루 하지 않고 매 순간에 온 에너지를 붓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진정성은 기본이고 한 발 나아가서 창의성까지 필요한 거 같다. 매해 수많은 작품과 배우가 쏟아지는데, 그 안에서도 시선을 멈추게 할 만한 창의적인 표현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관객뿐만이 아니라 <허스토리>(2017)의 김희애, <내가 죽던 날>(2020)의 김혜수 등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행운이다. 그런 칭찬을 받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연극할 때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같이하고 싶은 배우들을 마주한다. 그런데 문득 내 상대역들도 나와 다시 만나고 싶어할까 궁금하더라. 그때부터 나도 그런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다들 좋은 얘기를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웃음)
드라마, 영화를 넘어 최근에는 예능 <노는 언니>, <아는 형님> 등에 출연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사적인 모습은 주변인들과 나누는 것에서 만족한다. 대중에게는 그저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배우로 남고 싶다. 사람들이 내가 연기한 인물들을 기억해주면 더 기쁘고. (웃음) 지금 내가 당신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목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누군가 내 마음을 읽어줄 때 혹은 연기에 담긴 내 의도를 알아봐 줄 때, 그 순간 배우로서 가장 행복하다.
사진제공_리틀빅픽쳐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