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대중은 배우의 탄탄한 연기를 사랑한다. 상대적으로 흔들림 없는 연기 기본기를 장착한 연극배우 출신을 선호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의 진실한 연기로 <마더>(2009) <방자전>(2010) <위험한 상견례>(2011)로 이어진 주목의 시기를 확실하게 뛰어넘는 뜨거움을 토해낸 송새벽 역시 연극배우 출신이다. 추적 스릴러 <진범>은 그가 20여년 전 대학로의 골목길을 오고 가며 마주한 유선, 장혁진과 함께한 신작이다. ‘잘 버틴 끝에 서로 만났다’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청소와 걸레질부터 시작한 20여 년 전 대학로 생활을 떠올리며 말을 잇는다. 대부분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고 천천히 답하던 그는 이 건에서 만큼은 큰 망설임이 없었다. 힘은 좀 들었지만 배운 게 많은 시절이라고. 후배에게도 극단 생활을 “무조건 추천한다”고.
<진범>에서 살인사건으로 아내를 여읜 남편 ‘영훈’역을 연기했다. 그는 아내가 살인 당한 당일의 집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진범을 찾아내려 한다. 역할을 위해 체중을 상당히 감량했다고 들었다.
수척한 모습이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역할과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식단 조절을 통해 일주일 만에 급하게 7kg을 뺐다. 고정욱 감독님이 굳이 감량에 대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거울을 봤더니, 그 모습은 이 역할에 좀 아니더라.(웃음)
역할 자체도 암담한 편인데 급격한 신체적 변화까지 감당했다. 촬영 일정을 소화하는 게 힘들지 않던가.
갑자기 감량을 하니 성대 살도 같이 빠지더라. 목소리가 평소보다 건조하게 나왔다. 아무래도 (축 처져서) ‘헤…’ 하고 있곤 했는데, 감독님은 모니터 속의 그런 나를 보며 좋다고 하셨다. 속으로 이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구나… 싶었지.(웃음) 감독님 인터뷰에서 보니 폭력을 행사하는 의붓아버지 역할을 연기했던 <도희야>(2014)의 느낌이 좋았다고 하시더라. 그때 나는 구토해가면서 촬영했다. 현장에 함께 계시던 (김)새론이 어머니께서 되레 폭력 장면을 좀 더 세게 연기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실 정도였는데, 나는 자꾸만 헛구역질이… 하.(웃음)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촬영도 끝 무렵에는 그때와 비슷한 상태였다.
이야기는 아내 살인 사건의 용의자 ‘준성’(오민석)과 그의 아내인 ‘다연’(유선)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다연’과 진범을 찾는 게 먼저인 ‘영훈’의 열망은 때로 교차하며 공통점을 갖지만, 이내 어긋난다.
감독이 반전에 관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쓴 시나리오였다. 그저 눈속임 같은 느낌이 아니라 인물과 상황이 잘 접목돼 있었다. 각자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신이 많았다. 내가 ‘영훈’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아내가 왜 살해를 당했을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알아야 누굴 미워하든, 결국 자기 인생을 살아내든 할 것 아닌가. 아마 내가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었다면 감독이 이 역할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연기하게 되면 참 힘은 들겠다 싶었지만, 작품 상황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연극적인 면모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공간의 변화가 많지 않고, 밀폐된 방 안에서 배우들이 마치 핑퐁 게임처럼 대사를 주고받으며 갈등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실제 연극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그렇다면 내 역할이 거의 퇴장하지 못하겠지만.(웃음)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긴 대사를 주고받는 신이 많다 보니, 그 호흡을 이어가는 건 좀 힘들었다. 영화 촬영 특성상 오늘 저녁은 이 정도만 찍고 내일 아침에 다시 같은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그러면 기분이 달라지지 않나. 두 달이 채 안 되는 빡빡한 촬영 기간을 경험하면서 나나 유선 선배나 장혁진 형님이나 많은 공부가 된 것 같다.
세 배우 모두 연극배우 출신이다. 촬영 전 다 같이 MT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연기 합이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먼저 손을 들어 MT를 가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빨리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연극 같은 신을 더 잘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심오한 작품 얘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다녀온 뒤에는 현장에서 확실히 서로 편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느낌이 작품에 잘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촬영 후에 MT를 또 다녀왔는데, 이왕 가기 시작한 거 삼 세 번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 번 더 갈 구상을 하고 있다.(웃음)
유선과의 호흡은 어땠는가. 두 사람의 협력 혹은 대립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선 선배는 첫 만남 때부터 워낙 옆집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5분 정도 서로 낯을 가렸는데 말의 꽁무니가 탁 트이고 나서부터는 뭐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았는지 여덟 시간이나 떠들었다. 여자 배우하고 그렇게까지 장시간 얘기해본 건 처음이다.(웃음)
작품 얘기였나?
아니! 작품 얘기는 한 번도 안했다. 그냥 사는 얘기였지. 어쩌다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고, 애를 낳았고…(웃음)
의문의 남자 ‘상민’역으로 출연한 장혁진과는 드라마 <빙의>(2019)에서도 함께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버티다 보니, 오래전 대학로에서 알고 지내던 배우를 20여 년 만에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만난 셈 아닌가.
버틴다…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정말 잘 버텨줬구나 싶었다. 알다시피 연극계 상황이 굉장히 열악하고 힘들다. 받는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대관료는 가면 갈수록 비싸진다. 그래서인지 대학로에서 같이 활동하던 선배나 친구를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면, 하…(웃음)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고생한 걸 알기 때문이다. 장혁진 형님도 서로 극단은 달랐지만 대학로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니, 촬영이 끝난 뒤에도 서로 쉽게 헤어지질 못했다.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눌 수밖에.
대중은 연기 기본기가 확실한 연극배우 출신 연기자에 꽤 호감을 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연극계의 현재는 당신 말대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몇 안 되는 후배 중 하나가 앞으로 자기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바로 극단으로 들어가라고 추천한다. 무조건이다. 내가 대학로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힘은 좀 들겠지만, 걸레질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밑바닥부터 배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관객 앞에 선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로 야무지게 데뷔했고, <방자전>과 <위험한 상견례>로 코믹물에서 강점을 보여줬다.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쳤지만 <도희야>와 <나의 아저씨>(2018)로 확실히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고 본다.
코미디를 참 좋아한다. 중요한 장르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한동안 코미디 쪽으로만 이미지가 치중돼 있었다. 이제는 내 이미지가 좀 더 다채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연기자로서 갈망해왔던 부분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좋은 것 같다.
아쉬운 성적을 거둔 지난 작품도 없지 않다. 주연 배우로서 흥행에 관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때도 있을 텐데.
크게 연연하지는 않는다. 조연일 때는 에너지를 요만큼만 쓰고, 주연일 때는 에너지를 이만큼 쓰는 건 아니니까… 그냥 주연을 맡으면 대사가 좀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올해의 일정은…
지금 촬영 중인 <특송> 일정이 9~10월 중으로 끝날 것 같다. 그 외에는 아직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애기를 볼 때. 그 애가 여섯 살이다. 한참 예쁠 때다. 딸바보가 된 건지…(웃음) 일과 중에 항상 영상 통화를 한다. 둘째를 빨리 봐야 되나?(하하하)
사진 제공_리틀빅픽쳐스
2019년 7월 8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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