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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보다는 당근이 좋아 <기생충> 최우식
2019년 6월 7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걱정이 많은 편이다.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당황한다. 그런 자신에게 종종 ‘어리바리’라는 표현을 붙인다. 영화에 관한 무언가를 설명하다가 이내 뭔가가 제 마음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손과 팔을 허공에 휘휘 젓는다. 상대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필사의 노력이다. 어떤 질문 앞에서도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한다거나, 조리 있는 말솜씨로 상대를 구워삶는다거나 하는 노련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바로 그런 수줍은 면모가 최우식의 매력이다. <기생충> 개봉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세간의 따뜻한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그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좋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요즘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어요!”


<옥자>(2017)의 비정규직 트럭 운전사 ‘김군’역 이후 다시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당시 무비스트와 인터뷰한 봉 감독은 당신을 두고 “정색하고 변혁을 외칠 것 같진 않은데 매사에 비아냥거릴 것 같은, 되게 귀여운” 느낌이라고 했다. 아마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기생충>이 어떤 내용인지, 장르는 뭔지, 내가 맡을 역할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출연 제안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님이 ‘기우’역에 나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의아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보셨을 테고 거기에서 알게 된 배우도 정말 많을 텐데… 내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연락을 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옥자>의 ‘김군’처럼 준비해야 하는 건가? 내가 그때 어떻게 연기했길래 감독님이 좋아하신 거지? 혹시 <거인>(2014)의 ‘영재’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가? 생각이 많았다. 그렇다고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어보지도 못하는 성격이고…(웃음)

연기해보니 <기생충>의 ‘기우’는 어떤 인물이던가.
백수이긴 하지만 절대 어디가 부족한 친구는 아니다.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주어진 자기 환경보다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있고, 노력도 많이 한다. 본래 가진 생각이 훌륭하고 똑똑하다. 대학 입학에 네 번 실패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실전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장’의 딸 ‘다혜’의 과외 선생님이 돼서도 “실전은 기세”라고 가르친다.

당신과 닮은 점이 있는가.
나는 성격이 아주 긍정적인 편은 아니다. 걱정이 많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데 그럴 때 많이 당황하고 어리바리해진다. 그런 면이 ‘기우’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특별히 연기하는 데 자신이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마녀>(2018)처럼 기존의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줘야 할 때처럼 ‘와, 이걸 어떡하나…’ 싶은 마음까진 아니었다.(웃음) 내 안에 ‘기우’라는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았던 것 같다.

‘기우’는 아무 계획 없이 사는 게 가장 좋다는 무기력한 아버지 ‘기택’과 달리 이미 벌어진 상황을수습하기 위해 움직인다. 자신이 세운 계획 때문에 결국 큰 화를 입기도 한다.
(계획을 실행하러 가는) 그 대목을 찍을 때 ‘기우’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장남으로서 너무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기우’는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자식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선택지를 확실하게 주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당신은 극 중 송강호에게 연기를 가르치기도 한다. 희귀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텐데...(웃음)
처음에는 송강호 선배와 함께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긴장했다. 머릿속에서 엄청난 소용돌이가 쳤다. 그런데… 나중에는 선배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극 중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졌다.(웃음) 서로 애드리브를 하면서 놀다 보면 지켜보던 장혜진 선배와 (박)소담이가 같이 끼어들기도 했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로 즐거웠다. 내가 송강호 선배에게 연기를 가르쳤다는 내용이 기사로 나간 뒤에는 엄마(그의 친어머니를 의미한다)한테 전화가 온 적도 있다. “네가 무슨!”(웃음)

영화 말미 직접 부른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주 한 잔’이라는 곡이다.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중략) 빨간 내 오른쪽 뺨에 이제야 비가 오네”라는 가사의…(웃음)
내가 정말 나서서 노래하는 성격이 아닌데… 후시녹음이 끝날 때쯤 감독님이 “우식 씨, 노래 한번 해 보겠어요?” 하시더라. 농담인 줄 알았다. 촬영 뒤풀이때 노래방에서 내가 노래 부르던 모습을 본 감독님이 잘한다는 말을 몇 번 하시긴 했다. 그때는 까불고 싶어서 (어깨를 우쭐대며) “예 뭐 제가 좀 하죠” 했던 건데… 그게 이렇게 된 거다.(웃음)

곡을 쓴 정재일 음악감독은 당신이 봉준호 감독에게 노래를 잘 부른다고 주장했다는 걸 순수하게 믿고 있던데.(웃음)
진짜 노래를 시키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노래 못 부른다고 했을 것이다.(웃음) 게다가 곡의 음정도 내가 부르기에는 너무 높았다. 다행히 정재일 음악감독님이 내가 잘 부를 수 있도록 조정해 주셨다. 너무나도 상냥하게 “우식씨, 너무 잘하고 있어요. 연습 많이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시길래, 으레 하는 빈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짧게 녹음을 하고 끝내셨다. 한, 세 번 정도…?

오. 세 번 만에 녹음을 끝냈다는 자랑인가?
(다급하게) 아니, 아니!

(웃음) 언론시사회 때 보니 <기생충>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도 당신 놀리는 걸 꽤 즐거워하던데.(웃음)
하…(웃음) 말을 잘하고 싶다. 촬영 현장에서는 꽤 많이 까부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를 홍보할 때만 되면 너무 어렵다. (박)소담이는 말을 정말 잘하던데, 나는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뭔가 어리바리하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 떨려서 말이 더 안 나온다. 평소에는 까불던 내가 크게 긴장하면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아버지(송강호)도, 박사장(이선균)도 나를 더 놀리고 싶어 한다.(웃음)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큰 명예를 거머쥐었다. 주연 배우로서도 아주 각별한 경험일 텐데.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큰 의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칸영화제에서 결과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놀람과 기쁨의 연속이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기생충>을 만든 사람들의 목적이 수상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 배우가 송강호 선배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 좋은 기회였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나에게는 채찍보다는 당근이 좀 더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기생충>에 관해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와 요즘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다. 영화를 본 가족들이 너무나 좋아한다. 엄마를 자랑스럽게 해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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