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친근한 배우 이동휘, 워낙 강한 인상을 심어준 덕분에 여전히 ‘동룡’이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코미디는 물론 액션, 범죄, 드라마 등 여러 장르에서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왔었다. 그가 이번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어른’으로, 좋은 이웃의 모습으로 관객을 찾는다. 잔상을 남기고 질문을 던지는, 주변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되길 이동휘는 희망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동룡’으로 인기몰이 후 영화 <브라더>(2017) 그리고 최근 <극한직업>(2019)으로 천만 배우 등극까지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가 한다.(웃음)
천만 배우라니! 부끄럽다.(웃음) 전성기라고 하기엔 아직까지 시나리오가 쏟아지진 않지만.. 감사한 마음은 점점 커진다. 초지일관 늘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하는 중이다.
<선생 김봉두>(2003)를 비롯해 <이장과 군수>(2007),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등 구수한 코미디를 선보여왔던 장규성 감독이 ‘아동학대’ 문제를 다뤄 처음엔 의외였는데 생각할수록 장 감독의 결이 느껴지더라. 무겁고 아픈 주제인데 캐스팅 제안받고 든 생각은.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 났었다.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성취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요즘 다양한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즐겁고 볼거리가 큰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나.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는 관람하는 것을 망설여지게 되는데 우리가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면 작은 희망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영화의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실제는 극 중 표현된 것보다 더 가혹했다고 들었다.
감독님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실제 사례를 많이 찾아봤는데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였다. 영화보다 더 극악인 상황에 너무 참담했다. 아동학대 근절에 조금이나마 도움되고,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영화 전후로 아동학대 문제에 관한 관심의 크기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영화 전에도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게 뉴스를 통해 꽤 빈번하게 접하게 되지 않나. 지난주만 해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와 뚜렷한 해법이 없음에 답답하고 안타깝다.
극을 주도적으로 끌어나가는 데에 대한 부담감은.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아이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묻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빈’(최명빈)과 ‘민준’(이주원) 남매를 연기한 (최) 명빈이와 (이) 주원이가 연기를 너무 잘 해줘서 그 덕을 본 것 같다.
아이들과 연기하는 게 성인 연기자와는 다른 호흡이었을 것 같다.
감독님께 아이들은 참 안 지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몰입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더라.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현장에 나가 카메라 앞에 섰을 때의 설렘과 즐거움이 떠오르는 거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지금은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로 인해 연기하는 즐거움에 무뎌지곤 하니 말이다. 덕분에 연기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아주 도움이 된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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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정엽’(이동휘)은 귀찮아하면서도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어른이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자신의 이익과 상충한다면 망설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럼에도 나설 정도로 개연성이 있을지 자문했었다. ‘정엽’이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그 모양이 멀리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자신 혹은 이웃이나 친구의 모습이길 바랐다. 초중반에는 구직에 지친 변호사인데, 이때는 예전에 프로필 돌리던 시절이 생각나 정말 공감됐었다.(웃음) 그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건과 마주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가깝게 보여주는 게 핵심이었다.
변호사 역할을 위해 준비한 부분은.
변호사로서 맹활약하는 모습은 거의 없어서 직업적인 모습보다 인물 자체에 집중했다. 특히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어른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극 중 누나 ‘다빈’에게 사건의 진실에 대한 고백을 강요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로 자신의 뒤에 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좋은 이웃이 많아져야 세상이 변한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배려한다면 그게 바로 좋은 이웃이고 작은 영웅이 아닌가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스파이더맨’ 예전 주제가에 ‘좋은 이웃’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게 크게 와닿더라.
약속을 지키는 어른에 대해 일전에 ‘작은 영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참 어감이 좋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정엽’의 죄책감에 크게 공감했었다. 햄버거를 같이 먹자는 게 그에겐 사소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겐 큰 의미를 지녔었지 않나. 그 약속으로 인해 정말 말이 안되는 상황에 이르는데 그 미안함과 죄책감이란! 그것을 동력삼아 ‘정엽’에게 이입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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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데 당신의 좋은 이웃은 누구인가.
배우 박형수다. 근처에 살아서 진짜 이웃이기도 하다. 나와 다섯 살 차이라 대학교때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음에도 어쩌다 만났고 친해져 그때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다.
관객에게 영화가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가.
<어린 의뢰인>을 본 지인이 전화했더라.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영화 본 후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있는지, 양육 방식에 대해 생각하면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거다. 순간 뭉클해졌었다. 그런 잔상을 남길 수 있다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했고,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
<어린 의뢰인>이 올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 전주 돔에서 미리 관객과 만났는데, 반응은. 현장을 스케치한다면. (웃음)
일반 상영관과 달리 전주 돔이 객석이 다 차는 게 힘들다. 한 2000석 정도 되거든. 처음에 500석 정도가 예매됐다고 해서 좀 아담한 상영관이었으면 좋았겠다며 들어갔는데, 관객도 훨씬 많았고 정말 개막식 때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맞아주셨다. 그 좋은 기억에 지금도 감사하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주영화제가 제작 지원한 당신이 주연한 <국도극장>을 봤는데 정말 좋았다. 무비스트에서 이번에 기획으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된 고희영, 김종관, 전지희 세 감독의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전지희 감독 말이 당신이 먼저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던데.
앗, <국도극장>을 봤다니! 반갑다.(웃음) 영화 <브라더>(2017)를 끝내고 잠시 휴식기가 있었다. 좀 떨어져서 현상을 바라보고 재정비하고 싶었거든. 초심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여행다니고 했었다. 한 9개월 정도 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회사(화이브라더스코리아) 식구들에게 고맙다. 재촉하지 않고 마냥 기다려 줬으니 말이다. (웃음)
그러다 동시에 <극한직업>과 <국도극장> 두 영화를 하게 됐다. 먼저 캐스팅 제안을 받은 배우가 스케줄 상 못 할 것 같다고 해서 내가 시나리오를 읽어보겠다고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굉장히 마음이 먹먹해지더라. 담백하게 감정을 다뤄낸 방식이 슬프게 와 닿았다. 그래서 감독님을 뵙고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정말 슬프고 쓸쓸하기도 또 희망차기도 한 감정이 담백하게 공존하더라.
시나리오가 원체 좋았다. 상대역인 이상희 배우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셨다.
초심이라는 표현을 많이 해서 말인데, 초심을 돌아본다면.(웃음)
처음 대사 한 줄로 시작했던 당시의 떨림과 그 한 줄을 따내기 위해 준비한 것들. 그리고 리딩할 때의 설렘 등.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현재 상황에 정말 감사하다. 그때의 기분과 마음을 다시금 되살려 역할이 크든 작든 플랫폼에 구분 없이 앞으로 좋은 작품이 있으면 도전하고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촐랑이’ 인상이 강하지만, 이후의 연기를 보면 참 다채로운 얼굴을 지닌 것 같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한 면만 지닌 사람이 있겠나. (웃음) 자리에 따라 이런저런 다른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가벼운 연기든 진중한 연기든 인정해주셔서 감사하다. 연배 높은 선배님들이 계속 다른 역할에 도전하면서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아주 존경스럽다. 나 역시 나이가 좀 더 들었을 때, 선배님들과 같은 평가를 받는다면 기쁠 것 같다. 열심히 노력 중이다.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많은 편인 것 같다. (웃음)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가령 걸으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게 즐겁다.
코미디부터 액션 그리고 <어린 의뢰인>까지 장르 구분없이 두루 섭렵해왔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와 역할이 있다면.
<브라더>(2017)로 인터뷰하면서 공포 스릴러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이충현 감독님의 스릴러 물 <콜>(2019)을 했다. 이번 <어린 의뢰인>에서 아이를 학대하는 새엄마를 연기한 유선 선배를 보며 배운 게 있다. 선배 역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로서, 심지어 아동학대 금지 홍보대사도 맡고 있는데, 그 역할을 선뜻 할 수 있었겠나. 보기에도 힘들고 어려운 역할인데 말이다. 그런데 어둠이 있어야 빛이 밝게 보이듯 어두운 역을 해주는 배우가 있어야 정의로운 역할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특정 장르나 역에 상관없이 마음을 열어 두려 한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콜>의 촬영을 끝냈고, <콜> 이전에 찍은 단편 영화가 부천판타스틱국제여영화제에 가게 됐다. 그리고 <국도극장>의 개봉을 준비 중이다. 다음 작품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 요즘 당신이 주목하는 것 즉 관심거리는 뭔가.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새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다 보니 대기 문제 등 환경 오염에 관심이 커졌다. 영화 속에서나 봤던 환경이 파괴된 미래 모습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이제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에도 미세 먼지 경고 재난 문자가 쉴 새 없이 울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저절로 고민된다.
2019년 5월 17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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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스트드림시노펙스/ 화이브라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