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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ju IFF] 2019전주시네마프로젝트 ③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
2019년 5월 2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국도극장>의 전지희 감독, <불숨>의 고희영 감독, <아무도 없는 곳>의 김종관 감독을 무비스트가 만났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작품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세 감독 중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과의 서면인터뷰를 전한다.

<국도극장>은 사법고시 폐지로 고시 생활을 접고 고향 벌교로 내려온 '기태'의 모습을 따라갑니다. 이야기의 시작(작품의 취지)이 궁금합니다.

<국도극장>의 모티브는 제가 어릴 때 구상했던 단편영화에서 가져왔어요. 어떤 배우 지망생이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이 열린 극장 미술실에 들어가서는 영화 간판 속 배우의 얼굴에 자신처럼 점을 하나 그려놓고 도망쳐 나온다는 이야기였어요. <국도극장>에서는 오 씨 아저씨가 대신 기태의 얼굴을 그려주는 것으로 설정이 바뀌었죠.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먼저 완성이 되어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몇 년도인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한창 사법고시를 폐지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왔었어요. 폐지를 반대하는 고시생들의 시위도 계속 됐고요. 사실 뭐가 옳은지 저는 잘 모르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쨌든 사법고시 하나만 바라보고 오랜 시간 달려온 어떤 이들에게는 그 절망감이 정말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기태를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법고시 실패 후 고향으로 내려간 ‘기태’를 이동휘 배우가 연기하는데요. 그의 전작과는 다른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창생이자 ‘기태’에게 다른 삶의 동력을 부여하는 '영은'역의 이상희 배우와의 호흡도 아주 좋았습니다. 두 배우 캐스팅 이유 와 감독님이 경험한 배우의 매력은 뭘까요.

제가 배우를 잘 몰라서 (이젠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캐스팅 시작할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보통 시나리오를 쓸 때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그 인물을 상상하면서 써서 막상 배우를 정하려니 막막했었죠. 고심 끝에 한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그 분이 조심스럽게 거절 하셨어요. 그런데 그 배우의 지인인 이동휘 배우가 <국도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읽어보셨나 봐요. 그리고는 저희에게 먼저 연락하셨죠. 만나고 싶다고. 처음에는 너무 유명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더군다나 배우를 잘 모르는 저에게 동휘씨는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 이미지가 강해서 ‘기태’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릴지도 의문이었죠. 그런데 막상 직접 만나본 동휘씨는 굉장히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이었어요. 무엇보다 진심으로 기태 역에 매력을 느끼고 연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이동휘 배우를 캐스팅했죠. 영은 역의 상희씨도 먼저 연락을 해오셨어요. 상희씨의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으니 고민 없이 캐스팅했고요.
 <국도극장> 스틸컷
<국도극장> 스틸컷

<국도극장>은 벌교와 그곳에 위치한 옛 극장을 주요 무대로 합니다.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까닭과 실제하는 곳인지 아니면 영화적으로 재현된 공간인지요. 또 손포스터(손으로 그린 영화포스터)를 거는 오래된 '극장'을 '기태'의 일터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요.

시나리오 초기 영화의 배경은 군산이었어요. 실제로 군산에 ‘국도극장’이라는, 지금은 문을 닫은 극장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서울 생활에 실패한 기태가 유배를 가듯 초라하게 돌아가는 고향이라면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서울에서 먼 곳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은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잖아요. 지도를 보다가 제일 멀어 보이는 벌교로 배경을 바꿨습니다. 극장 로케이션 헌팅도 꽤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폐관된 극장이나, 현재 영업 중이더라도 옛 모습을 아직 가지고 있는 극장들을 찾아보았는데 그 수가 별로 많지도 않을뿐더러 내부는 아직 옛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한적한 소도시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극장 외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극장 내부와 외부 로케이션을 따로 정하게 되었죠. 영화에서 <국도극장> 외부로 나오는 곳은 실제 벌교에 있는 건물인데요, 극장은 아니고 옛 금융조합 건물로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곳입니다. 그리고 내부는 광주극장에서 촬영했어요.

또 손간판을 거는 '국도극장'이 지닌 느슨하고 촌스러운 정서가 서울이라는 공간에 잘 대비 될 거로 생각했어요.
 <국도극장> 스틸컷
<국도극장> 스틸컷


영화 촬영 시기와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요. 그리고 작업 도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또 힘든 일이 있었다면 살짝 들려주셔요.^^

2018년 8월 20일에 크랭크인해서 한 달 동안 약 20회 차 정도 촬영했던 것 같아요.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4월 초순부터 초가을까지로 설정이 돼 있는데 촬영을 8월 하순에 하다 보니 이야기의 시작인 봄의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나무들은 너무 짙푸르고, 기태와 오 씨가 봄 햇살을 받으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매미는 계속 울고. 또 온통 야외 장면이었던 벌교 촬영 때는 늦은 태풍이 올라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촬영이 많이 밀리기도 했어요. 기태가 혼자 담배를 피우는 마지막 장면의 날씨가 흐렸던 것이 많이 아쉬워요. 즐거웠던 순간은 없었던 거로… 하하.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연출이 처음이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항상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아주 작은 변수 하나도 저한테는 큰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촬영 전에는 ‘현장에 가면 유머쟁이 감독이 되어야지’ 하는 야무진 꿈도 꾸고 그랬는데… 돌아보면 배우들, 스태프들에게 참 미안해요. 감독이 여유가 없으니 촬영장 분위기도 딱딱했던 것 같고. 영화를 몇 편 정도 더 만들면 그런 여유가 생길까 봐 요즘도 계속 생각합니다. 묵묵히 함께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감독님 필모 관련 사전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간단 소개 부탁드립니다. 또 감독님께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떤 의미일까요.

좀 늦은 나이에 대학에 가서 2008년에 졸업을 했어요. 영화를 공부하긴 했는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취직도 잘 안 됐어요. 여러 광고 프로덕션에 지원했는데 나이가 애매하다 하더군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영화제 일도 해보고, 기록 영상도 찍고, 아이들에게 영상 가르치는 일도 하고, 번역도 하고, 영어 강사도 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마음이 불안해지더라고요. 괜히 자격지심에 성격도 비뚤어지는 거 같고. 그래서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가 <국도극장>이예요. 기태가 그때의 제 모습일 수도 있겠네요.

<국도극장>이 저의 첫 장편 시나리오예요. "이 이야기를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어!” 하는 야망 같은 건 없었고 그냥 글 쓰는 것이 나름의 자가치유였달까요. 그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명필름랩에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저를 뽑아 주셨어요. 거기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큰 지원까지 해주셨죠. 전주국제영화제 지원이 없었다면 <국도극장>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단편 연출 경험도 없는 근본 없는 저를 믿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성원에 잘 보답을 해야 할 텐데…
 <국도극장> 스틸컷
<국도극장> 스틸컷

계층 이동 사다리가 걷어차여진 세대인 '기태'와 그 주변인의 삶이 녹록지 않은 모습입니다.(장남의 의무를 진 형, 꿈에 끝없이 도전 중인 '영은', 극장 오 씨, 치매 엄마 등)그들을 통해 감독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그리고 관람 포인트를 짚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극 중 ‘기태’의 엄마를 연기하신 신신애 선생님의 노래처럼 세상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요.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잘나고 못나고는 내 노력만으로 바꾸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죠. 뻔한 이야기만 참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게 잘 안되거든요. 기태가 처음에는 못난 자존심에 계속 서울로 돌아간다고 말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벌교 생활에 익숙해져요. 오 씨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영은에게 위안을 얻고, 형에게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엄마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요. 그런데 마지막엔 그들 모두 기태 곁을 떠나죠. 그들이 기태 인생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걸 역설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오 씨 아저씨도 돌아올 테고, 어쩌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영은이도 언제 서울을 갔냐는 듯 기태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에서 <국도극장>의 간판이 다섯 번 바뀌어요. 간판을 유심히 보시면 영화를 좀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2019년 5월 2일 목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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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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