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썬키스 패밀리>는 밤마다 엄마(진경)와 아빠(박희순)의 침실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삐그덕 쿵’에 흐뭇해하는 꼬맹이 어린 딸(이고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성(性) 이야기다. 귀여운 발상에 부합하듯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 역시 흐뭇한 웃음을 끌어낸다.
아이 시선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른 눈으로 보면 엉뚱하고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야말로 ‘골 때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호기심이 생겼고 나도 그 작품세계에 동참해보고 싶었다. 연기자로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는 것도 좋았다.
<감시자들>(2013)의 ‘이실장’이나 <마스터>(2016)의 ‘김엄마’ 같은 강렬한 캐릭터에 비하면 <썬키스 패밀리>의 ‘유미’는 아주 귀엽고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이다. 김지혜 감독은 어떤 이유로 당신을 이 역할에 캐스팅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물어봤다. 왜 나를 ‘유미’역에 캐스팅했냐고. 그랬더니 <베테랑>(2014)에서 명품가방을 던지는 장면을 봤다고 하더라.
5만원권으로 가득 채운 명품가방을 건네는 ‘최상무’(유해진)에게 무안을 준 뒤 남편(황정민)에게 찾아가 “쪽팔리게 살진 말자”고 소리치던 바로 그 장면… 말인가?(웃음)
감독님은 저 여자가 왠지 그러고 난 뒤에 집에 가서는 (남편에게) 애교를 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더라. 굉장히 엉뚱한 분이다.(웃음) 동심을 유지하고 있는 순수하고 맑은 분이다. 아기천사같다.(웃음)
예상보다 영화가 야하다는 생각을 했다. 큰아들 ‘철원’(장성범)의 에피소드에서는 특히 아슬아슬한 기분이더라. 가족 영화라면서, 이래도 되는 거야? 싶을 만큼.(웃음) 그가 최초의 성관계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애환(?)이라든가..
솔직히 걱정됐다. 내가 봐도 좀 야하더라.(웃음) 극 중 '철원'이 가장 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을 나이다 보니 그의 에피소드가 나올 때는 아슬아슬한 선을 탄다는 느낌이었다. 촬영 하면서도 이건 빼자, 이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많은 부분을 서로 조율 했다. 가족끼리 가장 공유하기 힘든 소재 중 하나가 성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그걸 전면에 확 드러낸 장면에서는 관객이 놀랄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너무 야한 것만 보지 마시고…(웃음) 그런 에피소드 안에서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귀 기울여보면 여러 색깔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당신과 박희순의 뽀뽀를 비롯한 스킨십 장면도 잦은 편이다.
스킨십 장면을 촬영할 때는 전혀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결혼한지 20년이나 된 부부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을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더라. 하지만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2018~2019)에서 호흡을 맞춘 최수종 선배님이나 극 중 (박)희순 오빠를 보면, 그런 부부의 모습이 가능한 것 같기는 하다. 극히 드물지만 현실적인 모델이 있는 건 분명하다.(웃음)
‘유미’의 극 중 직업은 선생님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자유분방한 아내이자 엄마지만, 학교에서는 성적인 면모에 관심이 많은 남학생들을 보수적으로 다룬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유미’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관으로 자녀를 키운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 특성상 어느 정도 학생을 규제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유미’라는 인물은 어디까지가 자유고, 어디부터는 방종인지에 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남편에 관한 오해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과연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유미’ 자신도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본다.
할머니(이주실)는 딸 ‘유미’와 사위 ‘준호’ 부부를 위해 콘돔을 한 봉지 가득 담아온다. 그걸 본 큰아들 ‘철원’은 자신도 몇 개 쓰겠다고 챙기고 나선다.
그런 모습이 모든 가족이 추구해야하는 롤모델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개방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에서도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외로워지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엄마 아빠를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 게 채 2년도 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지금 70대 후반이시다. 내가 어릴 때는 그 세대 부모님과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냥 “다녀오셨습니까” 정도의 말만 전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부모님도 어떻게 자식을 대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경직돼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선입견이 생긴 거다.
운이 나쁘면, 그 선입견을 영원히 깨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2년 전 어떤 계기 때문에 부모님께 마음을 터놓았다. TV를 보고 계신 부모님을 불러 ‘여기 좀 앉아봐요’ 하고 말을 걸었다. 좀 민망하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모든 게 180도 변했다. 손잡는 것도 어색했던 내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빠의 뺨을 손으로 톡톡 만지기도 한다.
귀엽고 기분 좋은 장면들이다.(웃음)
물론 우리 가족 사이에 엄청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도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내심 속상했던 것 같다. 나중에, 혹시라도 그러지 못할 때가 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돌이켜 보면 아마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 같은 엄마의 모습을 동경했던 모양이다.
1998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뒤 10년 넘게 무대에 섰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이후 본격적으로 <감시자들> <베테랑> <암살>(2015) <마스터>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매체로 영역을 넓혔다. 그사이 변화한 삶의 모습들을 실감하는가.
이런 인터뷰를 한다는 게 가장 달라진 거겠지.(웃음) 요즘은 사람들이 내 개인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스스로 변한 건 별로 없다. 나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연극을 오래 한 사람은 아마 다 비슷할 것이다. 좋은 점이 있다면 전보다 많은 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연극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연기만 할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제작자와 감독이 당신을 믿고 좋은 역할을 맡기기 때문일 것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본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가 조의석 감독의 <감시자들>(2013)에 나를 캐스팅했다. 저런 연기를 하는 사람이면 이런 연기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웃음) <하나뿐인 내편>에 출연한 건 일일 드라마 <힘내요, 미스터 김!>에서 억척스런 아줌마를 연기한 내 모습을 기억한 홍석구 감독의 캐스팅 덕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집승들>(2018, 개봉예정)은 BA엔터테인먼트의 장원석 대표가 “누나, 이 역할 하자. 화장실 청소부야”라면서 출연을 제안했고...(웃음) 내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고 믿고 제안해주는 게 너무 고맙다. 이제는 또 어떤 역할이 들어올지 기대 된다.
앞으로의 작품 일정은.
확실하진 않지만, 드라마 <낭만닥터2> 촬영을 하반기에 시작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집에 가서 포근한 침대로 들어가 자려고 누웠을 때. “아, 이제 잔다” 하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푹 잠들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도 그랬다.(웃음)
사진 제공_영화사 두둥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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