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젊은 시절 꿈꾸던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엄마가 된 ‘장미’를 연기했다. ‘젊은 장미’(하연수)가 등장하는 초반부는 마치 <써니> 같은 복고 분위기를 띠지만, 당신이 등장한 뒤로부터는 따뜻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드라마로 전환한다.
이런 작품을 기다렸다. 모성애가 느껴지는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 말이다. 최근 들어 그런 역할을 많이 맡지 못해 갈증이 있었다. 보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 했다.(웃음) 어떤 분들은 ‘젊은 장미’와 ‘엄마가 된 장미’의 이야기 두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시더라. 한 여자의 일생을 통해서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영화 주연은 <써니> 이후 8년 만이다. 드라마 출연을 포함하더라도 작품 활동이 뜸한 편이다.
두 아이의 나이가 18살, 15살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다들 내 품을 떠날 테니, 그 전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극 중 ‘장미’의 태도와 어딘가 비슷하군. (웃음)
‘장미’는 꿈과 사랑, 모든 걸 다 접고 아이를 위해 살아간다. <그대 이름은 장미>는 그렇게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조석현 감독이 혹시 나와 내 어머니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쓴 내용이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내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비슷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연기하면서 조금은 지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
극 중 홍수로 집이 물에 잠기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내가 중학교 때 겪은 일이다. 엄마는 우리를 옆 아파트에 대피시키고 가재도구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가셨다. 물이 빠질 때까지 그곳에 텐트를 치고 지내셨는데 마음이 참 아팠다. 영화에서는 내가 그런 엄마 역할을 연기해야 했으니, 그때 우리 엄마 마음이 이랬겠구나 싶더라. 많이 울게 되더라.
극의 전환이나 이야기 흐름이 아주 매끄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딸들에게는 분명 공감대를 일으킬 만한 내용이 담겼다고 본다.
내 딸 역할인 채수빈(극 중 ‘현아’)이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주겠다는 대사를 한다. 그 말이 가슴을 찌르더라. 물론 딸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때 한 번씩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듣는 엄마는 그 말 한마디로 인생을 보상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발칙한 여자들>(2006) <이웃집 웬수>(2010) <풍문으로 들었소>(2015) 등 소재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한 밝은 분위기의 드라마에 주로 참여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에게 가족 이야기가 힘이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누구든 각자의 가정을 잘 지키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회는 얼마든지 잘 버텨나갈 수 있다.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 당사자가 흔들리고 그들이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흔들린다. 가정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더 끌린다.
폭력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워낙 풍미해온 최근 몇 년이다.
선택지에 그런 작품과 <그대 이름은 장미> 같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없이 후자를 선택한다.
납치당한 딸을 둔 엄마, 성폭력 피해를 입은 딸을 둔 엄마… 같은 역할이 담긴 시나리오를 간혹 받았다. 작품만 보면 욕심이 나는데, 역할을 보면 두렵더라. 몇 번을 두고 다시 읽어보려 해도 시나리오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 내가 과연 몇 개월 동안 그 역할에 빠져 지내다가 다시 현실로 잘 돌아올 수 있을까? 두려웠다. 물론 그런 것마저 이겨내야 하는 게 배우의 일이지만, 아직은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가정을 꾸린 아내로서,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 비춰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출연한 작품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 엄마가 연기하는 걸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간 육아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 4개월에서 6개월 정도는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한다. 일하고 돌아오면 아이들의 생활 습관이 달라져 있다는 걸 느낀다. 엄마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많다. 결국 작품을 다 끝내고 나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내 노력을 알아준다. 내가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려준다.
남편 이재룡의 역할도 꽤 컸을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배우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던 시절 용기를 준 사람이다. 연기도 못 했고, 성격도 싹싹한 편이 아니라 늘 주눅 들어 있는 상태로 방송국 생활을 했다. 모든 게 힘에 부칠 때 나타나 마치 매니저처럼 하나하나 가르쳐준 게 많다. 결혼 후에는 내가 일할 때 생기는 빈자리를 채워줬다. 말하다 보니 남편이 되게 큰일을 했네.(웃음) 어쨌든 배우자가 내 삶에 공감해주지 못하면 배우 일을 오랫동안 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곧잘 배우끼리 결혼하라고 한다.
선배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중에서도 연기 도전은 참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앞서 내 자리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배우의 삶을 살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기도 꾸준히 하는 것, 그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후배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최근에는 마음이 힘든 후배들이 많이 보이는데, 내가 그 고민을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면에서는 책임감을 느낀다.
당신의 대답을 듣다 보면, 따뜻하면서도 단단하게 다져진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떤 분들은 내가 고생 같은 건 전혀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엄마가 우리 두 자매를 혼자 키우셨고, 나 역시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엄마는 ‘아빠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 만큼은 절대 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우리를 엄청 엄하게 키우셨는데, 그래서 종종 엄마를 원망한 적도 있다.(웃음) 성인이 돼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성격이 조금씩 단단해진 것 같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최근 눈여겨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는지.
아직 결정한 건 없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의 감성을 배우기 위해 드라마나 예능을 일부러 챙겨보곤 한다. 최근에는 다들 <SKY 캐슬>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나도 따라 보는 중이다.(웃음) 드라마도 참 많이 바뀌었다. 대본, 대사, 배우들의 연기 패턴까지 말이다. 가끔 저런 대사가 공중파에서 나와도 되는 거야? 하고 놀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가 싶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얼마 전 여자들끼리만의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여행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웃음) 행복했다.
사진 제공_SM엔터테인먼트
2019년 1월 15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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