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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이 잔잔하고 평온한, 시인 같다 <피엠씨: 더 벙커> 이선균
2019년 1월 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한 편의 영화가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열정과 땀이 필요할까. 기획 각본 촬영 후반작업 그리고 개봉을 결정짓기까지 예상 이상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여되기 마련이다. 초반에 젠더 이슈와 맞물려 쏟아졌던 거센 비난을 딛고 마침내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이어 이선균이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영화 <PMC: 더 벙커>로 관객을 찾는다. 그는 상반기 개봉을 준비 중인 <악질경찰>를 포함해 지난 3년 동안 새로운 작품이 마치 디졸브되듯 찾아왔다고 회상한다.

<PMC: 더 벙커>는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 배우 그리고 CG의 비중이 큰 새로운 장르라는 점에서 이선균에게 있어 안 할 이유가 없던 작품이었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캐릭터의 입체성 부족과 적은 비중에 대해 그는 이미 알고 들어갔기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못 박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작품과 연기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중 ‘아름다운 피난길’ 같은 아름다운 언어를 무심코 던지는 이선균. 내면이 잔잔하고 평온한, 시인 같다.


후반 작업 비중이 높은 영화 특성상 촬영 당시와 완성 작품을 접하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감상 소감은.
공간이 확장되면서 확실히 웅장해졌더라. 촬영할 때는 미처 못 느꼈던 부분이다.

지금까지 현실적인 드라마를 주로 작업해 왔다. 이번 <PMC: 더 벙커>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참여 계기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고, 김병서 촬영감독이 워낙 친한 후배이기도 하다. 거의 20년 전에 졸업 작품을 같이 하다가 엎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당시가 <악질경찰> 막바지라 끝나면 쉬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는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기보다 서포트 역할이라 분량도 적당하다 싶었다.

극 중 북한 의사 ‘윤지의’(이선균)는 줄곧 정의롭다. 무려 ‘이선균’이라는 좋은 배우를 너무 평면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분량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니?(웃음)
솔직이 롤이 적어서 한 것도 있고 역할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보다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어떤 시기를 놓치면 다시 뭉친다는 게 쉽지 않거든.

장르성 높은 영화에 참여하며 이전과 연기 포인트를 달리 잡았을 것 같다. 중점을 둔 부분은.
가장 큰 고민은 영화적 상황을 관객에게 어떻게 설득하느냐 였다. 장르성이 두드러지고 이렇게 CG 작업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이전에 해본 적이 없지만, 점점 이런 종류의 영화가 늘어나는 추세라서 일부러 시도한 것도 있다.

당신을 끌어당긴 ‘윤지의’만의 매력이 있을 거다.
정의롭고 옳은 말만 하는 ‘윤지의’가 답답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순할 정도로 명확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다. 극 중 ‘에이헵’(하정우)은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예민한 국제정세 속에 지하 벙커에 고립된다.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위급한 상황에 끊임없이 선택과 갈등을 겪으며 초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에이헵’을 각성시키는 키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윤지의’다. 사실 두 사람이 각자 가정사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아마 편집되지 않았다면 좀 더 ‘윤지의’가 입체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편집된 그의 가정사는 뭔가.
포로수용소에 가족이 있다는 것. 이념보다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라는 신념을 갖게 된 배경 설명 정도다. ‘에이헵’(하정우)한테 목숨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데 있어 설득력을 실어 준다고 할까. 촬영 시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극의 템포를 느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감독님이 편집하신 듯하다.

명색이 액션 장르인데, ‘윤지의’의 액션은 하나도 없다. 아쉽지 않았나.
말했듯 그(윤지의)의 역할은 신념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에이헵’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이미 알고 들어갔는데 새삼스럽게 아쉽기는….(웃음)

북한 사투리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는데 연습을 많이 했겠더라.
북한 사투리를 전문적으로 지도해주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에게 직접 지도받기도 하고 음성을 녹음해서 들으며 연습했다. 촬영을 진행하던 중 억양이 너무 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아 후반으로 가면서 점차 억양과 톤을 낮게 조절했다.

셀프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DSLR에 렌즈를 장착했는데 꽤 무게가 나갔다.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왜곡될 수 있으니 좀 카메라 대를 길게 했거든. 그렇게 촬영한 장면을 감독님이 바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일단 찍고 난 후 영상을 보고 연기나 앵글 등에 관해 조언하는 방식이었다.

상대역인 ‘에이헵’(하정우)과는 핸드폰을 통해서 대부분 소통한다. 직접 대면이 후반부 한두 장면밖에 없지만, 호흡은 어땠나.
그는 정말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친구다. 내가 작품에 좀 늦게 합류했는데, 마치 ‘하정우가 반장으로 있는 국제학교에 전학 간 느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극 중 리더일 뿐만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도 실제 그랬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지 감탄할 정도였다.

촬영 없는 날도 현장에 출근할 정도로 열정을 다했다고 하던데. (웃음)
아, 자꾸 그 얘기하는데, 매일은 아니고 두 번 갔다! 내가 한 달 늦게 합류했기에 낯섦을 없애고 싶었다. 또 ‘에이헵’이 연기하는 것을 봐야 나도 상상해서 내 연기를 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극 중 ‘윤지의’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 대사 전달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또, 카메라 워크와 사운드 등 게임을 연상시킬 정도로 몰입감 있게 밀어붙이나 한편으로 드라마적 요소가 약하다는 인상이다.
안 그래도 그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에 대해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이야기했었다. 극 중 혼자만 군인이 아니고 그의 대사만 자막이 안 깔리지 않나. 사연을 전하긴 해야 하는데 목소리 톤과 리액션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했다. 그 결과 현장감을 살리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은 점은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드라마적인 아쉬움이라면 킹의 심박수가 떨어지는 장면과 미사일 발사 타임 등을 좀 더 쪼였으면 좋았을 것 같긴 하다.

극 중 ‘에이헵’과 대화하던 ‘윤지의’가 이어폰을 빼고 적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눈 건가? 또 시나리오상에는 어떻게 표현돼 있었는지 궁금하다.
뭐, 극적 상황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로 개연성을 부여하진 않았다. ‘에이헵’과 밀당했다고 볼 수도 있고. 감독님 왈 일단 속임수라고 하더라. ‘지의’와 상대방이 한쪽 구석에 가서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구체적인 대화를 시도한 건 아니다. 카메라에 입 모양이 잡힐 수 있으니, 이야기한 척만 한 거다.

영화 출연진이 당신과 하정우 배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외국인 배우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또, 실제 용병 출신 배우를 섭외했다고 들었다.
서로 인사 정도만 건네는 아주 조용한 현장이었다. 뭐 길게 얘기할 거리(?)가 없다 보니…(웃음) 외국인 배우의 반 정도가 실제 용병 출신이라고 들었다.. 전문 에이전시가 있다고 하더라. 극 중 한 사람은 부산에 있는 경호업체 대표인데 예전에 아프간에 다녀왔다고 하더라. 또, 한 명은 부인이 한국인이고 현재 LA에서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정우’가 말해줬다.

<PMC: 더 벙커>의 매력을 꼽는다면. 참고로 함께한 하정우 배우는 당신을 보는 맛이라고 하던데?(웃음)
아, 이렇게 서로 책임 전가하는 건가! (웃음) 한국 영화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컷 구성과 카메라 앵글 등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 낙하 장면의 경우 촬영 과정이 정말 궁금하더라.
프리비전을 봐도 어떻게 나올지 가늠이 안 됐었다. 나중에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하게 잘 나왔더라. 그게 ‘정우’ 관절에 와이어를 달아 여러 명이 조정한 거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생각하면 된다.

그렇군! 김병우 감독과의 호흡은. 지난 기자 간담회 때 본 김병우 감독은 상당히 예민해 보이던데.
하하, 그게 좀 남다른 소통 방식을 지니고 있긴 하다. (웃음) 업다운이 심한 편인데 본인이 불편하거나 낯설다고 느끼면 주로 단답형의 대답을 해놓고 이후 반성(?)을 많이 한다. 감독님은 정말 꼼꼼히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로 촘촘하게 전체 극을 설계해 놨었다. 심지어 영화의 감정(온도) 그래프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지하 벙커 공간을 레고로 직접 만들어 놨을 정도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그날의 할 일을 세세하게 브리핑하고, 프리비전을 배우에게 미리 다 보여줬었다.

영화와는 관련 없지만, 2018년을 이야기하며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40대 가장 ‘박동훈’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아저씨>는 마치 선물 같고 앞으로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작품이다. 드라마 방영 초반에 미투 열풍과 젠더 이슈로 논란이 됐고 어떻게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아 매우 속상했었다. 다행히 종영될 무렵에는 오로지 작품만으로 그 논란을 잠재웠다. 극 중 ‘박동훈’의 나이가 딱 내 또래라 그런지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는 친구들도 아주 좋아하더라.

작품 선택 시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또 차기작을 소개한다면.
내 딴에는 안 했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계속 비슷한 걸 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항상 주어지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미옥>(2017) 이후 거의 3년간 디졸브처럼 새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끝나고 좀 쉬려고 하면 또 작품이 들어오더라. 모두 함께하고 싶었던 감독이었고 믿음이 있었기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배우는 감독을 믿고 연기할 때 제일 예민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연기하게 된다.

3월에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에 들어간다. 감독도 믿음이 가지만 이번에는 캐릭터 욕심도 크다. <악질경찰>도 그때쯤 개봉할 것 같다. 촬영 순서로 하자면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 <PMC: 더 벙커>, 드라마 <나의 아저씨>였는데, 공개는 거꾸로 됐다. <악질경찰>은 굉장히 강하고 센 역할로 기존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새해 인사 겸 예비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우리 영화가 장르적 생동감이 넘치고 기술적으로 진일보를 보여주나 연령대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장·단점이 있을 텐데 이왕이면 장점을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한 일 혹은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음, 얼마 전 정우와 함께 하와이에 갔었다. 어쩌다 보니 하와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뛰다 걷다 하며 완주했다. 기록은 7시간 44분이었다.(웃음) 경주 코스의 주변 풍광이 매우 뛰어난데 그 길을 삼만 오천 명이 동시에 뛰다 보니 마치 아름다운 피난길 같은 모습이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또 뛰고 싶더라. 내년에도 기회가 되다면 걷지 말고 뛰어서 완주하는 게 목표다!


2019년 1월 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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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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