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도어락>을 매우 긴장감 있게 잘 봤다. 혼자 사는 ‘경민’(공효진)으로 소위 ‘혼공’을 끌어 올리는데, 개인적으로 당신의 필모에 획을 그을 작품이 아닌가 한다.
정말?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 ‘경민’ 캐릭터가 이전에 비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극 중 그녀가 점차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데, 그 감정을 확 터트리지 않는다. 또, ‘효주’(김예원)와 있는 장면에서는 분위기를 중간중간 환기해야 했는데 연기하면서도 잘하고 있는지 의심하기도 했었다.
완성본을 본 소감과 주변 평은.
관객 입장에서 쫄깃하게 잘 봤다. 평소 침대 사용하는 분이라면 영화 보고 집에 들어가 침대 밑을 한 번쯤 보지 않을까 싶다. 또, 혼자 사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하냐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대응책(?)이 침대 밑에 짐을 둬서 물리적 공간을 없애는 거였다. 괜찮은 생각 아닌가. (웃음)
평소 공포 영화 혹은 스릴러를 즐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서운 것을 정말 무서워한다고 하던데.
우리 영화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공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촬영 당시보다 오히려 완성된 것을 보니 무섭더라. 사실 촬영할 때는 가짜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무섭지 않거든. 게다가 큰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보니 더 무섭더라. 나조차 무서운 입장에서 영화를 보시라고 홍보하기가 참 그렇지만, 예상외로 스릴러 장르를 즐기는 여성이 많다고 들었다. 다만 우리 영화가 판타지식의 공포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라 좀 걱정되기는 한다.
한편에선 젊은 여성이 경험하는 공포를 지나치게 전시하고 소비한다고 간주해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사건과 이야기에 몰입했기에 촬영하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다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혼밥 혼영 혼여 등 많은 것을 홀로 즐기는 혼족이 증가하는 사회적 추세가 반영된 만큼 불편하고 힘들게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혼자 사는 친구가 새로 이사한 동네가 젊은 사람이 많이 살아서 서로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는 분위기가 좋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꼭 ‘경민’이 여성이기에 경험하는 무서움과 고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 중 ‘기정’(조복래) 역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침대의 주인이 젊은 여성인 ‘경민’이 아닌 남성 혹은 아이라도 충분히 두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중요한 건 남녀 성별을 떠나 혼자사는 인물이 겪는 사건과 공포라는 점이다. <도어락>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걸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한 번쯤 주의를 둘러볼 계기가 됐으면 한다. 평소 술 먹고 다른 집 벨이나 도어락을 잘못 누른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며칠 동안 걱정하게 된다. 사소한 행동에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순둥순둥하던 당신이 후반부로 갈수록 눈빛이 강렬해지더라. 서서히 각성한다고 할까.
소심하고 겁 많던 그녀가 점차 성장하고 나중엔 범인과 맞대결을 한다. 그녀가 갑자기 초인적 능력을 펼치는 게 아니기에 중간에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나도 처음엔 ‘경민’이 <킬빌> 시리즈 속 킬러처럼 화끈함과 통쾌함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거든. 그랬더니 감독님이 ‘그러면 네가 눈알을 뽑아야 한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렇게 주인공이 튀는 기량을 보였다면 완전히 영화적인 작품이 됐을 거다. 우린 현실에 기반했다고 했는데 일각에선 또 너무 영화적이라는 평도 있더라.
아마도 ‘경민’이 스토킹 상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에서 영화적 설정이라는 평이 나오는 것 같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배우로서 납득되던가.
‘경민’의 집을 유심히 보면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다. 그녀는 정확하고 정리된 공간에 지내는 인물로 항상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침입자 역시 ‘경민’의 성향을 파악해서 아주 철저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그런 묘사들이 편집을 거치면서 생략됐다. 그녀가 마취제를 맡는 장면에서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음, 어느 정도는 영화적 설정으로 본다.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마지막 장롱 안에서 벌이는 육탄전의 경우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일전에도 밝혔듯이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경민’ 입장에서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해법을 찾아 나갔었다. 좁은 물리적 공간에 같이 있다면 패닉 상태가 극에 달할 거로 생각해 고민 끝에 장롱이 엎어지면서 그 안에 갇히는 설정으로 끌고 갔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 나가려고 죽자 살자 싸워야 할 것 아닌가. 원래는 지하상가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거였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공간이 방대해지고 잡힐 듯 잡힐 듯 도망가는 게 처음에는 쫄깃하겠지만, 나중에는 이제 그만~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겠냐고 의견을 모았다.
내가 ‘경민’에 이입해보니 평소 보던 인물을 죽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스토킹을 당했다고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니 더욱더 그렇겠더라. 일단 내가 납득이 돼야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장롱 안에서 그를 죽여야 하지만(그래야 나갈 수 있으니) 어느 순간은 상대가 불쌍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도 힘들었다.
영화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 엔딩 장면? 봐서 알겠지만, 엔딩에서 그녀가 침대를 쳐다본다. 그래서 내가 또 침대를 쓰냐고, 꼭 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데 말이다. 그래서 ‘경민’이 또 침대를 쓸 거면 엔딩은 그 안으로 깡통을 차 넣는 거로 해 달라고 말했다. (웃음) 농담이고, 아마 그 침대를 바라보며 ‘경민’은 네가 또 나와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영화를 홍보하며 고민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게 혼자 사는 여성에게 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경각심을 갖는 건 좋지만 (아까 말했듯) 공포를 너무 부추기면 안되니 말이다.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던 집이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럼 혼자 살지 말라는 게 결론인가 이런 고민이 있었다.
또, <도어락>이 통쾌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혹은 뭔가 찜찜함을 남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더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게 우리의 몫이고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거다. 관객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자는 것이니 오해는 말아라. 물론 긍정적으로 봐주시길 바란다.(웃음)
드라마에서의 주류 역할과 달리 영화에서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의 매매혼 당한 조선족 여인 등 평범하지 않은 혹은 비주류 인물을 소화해 왔다. 또, 여성 감독과도 자주 작업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를 해야 연기의 폭이 넓어지고, 이번에 스릴러를 해보니 표현법과 문법을 알겠더라. 드라마에서 누구나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역할을 했으니 영화에서 좀 편하게 용기 내 도전하게 된다. 이런 나의 선택을 관객이 어느 정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믿음이 있다.
차기 작품 일정은.
이번에도 여성 감독님과 함께한다. 1월 3일에 첫 촬영에 들어간다. 올 1월에 <도어락> 촬영 들어가며 너무 추워서 다시는 겨울에 촬영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건만, 또 같은 날 시작하게 됐다. 이번엔 남자와 여자가 계속 술 마시며 썸타는 얘기로 아주 현실적인 로맨스다.
최근 행복한 순간 혹은 당신을 웃게 하는 게 있다면.
지금 혼자 사는데 조만간 부모님이 윗윗층으로 이사 오신다. 잔소리를 들을 것 같지만, 바로 위에 부모님이 산다고 생각하니 아주 마음이 편해지더라. 언제든 얼마든지 밥 먹으러 가도 되고 강아지도 보살펴 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고 말이다. 혼자 살며 자유로움에 익숙해졌는데 지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도 좋은 것 같다.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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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