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타이틀부터 자조적인 내음 물씬 풍기는 웹드라마 <하찮아도 괜찮아>에서 사회 초년생 직장인의 비애를 코믹하게 전했던 배우 소주연. 공포물 <속닥속닥>에서 당당하게 주역을 꿰차며 스크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귀신의 집에 잘못 발 들여 놓은 여섯 고교생이 미로 같은 동굴에서 경험하는 공포를 그린 <속닥속닥>에서 그녀는 서사의 중심에 놓인, 고민 많은 전교 1등 ‘은하’를 연기한다. 짧은 커트 머리, 낮은 목소리, 맞춤한 듯한 교복을 입고 완벽하게 고교생으로 변신했지만, 사실 그녀는 직장 생활을 거쳐 뒤늦게 연기에 입문한 늦깎이 배우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 서툴고 힘들었지만, 도전 자체가 즐겁다는 소주연. 이제, <속닥속닥>에서 입었던 교복을 벗고 정규 편성된 <하찮아도 괜찮아> 속 직장인으로 다시 돌아가, 한층 진화된 직장인의 비애를 펼쳐 보이는 중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어떻든가. 촬영할 때와 느낌이 매우 다를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예고편이나 홍보영상보다 재미있고 무서웠다. 강렬한 음향이 쓰이니까 확실히 다르더라. 후반부로 갈수록 소리의 역할이 커지며 공포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직접 촬영했음에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평소 공포 영화를 즐기는지.
공포에 약한 편인데 엄마와 자주 본다. 공포 영화에 캐스팅돼서 엄마가 좋아하셨다.(웃음)
<속닥속닥>에 매력을 느낀 지점은.
일단 공포 영화라 좋았다. 이후 시나리오를 읽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푹 빠져들었었다. 감독님께 정말 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었다.
공포 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공포 장르의 이색적인 면에 끌렸던 것 같다. 한국 공포 영화 중 잘 만들어진 작품이 많은데, <속닥속닥>도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좋아하는 공포영화를 꼽는다면.
외국 영화보다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분홍신>(2004), <불신지옥> (2009)를 흥미롭게 봤다.
극 중 등장하는 여섯 친구 중 ‘은하’(소주연)는 서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대학 진학과 친구라는 구체적인 고민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일단, 고3 스트레스를 표현하기 위해 수험생 관련 기사를 많이 찾아봤다. 사촌 동생한테 물어보고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과 많이 대화했었다. 또, 감독님께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은하’의 감정선을 잡는데 도움 될 거라고 책을 선물해 주셨다. 영화로는 <여고 괴담> 시리즈나 <고사>(2008) 등 한국 공포 영화를 주로 봤다.
어떤 책을 선물하셨는지. 극 중 ‘은하’는 생각이 많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이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은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에너지 혹은 표현력이 낮은 인물로 기분 좋아도 나빠도 별로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을 다운시키려고 노력했었다. 혼자 있을 때 감정을 잡아가고자 어두운 음악을 많이 들었었다.
실제로도 많이 우울했겠다.
정말 그랬다. 촬영 끝나고 가볍게 엄마와 통화하며 우울함을 해소했던 것 같다. ‘은하’가 혼자 있는 신이 많아서 현장에서 외롭기도 했다.
첫 주연작이자 데뷔작이니 고민도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은하’가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까봐 가장 고민했었다. 부담감에 대해선...없애려고 노력해도 잘 안됐었다. 그러다가 처음이라서 떨리는 게 당연하다고 결론 내리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더라.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스크린 속 나를 봐도 내가 맞나 싶다. 엄마도 내 딸이 맞냐고 하시더라.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극 중 주로 같이 다니는 ‘민우’역의 김민규한테 상당히 의지했었다. 그는 아무래도 (나보다) 촬영 경험이 많아 현장 감각이 있고 순발력이 좋아 도움이 많이 됐다. ‘은하’ 외의 여성 캐릭터인 ‘정윤’(최희진)은 ‘은하’와는 정반대 캐릭터로 발랄하고 목소리 큰? 인물인데, 사실 같이 붙는 장면이 거의 없어서 호흡이라고 하기엔.... 실제 내 성격은 ‘정윤’과 비슷한 편이다. 잘 웃고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주위에서 긍정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은하’의 외모와 헤어 스타일에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에서 ‘임수정’ 배우가 연상되더라. 혹시 의도적인 벤치마킹인지?
음, 일부러는 아니고. 다만 학창시절부터 지금 같은 짧은 머리를 주로 했었다. 머리가 길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디션 후 감독님께서 머리가 좀 더 짧고 중성적인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셔서 더 짧게 잘랐었다.
지난 4월에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이 공포물로 오랜만에 흥행에 성공했었다. <속닥속닥>이 신인 배우가 대거 출연한 점, 극 중 BJ가 등장하는 것 등 <곤지암>과 비교될 만한 요소가 많다.
우리 영화는 주인공들이 고교생으로 10대의 감성을 담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곤지암>과 차별점이라고 본다. <곤지암>이 흥행에 성공했기에 공포물에 대한 기대로 오히려 <속닥속닥>을 더 많이 봐주시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좋은 예감이 든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혹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음, 감정을 잡기 힘들었던 장면은 극 중 동굴에서 엄마와 통화하며 속마음을 쏟아내는 부분이다. 실제로 엄마가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으셔서 잔소리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편이다. 감독님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신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아침 촬영이라 감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터지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과하면 고3 같지 않고 어른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극 중 수로 걷는 장면이었다. 촬영을 위해 랩을 다리에 감기는 했지만, 물이 정말 차가웠고, 당시 날씨가 몹시 추웠다. 게다가 아이를 업고 가자니 허리가 아파서....(웃음) 여러모로 고생했던 신이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얘기해도 되나?
물론.
극 중 ‘은하’(소주연)가 동굴에서 죽은 친구와 재회하는 신이 있다. 상상력에 많이 의존해야 했기에 감정 표현이 어려웠는데, 그 장면이 음악과 잘 어울려서 좋아한다. ‘은하’(소주연)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면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애착이 간다.
결말 부분은 작년에 사랑받았던 허정 감독의 공포물 <장산범>(2007)이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엔딩에서 ‘은하’의 선택에 공감이 가던가.
실제 나, 그러니까 ‘소주연’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극 중 ‘은하’의 선택은 공감되더라. 그녀에게 죽은 친구는 어떻게 보면 엄마보다도 가까운 존재로 유일하게 속마음을 터놓은 존재니 말이다. 게다가 친구의 죽음에 부채의식을 지닌 상태니,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웹드라마 <하찮아도 괜찮아>(2018)로 데뷔한 후, 처음 도전한 스크린에서 주역을 꿰찼다. 파격적인 발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션을 여러 번 봤다고 하던데.
극 중 여섯 친구 중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오디션을 수차례 보기도 했지만, 감독님이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내가 출연했던 웹드라마 관련 얘기를 주로 했었다. 나는 감독님께 밝은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는데, 감독님은 나의 어두운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너라면 충분히 잘 할 거 같다며 맡겨주셨다.
시사 후 기자간담회 때 보니 최상훈 감독님이 배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각별하던데, 현장에서는 어떠셨는지.
촬영 당시에는 감독님이 무서웠었는데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인 것 같다. 현장에서 감독님은 배우들과 소통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분이셨다. 감독님이 준 디렉션을 우리가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어려워하면 대사 등을 바꿔주셨었다.
좀 전에 외모적으로는 (최상훈 감독이) 좀 더 짧게 머리 자를 것을 요청했다고 했는데, 연기 면에서 감독님의 주문 사항은.
어른 같은 모습을 덜어내라고 하셨다. ‘은하’의 파트너인 ‘민우’(김민규)의 경우 장난스러운 모습이 많아서 어리게 보이는 데 비해, ‘은하’는 워낙 말이 없고 어른스러운 캐릭터라 어리게 보일 요소가 적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고등학생답게 보일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쩔 땐 걸음걸이도 조심스러웠었다. 어른처럼 보일까 봐!(웃음)
드라마 데뷔 전 이력이 특이? 하다. 직장 생활을 한 거로 알고 있다.
특이하게 보일 수도.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2년 정도 했었다. 이후 키는 작지만, 모델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CF 등 모델 일을 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는데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연기에 관심이 생겼다. 독립영화 등을 혼자서 찾아보면서 점점 빠져들었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강해졌다.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려웠다. 평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이 너무 생소한 분야라.... 대학에서 연기 관련 학과를 전공한 게 아니기에 일적으로 익숙하지 않고 아주 서툴렀다. 주변 동료한테 조언과 함께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도 배우는 과정이지만, 하나씩 알아 갔던 거 같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답하지 않아도 좋다.
일본어를 전공했는데, 전공을 살리고 싶었으나 그렇게 못하고 병원에서 근무했었다. 요즘 많은 분이 그렇듯 나도 개인 SNS에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그 사진을 보고 모브랜드에서 연락이 오고 이후 모델로 활동하게 됐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건데, 주위에서 말리지 않던가.
놀라긴 하더라. 그런데,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었다고 하시며, 우리 집안에 연예인이 나왔다고 아주 좋아하셨다.
<속닥속닥>을 보면서 교복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교복 입은 기분은.
흔히 학생들이 교복을 벗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입고 싶을 정도로 교복 입는 것을 좋아했었다. 겨울에도 교복 가린다고 패딩도 안 입고 다녔으니! 촬영하며 다시 입을 수 있어서, 게다가 디자인도 아주 예뻐서, 정말 기뻤다.
고등학생 ‘소주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시 극 중 ‘은하’(소주연)처럼 전교 1등?
하하, 설마! 감독님도 공부 잘했었냐고 물으시더라. 어떤 편이었냐면 공부는 잘 못 하지만, 우직한 스타일이라고 할까. 당시 자율학습을 했었는데, 말그대로 하고 싶은 학생만 하는 거였다, 1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졌다고 출석상을 받았었다. 나름 끈기는 있었던 거 같다.
롤모델 혹은 좋아하는 선배 배우는.
음, 딱히 롤모델이라고 정한 건 아니지만, <부산행>의 정유미 선배님 그리고 박해일 선배님 연기를 좋아한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는.
시트콤에서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역할이나 스포츠 영화에서 몸 쓰는 역할을 하고 싶다. 가끔 코인노래방에 가서 혼자 노래 부르고 춤추곤 하는데 몸을 잘 쓰진 못하지만, 쓰는 것 자체는 좋아한다.
배우로서 ‘소주연’의 강점은 뭘까.
음, 너무 어렵다! 굳이 꼽는다면 밝은 이미지에 비해 목소리 톤은 낮고, 이목구비도 센편이라 그런지 중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때문에 <연애담> 같은 동성애 코드가 담긴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속닥속닥>이 한편에선 전형적이라는 평이 있다. 예비 관객에게 영화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전형적이고 진부하다고 하시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일단 공간적 배경이 차별화된다. 동굴을 무대로 이색적인 공포를 끌어 올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리에서 예상 외의 큰 공포가 유발된다. 내가 직접 촬영했음에도, 소리가 덧입혀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또, 두루뭉술하지 않고, 각자 스타일 확실한 캐릭터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속닥속닥> 촬영 후 웹드라마 <하찮아도 괜찮아>가 파일럿이었던 1편과 2편의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이 결정됐었다. 페이스북 등 웹상에 정기적으로 릴리즈 되고 있다. <속닥속닥>의 고등학생에서 <하찮아도 괜찮아>의 회사원으로 돌아가 회사 다녔던 경험을 마음껏 살려 연기 중이다.
최근 행복한 순간이나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면.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했었는데, 시사회 때 처음 봤다. 첫 평가를 받은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기대와 불안이 조금은 사그라지면서 감정이 정리됐는데, 너무 행복하더라. 관련 기사도 꼼꼼히 확인하는 중이다. 좋은 평이 많으면 좋겠다.
2018년 7월 16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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