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김수진 기자]
영화는 만족스럽게 완성된 것 같은가.
스스로 연기적인 측면에서 빈틈이 많아 보였다. 특히 액션은 왜 그렇게 힘 없어 보이는지… 그런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나든 아쉬운 지점은 계속 생길 것 같다. 물론 영화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럽다. 사실 그동안 내가 찍은 영화는 편하게 보지 못했다. 작품 전체보다 연기만 보여서 그렇다. 평소 (내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를 감상할 때도 배우의 연기가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만 주로 찾는다. 배우의 연기가 보이는 순간, 작품에 빠져들지 못하고 연기를 관찰하게 되니 피곤해지더라.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나 SF 장르 위주로 감상하는 편인데, 이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은 연기보다 연출이 더 빛난 영화라서 비교적 잘 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찍은 작품 중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불한당>에 임하기 전, 참고했던 레퍼런스도 없었나.
다른 작품을 보고 참고할 용기가 없었다. 그보다 잘할 자신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늘 어떤 작품에서든 감독님을 가장 많이 괴롭힌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본인의 연기 스타일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그러는지.
그렇다.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가 되려 흐트러질까 걱정됐다. 어떤 작품이나 연기 스타일을 참고했다가, 시행착오로만 그친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펼쳤던 연기스타일과 비교하게 되고 이내 ‘아! 이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부턴 전반적인 연기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작품에 임하든 레퍼런스보단 시나리오에만 충실해 연기하는 편이다.
평소 형성된 이미지가 연기할 때 유리하다고 생각하나.
내게 어떤 이미지가 형성돼 있든 유리한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보다도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연기스타일을 고칠 수 있는가, 아닌가 따졌을 때 앞서 말한 것처럼 되려 고치려고 하다가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미지를 깨는 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훗날 스펙트럼이 한정적이거나 혹은 이를 깨지 못하는 배우가 돼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억지로 바꾸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이 또한 내 모습이니까 말이다.
연기 변신은 배우에게 본질적인 고민이 될 수 없다. 핵심은 진심을 다해 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냐, 없느냐의 문제지. 내가 과거엔 이런 역할을 맡았으니 다음 작품에선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라는 생각은 부차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이번 <불한당> 시나리오에선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일단 ‘현수’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변성현 감독님 덕분에 지금까지 맡아왔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미묘하게 질감이 다른 캐릭터를 만난 듯하다. 또 설경구 선배님을 비롯한 대단한 선배님들과 함께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까지 갈 수 있어서 굉장히 흡족하다.
말한 대로 ‘현수’는 전작 <원라인>(2017) ‘민재’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
<불한당>은 배우보다 감독님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 작품이다. 아마 감독님의 연출에 따라 ‘현수’라는 캐릭터가 달리 보였음이 분명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내 안에 이런 모습을 끌어내서 연기해야지 라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았다.
전작 <원라인>은 예상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는데 이번 영화에 거는 기대가 크겠다.
어떤 작품이든 잘되면 당연히 좋은 거지만 흥행이라는 게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원라인>은 처음으로 연기 스타일을 바꿨던 작품이기 때문에 내겐 유의미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하기 전 이번 영화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을 텐데.
‘현수’는 유일하게 지금까지 참여했던 작품 중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다. 그런 부분에 있어 연기할 때 부담이 없겠다 싶더라.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작품에 임했다.
영화 후반의 분위기는 초반과 다르게 무겁다. 초반부터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무겁게 지니고 연기해야 극 말미,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일 듯싶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처음에는 가벼운 느낌으로 연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수’가 초반에는 다소 발랄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더커버가 흔한 소재라는 점에선 고민되지 않았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아, 정말 재미있다. 만일 이 영화가 개봉되면 내가 출연하지 않았어도 꼭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서 감독님과의 첫 미팅에서 했던 말이 있다. ‘언더커버라는 소재 자체만 봤을 때 이전부터 봐온 범죄물과 다를 바 없다. 대중에게 어필을 할 때 완전 색다른 작품이라고 주장할 자신도 없다. 단, 재미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다’는 기준 하나만으로 작품의 존재가치가 만들어 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감독님도 동의하더라. 이처럼 연출자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니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
감독을 괴롭히는 타입이라고 앞서 말했는데, 듣자 하니 새벽 4시에도 전화해서 연기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초반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몇번 전화한 적이 있었다. 방금 말했듯이 내가 상상했던 ‘현수’의 성향과 감독님이 구상했던 성향이 달랐다. 캐릭터에 대해 백프로 이해하기 위해선 더더욱 그런 절차가 필요했다. 또 감독님이 언제든 연기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하라. 특히 새벽이 좋다고 먼저 말해줬다.(웃음) 그래서 거리낌 없이 전화했던 것이다.
그밖에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있어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맨 처음에는 ‘이 캐릭터를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걱정이 앞섰다. 당연히 초반엔 ‘현수’라는 인물이 시종일관 어두운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배우 생활을 충분히 하고 나서 이 역할을 만났다면 어떨까, 더 잘 소화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한가지는 변성현 감독님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생긴 고민이다. 첫 만남에서 감독님의 패션이 굉장히 독특했었다. 상상했던 감독님의 모습이 아니더라. 보통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외형만 보고 판단하지 않나. 나 또한 그랬다. 과연 감독님이 잘 이끌어 줄까 하는 걱정부터 들더라. 그런데 촬영을 하면 할수록 편견이 깨졌다. 평소 어떤 작품에서든 연출자와 의사 소통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어느 순간 변성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앞서 말한 새벽 4시에 전화한 뒤부터 그랬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신기했다.
‘현수’가 ‘재호’에게 마음을 좀 더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꾸만 두 사람 사이에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래서 ‘현수’가 ‘재호’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감독님에게 새벽에 전화해서 물어본 내용 중 이 부분도 포함돼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모호한 관계가 이해되지 않더라. 뿐만 아니라 ‘현수’가 ‘재호’에게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을 때 반응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나눴다. 결론적으론 인간 대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사람이 살다 보면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상황이 있지 않나. 논리가 필요 없는 어떤 이끌림에 포커스를 맞췄다.
‘재호’ 역의 설경구뿐만 아니라 전작에서도 많은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긴장되진 않았는지.
선배님들이 모두 잘해줘서 어려움은 없었다. 이번 작품 또한 설경구 선배님이 워낙 편하게 대해주셔서 긴장하지 않았다. 물론 첫 영화였던 <변호인>(2013) 때는 정신 없긴 했다. 그래서 늘 자기 최면을 걸었다. 슛이 들어가는 순간 ‘지금부터는 내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신이 있나.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신인데, 영화를 본 사람조차도 기억 못할 신일 거다. ‘재호’에게 ‘현수’가 ‘나 그냥 형이랑 같이 일할 까봐’라는 대사를 던지는 신인데 솔직히 이 같은 일상적인 톤의 대사를 연기해볼 기회가 잦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좀 더 편하게 연기했던 기억이 나서 각별하다.
<미생> 때도 일상적인 캐릭터였는데.
그때는 달랐다. ‘장그래’의 대화법이 편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숙고해서 이야기하는 편이지 않았나.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
나보다 연기경력이 없는 분들을 뵐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그래 봐야 아직 똑같은 신인인데.(웃음) 내가 신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설경구 선배님이 안다면 도토리 키재기 한다고 웃을지도 모르겠다.(웃음)
좋아하는 편이다. 애주가 선배님들에게는 비교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웃음) 특히 제국의 아이들 멤버인 (박)형식이가 술을 좋아해서 함께 자주 마신다. 형식이도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큰 사랑을 받아서 만나면 언제나 분위기가 좋다.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작품에 함께 참여하는 분들과는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연기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대감만큼 연기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없다. 만나자 마자 친한 척하면서 연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박형식과는 만나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특별하게 나누는 이야기는 없다. 그냥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 아이돌 활동을 통해 매우 친밀해진 사이라서 별 이야기하지 않아도 늘 즐겁다. 아! 요즘은 새로운 소속사를 각자 잘 정한 것 같아 서로 기뻐하고 있는 중이다.
칸 영화제 초청은 아이돌 중에선 최초다. 물론 주연급으론.
일단 장기적으로 보고 싶다. 초반에 운을 다 써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 내게 올 행운이 더 있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지금의 상황과 일들이 유의미해질 것 같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초반에는 대중이 실제 내 모습보다 날 더 높게 평가하면 어쩌나 싶긴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관이 바뀌더라. 이젠 즐기는 편이다. 칸 초청 작품에 참여했다고 높은 평가를 해줬을 때, 앞으로 이에 부합할 좋은 모습을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할까 라고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아니다. 항상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은 대중과 언제나 소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모범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봐주니 감사하다.(웃음) 학창시절에는 매우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다지 활발한 성격도 아니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 같은 아이였다. 반장을 꾸준히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존재감 없는 반장이었다. 반장이라는 게 학급의 개선점을 잘 캐치할 줄 알아야 하는데, 솔선수범하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뒤늦게 나마 학급 친구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다.(웃음)
어릴 때 꿈은 가수였나 연기자였나.
원래는 가수가 꿈이었다. 노래하는 게 좋아서 친친 가요제에 참여했다가 전 소속사와 인연이 닿아 데뷔한 케이스다. 현재는 바뀐 상황이긴 한데 언젠가 가수 활동도 다시 시작할 거다. 노래를 좋아해서 형식이와 노래방도 자주 간다. 혼자 갈 때도 있다. 그럴 땐 괜히 민망해서 나중에 친구 올 거라고 주인 아저씨께 말하곤 한다.(웃음)
가수 활동을 한다면 그룹으로 컴백하진 못하겠다.
그룹활동은 군대 문제로 향후 몇 년 동안 불가능하다. 멤버들 입대 시기가 모두 달라서 그렇다. 일단은 개인 앨범활동을 욕심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군 전역 이후에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궁극적으로 편한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보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연기를 편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이런 방향성으로 조금씩 나아갈 생각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지금처럼 병행할 생각인가.
범주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굳이 나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불한당>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가 됐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예상스코어가 있다면.
그저 일상 속 치열하게 사는 분들에게 오락물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후회 없는 선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예상 스코어는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미성년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직 청소년인 분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불한당>을 감상하길 추천한다.(웃음)
2017년 5월 22일 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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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