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조인성은 변했다. 웃고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요즘, 그는 매 순간의 작은 인연들마저도 소중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더 킹>의 ‘태수’ 역시 그런 마인드 속에서 탄생했다. 혼자서 캐릭터를 만들어낸 종래와는 달리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 스태프, 친한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차근차근 구축해 나갔다. 그에게 있어 ‘변화’란 9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것만을 의미한 게 아니었다.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것도 권력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다.
일단 오랜만에 하는 영화라 부디 잘 됐으면 좋겠다. <더 킹>은 말한 대로 권력자들의 부도덕함을 풍자하는 영화다. 그러나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 편한 이야기다. 또 마지막 부분에선 강렬한 주제 의식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익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것에 있어 걱정되는 부분도 많을 것 같다.
그동안 멜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했다. 그래서 <더 킹>의 ‘태수’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또 내 출연 분량이 상당하다. 날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아마 힘든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러닝타임이 길다는 말도 있던데 앞서 개봉된 유명 감독님들의 흥행작에 비해서는 짧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곡성>(2016) <마스터>(2016)를 보면 러닝타임이 꽤 길다. 이에 비하면 우리 영화는 타협을 본 부분들이 많다.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게 딱 맞는 작품을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내가 1차 창작자가 아니니 더욱 그렇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확실히 있지만, 그 이야기를 배우 스스로 만들어 낼 순 없으니 시나리오가 오길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쉬는 동안 작품을 고르기만 하진 않았을 텐데, 드라마 촬영 이외에 무엇을 하면서 보냈는지 궁금하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인간 조인성으로서 할 일이 많았다. 운동을 하거나 친구, 후배들도 만나야 했다. 게다가 예능도 챙겨 봐야 하고… 휴, 정말 바빴다.(웃음)
<더 킹>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공백기를 깰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
우선 일대기 형식으로 사회를 보여준다는 게 흥미로웠다. 지금도 청춘이지만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열정적이었던 내 모습들이 시나리오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는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선택을 해서 지금의 내가 됐을까, 또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서 좋았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 촬영장이라 어색했을 것도 같다.
<쌍화점>(2008)을 마지막으로 영화를 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요즘은 환경이 많이 달라져 드라마 현장과 거의 똑같다. 모든 게 공유되는 형태라서 비슷비슷하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별다른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드라마를 꾸준히 해서 그런 것 같다. 단지 지금 촬영하는 장면들이 스크린에 걸린 다는 부분을 의식했던 것 같다. 그래도 뭐, 드라마든 영화든 소비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 역시 걱정 거리는 아니었다. 요즘은 PC나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영화, 드라마를 보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도 찍으면서 너무 웃겼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가 뛰면서 굿판을 벌인 것 자체도 웃긴데,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검사라는 사람들이 샤머니즘에 젖어 든 모습은 얼마나 웃긴가. 물론 샤머니즘이 우리의 고유문화이긴 하지만, 얼마나 불안했으면 나라의 운명을 거기에 맡겼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비슷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기에 보는 분들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웃음포인트라고 하면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가 클론의 ‘난’ 댄스를 추는 장면일 것 같다.(웃음)
안무 선생님이 클론의 ‘난’ 댄스가 굉장히 힘든 안무라고 했다. 그걸 배우들이 췄으니… 춤을 춰야 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시키더라.(웃음) 결과적으로 그 장면에서 웃음이 났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검사들의 철없는 이미지에 배우 정우성, 배성우, 조인성 각각의 색깔이 합쳐져 더 우스꽝스럽게 보여지도록 의도했던 장면이다.
‘태수’, ‘강식’ 등은 허구적 인물들이지만, 극 중 비춰진 뉴스 영상에는 실제 정치권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치 현 시국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밀접한 대목들도 많던데.
일단 우리는 권력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단순히 풍자하려고 했다. 그런데 현 시국과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영화를 보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 됐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그저 웃기려고 연출한 상황들이 현실이 되다니... 그야말로 웃지도 못하는 다큐멘터리가 됐다. 촬영하면서 우리끼리 ‘설마 검사들이 이렇게 까지 하겠어’ 라면서 찍은 장면인데 그게 현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씁쓸하다.
정치 사회적 비판을 주제로 한 한국영화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부자들>(2016)과 비슷한 지점을 보인다는 평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내부자들>(2016)을 봤지만 특별히 고민되는 부분은 없었다. 완전히 결이 다른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비슷한 지점을 말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런 의견도 존중하고 싶다. 그래도 우리 영화만의 색깔과 미덕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점은 <내부자들>(2016)에는 이병헌, 조승우가 등장하지만 우리 영화에는 정우성, 조인성이 나온다는 것이다.(웃음)
<더 킹>에는 어떤 색깔과 미덕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
극중 검사들이 우아를 떠는 듯 보이지만 결국 추악한 모습,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꼴값 떨고 있네’ 그런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고학력 엘리트들인데 어린 애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모습들이 우리 영화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 권력 풍자 영화들과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검사라는 직업적인 부분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로지 ‘태수’의 심리 상태에 집중하려고 했다.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자칫 톤을 잘못 잡으면 영화 전체의 톤이 달라진다. 그래서 세세한 부분까지 감독님과 상의하고 연기했다.
‘태수’의 권력욕은 쉽게 공감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는지.
권력욕은 즉 출세욕인데,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성공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도덕적이냐 아니냐는 차이다. ‘태수’의 권력욕은 물론 비도덕적이지만 우리도 살면서 한번쯤은 비슷한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지만, 잠깐만 눈감으면 나와 온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가정하면 그 누구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지점에서 ‘태수’의 권력욕을 이해하다 보니, 공감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본인에 빗대면, 어떠한가.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나.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려면 그런 욕심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본질적인 다짐을 하게 됐다. 특히 드라마 <피아노>를 촬영할 때 깨달은 게 많았다. 당시 조재현 선배님을 보면서 스타가 되려면 일단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리기는 ‘스타’라고 불리지만 어찌됐건 본질은 ‘연기를 하는 배우’기 때문에. 좋은 연기자가 되기를 추구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그로 인해 분명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인간 조인성이든 배우 조인성이든 변한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는 센 척, 있는 척을 많이 했다. 내가 나 자신을 모르고, 상대도 날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척’을 하게 되는 것 같더라. 일종의 자기 방어라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구나 싶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돼 불편하더라. 그런 척을 안 하다 보니 어울릴 수 있게 됐다. 상대방도 날 존중을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사실 그 사람을 언제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시간이 소중해진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기보단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특히 요즘같이 웃고 사는 것, 행복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상대방에게 해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더라. 누가 됐든 그 사람과 유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날 건방지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선을 지키면서 최대한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103-104회차 중 90%정도가 내레이션이다. 80년대 모습이 담긴 세트장이 부산에 있어서 그곳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다른 배우들이 촬영 마치고 서울 갈 때 나 혼자 남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성우 형한테 가지 말라고 외롭다면서 붙잡기도 했다.(웃음) 그러고보니 서울을 오가는 것도 힘들었다. 분량도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었는데 심지어 당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도 찍고 있을 때라서 고충이 있었다.
고등학생 역할을 소화하는 데 있어 만만치 않았을 듯싶다.
CG작업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말하는 분도 있더라. 실제 CG 작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하지 않았길 바란다.(웃음) 진실은 감독님만 아는 거니까. 이젠 고등학생 역할 한 번 더 하면 욕먹을 것 같다.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 중이다.(웃음)
실제 5살 차이 나는 류준열과 친구로 나오는데도 생각보다 어색하게 보이진 않았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준열이에게 미안하다. 준열이가 역할에 좀 더 몰입할 수 있게끔 내가 외모 관리를 더 잘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연기해준 준열이가 고맙다.
정우성과 작업한 소감은 어땠나. 외모적으로 의식 되지 않았는지.(웃음)
우성이 형 얼굴은 정말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외모다. 비교하면 내 속만 아프다. 우성이 형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형에 대한 동경심이 더 크다. 오히려 외모보단 분량도 많은데 연기나 잘 하자라는 압박감이 컸다. 못생기게 나와도 연기만 잘하면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전반적으로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김아중 등 모든 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았다는 느낌이다.
‘태수’는 나 혼자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예전에는 내가 맡은 인물은 오로지 나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더 킹>을 촬영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내 캐릭터를 찾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내가 맡은 캐릭터를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다.
배우들끼리 많이 친해졌는가.
우성이 형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형을 중심으로 술자리가 자주 생겼다. 가족 같을 정도다. 부산 촬영지 숙소에서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서로 먼저 잔다고 하면 서운해 하고, 못 자게 하면서 매번 한잔씩 더 마시고 그랬다.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웃음)
술을 굉장히 좋아하나 보다. 주량이 어느 정도인가.
소주 한 병 반정도다.
우성이 형은 바빠서 아쉽게 자주 못 만난다. 성우 형과는 자주 보는 편이다. 차태현, 송중기 등과 함께 본다. 친목도모를 하는 몇몇 연예인들이 있다.
만나면 주로 무엇을 하나.
특별히 뭘 한다기보다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주로 배우로서의 걱정을 털어놓거나 재테크에 대한 고민상담을 한다. 무엇보다 영화 이야기를 한 땐 정말 치열하다. 캐릭터 접근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주로 ‘전형성 탈피’에 대한 토론을 한다. 예를 들어 ‘그런 모습은 많이 봤으니 안하면 좋겠다’는 등의 조언을 자주 한다. 이런 식으로 주변 말을 듣게 되면, 캐릭터를 혼자 연구할 때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구현할 수 있다. 내가 못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번 영화를 찍을 때는 주로 성우 형이 조언을 많이 해준 편이었다. 물론 대체적으론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웃음)
그런 훈훈한 위로를 해줬던 동료들 중 한 명이 얼마 전 브이앱에서 파격적인 공약을 대신 내걸기도 했다.(웃음)
차태현 형이 갑자기 브이앱 채팅방에서 공약을 걸어버렸다.(웃음) <더 킹>이 800만명 돌파를 하면 <1박2일>에 출연해 입수한다는 공약이었는데, 당황스러웠지만 800만명만 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입수할 듯싶다.
뿐만 아니라 브이앱이라는 새로운 방송 환경에 적응을 못하는 모습도 인상 깊더라.(웃음)
정말 신기했다. 어플을 설치해서 방송을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게 뭔가 싶었다. 휴대폰은 거의 인터넷 기사를 읽거나 문자 보내는 용도로 쓰는 사람이다. 영화도 절대 휴대폰으로 못 보고 대부분 TV로 본다. 브이앱을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기하던지. 카메라도 없어서 방송이 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심지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뭘 믿고 나한테 맡기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과거에는 한 시간짜리 토크쇼에 출연하면 4시간 찍고 편집을 해줬다. 브이앱은 그런 게 아니니까 너무 어색하더라. 그동안 드라마 외에 활동을 안 해서 거의 자연인처럼 살았기에 무의식 중에 말 실수라도 할까 걱정도 많이 됐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박경림 누나가 옆에서 조율을 잘 해줘 다행이었다. 누나는 정말인지 노련한 진행자다.
계속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단순한 목표다. 그래야 자부심도 생기고 앞으로 배우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다. 공감할 수 있는 영화, 혹은 어떤 가치를 제시하는 영화에 자주 출연하고 싶다. 퀄리티가 좋은 작품이나 콘텐츠를 계속 만들 예정이다. 차기작은 일단 정해진 건 없지만, 내일이라도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 온다면 할 예정이다. 물론 당장은 아니고 <더 킹>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 말이다.(웃음)
2017년 새해다. 9년 만에 출연한 영화도 개봉된 시점에서 소망이나 다짐이 있다면.
그저 건강하자. 아프지 말자. 그래야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다. 그뿐이다.(웃음) 우성이 형에게도 말했다. 다른 것보다 우리 건강 하자고. 아프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도 못 하고 모든 게 소용 없어진다.
다짐이 잘 지켜지길 바라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
언론시사회 날 가장 행복했다. 정말 학수고대 했기에 스크린에 걸린 것 자체가 행복이다. 앞으로 영화가 큰 사랑까지 받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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