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마스터>는 <내부자들>에 비해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오락물이다.
조의석 감독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감시자들>(2013)때부터 워낙 속도감 있는 편집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분이다. 장면 장면마다 경쾌한 느낌으로 신나게 달려간다.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궁금하다.
일단 동원이도 영화가 재밌다면서 결과물에 굉장히 만족했다고 하고, 우빈이도 이런 저런 지점이 아쉬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다고 평가하더라. 그런데 나는 내 반응보다는 자꾸 주변 반응을 살피게 된다. 아무래도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작품에 대한 객관성을 잃어버려서 완성된 버전을 보고 나도 이게 대체 재미가 있는 영화인지 아닌지 도저히 감이 안 생기는 것 같다.(웃음) 이건 <광해>(2012)때도 그랬고 <내부자들>때도 그랬다.
물론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을 고발하고 비리를 까발린다는 점, 또 그 영화에 나온 배우가 여기에도 나온다는 것.(웃음) 그런데 그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두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닭백숙과 닭도리탕이 완전히 맛이 다른 것처럼…
비유가 너무...(웃음).
음.(멋쩍은 웃음) 아무튼 내 생각과는 달리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내부자들>과 비교를 하긴 하더라. <내부자들>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운 영화다.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방법도 센 편이라서 현실을 발칵 뒤집어 놓는 힘이 있었고 그 덕분에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역으로 그런 점 때문에 영화를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었다. <마스터>는 반대로 그런 불편함을 느꼈던 분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현실의 비리를 고발하지만 표현법이 그렇게 세지 않다.
그래서인지 사기 행각이 다소 평이하다는 느낌도 든다. 시국 때문인지 ‘건국 이래 최대의 게이트’라는 홍보 문구도 ‘통쾌한 범죄오락액션이 온다’로 바뀌었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경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오락영화로 콘셉트를 잡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현실이 이미 너무 자극적이니 아무리 진지하게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어도 관객에게는 감흥이 덜 할 것 같았다. <내부자들>을 개봉했던 시기의 관객들은 ‘세상에 진짜 저런 일이 있을까?’ 라는 마음을 품고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의 관객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본다. 때문에 내가 맡은 ‘진현필’이라는 캐릭터가 실제로 거대한 사기 행각을 벌인 인물 조희팔을 모티프로 했음에도, 그를 쫓아가는 주변 사람이나 결말부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작용됐다.
영화 언론시사회가 열리던 날 나는 배급사들이 모여있는 상영관에서 같이 관람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나올 때, 정말 너무 썰렁했다.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난 여태까지 제일 반응 없는 상영관은 기자들이 모여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웃음) 배급관에 계신 분들은 와, 진짜 다 주무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더라고.(웃음) 내심 속으로 관객들의 호응이 있기를 바란 장면이라 그때 정말 절망이 컸지.(웃음) 물론 우리나라 배우가 아무리 사투리 연기를 잘 해도 현지 사람에게는 ‘저게 무슨 사투리야 비슷하지도 않구만’ 하는 핀잔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실제 필리핀 사람이 봤을 때는 ‘저게 무슨 필리핀 영어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우리나라 관객 위주로 보는 거니까.(하하하) 그래도 극중 필리핀 국회의원으로 나오는 양반이 나한테 ‘와, 너 연습 많이 했는데?’ 하면서 칭찬도 해줬다.(웃음) 부차적인 얘기지만 그 분도 영화배우 출신이다. 그런데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실제로 필리핀 국회의원까지 당선됐다. 그런데 요즘도 액션 영화를 계속 찍는 모양인지 나한테 본인 영화 리허설 장면을 문자로 보내곤 한다.(웃음)
외적인 부분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설정이 가미됐다. 특히 백발.
그 흰머리는 마지막까지도 반신반의 했던 설정이었지.(웃음) 보통 현실을 거의 비슷하게 반영하는 작품에서는 한 두 번 정도 스탭들과 미팅을 하면 캐릭터의 외형에 대해 합의되는 경향이 있다. 미리 준비해 간 모습을 보여주면 ‘오 비슷하네 그렇게 갑시다’ 하고 마무리 되는 식이다. 그런데 <마스터>는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꾸미는게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기꾼의 모습일지 스탭들 의견도 다들 분분했다. 조희팔이라는 실존인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우리 영화가 그의 일대기를 다루는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구석구석 픽션이 많이 가미 된 작품이니까 말이다. 당연히 캐릭터의 겉모습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그려졌던 것 같다. 최대한 조희팔하고 똑같이 꾸미면 되는 상황이라면 그냥 M자 대머리를 만들면 끝나는 건데.(웃음) 다양한 고민 끝에 흰머리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온 거다.
잘 어울리더라.(웃음)
의외로 잘 어울렸다. 물론 잘 어울리는게 좋지만은 않았다.(웃음) 한편으로는 좀 덜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왠지 씁쓸하고.(웃음) 흰머리 뿐만 아니라 다른 외적인 요소에서도 사기꾼 답게 보이도록 시시때때로 변화를 줬다. 고객을 대상으로 주머니를 더 열라고 연설 할 때는 편안해 보이지만 신뢰도 있는 교수 같은 차림새를 연출했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 식구들인 ‘김엄마’나 ‘박장군’을 대할 때는 머리를 뒤로 확 넘겨서 섬뜩하고 차가운 느낌을 줬다. 필리핀으로 도주했을 때는 수염을 기르는 식이었지.
그 영화, 아쉬운 게 많은 작품이다. 특히 제목을 원작과 똑같은 ‘황야의 7인’으로 갔어야 했다고 본다. 그럼 분명히 서부영화를 즐겨 보던 세대들이 오래간만에 극장으로 나오는 상황이 벌어졌을 텐데 말이다. 미국 사람들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썼으니… (흥행면에서는 아쉽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애착이 가장 큰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 때문인가.
어릴 적부터 서부극이라는 것 자체에 로망이 있었다. 먼지가 샤악 나는 황야에서 두 사람이 서로 결투하겠다고 마주보고 서 있을 때의 그 긴장감이란.(웃음) 또 서부극에서 꼭 등장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프라이팬같이 생긴 냄비에 콩 같은 걸 잔뜩 집어넣은 거다. 희한하게 서부극 주인공들은 빵에 그걸 찍어 먹더라. 어릴 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웃음) 그래서 <매그니피센트 7>을 찍을 때도 그 음식만 나오면 더 달라고 해가면서 열심히 먹었지. 정작 맛은 별로 없더라고.(웃음) 어릴 때 꿈꾸던 것들을 그 작품에서 원없이 이뤘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미스 컨덕트>(2016)역시 흥행은 부진했지만 알 파치노,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그 영화는 애초부터 흥행면에서는 성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알 파치노와 한 스크린에서 연기해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선택한 거다. 그가 나온다는 걸 알고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아주 즉흥적으로 출연을 결정 한 거니까 철저히 개인적인 욕심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정작 알 파치노랑 부딪히는 장면이 하나도 없는 거다.(웃음) 신타로 시모사와 감독한테 가서 그랬지. 나 사실, 알 파치노랑 같이 나온다고 해서 출연 결정 한 건데 상황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우리 둘이 한 번쯤 만나게 해주는 게 어떨까? 하고 말이다.(웃음) 다행히도 감독이 작가 출신이라서 우리 둘이 만나는 몇 장면을 만들어줬다.(웃음) 재밌는 건 나뿐만 아니라 알 파치노도 감독한테 비슷한 부탁을 했다는 거다. 안소니 홉킨스랑 만나는 씬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웃음) 그 두 사람도 영화에서 처음 만나는 거였다고 하더라. 알 파치노한테도 그런 욕심이 있다니.(웃음)
음.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내 연기를 보면서 ‘제법이네’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있지 않았을까? 그간 할리우드에서 주로 맡았던 작품은 <지.아이.조 2>(2013)나 <레드: 더 레전드>(2013) 같은 액션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저 배우는 액션만 하고 끝날 배우는 아닐 것 같다는 가능성을 봐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은 드라마 종류도 꽤 된다. 배우 이병헌에 대한 할리우드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가 생각한 목표치만큼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배우 이병헌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렇다. 사실 <미스 컨덕트>나 <매그니피센트 7>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굳이 동양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한테 제안이 들어왔다. 그게 기분이 좋은 거다. 지금 내가 받아보고 있는 시나리오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배우가 해도 전혀 상관 없는 역할이고, 어쩌면 오히려 이 역할은 당연히 미국 배우가 맡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니 솔직히 ‘나한테 조금은 믿음이 생긴 건가?’(웃음) 싶은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동양 배우는 액션물에만 활용된다는 지적 속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할리우드에서 동양 배우들을 자꾸 액션 영화에만 가져다 쓰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아휴, 또 액션이야?’ 하는 식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액션이라는 장르도 상당히 훌륭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액션영화만이 줄 수 있는 파워풀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해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내가 소화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할리우드에서도 자유롭게 소화해보고 싶다. 다만 그 중에서도 코미디물에 출연하는 것만큼은 상당한 모험이 될 것 같다. 문화적 차이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게 웃음 아닌가. 영미권 배우나 스탭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미국 영화관을 갔을 때나 여타 해외 영화제에 갔을 때, 한국 관객들이 웃는 지점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웃어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웃음)
올해 보여준 활약에 대한 보상일까.(웃음) 25년간 인연 없던 청룡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줬다.
청룡영화제에서 이름이 불렸을 때 사실 정말 당황했다. 그 전에 <내부자들>로 계속 상을 받아서 이제는 더 이상 받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했고, 청룡영화제 자체가 나와 워낙 인연이 없는 곳이라 기대를 안 하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무대에 오르니 머릿속에서 서로 이어지지 않는 얘기들만 맴돌더라. 사실 그동안은 ‘상 못 받으면 뭐 어때’ 하면서 쿨한 척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웃음) 막상 25년만에 처음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보니까 마치 여기에 좀 더 오래 서 있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웃음)
최근 가장 눈여겨본 후배 배우가 있다면.
음, 소속사 후배 말하는 건 너무 속보이고.(웃음) 좋은 배우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진웅 배우. 또 <동주>에 나왔던 박정민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배우는 어떤 색깔을 가진 배우와 호흡을 맞추든 상대방의 연기를 잘 받아들이고 그에 잘 어우러지는 리액션을 선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누구와도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연기는 혼자 하는 내래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는 식으로 따로 노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그 부분이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다. 배우에게 가장 큰 칭찬은 ‘역시 잘해, 돋보여!’ 같은 것보다 ‘이번에 호흡 맞춘 배우와도 묘하게 잘 어울리네’같은 말이라고 본다. 늘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관객이 나의 다음 작품을 빨리 보고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면.
너무나 잘 알텐데.(웃음) 애하고 같이 있을 때다. 사실 애랑 같이 있으면 쉬지를 못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일이기도 한데, 정신적으로는 그게 가장 큰 휴식이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그간 자식을 낳은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수도 없이 했던 말이 이제서야 와 닿는다. 그 얘기가 이런 거였구나 싶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가 아니라 애가 중심이 되더라. 일례를 들자면 내가 촬영 차 한 달 이상 외국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한 달동안 저 애 눈 앞에서 사라지면 정서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까?’ 싶은 걱정이 드는 거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 참 한 두 가지가 아니다.(웃음)
2016년 12월 22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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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