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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때 표현 안하면 허공에서 소멸된다 <혼자> 박홍민 감독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과거의 언행 때문에 ‘이불킥’하고 싶은 순간, 누구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생각도 변하기 때문일 거다. 어떤 창작자는 이런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도록 보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낸다. 반대로 박홍민 감독은 지금 현재의 생각들을 작품으로 토해내기 위해 최대한 발버둥 친다. 90분 내내 좁은 작업실 아니면 신당동 달동네라는 한정적인 배경을 오가며 촬영된 <혼자>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 남자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트라우마를 표현해내고 싶다는 지금의 열망이 허공에서 소멸되기 전에,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는 박홍민 감독을 만났다.

<혼자>로 벤쿠버, 로테르담 등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지만 국내 관객에게 ‘박홍민 감독’은 아직 낯선이름이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한 3D장편영화 <물고기>(2011)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운 좋게 3D영상 관련 사업 건으로 돈이 들어오면서 제작을 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러고 나서 <혼자>를 개봉하기까지 한 4년 쉬었다.(웃음)

첫 작품 후 짧지 않은 공백기를 보냈다.
나는 3D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제작하겠다는 곳이 별로 없더라.(웃음) <물고기>도 막상 정식 개봉 할 때는 3D관을 단 한 곳도 못 잡았다.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전부 3D로 봤고, 유료시사회도 전부 매진됐는데 말이다. 멀티플렉스 입장에서는 일반 상영관보다 티켓 값이 비싼 3D 상영관이니 만큼 좀 더 상업적인 영화를 틀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독립영화 전용 공간인 CGV의 아트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한 두 관만 열어 줬어도 관객에게 제대로 소개는 됐을 텐데 그게 안되니 답답하고 화가 나더라. 내가 화가 좀 많다.(웃음) 그 후로 ‘황사’라는 3D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했지만 여기 저기서 다 물먹었다.(웃음) 몇몇 회사와 그리 크지 않은 예산의 시나리오를 주고 받은 적도 있긴 한데 내 고민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내용들은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3D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3D로 표현되는 화면은 과장되고, 왜곡되는 게 특징이다. 어떨 때는 폭력적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영상의 질감이 좋더라. 그러다 보니 동아방송예술대 시간 강사로 ‘3D영상 세미나’라는 수업을 맡게 됐다. 한국영화는 물론 해외영화까지 3D로 제작된 영화를 전부 훑어 나가며 토론을 하는 과정인데 그 시간을 통해 나 역시 3D영화의 흐름을 다시금 분석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영화계에서는 완전히 망해서 끊겨버렸다.(웃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만, 그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3D산업 지원금 자체가 너무 보여주기식으로 분배된 감이 있다. 이름 있는 감독에게 예산을 할당하면 그 감독은 마치 체험 행사 하듯이 3D영화를 한 편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그러면서 정말 3D에 관심 있는 감독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기도 한다. 나부터도 3D영화를 제작할 때 필요한 기술을 거의 다 내 손으로 해결한 편이니까. <물고기>를 만들 때는 색보정부터 가편집 이후의 디테일한 편집은 물론, 마지막 영상 추출까지 손수 내가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영화 후반 작업만 1년 넘게 걸리더라. 프로그램 단축키를 하나도 몰라서 더 오래 걸린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혼자>를 연출해 개봉까지 하게 됐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애초에 내가 영화를 왜 만들고자 했는지를 떠올려본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치유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만든 단편 영화 7편이 모든 영화제에서 다 떨어지긴 했지만(웃음)

<혼자>를 만드는 과정도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연기해내는 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이주원에게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 뒤, 그가 연기해내는 모습을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참 여러 생각이 들더라.

어떤 생각이 들던가.
많은 감상이 교차했지만, 어쨌든 <혼자>는 내 입장에서 성공했다고 표현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든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아버지와 어색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의 무서운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내가 그와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더라. 한번쯤은 그런 상황과 그 때 느끼는 감정들을 영화로 토해내고 싶었다. 아버지에 관한 한 늘 할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다 만들고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찍었느냐’고 뭐라고 하시면 옛날 이야기를 꺼내 ‘그때 이러시지 않았느냐’며 맞받아칠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다 보고 나신 후에 그저 잘 찍었다고 하시더라. 갑자기 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상황이 돼버렸다.(웃음) 아버지도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느꼈던 찌릿찌릿한 감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혼자> 덕분에 감정적으로 치유를 받은 것 같다.

본인이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배우에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물론이다. 사실 감정도 생각도 매순간, 매과정 안에서 늘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객관적으로 내 이야기를 전달 했다기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에 더 의미를 둔다. 또, 주인공 '수민'역을 맡아준 이주원 배우가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다.(웃음)

배우들은 당신의 준비성이 상당히 철저한 편이라고 말하더라.(웃음)
성격이 좀 그런 편이다. 강박이 있다.(웃음) 현장에서도 모든 걸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GV도 너무 떨린다.(웃음) <물고기>를 찍을 때도 나 혼자 스케줄표와 헌팅표를 다 짜놓고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이제 막 첫 작품을 찍는 사람인데, 철저한 준비조차 없으면 대체 뭘 믿고 도와 주겠나 싶더라. 언제든 바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단편을 여러 번 찍어보면서 느낀 건, 그렇게 준비를 해도 촬영에 들어가면 정말 많은 변수가 생긴다는 거다. 그래서 말아먹는(웃음) 경우도 많다. 내가 다른 영화 스탭으로 있을 때나, 광고회사 소속으로 일 할 때 겪어본 바에 의하면, 설렁설렁 준비한 것들은 전부 영상에 반영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기술에만 신경 쓰면 기술만 보이고, 배우의 감정에만 신경 쓰면 그 부분만 도드라지게 나온다. 어느정도 조화를 이루려면 기술적 고민부터 감정적, 미학적 고민까지 미리 구상을 마쳐야 한다. 물론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똑 같은 실수를 끝없이 반복하지만.(하하하) 거기에다가 <혼자>는 예산이 말도 안 되게 적어서, 준비를 안 하고 촬영 했다가는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한 번 촬영 실수가 나오면 아예 영화가 엎어지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정된 예산 안에서도 왜 롱테이크를 고집했는지 궁금해진다. 90분짜리 장편 영화인데 37테이크로 촬영해냈다. 한 장면의 길이가 길수록 배우의 실수나 외부적 변수 때문에 NG가 날 경우가 더욱 높아질 텐데.
내가 워낙 고민이 많아서 생각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나는 7년째 직접 내 머리를 자르는데, 한쪽을 먼저 자르고 그 길이에 맞춰서 반대쪽을 자르려고 한참 애를 쓰다가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싶어서 바리깡으로 확 밀어버리곤 하는 식이다.(웃음) 일상적인 일에서도 생각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막 바뀌는 거다. <혼자>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촬영에 엄청 몰두하다가도 불현듯 ‘이런 걸 해서 다 뭐하나’싶은 허망함이 찾아온다. 이게 반복돼서 도저히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어렵더라.(웃음)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바뀔 때마다 촬영 기법도 바꾸면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았겠나. 롱테이크를 고집한 것도 처음의 연출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로 보면 된다. 그게 내 의식의 줄기를 따라가듯 쭉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다.(웃음)

그렇게 이어지던 영화의 호흡이 '수민’이 악몽에서 깨는 장면으로 끊어지곤 한다. 세어보니 일곱 번이나 깨더라. 그런 설정을 집어 넣은 이유가 궁금하다.
음. (고민하다가) 왜 그랬을까?(웃음)

그게 내 질문 아닌가.(웃음)
‘수민’이 왜 끊임없이 꿈에서 깨어나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혼자>에서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정신에 의해 지배 받는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실제로 <물고기>를 촬영 할 때는 업무와 주변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지 천장이 내려 앉는 환영도 보이더라. <혼자>의 ‘수민’도 어떤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니까. 물론 그러면서도 그 악몽 안에서 조금씩 방향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방향을 찾아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돌맹이 하나를 강물에 던지면 처음에는 물의 표면이 파바박 튀지만 그 후에는 아래로 점점 가라앉는다. <혼자>도 처음에는 ‘수민’의 육체적인 고통을 따라간다. 피 묻은 장면도 많이 나오고 말이다. 그런데 뒤로 가면 갈수록 그의 겉모습보다는, 행동이나 말투가 눈에 띈다. 정서적인 면이 관객에게 노출되기 시작하는 거다. 후반부의 ‘편의점 장면’으로 가면 피 묻은 연출은 아예 사라진다. 그 때부터는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 전체의 흐름을 보면 자꾸만 꿈을 깨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 대해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 되도록 의도한 거다. 실제로도 꿈에서 깰 때 마다 자신이 알고있는 사실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깨어나지만, 엔딩에서는 옆에 죽은 채로 누워있는 여자친구를 보며 자신의 과거까지 다 기억하게 된다.
한 사람이 어떻게 ‘혼자’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게 사실 내 얘기라서.(웃음) 앞서 말한 ‘편의점 장면’에서 이주원 배우에게 내 감정을 설명해준 뒤 그의 연기를 보는데 정말 또라이처럼 보이더라.(하하하) 그 독선적인 모습은 내가 봐도 불편했다. 연애도 참 지리멸렬하게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본 셈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수민’이 올라가는 달동네는 결국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새벽을 맞는다. 동이 트는 거다. 이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던 트라우마가 뭔지 살펴 보고, 그런 식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놓칠 수 있겠다고 깨달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실제로 나에게도 그런 새벽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말다툼 끝에 돌아서는 여자친구를 끝까지 놔주지 않고 껴안으려 드는 ‘수민’의 모습이 정말 싫더라.(웃음) 대화도 아니고, 물리력이라니!
완전히 자기중심적이다.(웃음) 나도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굉장히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고,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며 위안만 받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웃음) 물론 사람이라면 인생에 한 번씩 그런 순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라면 안 그럴 거라고 본다. 다만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건, 그게 우리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이자 은근슬쩍 내가 닮아버린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독선적인 모습을 너무나 싫어했는데 나한테서 비슷한 낌새가 나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럼 정말 싫다.(웃음)

한국 영화에서는 마초적인 남자들이 주인공인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웃음)
나는 마초적인 남성들이 나와서 어떤 문제를 멋있게 해결하고, 여자를 구해준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 영화에 거부감이 상당히 심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 그런 남자는 절대 없다.(하하하) 세 보이는 것 같다가도 이면을 뜯어보면 다 여리다.

남자이기 전에 인간이니까 여린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 여성을 왜곡하는 것만큼 남성도 왜곡한다. 그래서 <혼자>에서는 자신의 독선과 폭력성을 모두 인지해버린 남자를 세워놓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넣어 둔 거다.(웃음)
당신과 대화하다 보니 <혼자>는 관객과의 대화가 곁들여지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 입장에서는 단박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는 분명 그런 소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관객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방식을 밀어 붙일 뿐이다. 나와 상당히 친한 이광국 감독이 ‘관객은 유령’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백프로 동의한다. 관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수많은 관객은 어차피 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 하나로 전부 설득해낼 수는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뭘 좋아할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걸 잘 표현하기 위한 맥락을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만드는 순간에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철저히 본인이 재미있는 것들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당연하다. 그래야 진솔한 것 아닌가. 자기한테 재미있지 않은 소재라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색깔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상업영화의 경우는 관객과 교집합을 찾아 나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업영화가 아닌 영화들은 아무도 관심 없는 이야기, 혹은 자기 혼자만 관심 있는 이야기로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된다고 본다. ‘영화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된다. 그게 진정한 영화의 확장 아닐까? 물론 그런 과정에서 운 좋게 나의 고민에 대중이 공감해주면 상업성까지 갖추게 되는 거고, 그럼 정말 행복하겠지만.(웃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영화 안 할 것도 아니니까.

다만 관객과의 교집합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철저히 ‘운’에만 맡긴다면 분명 한계가 생길 텐데.
그래서 많은 상영관에서 개봉되는 게 중요하다.(웃음) 도태되는 건 원치 않는다. 관객이 많이 봐주면 그만큼 피드백이 돌아오니까 연출자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구나, 이 부분에서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는구나 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연출자의 흥미나 관심사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소통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 거지, 만들 때부터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면 내가 갖춰온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작품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이다. 아는 연출자 중에서는 글만 쓰면서 10년간 작품을 하나도 못 내는 경우도 많다. 다들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기 싫다. 어차피 생각은 매번 바뀐다. 그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 치열하게 하던 고민이 있고, 그걸 영화로 만드는 건 그 때에만 할 수 있는 거다. 결과물이 투박할 지라도 계속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고 본다. 제 때 표현하지 않으면 전부 허공에서 소멸된다. 그렇게 나이 들면, 퇴색되고 만다. 수 많은 창작자가 그런 상황에 처하는게 너무 슬프다. 난 어떻게든 영화를 찍고 싶다. 그런 발버둥 안에서 나온 게 <물고기>나 <혼자> 같은 작품일 거다. 나 자신의 마음은 그런데, 오히려 걱정스러운 건 영화 산업의 구조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독립영화 쪽은 심할 정도로 돈이 안 돈다. 상영관도 잘 안 열린다. 아트하우스에서도 이름 있는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 아니면 상영관을 안 내주고, 아카데미나 영상원 출신 감독들의 졸업작품 위주로 연결돼 버린다. 옛날에는 독립영화 만든다고 하면 온갖 다양한 사람이 다 달라붙었는데 지금은 대기업 휘하에 들어가버렸다. 그 구조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날까봐 그게 두렵다. 내 경우에는 그래도 해외에서 인정 받고, 국내에 소개돼서 독립영화 연출가 중에서는 너무나 잘 된 케이스다. 그런데도 제작비로 든 3천만원조차 회수가 안 된다. IPTV 시장에서 다운로드는 좀 되려나? 하고 생각해보는 정도다. 딱 제작비만큼만 나한테 다시 돌아와도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데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제작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3천만원이 영화의 예산으로는 적을지 모르지만 개인으로 보면 삶을 흔들 수도 있는 돈 아닌가. 물론 개인의 삶이 흔들릴지언정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는 창작자들도 많은 게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구조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 모델로 삼을만한 상생구조라도 있으면 위안을 받을 텐데 내 주변에 있는 독립영화 연출가 형들도 다 형편이 똑같다.(웃음) 개봉이라도 하면 운이 좋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그건 연출가들끼리 하는 말인 거고, 평범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혼자>를 만들 때도 아무도 스탭으로 참여하려고 하질 않으니, 본래 드라마 작가이던 내 여자친구가 프로듀서로 일해줬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힘들어 하더라. 본인 말고는 연출부도 따로 없으니 현장에서 드는 10원짜리 하나까지도 손수 처리해야 하고, 차가 없으니 모든 장비를 다 손으로 들고 날라야 하고. 정말 미안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는 위안이 됐을 것 같다.
<혼자>로 같이 해외 영화제를 다녀 왔으니, 그러면서 일말의 희망을 찾아 가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면서 사는 거다.(웃음) 사실 아이를 하나 낳아서 키우는게 꿈인데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된다.

그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면? 왠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일 것 같다.
맞다. 난 여자친구랑 이야기하고 노는게 제일 좋다. 그 사람한테 이성으로서의 매력 뿐만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감동 받은 지점이 많다. 그녀를 생각하면 뭉클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앞으로도 같이 무언가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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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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