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보고회나 방송 인터뷰에서 <군도: 민란의 시대>는 아주 유쾌하고 통쾌한 영화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오락영화의 미덕을 두루 갖춘,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 분위기로 인해 <군도: 민란의 시대>가 굉장히 묵직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일 거라 오해한 분들도 있더라고요.
영화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아니요. 윤종빈 감독이 처음부터 전작들과 달리 관객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철저한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또 영화의 한 축에는 조윤이 있기 때문에 도치는 군도 무리들과 영화를 재밌게 끌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군도: 민란의 시대>에 출연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윤종빈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 하고 20대 중반부터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쌓아온 신뢰 때문이었어요. 세 작품을 하면 이 감독의 스타일은 어떻겠다, 어떤 걸 보여주고 싶구나, 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윤종빈 감독의 스타일은 어떤가요?
굉장히 직설적인 면이 있어요. 윤종빈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굉장히 입체적이라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연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재밌어요. 영화 속 인물들이 보이기 때문에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끝까지 귀염성을 잃지 않는 거요. 영화 속 현실이 무겁기 때문에 캐릭터를 무겁게만 표현하면 오히려 재미없고 단면적일 것 같아서 캐릭터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돌무치는 <캐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의 어벙벙하고 귀여운 느낌을 모델로 생각했고, 도치는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인물들의 베이스에 귀염성과 장난기, 유연함이 유지가 돼야 관객들이 캐릭터에 이입할 수 있고 제가 한 축을 잘 끌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했나요?
면도를 했어요(웃음). 2003년 대학 다닐 때 출연한 연극 ‘오델로’를 윤종빈 감독이 보러 왔는데 그 인연으로 윤종빈 감독과 서로 연락을 하게 됐어요. 윤종빈 감독이 배우 하정우를 처음 알게 됐던 작품이 ‘오델로’였기 때문에 그 캐릭터의 인상이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나 봐요. 그래서 윤종빈 감독이 지금의 도치 이미지를 선택한 것 같아요. 물론 영화의 베이스에는 조선 철종 13년이라는 시대상이 있지만, <군도: 민란의 시대>에는 분명 영화적 판타지가 있어요. 그리고 돌무치, 도치 캐릭터가 그런 판타지를 충족시켜줘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유연한 코미디 코드를 썼어요. 외형적으로는 삭발을 하고 수염을 붙이고 아이라인을 그렸고요. 돌무치는 긴 머리에 머리띠를 두르는데 그런 부분들이 리얼리티는 조금 떨어지지만 영화적 판타지로는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도치와 돌무치는 어떻게 차별을 두고 표현하려 한 건가요?
돌무치는 여동생 곡지와의 신에서 ‘귀엽구나!’라는 인상, ‘모자란가?’라는 의문, 그리고 ‘곡지와 참 각별하구나!’라는 느낌, 이 세 가지만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돌무치가 엄마에게 하는 ‘나 산에 가서 살까봐’라는 대사가 복선이지만,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도치와 돌무치 사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관객들이 성장한 도치를 봤을 때 쾌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돌무치는 거친 외모지만 조금 모자라고 아이 같은 어설픔과 귀여움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겨울 산 속 장면에서도 인간이기보다는 하나의 동물처럼 관객에게 소개되면 어떨까 싶었어요. 사자나 호랑이 말고 물개나 바다표범이 연상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물개의 느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목을 앞뒤로 움직여요.
왜 물개였어요?
너무 귀엽잖아요. 도치로 변한 이후의 액션과 거친 행보는 이미 영화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도치에게 다른 면이 있어야 관객이 영화를 조금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돌무치가 귀여움이라면 도치는요?
돌무치가 도치로 변하게 된 계기는 조윤을 죽여야 한다는 복수심이니 언뜻 언뜻 보이는 그런 에너지가 하나 추가된 거죠.
현장에서 ‘산다라 박’이라고 불렸어요(웃음). 사실 그 머리모양이 엄청 고통스러워요. 한 쪽은 패치, 다른 한쪽은 가발이라 촬영 도중에 뗄 수가 없는데, 한 여름이라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어요. 어휴, 정말 그 때 생각하면(웃음). 털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뜨니까 매일 머리를 면도해야 돼요.
모습이 파격적인데 스크린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은 없었나요?
캐릭터에 맞게 옷을 입는 거지 망가진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리고 삭발 자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충격적이고 불쌍하게 다가갈지는 몰랐어요. 뒤짱구여서 두상이 나쁘지 않은데(웃음). 한 작품 끝나고 말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더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면도 빼고요(웃음).
면도가 가장 고통스러웠나보네요(웃음).
그렇죠. 어떻게 연기하고 캐릭터를 만들지는 촬영 전 늘 고민하는 거지만 면도가 이 정도로 나를 방해할 줄 몰랐어요(웃음). 분장을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촬영장 가는 차안에서 기도했다니까요(웃음). 보통 메이크업하고 헤어하는데 3~40분 걸리는데 이건 3시간씩 걸렸어요. 머리랑 수염 붙이고 맨발에 짚신 신고 나가면 10년 전 화났던 일도 생각날 정도였어요(웃음). 아주 잠깐 나오는 신이라도 20분 촬영을 위해 세 시간 분장을 해야 되는 거예요. 촬영지라도 가까우면 말을 안 해요. 핸드폰도 안 터지는 산속 비포장도로로 들어가는데, 화장실 한번 가려면 3~40분은 나와야 했어요. 이동실 화장실은 여름에 박 터져요. 거긴 방독면 쓰고 들어가야 돼요. 복리후생이 제로였던 작품이었어요(웃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든 영화였군요(웃음).
짚신 신고 자갈밭에서 액션 신을 찍으면 잘하고 싶어도 잘 안 돼요. 자꾸 미끄러지고요. 다른 사람들은 짚신 신을 때 버선 안에 깔창을 대는데 저는 맨발이었어요. 발바닥에 살색 깔창이라도 붙이려 했는데 그게 또 더운 거예요. 머리가 모자였으면 컷 할 때 벗기라도 하는데, 제 가발은 벗지도 못하니까 선풍기 앞에서 가만히 있어야 됐어요. 너무 더워 땀 어루러기가 났는데 치료하는데 4개월 걸렸어요.
힘들었겠지만 관객 입장으로는 자갈밭 액션 신이 좋았어요.
감독이야 좋죠(웃음). 친하니까 더 말 못해요. 여하튼 추억이죠. 지금은 이렇게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당시는 분위기 많이 안 좋았어요(웃음).
말 타는 것, 의상, 모두 익숙하거나 편한 것이 없는 거예요. 철저하게 그 당시 썼던 언어,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다 제어하게 됐어요. 또 현대물은 가로등이나 도시의 불빛이 있지만 그 당시는 불이 없기 때문에 밤 촬영하면 횃불을 많이 써요. 밤 촬영이라 시원하겠지 했는데 횃불 때문에 엄청 더운 거예요. 그리고 모기 파이팅? (웃음)
그래도 <롤러코스터> 연출 경험이 있어서 감독 입장이 더 잘 이해됐을 것 같아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심정은 이해가 가죠. 그러나 배우 입장으로는 힘들죠(웃음). 하지만 그건 내 안에서 해결해야 되는 부분이에요. 내가 선택한 부분이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못해요. 제가 말을 타다가 사고 난 적이 있어서 윤종빈 감독이 어떻게든 신을 고쳐보겠다 했는데 도치가 말을 못타면 안 되잖아요. 그런 부분은 내가 감당하고 이겨내야 되는 부분인 거예요. 그래놓고 혼자 ‘아, 힘들다!’ 그래요(웃음).
연출 경험이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그렇죠. <롤러코스터> 촬영 끝나고 전작 감독님들에게 다 사과를 했어요. 모니터 앞에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모자라게 보였을 지가 보이는 거예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더 테러 라이브> <군도: 민란의 시대> 같은 경우는 더 협조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편영화 30편 정도를 배우로서 참여했지만 그동안 난 정말 몰랐다는 부끄러움도 느꼈어요. 감독하면서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이 나이 들어서도 영화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준 것 같아요. 우디 앨런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영화라는 작업을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쉬지 않고 작품을 하게 된다고. 그 선배님에 비하면 저는 어리지만 그 분 말씀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연작들의 흥행 성적이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라 연출에 중압감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오히려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더 고민하고 연구하고 모르는 점은 더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되고요. <허삼관 매혈기>를 준비하면서 전작 감독님들을 찾아가 모니터를 많이 받았어요. 특히 류승완 감독님 같은 경우는 <짝패>에서 연기와 연출을 같이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니터부터 시작해서 대처 방법까지 많이 물어봤죠. <베테랑> 촬영하고 있는데도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윤종빈 감독은 저랑 2박 3일 동안 숙박업소에서 시나리오 윤색 작업을 같이 해줬어요. 김용화 감독님도 신 바이 신으로 도와줬고요. 배우로서 영화 경험은 많지만 감독으로서는 아직 미진하기 때문에 70억짜리 영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이 물어보고 체크를 하고 가야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건 없어요(웃음). 비주얼보다는 내가 작품 안에서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마흔을 넘어 중년이 됐을 때 <뉴욕의 가을> 같은 로맨스는 하고 싶어요. 영화 작업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감독님들의 멋진 표현 도구로 쓰이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영화 작업의 어떤 점이 좋나요?
다른 얼굴을 하고 나와서 관객들과 미묘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 거죠. 뭘 보여줄까? 어떻게 연기를 할까? 그 순간이 재밌고 완성된 작품을 바라봤을 때 또 다른 나를 보는 것이 재미난 거예요. 또 한 챕터가 끝났구나, 또 한 작품이 필모에 생기는구나, 그런 소소한 재미요.
감독으로서는 어떤 점이 좋나요?
내 스타일, 내가 재밌어 하고 보고 싶은 영화를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죠. 우디 앨런 영화나 <총알탄 사나이> 같은 코미디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임원희씨가 나왔던 <재밌는 영화> 같은 영화가 재밌었어요. 그래서 작년 <롤러코스터>를 개봉했는데 뜨악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직은 내 코미디가 잘 안통하고 조금 더 쉽게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허삼관 매혈기>는 드라마지만 위화의 소설에서 보이는 코미디를 극대화하려고 포인트를 잡고 있죠.
하정우하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생겼어요.
너무 감사해요. 그런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더 열심히 해서 그 말을 증명하고 싶어요. 계속 작품을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어려워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또 저의 직업이고 사명이겠죠.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