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떨리죠. 산 넘어 산이라고, 왜 이렇게 날로 먹는 게 없을까(웃음). 편안하게 순탄하게 잘 되고 그러면 참 좋잖아요. 그죠? 물론 고통 속에 기쁨이 오겠지만 고통 없이도 더 기쁨이 올 수 있잖아요(웃음). <아이언맨 3> 때문에 치여 가지고 어떻게 감당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전국노래자랑>이 평일에도 관객이 안 떨어지는 걸 보니까 이달 말까지는 충분히 가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거죠. 살 떨려요, 진짜.
개봉을 기다리던 때보다 공개하니 오히려 더 떨리는 건가요?
1일 날 공개할 때는 그냥 즐거움이었어요. 축제였고. 물론 평단의 시각과 동료들의 시각 차이는 있지만, VIP 시사 때 동료들은 영화보고 좋아들하고, 축하한다고 하고, 형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때는 솔직히 축제였어요. 근데 개봉을 하니까 훅 가네(웃음). 개봉 첫 날 10만 가까이 들었어요. 주말에도 12~3만씩 들었고요. 아예 매몰차게 대중들로부터 거절당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개봉 때보다 지금이 하루하루가, 일각여삼추라고... 개봉 전에는 잠도 잘 잤어요. 개봉하고 나니까 이렇게 힘드네요. 끝날 때까지 힘들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반응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스코어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더 초초할 수밖에 없겠죠. 한국영화 시장이 스크린을 확보해주고 성적이 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아이언맨>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소낙비 피해가라고 했는데(웃음), 같이 붙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개봉 2주차 월요일 스코어가 그렇게 많이 안 떨어지면 괜찮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흥행에 청신호라는 기사도 봤어요.
2주차 평일 스코어가 하락하지 않고 예매율은 상승하고 있으니 좋은 신호긴 하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몇몇 점쟁이들도 잘 된다고 했으니까(웃음).
근데 100만이나 60만이나 사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좀 더 맘 편히 갈 수 있잖아요(웃음). 2주차에 손익분기점 넘고 편안하게.
(웃음) 다 운명이니까요. 안되면 말고.
개봉 후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스코어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밖에 없네요.
개봉 후에는 다 그렇죠. 영화도 너무 오랫동안 준비하면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그렇겠죠. 오래 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품은 자식 같은 느낌이 있어요. 자주 영화를 해야겠어요. 그래야 맘이 안 아플 것 같아요. 다음 작품 또 하면 되지, 이래야 하는데 한 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충분히 디딤돌의 역할을 했죠.
그동안 보여주셨던 영화에 대한 열정, <복면달호>의 성과에 비하면 차기작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요. 2~3년 안에는 다음 작품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판권 문제를 못 풀어서 그래요. 공동제작을 하기로 한 사람이 판권을 구입했는데 판권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어요. 저는 책(시나리오)을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1년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내가 판권을 샀어요. 판권을 사고 나 혼자 개발하는데 또 1년 이상이 걸렸어요. 그러다보니 솔직히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안 그랬으면 재작년이 아마 ‘전국노래자랑’ 30주년인데 그 시기에 개봉했을 거예요.
몇 편 더 제작 경험을 쌓고 융통성이 생겼다면 그럴 때 준비하던 다른 아이템으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갔을 텐데 여유가 없었네요.
그렇죠.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매번 일희일비하는 것 같아 쪽팔리기도 하고, 쯧.
쪽팔릴 것까지야(일동 폭소). 남들은 한편 제작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이렇게 두 편이나 해냈잖아요.
영화는 정말 힘든 것 같아요. 너무 힘든 것 같아.
무대인사도 많이 다니셨잖아요.
많이 갔죠.
무대인사 분위기와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무대인사는 솔직히 폭발적이에요. 20대부터 할아버지까지 영화 보고 난 다음에 무대인사 들어가면 정말 너무들 좋아하세요. 부산하고 대구 다녀왔는데 다음 주에 대전, 광주로 해서 전라도 쪽으로 돌고, 그 다음 주는 경기도 쪽으로 돌 예정이에요. 그래서 3주, 4주까지 무대인사 100회는 해야 해요(웃음).
강행군이네요(웃음).
<복면달호> 때는 혼자 100회 했어요. 이번에는 김인권이 있으니까(웃음). 인권이 도망 못 가잖아요, 대학 후배인데. ‘야! 나와라’ 그러면 무조건 나와야해요. 그리고 솔직히 영화 들어온 것도 없어요(일동 폭소). ‘드라마 같은 소리하지 마! 이거 끝내놓고 해’ 그랬어요. 놀면 뭐해요. 무대인사나 다녀야지(웃음). 그래서 5월말까지는 계속 같이 다닐 걸요? (웃음)
안했어요.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어요.
이번에는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누울 때와 설 때와 앉을 때를 잘 구분해야하는데, 이번에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복면달호>보다 못하면 영화를 다시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번에는 뛰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전면에 나서자, 나서서 쇼당을 치자(웃음). 그래서 했는데, 실질적으로 오락프로에 많이 나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임팩트가 세다보니 이건 뭐 내가 완전 도배를 한 것처럼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화신’하고 ‘런닝맨’ 나갔어요. 화제가 되고 방송이 줄줄이 붙어있다 보니 엄청 나간 것처럼 됐는데, 실질적으로 다른 영화 출연배우들도 그렇게 나갔어요. 나만 왜 그렇게 욕을 먹지,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라 제 운명이라 생각했어요.
<복면달호> 때는 이경규에 대한 편견이 영화에 누가 될까봐 홍보에 안 나선 거죠?
정말 그랬어요. 저 때문에 괜히 차태현이나 영화 자체에 누가 될까봐. 그때는 아무래도 <복수혈전>이 너무 희화돼있어서 <복면달호> 자체도 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피했어요.
홍보 전면에 나서보니 어떤 부분이 득이고 어떤 부분이 실이던가요?
이런 거죠. 득은 영화를 알리는 데는 참 좋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도면에서 이경규가 영화를 했구나, 알리기는 참 좋아요. 실은 선입관이 있어서 극장으로 안 올 확률이 높아요(일동 폭소). 이경규에게 미안했다, 이런 기사가 있어요. 기사를 읽어보니 선입관으로 영화를 안 보려했는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다르더라, 영화가 ‘개콘’이나 이런 건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좋았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게 득과 실인 것 같아요. 너무나 확연하게 구분돼요.
어떻게 보면 대표님이나 대표님이 제작한 영화가 가진 태생적인 복일수도 있어요. 어떤 영화가 제작자 이름만으로 이렇게 알려질 수 있겠어요. 김인권이 연기 잘하고 좋은 배우인 건 맞지만 김인권, 류현경 조합으로 홍보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쌓을 수 없었을 거예요. 이경규가 없었으면 거의 불가능했겠죠.
제 한 몸 희생해서 배우들을 띄워야하는데, 내가 너무 앞에 나서니까 배우들에게 미안한 구석도 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는 다 잘되면 그 친구들의 공으로 돌아가니까요.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볼수록 김인권과 류현경이 참 잘하는구나, 생각하실 테니까요. 류현경의 재발견, 이런 기사도 있더라고요. 30대 배우들이 설 땅이 별로 없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자리도 더 잡고 드라마도 많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영화와 관련한 이경규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그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이경규의 영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보거든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보고 있고, 또 앞으로 영화 만드는데도 자신감을 좀 더 갖게 됐어요. 이런 인터뷰도 이번에 처음 해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나를 보는 시선과 영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고 내가 쌓는 내공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영화 얘기해도 뻐꾸기 같이 안 밀릴 것 같아요(웃음).
오히려 충무로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덜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최민식이나 내 후배들이 영화계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고, 걔네들이 중간 중간에서 안 막아 주겠어요? (일동 폭소) 저에 대한 인식도 충무로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봐요. 다양한 배급사들하고도 영화를 할 수 있는, 영화를 논할 수 있는 제작자로 인식됐으면 좋겠어요. 작품적인 면에서 제작자로서 영화를 잘 보는구나, 신용적인 면에서도 계획된 제작비 내에서 잘 만들어내는구나, 그런 인식에서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규 대표가 충무로에 잘 융화되고, 함께 작업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겠죠.
그래서 사실 부산영화제나 영화 쪽 행사에서 초청이 오면 안 갔어요. 뭐 몇 개했다고(웃음) 그거 가지고 앉아있기도 창피하고, 누구 만나면 쑥스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윤제균 감독이 좀 와요, 행사도 오고 얼굴 좀 비춰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가려고 해요. 레드카펫도 한 번 밟아보고요.
부산은 명분도 좋잖아요.
그럼요. 제 고향이고. 부산영화제는 1회부터 오라고 했는데 안 갔어요. 한 게 뭐 있다고(일동 폭소). 근데 지금은 가만있어봐, 뭐 한 게 있나, 이러면서 좀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인들하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요. 오락프로그램에 영화인들이 홍보도 많이 와요. 그러면 공치사가 아니고 제가 진짜 많이 도와줬어요. 앞으로도 충무로에서 오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저 역시도 충무로에 가면 도움도 많이 받으려고요. 그래서 스탭들하고 관계도 참 많이 신경 썼어요. 경제적인 부분이든 대우 부분이든 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요. 혹시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까봐요. 언젠가 내 후배 중에 영화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좋은 선례를 남겨놓으면 그 친구들도 편안하게 영화 할 수 있잖아요. 영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관심이 있고 좋아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꼭 상업영화가 아니라도 독립영화, 저예산영화를 만들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럼요.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접근하려하고 있어요. <복수혈전>은 제 젊었을 때 광기에 가까운(웃음),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내 광기였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영화진흥공사에서 녹음하고 있는데 녹음기사가 라스트신이 재미없다는 거예요. 뚜껑이 확 열려가지고 그때 돈으로 삼천만원 넣어가지고 라스트를 다시 찍었어요. 라스트를 다시 찍건 안 찍건 간에 관객들 반응은 아마 똑같았을 거예요. 그리고 창고에서 액션을 찍는데 하루에 두 시간 자면서 대역 없이 이틀 찍었어요. 라스트 찍고 나오는데 입이 돌아가더라고요. 영화 보면 입이 돌아간 게 보여요. 그렇게 영화를 개봉했잖아요. 동생이 죽는 장면에서 다 웃어요. 싹 다 웃어(웃음). 액션을 해도 웃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웃어. 그렇게 안 웃기면서도 그렇게 웃긴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시종일관 웃어(웃음). 내가 고개 뒤로 돌리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빵 터져. 유명한 대사 있잖아요. ‘마태호, (일동 폭소) 널 평생 잊지 못해 찾아왔어.’ 연기를 그렇게 하던 시절이었다고. 극장에서 웃음이 빵빵 터지는 거야.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어느 극장이든 영화가 끝나면 박수가 터졌어요. 고생했다고. 액션영화니까, 내가 직접 다했으니까. 그리고 절치부심해서 다시 <복면달호>를 만들었죠. 차태현씨가 시나리오를 받고 좋아서 승낙을 했어요. 처음에는 내가 만드는 영화라는 얘기를 안했어요. 차태현이 내가 만드는 영화라는 걸 알고 한 이틀 동안 잠적을 했어요(일동 폭소). <복수혈전>이 너무 희화됐고 같은 ‘복’자잖아요(웃음). 차태현 팬클럽에서 하지 말라고 난리가 났어요. 태현이도 너무 괴로운 거야. 그런데 태현이가 하고 싶었나봐요. 그래서 한 거예요. 태현이도 영화가 잘 안될 때였으니까. <복면달호>로 다시 일어서고 노래도 히트하고 잘됐잖아요. 그 다음에 <과속스캔들> 했잖아요. 허, 거기서 800만을 터트리네. 나랑 할 때 좀 하지(일동 폭소), 왜 살려놓으니까 딴 데 가서(웃음). 그리고 다시 4~5년이 지나서 <전국노래자랑>을 가지고 왔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언맨>이 나타나서 사람 속을 다 뒤집어 놓고(웃음). 입소문이 좋아서 기회도 나름 있고, 조금은 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죠.
차근차근 영화 자체는 잘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어요. 이번에도 <전국노래자랑>을 내놓았지만 많은 분들이 무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억지구성 없이 잘 만들었다 칭찬을 해주니까요. (스마트폰에서 기사를 보여주며) 무대인사 갔을 때 제가 가장 구성원이 많은 가족 나오라고 했어요. 온 가족 8명이 다 와서 함께 사진 찍은 거예요. 이런 영화가 드물잖아요.
뿌듯하겠어요.
정말 잘 만들었다, 영화를 잘 만들었다가 아니고 영화하기를 잘했다, 생각이 들어요. 좋아해주니까요. 이런 반응이 방송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중독성이 있어요. 솔직히 중독된 것 같아(웃음). 그죠?
방청객 반응하고는 확실히 다를 거예요. 살아있는 반응들.
아이, 달라요. 정말 달라요. 진짜 내가 살아있구나 느껴져요. <복면달호> 때도 울었어요. 울산에 갔는데 한 300석 되는 상영관이 완전 매진됐어요. 딱 들어서는데 눈물이 팍 쏟아지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하는구나. 박수가 막 터지고 하는데 정말 이것 때문에 하는구나.
천상 영화인인거죠.
내가 볼 때 꽂혔어요(웃음).
진작 꽂혔잖아요(웃음).
이러다가 집구석 다 말아먹게 생겼어요(웃음). 영화에 꽂히면 안 되는데(웃음). 우리 회사는 직원이 없어요. 저하고 여직원하고 도와주는 후배하고 둘이 있어요. 흔히들 생각하는 고정비, 지출비 이런 부분에서 많이 절약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사를 오래 끌 수 있는 거예요. 영화사 10년 동안 두 편하고 부도 안낸 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웃음).
제작자 이경규만의 경영 노하우인가요? (웃음)
(웃음) 경영 노하우는 아니고 제가 기획하니까요. 처음에는 제가 시나리오를 써요. 그래서 제가 시나리오 쓴다고 얘기 안했어요. 선입관이 있어서 조금만 웃기면 말장난하는구나, 그러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크레딧에 내가 시나리오 썼다고 넣었어요. 안 넣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20대, 30대를 거치면서 날카로워져 있던 생각들이 지금은 많이 성숙됐다고 생각해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점점 나아지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20대 때는 연극이 뭔지, 방송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행운인지 뭔지는 몰라도 많은 것들을 배워온 것 같아요. 생각이 바뀌면서 얼굴이 바뀐 것 같아요. 지금은 워낙 코미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배우를 못하고 있지만, 4~5년 지나 또 관상이 바뀌었을 때는 충분히 어떤 역할을 해도 사람들이 웃지 않을 것이다, 악역을 해도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누가 감독을 하더라도 조연부터 시작해서 기타노 다케시처럼 결국 주인공을(웃음)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분명히 올 거예요.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그래야겠죠. 그러면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을 해요.
대표님이 데뷔할 때만 해도 기라성 같은 코미디언 선배들이 많이 계셨잖아요. 그분들 중 대부분이 영화에 많이 출연하셨고요.
대부분 영화배우 출신들이었죠. 그 시대는 영화가 대중 매체 중 최고였으니까요. TV가 개국하기 전에는 영화가 최고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코미디언들은 공룡, 귀신 나오는 어린이용 특촬물에만 출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상업영화에서도 당시 코미디 프로의 인기 캐릭터를 고스란히 가져온 카메오가 대부분이고요.
치부가 됐죠. 그래서 사실 <복수혈전>을 만든 거예요. 왜 우리 개그맨들은 어린이영화만 나와야 되나, 왜 우리는 그런 것만 하는가.
외국에는 나이 들어도 꾸준히 활동하는 희극배우가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거든요.
그럼요. 희극배우는 나이들 수록 더 웃겨요.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거칠게 없잖아요. 거침없는 나이가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그냥 웃기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면, 나이가 들면 웃음 속에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 웃음이 있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희비극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런 영화도 한번은 보고 싶은데 우리나라에 그것이 가능한 배우는 이경규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경규도 못하면 앞으로도 4~50년은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영화도 제작하는데 안 되면 본인을 주연으로 꽂을 수도 있잖아요(일동 폭소).
(웃음) 그럼요, 내가 주연할 수 있어요. 내가 하겠다는데(웃음). 저예산이라도 하면 되지(웃음).
2013년 5월 13일 월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5월 13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