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도 재밌었고, 타이밍도 맞았고요. 겹치면 일단 못하는 거니까요. 연기가 하고 싶어서 작년 가기 전에 한 작품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차에 한 달 반 후면 크랭크인 들어가는, 세팅이 마무리 된 작품이라는 거예요. 오빠들 얘기가 주축이 되는 영화니까 어떻게 보면 저한테 크게 부담이 되는 작품은 아니었고요. 사실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서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어요. 근데 워낙 행보 자체를 주연, 조연 굳이 큰 의미가 있나 생각하는 배우라서(웃음). 제가 해보지 않은 무리수가 조금 있거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어울리나 싶은 그런 역할들을 워밍업 해보기에는 적당한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빠들 사이에서 재밌는 사건에 발단을 만드는 역할이라 너무 심심하지도 않을 것 같고, 사람들이 공효진이 저 역할을 왜했을까 생각도 안 들것 같고, 내가하면 더 재밌는 역할이 될 것 같기고 하고, 출연 배우들 모두 한번 조우하고 싶었던 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연기가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년 그 시점에는 왜 연기가 하고 싶었나요?
요즘은 항상 그런 편이에요. 정확한 터닝 포인트가 언제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아요. 작품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쉴 때 한없이 쉬고 싶고, ‘또 해야 해? 나 놀고 싶은데!’ 하던 때가 있었어요. 어느 시점부터 작품 들어가면 연기하면서도 다음 작품이 빨리 결정돼서 다른 소속감을 느끼고 싶더라고요. 운명공동체적 생활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혼자서 고독을 씹고 혼자만의 명상에 빠지고 이런 건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전보다 그런 시간이 필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 배 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양자리라서 그런가봐요. 맨날 모여서 바글바글하게 지내잖아요(웃음).
겉으로는 활발해 보이는데 혼자 있을 때는 내성적이고 한없이 가라앉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공효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거의 비슷한가보네요.
그런가봐요. 작품 속 모든 캐릭터가 저를 닮아있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이번 작품 같은 경우도 저랑 많이 다르긴 한데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공효진)화시키려고 하고, 내가 이해 못할 수 있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가능한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걸 모두 다 내가 이해하려들고, 내가 납득이 가야 연기가 되고, 그런 편은 아니에요.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고 흉내 내면서 연기할 때도 있고요. 이해 안 가는 걸 들키지 않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전에는 일도 재밌었지만 어떻게 보면 제가 즐거울 것 같은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선택하는 주도적 입장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요. 신인 시절에는 이 작품이 좋을 것 같다면 그런가보다 생각했을 때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작품을 왜 했을까, 후회했던 적은 많이 없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며 제 구미에 딱딱 맞는 것들만 고르려는 것일 수도 있어요. 특히나 영화는 더. 독특한 역할들을 하는 것도 너무 그것만 선호하고 다른 걸 거부해서만은 아니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작품을 하고 있고, 다 찍고 나니 독특한 역할이었던 작품들도 있고요. 작품 고를 때 주변에서 극구 말릴 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마다한 작품도 많아요. 제가 보는 눈이 사실 독특하긴 해요. 그러니 주위 얘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전혀 뜻이 없거나 주변에서 한번 해야 된다고 해서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계속해서 그 회사와 일한다는 건 제 취향을 회사가 존중해주고 제가 회사의 조언을 들을 때 납득이 간다는 거겠죠.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일 얘기를 해야 통하는 거니까요.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저 혼자만 하자고 하는 아트웍은 아니니까. 결국 마음이 동해야 애정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런 선택이 관객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고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으니 좋은 거죠.
실망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있겠죠. 없을 수는 없겠죠.
얘는 맨날 이런 것만 하네, 이럴 수도 있죠. 100%를 만족시키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도 나와 비슷한 뜻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을 하는 거죠.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지, 이랬다가 2년 전 부터는 더 많은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래서 작품을 찾는데 그래도 또 하고 보면 이렇더라고요(웃음). 제가 또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주변에서도 아무래도 공효진의 그런 면을 원해서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근데 생각보다 왜 이게 나한테 왔지, 하는 대본이나 시나리오도 많아요.
정통 멜로 같은?
네. 너무 감사하게도 이런 역을 나에게 주셨네, 이런 거 있잖아요. 보기에 나한테 이런 면이 없었을 텐데, 일부러 반대 역할을 보내줄 때도 있는 거죠. 남들은 매번 하는 역할인데 나에게는 변신이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럴 때 고맙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또 밍숭맹숭한 것 같고(웃음). 센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취향이 그보다 점점 세지잖아요. 영화를 고를 때도 그런 것 같아요.
외형적으로 신경 많이 썼죠. 저는 좀 캐주얼한 옷차림을 좋아하지만, 주변에서 저를 패셔니스타라고들 하니까 상업 패션 쪽을 아예 놓고 갈만한 역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미쓰 홍당무> 같은 역할에서 좀 더 예쁜 코트 입으면 안 돼, 하는 그런 무르익지 않은 배우는 아니니까요. 벌써 14~5년 연기를 했으니까. 이번 역할은 나와 다른 어떤 패션 취향을 가진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내 취향을 빼버리고 농도 짙은 색을 많이 입었고요. 아무래도 내 나이보다 많은 역이었고 애기 엄마고 사는 지역에 대한 느낌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이건 분명히 변두리 멋쟁이 역할이다(웃음), 생각했죠. 인조 손톱도 남자들이 보면 무서워할만한 호피무늬에 금색, 은색 이런 걸 붙였고, 머리도 큐빅이 엄청 많이 들어간 화려한 것들을 이용했고요. 패턴이 많은 옷에 보색으로 훨씬 눈에 띄게 입으려고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준비했죠. 사실 재미있어 보이려고 입었는데 그 옷들도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옷은 아무리 촌스럽게 입으려고 해도 잘 안 되는구나, 싶기도 해요.
공효진이 입어서 더 그럴 수도 있겠죠(웃음). 의상팀이 준비한 의상을 보고 “이 콘셉트는 패턴의 충돌?”이라고 했다면서요.
그게 옷 입을 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눈에 확 띄는 패턴이 한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더 어지럽게. 이 여자의 정신세계처럼 패턴이 많은 옷들을 찾아서 섞어 입었어요.
그렇게 의상, 헤어 등 외적인 부분들로 캐릭터를 설정하고 나면 연기할 때 더 인물에 동화되기 쉽겠죠?
그런 것 같아요. 바지 입었을 때랑 치마 입었을 때랑 그리고 힐 신었을 때랑 운동화 신었을 때랑 여자는 몸가짐이 달라져요. 저는 특히나 더 그런 것 같아요.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자주 입는 옷이 바뀌어요. 여성스러운 머리를 치렁치렁 길러놓고 남성스러운 옷을 입으면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거잖아요. 머리가 짧을 때는 확실히 좀 더 남성스러운 그런 옷들을 많이 입게 되는 것 같고요. 톤을 맞춰야 되니까요. 그런 분장, 의상 이런 것들이 캐릭터화 하는데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매 작품 연기할 때마다 그 부분을 많이 신경 쓰겠네요.
아무래도 같은 얼굴에 같은 목소리로 나와야하고 연기해야하니까 다른 것을 사람들에게 빨리 찾게끔 해주려면 외적 비주얼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말을 그렇게 만드는 거죠(웃음). 내가 감을 딱 받을 순간을 기다려요. 그 감을 찾으려고 파헤치고 분석하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의상을 입고 그 머리를 하고 그 장소에 가고 내가 감정을 나눠야할 그 사람의 연기를 보면서 감을 받으려고 노력하죠. 집중을 그때하고요. 사실 그 전에는 조금 더 몸을 푸는데 집중하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을 놔두고 그 캐릭터와 상황으로 가기 위해 다른 고민들을 정리하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본능적인 연기에 가까운 거네요.
라이브한 연기 메소드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만 믿다가 큰코다칠 어떤 날이 올까봐 사극을 하지 말아야겠다(웃음), 그런 생각도 하고요(웃음).
배우마다 각자의 연기 방법이 있는 거겠죠. 어떤 방법이 옳다, 그르다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할 테고요.
<미쓰 홍당무>를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나와 맞지 않고 부정하고 싶은 어떤 캐릭터였고 감독님의 취향이 사람을 진 빠지게 하는 타입이었어요. 근데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몇 시간을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곤두서있어서, 계속 신경질이 나있는 역할이라 감정을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정신력이 쓸데없이 강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술 마셔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고 그래서 피곤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내가 해오던 방식이 아닌 방식, 그런 캐릭터를 만났을 때 어떤 쾌감이 있더라고요. 성장이 있었어요. 내가 추구하던 방식이 다가 아니라는, 다른 방식에 조금 귀 기울이고 신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현장에서 컷 소리와 동시에 감정에서 빠져나오던 김혜수씨도 <열한번째 엄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고 빠져나와서도 안 되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고 하더라고요. 촬영이 다 끝난 후에도 몇 개월을 감정에서 빠져나오느라 고생했다면서요. 그런 경험을 어느 순간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연기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거겠죠.
사람들은 배우들이 대단한 계획 하에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이라고 봐요(웃음). 배우는 순발력을 요하는 직업이에요. 물론 다른 많은 메소드가 있겠지만, 전 그게 제일 맘 편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배우도 사람인지라 여러 명의 인생을 살아보기는 하지만 그것에 너무 큰 영향을 받으면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잖아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진짜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고 어두운 연기하고 나면 밝은 거 하고 싶나 봐요. 힐링을 받기 위해서. <미쓰 홍당무>하면서 조금 더 연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열렸어요.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지 말고, 내가 모르는 연기에 대해서도 한 번 부딪혀보고 돌파할 방법을 찾는 거죠.
철저한 완벽주의자라는 게 있나봐요.
본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연기라고 배웠고,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른 연기 방법과 비교하고 우위를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에 맞는 연기가 있다는 거겠죠.
그동안 상대배우들이 각각의 색깔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저와 비슷한 분도 있었고 차승원, 장혁, 박해일 오빠 같은 경우는 대본을 놓지를 못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가 숙지가 돼야만 연기가 된다,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저하고 완전 다르죠. 전 갑자기 찍어야 할 신이 바뀌면 잠깐만 다 안 외웠는데, 하면서 리허설 때 바짝 외워서 해요. 그래서 차승원 선배님이 시상식장에서 공효진씨가 대본을 좀 잘 외웠으면 좋겠다고(웃음). 그때 정말 뜨끔 하더라고요. 전 대사 NG를 꽤 냈거든요. 오빠는 절대 안내는데.
부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웃음).
남다른 경험이었다고는 하시더라고요(웃음). 제가 다른 배우에게 나쁜 영향이나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메소드가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럴 때가 있죠. 그래도 걱정하기보다는 맞춰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고 감으로 잘 맞추는 편인 것 같아요.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어차피 상대 배우의 스타일을 포함한 환경 자체도 배우에게 주어진 숙제겠죠. 배우가 풀어야할 몫이고.
새로워서 재밌어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 흥미롭잖아요.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이지, 막 어떡하지,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걱정하지는 않아요. 남자든 여자든 누구하고도 잘 맞추는 편인 것 같아요.
하나도 안 어려웠어요. 재밌었어요. 공블리 이거 버려야할 때가 왔나(웃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요즘 관객의 시선도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중구난방으로 이것저것 해야 뭘 해도 크게 충격 받거나 실망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 지금까지 중구난방으로 해왔고 관객들이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고요. 제가 그동안 자유롭게 해왔던 어떤 덕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박해일과 포장마차에서 싸우는 신도 배우들의 화학작용이 좋았어요.
욱하더라고요. 싸우는 신에 잘 욱해요. <러브픽션>에서도 집에서 트로피 집어던지고 구주월이 ‘너 스쿨버스였다며’하는 신 있잖아요. 연기하고 싶고 기대했던 신이었어요. 하정우랑 도대체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찍을 때 얼마나 재밌을까, 그런 생각했거든요. 찍을 때도 오빠가 내 눈을 보고 어쩌고저쩌고 그러는데 열 받아서 목이 불긋불긋해지는 거예요. ‘파스타’에서 눈에 뽀뽀해주는 신에서 귀까지 빨개지는 연기했다고 얘기가 있었는데, 당연히 뽀뽀한다는 거 알고 연기한 건데 당황할 게 뭐 있겠어요. 그냥 뽀뽀를 하고 웃고 끝내는 엔딩이었는데 계속 카메라가 돌아가는 거예요. 계속 하란 소리구나, 오빠도 눈치를 채고 뭔가 계속 나오는 그런 상황. 배우들이 웬만해서는 먼저 컷을 할 수 없잖아요. 그럴 때 나오는 당황함이랄까. 싸우는 신도 리허설 할 때보다 슛했을 때 세게 하는 것도 그 상황에서 당황해하는 화학작용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포장마차에서 싸울 때도 오빠가 ‘동생 년이 나를 밟네’하는데 ‘애 엄마한테 지금 년이라고 했어? 들었어? 이 새끼 얘기하는 것 좀 봐’ 이건 애드립이었어요. 오빠를 더 열 받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더. 아무래도 15년쯤 되니까 상대배우를 연기하게끔 만드는 약간의 방법들도 알 것 같아요.
연기하다 진짜로 욱하는 게 느껴질 거 아니에요. 그대로 연기하나요, 아니면 상황에 맞춰 조절을 하나요?
감을 받은 대로 그냥 해요. 너무 셌다, 다음 연결 생각해서 좀 조절하자, 이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할 일이죠. 어쨌든 생방송이 아니니까 여러 가지 방법들을 써보죠. 근데 다시 했을 때는 그렇게 똑같이 잘 안 되거든요. 라이브한 느낌을 받았을 때 고스란히 담기게끔 NG가 나도 이어가려고 하고, 그런 것들을 주고받는 게 호흡인 것 같아요. 카메라 감독님은 그걸 찍고, 감독님은 그걸 지속시키고 이어가고, 상대 배우는 너 왜 이렇게 화났어, 진짜 나한테 화난거야, 이러지 않고 연기하면서 나오는 즉흥적 감정의 수위를 받아서 연기하고. 호흡이라고 말하는 게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대사를 순서대로 내뱉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받고 치고, 또 받고 치는 것들. 내가 수위를 올리면 이 사람도 수위가 높게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이 바로 호흡이겠죠.
조카한테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교육상 너무 안 좋고(웃음). 그리고 오빠가 안쓰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딸도 딸이지만 그 나이에 그러고 있는 오빠가 진짜 짜증나니까 더 화를 냈겠죠. 어쨌든 딸은 15년 키웠지만 오빠는 30년 넘게 나랑 함께 산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화를 냈겠죠. 물론 그걸 표현하지는 않았어요. 오빠를 생각해서 더 열 받은 척 한다, 이런 건 우리 영화랑 맞지 않는다고 봤거든요. 그때 재밌었죠. 오빠는 계속 죄인처럼 앉아있고, 저는 막 퍼붓다가 ‘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자격 없어 이년아’ 이러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웃음).
거기서부터 정말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막 터져 나오잖아요(웃음). 친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미연의 웃음이 참 궁금했어요. 물론 복잡다단한 감정의 웃음이라고 막연히 이해는되지만 왜 저 모습을 뽑아서 연기를 했을까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미연에게 가족 안에 새로운 가족이 침투되는 이야기잖아요. 간단히 생각하면 감동을 받을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는데, 감정을 다 정리하려면 밀려오는 반가움에 대한 슬픔이 있어야하나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이었어요. 그렇게까지 상황을 정리하고 가족애를 정의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연의 톤 앤 매너로는 이제 나타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결핍이 없었고, 오빠도 둘이나 있고 세 번째 결혼인데 손잡고 들어갈 사람 없다고 전전긍긍할 성격도 아니고. 아버지가 나타났다는 게 그렇게 충격적이고 슬플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께 처음부터 여기서 이렇게 연기하겠어요, 한 건 아니고요. 리허설 때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박근형 선생님 처음 오셨으니 워밍업 해볼 겸 사실적으로 리허설을 한 번 했어요. 엄마가 니 아버지다, 그러면서 제 눈치를 보며 저를 못 쳐다보는 거예요. 그 엄마를 보면서 웃겼어요. 극중 엄마가 아니라 윤여정 선생님으로 보였거든요. 그 분 성격에 그러는 모습이 웃음 나게 하더라고요. 웃다 보니 아직도 선생님들이 연기를 심각하게 하고 계신 거예요. 그 모습이 모니터에 담겼는데, 감독님이 이거 희한하다고 재밌다고 하셨고 저도 이 정도로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허설 그대로 가자고 결정된 거죠. 리허설 때만큼 웃기지는 않았어요. 롱테이크로 길게 호흡을 끊지 않고 찍어서 어떻게 편집하실지 궁금했는데, 감독님이 준 하나의 디렉션은 엄마를 어느 순간 딱 째려봤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엄마 대단하다, 화려한 인생에 대한 감탄? 그러면서 딸에게 약간의 창피함? 오빠들을 남처럼 내몰았는데 나도 그렇다는 약간의 민망함? 그런 감정의 신이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나왔어요.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완성시키는 것이 미연의 역할이었어요. 사위를 데려오고, 처음 보는 아버지를 복잡다단한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둘째 오빠와 눈물로 화해하고, 큰 오빠는 따스한 손길로 맞이하며 가족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캐릭터. 비중을 떠나서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 상에서 가족의 완성은 미연이 한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시나리오에 물론 있었지만 감독님이 저를 위해 할애해주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요소들 때문에 제가 이 역할을 하겠다고 한 거겠죠. 여러 가지로 마무리 짓는 그 부분이 좋았어요.
민망하죠, 저도.
어떤 계기였나요?
드라마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나도 사랑받는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그 순간 깨달은 거죠. 사실은 제 승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했구나, 라고 생각했던 건 ‘파스타’가 기점이었어요. ‘고맙습니다’에서 거부할 수 없는 여성, 엄마라는 여성을 연기한 것이 어떻게 보면 공블리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이 된 것 같고요. 개성강한 것만 하다가 ‘파스타’에서 아, 이거 뭐야, 갑자기 그렇게 인식될 수 있잖아요. ‘고맙습니다’에서 서정적으로 밑바탕을 둔 것 같고, 그걸 발판삼아 ‘파스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파스타’에서 감독님은 좀 더 와일드하고 쉐프에게 절대 지지 않는 역할을 원하셨는데, 저는 그건 반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통 여자로 보였으면 한다, 남들보다 드세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막내 요리사가 아니라 남들과 비슷한 모습의 여자가 일에 대한 열정,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할 수 있는 열린 마인드로 성공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제가 원하는 건 정확히 그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저런 여자니까 저기서 당연히 살아남았지가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세게 해주면 안 되겠냐는 디렉션에도 그 모습을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공블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변신하기 위해서 제가 노력하고 만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그게 참 운 좋게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고요.
과거 인터뷰 중에 ‘절세 미녀가 아니기에 캐스팅 1순위가 아닌 경험을 여러 번 겪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상황이었다’는 멘트를 봤어요.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스스로 변화를 꾀하겠다는 생각, 욕구가 생긴 건가요?
아예 그걸 포기하지는 않았죠. 하면서 언젠가 나한테 딱 맞는 옷이, 내화된 사랑스러운 모습이 있겠지 생각하며 끊임없이 찾으려고 했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던 거죠. 예전의 날선 모습을 최대한 없애고 촬영을 하고 그런 노력은 있었겠죠. 누구에게나 제 옷을 입을 찬스들은 오는 것 같아요. 그게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뛰어드는 게 승패를 좌우하겠지만요. 뭐랄까, 그걸 매의 눈으로 찾은 게 아닐까요? (웃음)
기회가 왔다는 것도 아무래도 운이겠죠.
그렇긴 한데, 그 희망과 노력을 놓고 있었다면 잡을 수 있는 기회조차 오지 않았을 거예요.
나랑 안 어울려, 하면서 아예 시도조차 안했으면 그런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겠죠. 할 수 있을 거야, 내화시켜보자 했던 결과겠죠.
영화에서는 계속 개성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하다 보니 이 배우는 하고 싶은 연기하다가 운 좋게 러블리 이미지까지 생겼다고 쉽게 재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러블리 이미지를 얻기 위한 의도나 욕망이 겉으로 너무 드러나면 반감이 생길 수 있는데, 적정선에서 티 안 나게, 영리하게 노력과 욕망을 함께 병행했군요(웃음).
전 눈치도 빠르고 분위기 파악 잘하는 사람이에요(웃음). 그것이 방법이었을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런 게 아니라 타이밍을 적절하게 노리고 파악하는 것. 내가 지금쯤이면 이렇게 보여도 무리가 없겠다는 눈치를 잘 본 것 같고 분위기 파악 잘한 것 같고요. 이걸 넘어서면 내가 너무 과해보일 거야, 이런 것들 적절하게 조절한 것 같고요.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모습의 나도 이해해줄 수 있을 거야, 하면서 관객들의 이해를 무기 삼는 거죠. 사람들이 내 모든 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해받고 있다는 용기나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모든 일을 자신감 있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고 잘나 보이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저게 단점인데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지, 생각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그게 맞나보다 끌려가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뭐든지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이 그걸 보면서 끌려오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거죠.
데뷔 때부터 그런 자신감이 없어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연기를 시작한지 15년이 됐는데 앞으로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 현재 굉장히 만족해요. 이것이 최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요. 목표를 두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항상 지금 현재를 감사하게 살고, 오늘 하루에서 좋은 것만 찾으려고 하죠. 배우로서 계속 끊임없이 궁금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다양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겠죠. 그게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저도 어떤 좋아하는 외국배우를 보면서 한방에 실망하기도 하거든요. 끊임없이 궁금한 게 가장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그 부분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웃음).
2013년 5월 9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5월 9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