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박찬욱과의 10년 숙원작업
알려져 있다시피, <박쥐>는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가 10년 전부터 의기투합한 영화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촬영할 당시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를 캐스팅했고, 송강호는 10년 동안 기다렸다. 그 동안 송강호는 <복수는 나의 것>(2001)을 함께하고 <친절한 금자씨>에 특별 출연하면서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 지속적으로 동참했다. 서로의 발전과 변화를 가까이서 모색한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한들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조금은 흔들리지 않았을까? 기자의 속 좁은 의구심에 송강호는 단번에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2007년 가을 중국 벌판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촬영이 한창일 때 첫 시나리오를 받았다. 말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이야기의 구성이 완벽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완성도로 출연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10년 전부터 함께하자고 이야기한 영화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와는 상관없이 출연한 것이다.”
연기, 비우고 또 비워낸다
<박쥐>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는 신부’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문제적 캐릭터임이 분명한 인물이다. 상현은 뱀파이어가 된 후 종교적 신념과 육체적 욕망 사이에서 고통 받는다. 신앙심을 저버리지 못한 채 본능에 따라 친구의 아내를 탐하고 인간의 피를 갈구하는 그는 성자도 악마도 되지 못한다. 송강호가 고뇌하는 인물을 연기한 적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그는 매번 이데올로기(<공동경비구역 JSA>), 부조리한 사회(<살인의 추억>(2003) <효자동 이발사>(2004)), 광기(<남극일기>(2005)) 심지어는 팍팍한 생활(<우아한 세계>(2007))의 고통에 시달렸다. 그 중 뱀파이어라는 외피를 빌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사제 상현의 고뇌는 더욱 깊고 어두울 수 밖에 없었다. 배우의 고민도 그만큼 커졌던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송강호는 그렇기 때문에 상현을 연기하는 것은 그런 고민과 긴장감을 덜어내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캐릭터의 농밀함으로 다른 작품에 비해 긴장이나 몰입의 정도가 남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사제의 욕망이나 죄의식, 구원, 사랑이라는 테마들을 일부러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들어가게 되면 복잡한 생각을 빼내려고 노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연기했다.”
<박쥐>가 멜로물이되 멜로물이 아닌 이유
그렇게 치열하게 자신을 덜고 덜어낸 <박쥐>는 송강호의 첫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송강호가 그 동안 멜로 연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반칙왕>(2000), <밀양>(2007) 등에서 순애보를 펼친 바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이야기에 멜로의 정서를 슬그머니 던져주는 정도였지 멜로가 캐릭터를 움직이고 영화 전체를 감싸 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쥐>에서 상현을 점차 파국으로 몰고 가는 욕망의 한복판에 놓인 것은 태주(김옥빈)에 대한 사랑이다. 한 여자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내치지 못하는 상현의 감정과 그에 따른 비극은 그 자체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송강호가 처음부터 <박쥐>를 자신의 본격 멜로물로 점 찍고 출연한 것은 아니다. “<박쥐>가 멜로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선택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의 전체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하고 나니까 멜로적 구성이 뚜렷했던 영화였던 거다. 태주에 대한 상현의 사랑은 아주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욕망이다. 오랫동안 잊혀진 본능의 분출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단순히 여자만을 좇는 욕망이었다면 태주가 아닌 다른 여자들과도 쾌락을 나눴겠지. (웃음)”
2009년 4월 30일 목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2009년 4월 30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