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시사회로 보지 못해 신촌에서 일반 시사회로 봤다. 무비스트 서대원 편집장이 그때 같이 봤는데 <라디오 스타>를 보고 완전 중독이라고 격찬하더라.
몇 살이야? 편집장이?
서른넷.
서른넷 먹은 남자가 이 영화를 보면 아마 몸에서 전율이 일거야. 서른넷이면 나이 먹은 것도 아니지만 30대 중반 꺾어지면 그 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고단함에 대해 어떤 수고스러움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왕의 남자>가 극장에서 간판 내리기도 전에 <라디오 스타> 촬영에 들어갔다. 그만큼 이때 아니면 안 되겠다는 식의 절박함이나 판단이 섰던 건가?
그냥 한 거야. 야구선수가 타자석에 들어갈 때, 홈런 쳐야지 하고 어깨에 힘 빡 주면 3진 먹잖아. 그건 이승엽도 마찬가지야. 근대 나는 일상처럼, 노동하듯이 농부가 해 뜨면 밭에 나가서 밭 갈듯이, 영화감독은 해 뜨면 밖에 나가서 영화 찍는 거야. 시나리오 작가는 한 줄의 시나리오 쓰는 거고. 그냥 노동이지 뭐.
그러더라고. 나는 홈런 치려고 만든 영화 아니거든. 그냥 안타 2루타만 쳐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건데 <왕의 남자>는 뭐 안 그랬나. 그게 홈런 칠 영화로 보였어 처음에? 개봉하기 전에 아무도 관심 안 가진 영화잖아. 다들 <태풍> <킹콩> <야수> <청연>에 벌떼처럼 몰려들었잖아. <왕의 남자>는 이거 사극이야? 하면서 관심도 별로 없었지. 시사하고 나니깐 달라졌지. 근대 <라디오 스타>는 더 그래. 왕의 남자는 이준익이 소 뒷걸음치다 쥐 한번 밟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사하고 나니깐 아주 이게 난리야. 기자 시사회 때에는 영화 끝나고 박수 잘 안 나오잖아. 우리가 조장한 것도 아닌데, 조장해봤자 저쪽에서 몇 명치다 마는데 이건 끝나자마다 동시에 다 치더라고.
영화를 공개하기 이전에 영화사 내부에서도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측은 했었나?
아니. 요새 영화라는 게 젊은 관객들의 전유물로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있지만, 과거엔 지금 나이 먹은 양반들도 극장 앞에 줄을 서든 젊은이였잖아. 지금은 중심으로부터 비켜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훈훈한 영화가 될 정도로 찍은 거지. 근대 시사하고 나서 애어른 할 것 없이 울고 웃고 난리가 난 거야. (카메라기자를 향해) 자기 봤어? 안 봤다고? 그럼 감독이 오버한다고 하겠지 또. 근대 정말이거든.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다 따라 부르다니깐.
영화가 함유하고 있는 정서가 빈티지하기 때문에 세대를 막론하고 관객이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맞아 현대의 빈티지지. 빈티지라는 게 아주 오래돼서 빛나는 엔틱과 같은 컬쳐인데. 왕의 남자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빈티지였지. 그 빈티지는 오래전부터 있는 것들인데 그런 것들을 재발견 하는 빈티지가 <라디오 스타>야. 현대에 존재하는 빈티지를 표현해 낸 거야.
맞다. 빈티지는 어제도 오늘도 우리 주변에 하나의 정서나 문화로 있는 건데, 지금 <라디오 스타>가 갖고 있는 정서를 마치 새로운 발견이나 하듯이 언론에서 떠든다. 단지 감독님은 그걸 영화로 표현한 것뿐인데 말이다.
좀 그렇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원래 있는 거야. 그건 뭐냐면 현대인들이 눈앞에 있는 인기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얼마나 추구하는 가를 증명하는 건데, 예를 들어서 잡지 구독률 방송 같은 경우는 시청률, 인터넷은 조회수, 그런 어떤 인기에 너도 나도 다 매달려 사는 패턴들을 갖고 있으니까. 라디오스타 같은 경우 외면만 봤을 때는 인기 있을 게 없잖아? 안성기 박중훈이야 옛날에 인기 있었지 지금 인기 있나. 라디오라는 매체도 차나 타서 누가 틀어주면 들을까 내가 찾아 듣는 경우는 없잖아. 막 인터넷에 매달려 있거나 극장 가 있고 텔레비전에 매달려 있고. 있는 거에 대해서 좀 지나갔지만 그 가치를 폄하하지 말고 다시 한 번 가까이 잘 사귀어 보면 지금 인기 있는 것보다 훨씬 음미할 것이 많고 빛난다는 것을 이 영화로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었어.
그건 마치 친구와 같은 건데, 새로 사귄 친구는 설렘이 있지. 아니면 새로 사귄 친구라서 불편함도 있다고. 새로 사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아니면 직장 동료든 간에 새로 사귄 사람들에 대해서 호감 있게 잘 보이려는 그런 태도는 참 설레고 좋지만 자기가 아프다거나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 이런 부분들은 잘 보여주려고 하잖아. 근대 오래된 친구들 만나면 나의 구질구질한 일면을 소주 기울이면서 ‘시발 좆같다’이러면서 말할 수 있잖아. 그게 오래된 친구고. 친구는 오래돼야 솔직한 즐거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거지. 솔직하다는 건 즐거운 거야. 난 그걸 영화에 담았을 뿐이지 새로운 건 없지.
영화가 갖고 있는 정서가 빈티지지 낡은(지나간, 구닥다리) 정서는 아니잖은가? 낡은 것과 빈티지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낡은 것 안에 빈티지가 있는 거지. 낡지 않은 거에는 빈티지가 없지.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지나치게 서양교육을 무방비 상태로 수혈 받았기 때문에 우리 낡은 것, 동양의 것에 대해서 서양 애들보다 더 몰라. 서양 애들은 동양의 낡은 것에 대해서 환장을 해요. 좋아서 미치려고 해. 인사동 와 가지고, 우리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걸 갖고 너무 좋아서 이만큼씩 사서 가요.
그애들은 우리의 낡은 것을 너무 좋아해. 근대 우리는 서양의 낡은 것만 좋아해. 서양의 명품이라는 게 다 빈티지거든. 명품에 럭셔리에 기본이 뭐냐면 히스토리야. 역사가 없는 명품은 명걋?아니지. 우리가 알고 있는 버버리, 프라다, 샤넬, 에르메스 다 100년 200년 된 낡은 것들이야. 그 낡은 것들을 없애지 않고 자꾸 사용하니깐 동양 애들은 명품 보면 아주 환장을 하잖아. 그게 서양의 낡은 것, 빈티지한 것들이거든.
이준익은 대중영화 감독이다. 이준익의 영화는 대중영화다 혹은 상업영화다라고 말을 많이 하는데,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역사를 갖게 되면, 몇 십 년 후에 재평가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영화를 보고 웰 메이드라고 지금은 평가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빈티지 명작으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한국에선 웰 메이드란 단어를 잘못 쓰고 있어. 원래 서양이나 미국에서는 웰 메이드한 영화는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하지 않아. 그냥 so, so 그냥 그렇게 만든 영화를 웰 메이드라고 한다고. 난 외화수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들하고 같이 앉아 가지고 영화를 수입하는 가격을 이렇게 협상할 것 아니야. 깎으려고 한다고. 그쪽에서 이 영화는 엑설런트라고 막 추켜세울 것 아니야? 그러면 그게 뭐 엑설런트냐 웰 메이드지, 웰 메이드이니깐 좀 싸게 주라, 웰 메이드 밖에 안 된다고. 그저 잘 만든 영화밖에 안 된다는 거지. 그저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이 뭐냐면 과거의 기준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웬만큼 만든 영화, 그걸 웰 메이드라고 한단 말이야. 근대 한국 사람들은 그냥 웰, 잘 메이드, 만들었다라고 영어를 곧이곧대로 갖다 쓰는 거지. 난 웰 메이드란 말 정말 싫어해.
감독님 작품은 그럼 옳은 사용말로 웰 메이드인가요? 아니면?
그냥 열심히 만든 영화, 진심으로 만든 영화 이런 거지. 난 높은 기술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안 해. 기술적로 잘 만든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다고. 머리를 현혹시키고 눈을 현혹시키는 데는 기술적으로 잘 만든 영화가 유리하지. 하지만 정신을, 마음을 흔드는 영화는 기술적으로 잘 만든 영화로는 불가능해.
당신을 요즘 잘 나가는 감독들과 다르게 본 이유는, 다른 감독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따듯하기 때문이다. 요즘 감독들은 영화에서 자신이 세상을 시니컬하게 보고 있음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가.
그건 내가 가난한 자식이라 그래. 부잣집 자식들은 세상을 냉정하게 봐. 소위 쿨하다고 얘기를 하지. 부잣집 애들은 그게 멋있는 줄 알아. 근대 그 부자의 아버지 대부분은 정말 헝그리하게 살았어. 쿨하게 살지 않고 핫하게 살았다고. 근대 나는 가난한 집 자식이고 내 스스로 가난했기 때문에 난 쿨할 여유가 없어. 쿨은 잘 사는 사라의 여유야 나는 핫하게 살았고 지금도 핫해. 쿨할 시간이 어딨어 핫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뭘 가진 게 있어야 쿨하지. 쿨은 가진 놈들의 사치야.
시나리오가 좋은 거지. 난 연출하는 게 별로 없어.
시나리오하고 조금씩 상황이 다르게 나왔던데?
좀 다른 거지. 조금이야 다 달라.
현장에서 즉석으로 바꾼 건가? 박민수와 최곤의 감정이 시나리오보다 훨씬 잘 전달되게 나왔더라.
배우들이 잘 했으니까. 내가 연기한 것도 아니잖아. 나 참...
직접 카메오로 출연까지 해놓고.
난 되게 못했잖아. 거기서 연기 못한 배우가 어디 있어. 하다못해 실업청년, 지국장 봐봐. 죽음이잖아. 나만 못했어.
에이~ 그래도 다 감독의 조율 하에, 생각하에 그렇게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게 감독이 할 일이고
연출부 애들하고 회의해서 연출부 의견대로 현장에서 수정하고 반영해. 나는 머리가 항상 텅 비어있어. 사실이야! 텔레비전 나가서도 그렇게 얘기하는 데, 내가 그럼 거짓말 하겠어. 배우들, 연출부 애들이 다 한 거지. 생각을 해봐. 감독은 할 일이 없어. 시나리오는 작가가 쓰지, 연기는 배우가 하지, 촬영은 촬영감독이 해주지, 조명은 조명기사가 해주고 감독이 할 일 뭐가 있어? 그냥 ‘자 하자’ 이렇게만 하면 돼.(하하)
그래도 그들에게 없는 장점이 당신한테 있다면? 최석환 작가,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하고 오랜 작업한 거는 그들에게 없는 장점이 당신에게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팀을 이룰 수 있었던 거고.
그게 사실이야. 내 장점이 뭐냐면 그 사람들 돈 주고 사는 게 장점이야.
네?!
참 나, 답답하네 그려. 그게 그래 보여도 엄청난 내공이야. 아무나 못하는 거야. 안 그래? 나는 남을 딱 쳐다보면 그 사람 머릿속에 금방 들어가. 지금도 기자 양반 눈을 보고 쑥 들어가서 머릿속에서 한참 놀다가 나올 수 있어. 그게 공자님 말씀에 있어. 남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해라, 이거야. 난 당신이 나보다 더 난 점이 뭘까? 요것만 쳐다봐. 그걸 가져오면 내꺼 아니겠어? 나는 뱀파이어지, 남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 남의 머리를 파먹지 않으면 난 살 수가 없어.
정승혜 대표, 최석환 작가가 그렇게 오래 일을 같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당신한테 꼭 필요한 이유는 뭔가? 아직도 빨아 먹을 게 남아 있는 건가?(하하)
크리에티브하잖아. 창의적이고 감각적이고 논리적이고. 나는 한 입으로 두 말하고 앞뒤가 안 맞고 두서없고 그래.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을 살 수 있는 수환이 좋은 거다.
그래 수완이 좋은 거지. 재주가 뛰어난 것 아니야.
그런 뜻으로 말한 것 아니다. 당신 영화보고 나름 감동 먹고 운 사람이 바로 나다.
나 때문에 운 게 아니라 난 감독 노릇을 한 것뿐이야. 그들은 배우 노릇을 한 거고. 그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노릇’을 하도록 내가 감독한 거지. 아무것도 없어. 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당신의 감독관을 듣고 있자니 요즘 감독과는 역시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게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감독이라 하면 높은 권위가 주어진다. 창조하는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그건 잘못된 거야. 다 거짓말이야 날조된 거야. 감독이 뭘 더 잘해? 감독은 그저 남 하는 것 열심히 주워 담는 사람이지. 지가 영화를 다 안다고? 정말 그건 아니라고 봐. 나를 봐봐. 내가 영화를 배우기를 했어? 영화학교를 나왔어? 아니면 연출부 출신이야? 아니잖아. 정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독했겠어. 나는 영화배운 적도 없어. 그냥 열심히 하게끔 만들면 되는 거야. 내가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
그럼! 아마 제작사 출신의 감독은 전 세계에서 나 하나 일거야. 영화 수입하고 배급도 하고 마케팅까지 하다가 감독 된 놈이 나 밖에 더 있어?
그러고 보니 좋은 영화 많이 수입도 했다. <메멘토> <헤드윅>. 그러면서 소위 영화바닥의 더러운 면까지 다 봤을 텐데도 영화감독까지 하다니 놀랍다.
영화 정말 좋은 거지. 내 인생의 유토피아야.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내가 가방끈이 길기나 해, 부잣집 자식이기를 해. 그렇다고 빽이 있어 줄이 있어? 그냥 나 같이 머리가 비어있게 사는 사람에겐 영화판이 천국이야. 머리 좋은 놈들 다 모여 있자너. 서로 자기 잘났다고 난리여요. 꽝꽝 부딪치면 거기 부딪쳐서 떨어져 나오는 것들 난 주워 먹기만 하면 돼. 난 날로 먹는 사람이야. 제일 바보가 뭐냐면 똑똑한 척 하는 놈들이 정말 바보여요. 내 말이 틀리냐고 내 말이 거짓말 같아?
영화판이 징글맞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딴 데 갈 때가 어디 있어? 난 갈 때가 없어 여기밖에는. 여기서 그냥 버티고 사는 게 내 인생의 숙명이지.
빚이 정말 많았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왕의 남자>로 돈 벌어서 그 빚 다 갚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사실 <왕의 남자>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는 현실의 그 빈곤을 이기기 위한 오기와 정열이 집약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조금 걱정했다. 이젠 빈곤하지도 않으니 그런 작품을 또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데 <라디오 스타> 같은 경우 확실히 힘 빼고 찍었는데도 잘 나와서 맘 놓은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맞아. 감독도 이젠 하기 싫어. 이젠 화가를 할까 생각중이야.
차기작 2편이 벌써 예약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소리를 하다니.
약속이니까 하긴 해야지.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하긴 해야 되는데 언제든 약속하기 싫어지면 감독 안 하는 거지.
그럼 <왕의 남자>하고 <라디오 스타> 만들 때, 감독으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면에서 그런가?
응. 고민을 안 해. 왕의 남자 때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빚이 많아서 고민이 절라 되는데. 이제는 아 씨~ 고민이 안 되네. 그래서 대충 대충하는데 이니 이게 또 잘 나왔다고 그러니 어떡하냐고? 이 노릇을. 대충 했어~ 물어봐 배우들한테.
하긴 <왕의 남자>는 현 시대를 상징하고 인물관계도 꼬일 대로 꼬인 영화였다.
복잡한 영화지. 그때 내가 머리를 너무 많이 썼어. 그래서 지금은 머리가 텅 비었어. <라디오 스타> 봐봐. 아무 고민이 없어 쭉 따라가기만 하면 돼.
성공할수록 돈 욕심도 그에 따라 상승하는 건데 당신은 돈 욕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부와 명예를 한 번 맛보면 다들 거기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부와 명예를 더 거머쥐려고 노력하는데 말이다.
난 거머쥐려고 한 적이 없어. 쥐어주는 거지. 그거 거머쥐려고 하면 추해보이잖아.
최고일 때 더 욕심낸다고 추해보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니야. 뭔 욕심을 더 내? 사람이 제일 추할 때 언제냐면 가지려고 욕심 낼 때야. 나는 가지려는 욕심보다 더 위대한 욕심이 뭐라고 생각 하냐면, 뭔가를 이루려는 욕심, 그게 진짜 욕심이라고 생각해. 많이 가진 자는 이루기 힘들어. 많이 가진 자는 그걸 챙기려고 하지 뭘 이루려고 하겠어? 이룬다와 가진다는 건 다른 거잖아.
혹시 이루기 위해서 지금 가진 것을 일부러 버리는 것도 있나?
가진 게 있어야 버리지. 빚 다 갚아서 가진 것도 없어. 또이 또이야. 인생의 그냥 또이또이 된 거지.
그렇다면 <라디오 스타>가 대박이라도 나면 그때는 정말 갖게 되는 거다.
갖게 되는 거지. 그런데 가봐야 알지, 아직 대박 안 났잖아. 그건 모르는 거야. <타짜>가 극장수도 훨씬 많아.
맞다. 극장은 얼마나 잡았나?
몰라. 한 300개 된다는데 모르지. 나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예측하는 걸 싫어해. 앞으로 이런 돈이 들어올 거니까 뭘 해야지 하면서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해 본적이 한 번도 없어 절대로. 인생계획 없이 막 살았기 때문에. 그냥 앞에 있는 것 열심히 했지. 내일은 뭘 해야겠다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없어. 거대한, 원대한 포부 난 이런 걸 황당한 과대망상이라고 봐. 눈앞에 있는 것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원대한 포부만 백날 갖고 있으면 그게 허상 방탕한 생활 아니겠어? 나는 눈앞에 있는 것 열심히 하다보니까 결과적으로 부와 명예가 주어졌다고 다들 그러네. 나는 별로 안 번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부와 명예 이런 것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시하는 편인가?
그렇지. 나는 돈보다 관계를 더 중시해. 관계를 포기 할래? 돈을 포기 할래? 하면 난 돈을 포기해.
그래서 그렇게 특정 몇몇 사람들과 오래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건가?
그럼. 10~20년 이렇게 같이 일했어. 이 사무실(충무로에 있는 영화사 아침)에서만도 10년인데.
그래서 그런가? 당신 영화는 세련되기보다는 투박하다. 인간관계의 진실함을 예쁘게 포장하기 싫은 저항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적 만듦새가 투박하다는 언론의 평가를 들을 때마다 섭섭한 마음이 들듯하다.?
뭐가 섭섭해. 스타일인데. 매끄럽게 잘 만드는 것 그거 어려운 일 아니야.
일부러 매끄럽게 안 만든다는 말인가?
억지로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깐 주어진 대로 만드는 게 장땡이야. 억지로 잘 만들려고 용을 쓰고 그러면 부작용 나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팀원의 스타일이 물 흐르듯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영화. 나는 내가 만드는 영화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냥 그날그날 사이좋게 찍다보니까 이렇게 나온 거지. 나 이런 영화 만들어야지 하면서 만든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까 만든 거지.
사실, <왕의 남자> 때는 안 그랬는데 <라디오 스타>를 보고 영화를 보는 동안이라도 세상을 따듯하게 보게끔 만들어준 당신을 존경하고 싶어지더라. 아니 존경한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감정이 부쩍 더해진다. 그래서 인터뷰하기가 싫었다. 존경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게 부담스럽더라.
뭐가 어려워. 고마워. 다 친구야. 20살 먹은 제작부 막내나 조명부 막내나 나이 차이 나봤자 100살도 안 되는데 그게 다 친구지 안 그래?
얘기를 전환해서 당신은 영화 만들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하는데 <왕의 남자> 같은 경우 무명의 이준기를 진짜 배우로, 스타로 만들어준 건 이준익 감독, 당신 아닌가?
아니야. 그런 소리 들으면 닭살이더라.
요즘의 이준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일각에서는 아이돌스타화 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잘하고 있지. 열심히 하잖아. 이제 1년 밖에 안됐잖아. 1년 밖에 안 된 사람을 가지고 그 안에서 평가하려고 해. 갈 날이 몇 십 년이나 남았는데. 그 1~2년 동안의 현상만 갖고 그 사람을 재단하려는 것은 아주 성급한 판단이야. 10년 이상 두고 봐야지.
그래서 10년 이상의 경력으로 검증받은 배우들하고 대부분 작업하는 건가?
듣고 보니 그렀네? 그래야 말이 통해. 10년 이하가 되면 막 설명을 해야 되잖아. 10년 이상 되면 설명이 필요 없잖아. 읔, 악 하면 다 알아서 가는 거야. 그거 붙잡고 나는 이런데 너는 어떠니? 그거 다 귀찮고 피곤한 일이야.
이번 영화는 감독이 개인적으로 안성기, 박중훈 팬이어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얘기들 하더라고. 맞아 난 안성기, 박중훈 팬이야. 감독이기 전에 팬이야. 내가 감독하는 건 어떤 권력이나 무슨 욕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밥벌이지.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돈 안주면 하겠어? 남의 돈 쓰는 게 얼마나 겁나, 남의 돈 갖고 쓰면 먹고 살 밥 주지. 잘 찍으라고 돈 주지. 이런 천국이 어딨어.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도 만나지. (하하)
혹시라도 이 영화를 기회로 안성기 박중훈을 대중이 다르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면이 있나?
그럼. 그 사람들은 이 사회, 이 국가가 만들어 낸 보물이라고 생각해. 개인 안성기, 개인 박중훈이기 이전에 한 나라에서 20, 50년 동안 중심 잃지 않고 배우로 쭉 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그 수많은 부침 속에서 인기에 시달리고 소외 받고 비난 받고 때로는 환호 받고 이게 막 뒤섞인 상태에서 수십 년을 그 업에서 떠나지 않고 지탱하는 힘. 그거는 정말 존경할 만한 거라고.
이들을 또 다시 대중의 스타로 위치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이번 영화하면서
그거는 하다보니까 된 거지. 그걸 만들려고 한다고 되겠냐?
대중성이라는 것은 위대한 거야. 대중적인 말에 대해서 사람들이 2가지 말로 평가를 하는데. 하나는 통속적이다, 속물적이다 이렇게 폄하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대중성이란 것은 이 시대의 어떤 교집합이기도 한 굉장히 넓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위대함이라고. 난 대중영화 감독이고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내 입으로 스스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작가주의 예술영화 감독으로서의 반대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상업적인 심지어 돈 밝히는 그런 사고방식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업영화 감독이 작가주의 감독보다 세상을 폭 넓게 본다고 봐. 나는 폭 넓은 가치에 대해서 더 큰 의미를 둔다는 거지. 작가주의 영화는 폭이 좁잖아. 좁고 깊지. 대중영화는 넓은 거라고.
상업성만 추구하다 보면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 영화에는 현 사회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들어있다. 그것도 아주 대중적으로 말이다. <라디오 스타>에서 나온 매니지먼트 회사 이름이 ‘스타 팩토리’인 게 아주 의미심장하더라. 해석해 보면 스타 제조공장이라는 뜻 아닌가?
(하하) 맞아. 웃기지. 근대 작가가 그렇게 썼으니까 찍은 거지.
또 대충 넘어가지 말고 대답 좀 해주라. 영화 안에 일정하게 현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미리 갖고 영화를 찍는 건지 궁금하다.
그런 강박은 없어. 대중영화의 재료가 되는 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유가치 한 거든, 무가치한 거든 어떠한 가치를 거론하고 있어. 그것을 지나치게 상업적 목적성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문화적인 어떤 목적으로 활동하는 가치의 사람들은 비슷하게 존재하는 게 세상이라고. 그렇다면 세상을 넓게 설명하려는데 한 쪽으로 치중돼서 얘기하면 세상을 다 얘기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쪽저쪽 그쪽 요쪽 고쪽 다 아울러서 찍는 거야.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가수 최곤과 매니저 박민수의 관계가 <러브 액츄얼리>하고 비슷하더라. 거기서 아이디어를 따 온 건가?
러브 액츄얼리의 노인네 락가수 부분에서 상황이 좀 비슷하긴 해. 나는 근대 그거에 대해 의식을 안 했어. 난 아이디어를 따오는 스타일은 아니야. <황산벌> <왕의 남자>는 그럼 어디서 따온 거야? 족보가 없잖아 안 그래? <라디오 스타>도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 데 별로 의지가 없었어. 난 그런 사람이거든. 결과적으로 닮은 구석이 있지만 세상사는 사람이란 게 지구 반대쪽이든 이쪽이든 다 비슷하지 않겠어. 산다는 게.
좀 다른 질문을 하자면 이번 <라디오 스타>하면서 홍보팀 속을 썩인다는 소문을 들었다. 인터뷰 스케줄을 홍보팀과 의논하지 않고 마구 잡아서 스케줄이 꼬여서 홍보팀이 난리라고 하던데.
나 미치겠어 그것 때문에. 홍보팀이 알아서 스케줄 미리 다 잡아 놓은 상태에서, 그러니깐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뒤늦게 온 매체에서 하자고 하면 그 동안 감독님 잡아 놓은 스케줄이 많아서 안 된다고 못한다고 말하면 기자들이 나한테 바로 전화하는 거야. 인터뷰 하자고.
거절을 해야지 거절 못해서 스케줄이 그렇게 꼬이는 것 아닌가? 괜히 홍보팀만 욕먹게 되고. 우리도 오늘 오후에 잡혔다가 이런 이유로 시간이 오전 11시로 갑자기 땡겨졌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다.
거절하지. 그런데 사람들이 막 우기는 거야. 그럼 에이씨~ 하면서 오히려 화 낌에 하는 거야. ‘그렇게 우겨? 알았어 그럼, XX 그럼 해’ 그렇게 된 거야. ㅜㅜ 나중에 홍보팀이 뭐라고 하지. 이렇게 스케줄 잡아놨는데 다른 데서 그런 식으로 잡아 갖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나를 혼 내. 그래서 보면 스케줄이 박치기 나 있는 거야. 같은 시간에 더블로 잡혀 있는 거지. 그래서 홍보팀이 이쪽저쪽 전화해서 바꿀 수 있는 데는 바꾸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기는지 몰라. 막 우겨! 이번 기회에 얘기 좀 해줘. 우기지 말라고. ㅠㅠ
그런 쪽에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고?
응 맞아. 사실 무신경해. 그런 쪽에선 무책임한 거지.
그런데는 무책임하면서도 그렇게 빚지고 있을 때도 직원들 월급 밀린 적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월급 준 비결이 뭔가? 영화관계자들이 그 비결을 많이들 궁금해 할 것 같다.
빚을 못 내면 바로 장암평 가서 차 팔고 버스 타고 다니는 거야. 차를 몇 번이나 팔았는데 열 번도 더 팔았어. 사고팔고, 사고팔고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하면 빚만 더 늘게 되는데?
빚만 늘어도 그 빚 한 번에 다 갚았잖아. 나 혼자 덮어쓰고 나만 가면 되는 것 아니야. 나 때문에, 내 일을 하는데 있어 직원들 봉급 안 준다는 것은 민폐 끼치는 일 아니겠어. 다 혼자 다 덮어 쓰면 죽어서도 편하게 갈 수 있잖아. 그리고 돈을 많이 안 써. 룸살롱 같은 데서 술 먹는 그런 인간도 아니고. 안 쓰면 장땡이야. 술 먹긴 먹는데 절대 비싼 데서는 안 먹지. 그 돈 있으면 직원 봉급을 줘야지, 어디 비싼 곳에 가서 술 쳐 먹고 그래.
<왕의 남자>는 몇 개월간 극장가를 달군 진정한 흥행영화라고 생각한다. 비교를 하자면 <괴물>은 한 달 만에 그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한 달 만에 잠잠해졌다. 왠지 흥행 시스템이 기형적으로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괴물>은 제작비 100억이 넘는 영화잖아. 그러니깐 모든지 블록버스터로 왕창 빨리 가야지. <왕의 남자>는 블록버스터가 아니잖아. 책도 그렇잖아. 베스트셀러가 있고 스테디셀러가 있어.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대로 그 시대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 아니겠어. 스테디셀러는 그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좀 넓게 영향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해. 그렇다고 내 영화가 스테디셀러라는 뜻은 아니야. <라디오 스타>는 그랬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아무리 영화판의 파이가 커졌다고 해도 뉴스거리는 한정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데 현 언론들은 몰아주기식 뉴스들을 왕창 쏟아낸다.
그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그 모순을 안고 가는 거지. 개선의 방법이 없어. 내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난 열정적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관적이거나 비난적이지 않아. 자기 스타일에 맞게 자기 일을 하는 것뿐이야. 예를 들어서 영화계의 이런 문제점이 있으니까 이건 이렇게 개선 돼야하고 저렇게 개선 돼야한다고 백날 떠들어봤자 개소리 하는 거지. 그냥 시장의 논리대로 가는 거야.
감독님도 치열하게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번 추석만 봐도 <라디오 스타> 포함해서 한국영화 경쟁작끼리 치열하게 개봉관 수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열심히 하는 거지. 내가 배급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만 하고 있으니까, 거기서 열심히 영화만 찍는 거야. 그 찍은 영화가 배급 구조 안에서 그 조건대로 소비되는 거지. 그 조건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야. 그건 극장 사람들 일이지.
제작자 시절부터 알고 있던 문제여서 이렇게 초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지금 배급하는 사람들이 배급하기 전부터 배급하던 사람이라, 상업주의의 어떤 패러다임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 그러한 부침을 아주 오랫동안 아주 고단하게 정면으로 부딪쳐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근대 지금은 부분적으로 변화가 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은 우리 일류의 문제지 충무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거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인류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의 모순이지.
언론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매체들이 생기면서 자기 살 깎아먹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맞아. 어지러워. 그래서 보기도 힘들어. 대충 보고 말아. 어차피 과소비지, 정보의 과소비. 언론이 많아서 그래. 이것도 자본주의 시장논리 앞에서 무한경쟁을 하는 거기 때문에 어차피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는 거고 없어질 영화는 없어지는 거지. 나는 이거에 대해서 저래야 된다, 이래야 된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 없다고 봐. 이젠 놔둬라, 라는 주의지.
그 많은 언론 매체가 생기면서 발병된 문제가 한 특정 영화에 대해 일관된 기준으로 너무 많은 기사들을 쏟아낸다는 거다. 달리 말래, 관객들의 시선을 잘못 이끌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건 어쩔 수 없어. 클릭을 하든, 구매를 하던지 간에 그건 어차피 민심의 반영이야. 독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그렇게 몰빵해서 쓰겠냐고? 독자들이 원하니까 그렇게 올인해서 쓰는 거잖아. 기자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는 거지. 시장의 논리이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달려가는 거지. 그냥 사회 전체가 다 몰려가는 거야. 알맹이 없이 떼거리로 가는 거야.
연합뉴스의 윤고은 기자가 <라디오 스타>를 보고 평을 남긴 걸 봤는데, 이준익 감독에 대해, 그는 웅크리고 있던 호랑이였고 숨어 있는 용이라고 표현했다.
아 나도 그거 봤어. 닭살이야. 내가 와호장룡이야 왜 그래 정말(하하). 닭살이었지?
말을 만들어 낸 거지. 내가 얼마나 초라한 인간인데.
우리 무비스트 이희승 기자는 <라디오 스타>를 보고 정말 속된 말로 개거품 물고 이 영화를 ‘의무관람가’라고 평했더라.
얘기 들었어. 그거는 나름대로 가치 있는 영화라고 알아주는 거여서 너무 고마워. 지금 한국영화의 현실이, 지금 나오는 영화들의 내용들이 전 세대에 걸친 공감대를 표현해 주지를 못해. 젊은이들의 멜로드라마를 어른들이 봤을 때 즐길 수 있어? 그렇지 못하잖아. 지나친 물량공세의 액션영화가 나왔을 때 전 세대에 걸친 공감대를 형성해서 가슴을 울려줘? 그렇지 않지.
<라디오 스타> 같은 경우는 볼 게 없어 사실. 멋진 미남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영월이라는 시골로 내려가서 조금만 라디오 부스 안에 들어가 쿵짝쿵짝 하는데도 가슴을 울렁하게 만들잖아. 내가 어쨌든 다른 감독들에 비해서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세상을 많이 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한 것뿐이지. 그런데 들어보니 그 안에서 서서히 시간이라는 게 느껴지는 거야. 컨셉, 설정에 현혹되는 게 아니라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두 인간의 인생유전이 보일 때, 자신의 인생이 비추어서 다가오는 느낌. 그런 것이 영화라고 나는 생각해. 휘황찬란한 볼거리, 그런 거는 한 번 보고 나서 다음에 또 다시 봤을 때 그때의 감흥이 있느냐? 그렇지 않잖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매혹>은 제목부터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 정서와는 다를 듯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어. 찍어봐야 알겠는데 난 멜로 한 번도 안 찍어봐서리. 격정멜로라고 말은 이렇게 벌써 해놨는데. 격정적으로 열정적으로 멜로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설렘임의 원천이라고 보거든. 그냥 설레
확실한 건 <라디오 스타>보다 감정의 진폭이 더 크다는 건가?
그럴 것 같은데. 삑사리 나면 나도 몰러. 지금 쓰고 있는데 작가가 못 쓰고 있어. 아! 미치겠어~ 쓰고 있어 그거 나오면 그때 꿍딱꿍딱 또 해야지
동시대에 활동하는 한국 감독들 중에서 좋아하는 감독 있는가?
임상수. <바람난 가족> 보면 아주 죽음이야. 그리고 홍상수. 상수들이 좋아. 봉준호, 박찬욱도 좋고. 봉준호, 박찬욱 하고는 옛날에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해봐서 잘 알아.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멘탈을 잘 알아.
듣고 보니 본인의 영화 스타일하고 완전 반대되는 감독들을 좋아한다.
다르지.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야. 걔들 만나면 걔네들 머릿속에 쑥 들어가서 하하~ 얼마나 똑똑한데. 나 아이큐 두 자리야. 아이큐 세 자리 보면 너무 존경스러워. 열심히 배우지. 머리 나쁜 사람을 팔 게 없어 동정심이라도....
(전체 폭소)
나는 영화를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는 거라고 생각해. 몇 만 들어야지, 들어야 된다, 이런 건 별로 신경 안 쓰여. <왕의 남자> 만들 때 천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이나 했어? 한 300만 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라디오 스타>도 그런 흥행적인 바람보다 이 영화의 정서를 많이들 공감해줬으면 해. 그게 내 바람이야.
취재_2006년 10월 2일 월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_ 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