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 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날리던 10대 시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무모함은 사회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게 무서워 허세 부렸던, 얄팍한 연극이었고 젖비린내 나는 반항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가고 싶지만, 설사 돌아갔다 해도 우리네 청춘은 분명 잔혹할 것이다.
박건형, 이천희, 신동현(MC몽) 이들 셋이 만나 탄생한 <뚝방전설>은 피와 땀이 얼룩질수록 끈끈해져 가는 사내놈들의 우정을 그들의 육체에 기대 그리고 있다. 한번 쯤 놀아본 당신이라면 정권, 성현, 경로가 거쳐 간 그 곳을, 달콤쌉싸름한 소주 한잔에 추억할지도 모른다. 전철역 근처의 허름한 술집 구석에 앉아 지나간 그 시절을 전설로 재구성한다 해도 탓하는 이 아무도 없다. 지금을 살기 위해서라도 비루한 청춘은 로망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으니까.
기자: 서로가 서로를 봤을 때 <뚝방전설>의 주인공 캐릭터에 꼭 맞는 사람이 캐스팅됐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신동현(이하 동현): 처음에는 박건형씨를 어렵게 생각했었어요. 그러다가 캐스팅 된 후 처음으로 삼겹살집에서 만났는데 리더십도 강하고 상대방을 포옹할 줄 아는 남자더라고요. ‘몽이씨’ 이러면서 굉장히 예의 바르게 잘해주셨어요. 그러고 나서 뒤풀이로 호프집에 갔는데 거기서 모든 스텝들을 압도하면서 건배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저 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저 기에 내가 지면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를 악물고 영화 촬영에 임했는데 역시나 이길 수 없는 상대였어요. 재치나 유머면에서 다요.(하하)
기자: 박건형씨가 의외로 유머가 있나 봐요? 소문에 의하며 무지 과묵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동현: 그게, 이 형은 유머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남들이 봤을 때는 유머죠.
동현: 영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주인공 셋이 그리 똑똑한 애들이 아니어요. 고등학교 때 막나가던 애들이, 친구들끼리 의리는 좋은데 생각은 없는 거죠. 이들의 모습이 실제 우리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모습과 비슷해요. 사실, 뚝방을 우리가 접수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곳은 우리의 자존심이지 추억이 어린 소중한 장소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죠. 일명, 아지트!
이천희(이하 천희): 우리 아지트,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남들한테 물려주고 물려줄 수밖에 없었지만 정권이가 돌아오면서 그걸 되찾고 싶었던 거여요.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곳이 더 큰 세력에 의해서 사라지면 우리한테도 추억이 사라지는 거니까. 맞잖아!?
동현: 너무 어렵게 말한다. (기자를 보고) 어렵지 않아요?
천희: 어려우세요?
동현: 솔직히 말해. 솔직히 알아들으셨어요, 누나??
기자: ..........
천희: 그냥 그렇게 얘기해 그럼
동현: 뚝방이란 곳은 솔직히 의미가 없어요. 우리 영화는 뚝방을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래요. 우리 셋이 생각 없이 싸우고 이끌려 다니는데 그 안에 친구들끼리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우리도 느꼈던, 관객들이 느꼈던 그런 추억들을 풀어나가는 영화여요.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무시를 당하자 다시 예전처럼 뚝방을 접수하려고 뭉치게 된 거죠. 학교 접수하듯이 말이어요. 그게 시작인거죠. 아~ 말 길어지네.
천희: 야, 너 너무 길어!
동현: 어머, 나 혼자 영화를 다 설명하려고 한다.
천희: 왜 우리가 뚝방을 차지하려고 하는 거야 문제는. 추억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박건형(이하 건형): 전설이라 함은 뻥인지 진짜인지 확인되는 바가 없잖아요. 우리 뚝방전설도 마찬가지 어요. 우리 셋이서 18:1을 하건 107:1을 하든, 무얼 했던지 간에 누구다 다 각자 나름대로의 전설이 있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전설 없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왜 뚝방에 가느냐가 아니고,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천희: (말을 받아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우리만의 마지막 추억이요. 그곳에서의 마지막 추억이니까. 이기든 지던 뚝방을 차지하든 간에 어쨌든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는 그 추억 하나만을 위해.
이때부터 어느새 기자와 배우들은 서로 말 놓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또래가 비슷해서 그런지 그 떠들썩한 분위기에 기자도 정신없이 휘둘렸다.
기자: 참 어렵게 질문의 답이 정리가 되네요(하하). 뚝방은 상징적인 의미가 큰 곳이다. 그곳을 지켜야만 주인공 셋에게 앞으로 살 이유가 생기고, 그 이유 때문에 존재가치를 얻게 되는 것 같더라.
천희: 그거여요 기자님!
동현: 알면서 왜 질문하셨어요?
건형: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아시네.
기자: 입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서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다. 영화에서 뚝방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인데, 나에게는 에로틱한 장소로 기억된다. 지금의 동부간선도로가 생기기 전의 공릉동 뚝방 근처에서 어린 시절 살았다. 언니오빠들 거기서 데이트하는 것 몰래 훔쳐보곤 했다. 말하고 보니 부끄럽네요.
천희: 그건 뒷산이지.
기자: 아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뚝방이 그런 곳으로 이용됐다.
동현: 맞아~ 뚝방에서 언니오빠들 거시기 많이 했다. (호호)
기자: 지금 세 분 각자에게도 영화에서의 뚝방 같은 곳이 학생시절 있었나요?
동현: 저는 오금동 굴다리요.
기자: 에? 거기서 뭐하셨어요?
동현: 첫 키스요. (빙그레 미소 지으며)
기자: 몇 살?
동현: 중 1때죠.
천희: 너무 이른 것 아니야?
동현: 그 당시 노래방이 처음으로 나왔는데 500원짜리 넣는 코인기계였거든요. 너무 신기해서 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요. 근대 우리가 돈이 많나요? 3000원어치 바꿔서 7곡 해달라고 조르고...
천희: 일절 중간에 잘리는 일 절대 없고.
동현: (말을 다시 받아서) 그래 맞아. 그때는 노래방에서 헌팅이 있었어요? 몰라? 기억나지? 너도 했지?(천희를 바라보며) “노래 같이 안 부르래요?” 하면서 했어 안 했어?
천희: ............... 했..어... 난 고등학교 때 했어. 너처럼 중학교 때는 아니다.
동현: 거봐! 했잖아. 우리가 그 세대여요. 마지막 곡으로는 ‘이제는 안녕’ 이런 걸 부르거나 ‘내일은 늦으리’ 이런 것, 꼭 부르곤 했거든요. 오금동 굴다리가 뭐냐면 고가도로 밑에 요만한 구멍이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서 놀았는데 중3짜리 누나들도 거기 와서 놀고 그랬거든요. 그 누나들이 사실 좀 날라리 누나들이었는데...
건형: 너 진자 놀았구나!?
동현: ...쩝 여튼, 그 누나들이 소주를 사갔고 온 거야. 소주를! 그때는 너무 충격이었죠. 게임에서 졌는데 벌칙이 키스였던 거야. 진짜로 저 요러고 있었어요. (눈 꼭 감고 떨떨 떠는 흉내를 낸다) 진짜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두 번째 키스는 좀 늦게 고등학교 때 해봤고. 여하튼 그때의 충격으로 누나들을 찾으러 노래방을 계속 드나들었죠. 하하~
천희: 몽아, 너의 아지트가 노래방이야? 어디야?
동현: (당당하게) 오금동 굴다리!
천희: 나는 놀이터. 놀이터는 어디나 있겠지만. 저는 집 앞의 놀이터에 사진 찍으러가 가고 그랬어요. 공부하다가 바람도 좀 쐴겸.
기자: 에이~ 천희씨 밤새 놀이터에서 놀았던 거 아니고?
천희: 진짜로 공부하가다 나간 거여요.
기자: 건형씨는 어디였어요? 혹시 대학로의 연극무대 같은 곳이었나요?
건형: 이 영화에서 나오는 뚝방처럼 아지트가 사실은 없었어요. 사실 학생들한테 하지 말라는 것들은 많았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잖아요. 저는 국제로라장이나, 대학로에 그 당시 생긴 소주방에 많이 갔죠. 혹은 마로니에 공원.
기자: 질문이 쪼매 삼천포로 빠진 것 같지만,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뚝방전설>이 70년 대에 태어난 세대들을 위한 노스탤지어 영화 성향이 강해서였어요.
동현: 맞아요. 영화에서 내가 HOT노래도 부르니까.
동현: 지금 그 질문이 대답까지 포함되어 있네요. 아니 대답까지 같이 하면 어떡해!
천희: <태풍태양> 때 했던 액션하고는 지금의 액션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죠. 솔직히 그때는 저 혼 잘 타면 그만인 액션이었는데 지금 액션에는 합이란 게 있고, 또 합이 무시되는 액션도 있나보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이쪽에서 날라 오는 걸 나도 모르게 잡고 때리고 하는, 정신없는 액션이어서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어요. 정신을 놔버리면 정말로 때리게 되고 맞게 되는 거니까.
기자: 주변 스텝이 그 때 눈에 들어오나요?
천희: 안 보이죠. 저하고 싸우는 사람 밖에는 안 보여요.
기자: 모든 캐릭터에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정권, 경로 캐릭터에 비해 천희씨가 연기한 성현은 모호한 느낌이 강했어요. 액션 또한 경로를 보호하기 위한 액션에서 출발하다 보니 특징과 개성을 자제한 것 같아요. 거기다 내레이션으로 전체적으로 극을 이끈다는 점에서 서술자의 입장이 많이 개입되고 그러다 보니 성현은 극 안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되고...
천희: 그것도 역시 성현 캐릭터에서 나온 액션이고. 액션 자체가 보기 좋은 멋있는 액션도 아니고. 늘 항상 제 주위에 있는 경로 찾으려고 싸우다가 경로 때리는 사람 때리고, 날 때리는 사람도 때리는 액션이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로 가는 거고. 사실 성현이는 좀 심드렁한 느낌이 강한 아이인데 그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건지조차도요. 그런데 하면서 알게 됐어요. 안에서 많이 움직이는 성격이라는 것을요. 밖으로는 별로 느낌을 표현하지 않는데 경로가 맞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어? 쟤 맞고 있네?’ 이런 느낌하며 또 보여주려고 했죠.
기자: 건형씨와 동현씨에게는 없는 배드씬도 이번 영화에 있더라고요. 두 분이 부러워하지 않던가요?
천희: 정권(박건형)이 같은 경우는 우선 여자배우가 촬영장에 있는 생각을 못하고 촬영을 했으니까. 50회 차까지 저는 계속 여배우랑 호흡하면서 찍고 있었는데 건형이는 마지막 촬영장 끝물에 가서야 여자배우를 처음 봤죠.
건형: 우리 영화에서 63회 차 때, 여자배우하고 처음 촬영해봤어요.
(좌중폭소)
기자: 몽이씨는 연상의 여인과 짝을 이뤘던데,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동현: 솔직히 말해요? 감정 잡기가 힘들었어요. 실제로도 완전 누나뻘인데다 너무 친해진 거여요. 친해지니까 더 누나 같은 거야. 둘이 굉장히 편하게 진행했어요. 어려운 게 있다면 아무래도 내 감정을 맘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어 않아 있으니까. 술을 먹고 찍는 장면에서 진짜 술을 못하는 데도 진짜 술을 마시고 찍고. 맥주 2병마시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9시부터 술 취한 연기를 하려니까.
기자: 몽이씨가 방송에서 보여준 엔터테이너적인 모습은 매우 솔직하고 밝은 이미지였잖아요. 실제 몽이씨 성격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재능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졌을 때는 단순히 다재다능한데서 멈추면 안 되잖아요. 매체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라도 연기를 하면서도 자기검열을 끊임없이 했을 듯해요?
동현: 그렇죠. 의심을 하고.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감독님이 있는 이유이니까. 저를 잡아주고 동료 연기자들 보면서 배우고 느끼고 그러면서 친구라는 관계가 강해지면서 스스로 따라가는 것들도 생기더라고요. 스스로 알아가는 게 정답이니까.
기자: 소문에 의하며 촬영장에서도 그렇게 시나리오를 보고 또 보고 했다던데?
천희: 현장에서도 (시나리오를) 보고 또 보면서 혼자 감동 받아서 박수치고 있었어요.
동현: 그냥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어요. 솔직히 영화하면서, 찍으면서 정말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붙었죠.
동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있겠죠. 저를 싫어하는 적은 분명 어디든 있을 테니까. 당연한 거죠. 그런 거에 귀 얇아지는 스타일은 아니고 가슴만 약간 두근거리는 스타일이라서. 대 놓고 ‘너 이 새끼, 싸가지 없는 새끼네. 너 여기가 어디인데 충무로에 나타나’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어 서리. 근대 그런 것 같아요. 나를 필요로 해주는 곳도 있구나, 이런 느낌은 받은 적 있어요. <뚝방전설>이 끝나고 시나리오 몇 편을 받았는데 나 같은 캐릭터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연기에 더 욕심이 생기고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비중이 커지더라고요. 나는 내가 니마이라고 생각 안 해요. 나는 내가 봐도 애가 쌈마이어요. 솔직히 니마이는, 내 얼굴로는 안 되겠지만, 대사 두 줄이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실력이 있어야 니마이도 할 수 있는 거겠지만 나는 쌈마이 솔직히 자신 있어요. 아니, 자신 있다는 게 아니라 자부심이 있다는 거여요. 싸구려 같은 연기, 오버하고 술 먹고 난동 피우는 연기하고, 웃고 즐기고 욕하고. 이거는 내 경험에서 분명 나온다고 봐요. 나는 내 아픔 얘기하는 거고 그 속에서 1명이라도 날 보고 조금이라도 감동을 느끼며 그걸로 성공이지라고 생각해요.
기자: 박건형씨한테도 솔직하게 질문할게요. 괜찮죠?
동현: 안돼요. 이 형은~ 하하
기자: (조심스럽게) <생날선생> 왜 찍으셨어요? <댄서의 순정>이라는 성공적인 데뷔작을 찍은 후의 선택치고는 아니다 싶었어요. 기획영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유치한 구석이 많았던 영화인데 실제 박건형씨와는 별로 안 어울리는 장르였고 소재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건형: 영화가 잘 된다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자님은?
(일순,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자........)
동현: 내가 볼 때 질문의 요지는 그거야. 형의 캐릭터는 이렇게 굳혀져 있고 더 안정된 길을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생날선생> 같은 이미지를 선택했냐는 거지. 쉽게 말해서 그렇지 않아요? 나도 솔직히 형, 그 영화 보고 쫌 그랬어.
천희: 넌 원래 그런 것 좋아하잖아?
동현: 나 (돈 내고) 봤잖아. 아니 몇 개가 많이 유치한 게 있어요. 형은 잘 했는데 영화가 이상한 걸 기대하게 만들어.(하하)
기자: 건형씨 질문이 맘에 안 들어요?
건형: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이 어디 있어요? 질문 하고 싶은 사람 마음이지!
동현: 그 말 멋있다~
건형: 안정된 길을 배우 스스로가 느끼면서 간다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하는 것만 골라서 안정된 길로 간다는 건 내 자신에게 용납이 안 되는 문제에요. 도전을 좋아하고, 깨지더라도 부딪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면서 배우는 게 있다고 저는 믿어요. 물론 최경희기자님처럼 질문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너 왜 그거 했냐?’ 이렇게 다이렉트로 질문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고요. 그런데 그게 어때서요? 내 맘이지. 내 몸 같고 내가 연기하는데 그게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 아니어요? 저는 별로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편하고 안정된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저는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이 젊은 나이에 말이죠.
기자: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유들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 않은가? <댄서의 순정> 이후 많은 이들은 박건형이 좀 더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예를 들면 지금의 <뚝방전설> 같은 작품성과 상업성이 고루 접목된 완성도 있는 작품을 곧장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생날선생>을 거치고서야 이루어져 나름 의아해서 한 질문이다.
건형: 왼쪽 얼굴이 잘 나온다고 해서 왼쪽만 카메라에 들이대고 싶지 않아요. 그럼 오른쪽이 정말 못생겨져요.
동현: 오~ 그 말 멋있다. 내가 내일 써먹어야지!
건형: 못생기고 부족한 부분을 자꾸 드러내야지,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여자나 남자나 살을 빼고 싶으면 그 살을 드러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걸 커버하기 위해 펑퍼짐한 옷을 입으며 그 살이 옷에 맞게 불어나거든요. 오히려 단점을 드러내야지, 물론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있겠지만, 부족하지만 내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그 리스크 때문에 도전조차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기자: 소위 영화산업시스템, 스타시스템에 박건형씨가 순응하고 있지 않다는 것뿐인데 사람들을 박건형, 개인의 문제로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다시 말해 박건형씨를 오해하는 기자들이 꽤 있더라. 좋은 게 좋다고 그냥 좋게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건형: 건방지다, 싸가지 없다라고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쯤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나? 나는 충무로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막역하게나마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분들이 정말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단지 나 자신한테 솔직하고 싶은 것뿐이고 믿는 것뿐이다. 내 인생을 통째로 봤을 때 지금의 행동이 솔직하지 않다면 아마 죽기 전에 분명 후회할 것 같다. 나 자신한테 솔직하고 내가 죽기 전까지 그게 진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다.
기자: 건형씨가 우연히 언젠가는 무대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궁극적으로 박건형이가 돌아가야 할 곳이 무대라면 영화판에서 좀 더 빨리 커리어를 쌓고 성공해서 언제든 편하게 무대로 돌아가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건형: 무대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은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상태다. 나 자체는 무척 단순한 사람인데 나를 지켜보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디테일한 거다. 뮤지컬이 좋아서 뮤지컬을 했고 지금은 영화가 좋아서 영화에 매진할 뿐이다. 영화를 위해서 혹은 뮤지컬을 위해서 영화나 뮤지컬을 선택한 적은 없다. 솔직히 그럴 주제도 아니다. 내 작은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창작뮤지컬을 본격적으로 해보는 거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굉장히 커졌지만 인지도 있는 배우들은 수입 대형뮤지컬만을 하려고 든다.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나에 대한 인지도가 쌓이면 네임밸류를 이용해서라도 창착뮤지컬을 활성화 시키고 싶다. 그게 나의 작은 꿈이다. 잘못 말하면 오해 받을 수 있는 얘기라서 나 혼자만 꽁꽁 감추고 있던 작은 소망이자 계획이다.
천희: 그게 어떻게 보면 저의 심성이고. 솔직히 <온리유>에서 나온 순정파는 아니거든요. 맨 처음 이 역을 맡았을 때에는 굉장히 이해도 안 가고 이런 역할은 왜 이래야 되는지 의아했어요. 그런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맞는 부분이 생겼고 그러면서 그 마음에 동화될 수 있었죠. 지금까지 내가 왜 그런 역할만 했을까? 어떻게 보면 재미도 없고 착하기만 한 역할들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제 마인드에 맞았던 거였어요. 근대 이제는 도전해 볼 시기도 된 것 같고, 관객들이 내 역할들을 보고 비슷하게 느낀다면 얼마든지 다른 것 해보고 싶은 생각도 충분히 있고요.
기자: 사실, 이천희씨가 78년생인데 아직까지도 소년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천희: 그거는 내가 앞으로 만들어갈 이미지죠. 그게 한 작품 한다고 해서 쉽게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년 같은 이미지라면 소년 같은 이미지로 계속 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라는 것 자체가 계속 바뀌는 건데, 작품을 쌓아가면서 그거에 맞게 변신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소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른 넘어가면서 할 수 있는 역할도 그에 따라 생길 것이고.
기자: 마지막 질문을 모두에게 할게요. 뚝방하면서 액션 이외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거는 뭐였어요? 먼저 건형씨부터.
건형: 저는 대사가 없다보니까 정권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내는 게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시기 에도 정권이가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권이를 상징하는 어떤 모티브를 내 스스로 찾아야만 했죠. 지금 여기에서 1미리의 한심한 연기를 했다면 영화 후반부에 가면 그 차이가 결국에는 이만큼 벌어지거든요. 그런 것까지 계산하면서 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죠. 대사가 없어 더 그랬죠. 그래서 감독님하고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제가 어떤 의견을 내 놓으면 감독님이 믿어주셨고 그걸 영화에 잘 반영해줬어요. 시나리오에서는 정권이가 왜 싸우는지 이유가 안 나와 있어요. 아무리 대사가 없어도 뉘앙스라는 것이 있는데 그 이유, 이유 없음에 대한 이유를 계속 찾았죠. 정권이는 현실을 가장 늦게 깨닫는 인물이어요. 정권이가 겁을 먹게 된 이유는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몸뚱아리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생기면서 싸움에 겁을 먹게 된 거죠. 그걸 하나의 움직임으로 즉, 뉘앙스로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정권이는 생각 없는 인물이지만 연기를 하는 저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시 말해 정권이는 안 보이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였던 게죠.
천희: 액션 연기를 하는데 정말 죽을 것 같은 날이 있었어요. 발차기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정확하면서도 멋있게 안 나오는 거여요. 미치겠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저쪽 벽에 가서 머리박고 죽고 싶을 정도였죠. 그래도 몸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마음은 늘 열심히 하려고 했고, 정권이 같은 리얼액션을 해보고 싶었죠. 멋있는 폼 이런 걸 떠나서, 정말 실제로 저렇게 싸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액션 그런 액션을 말이죠. 여하튼 ‘뚝방’은 제가 했던 작품 중에서 제일 편했던 작품 같아요.
기자: 동현씨는 구강액션의 달인으로 나오는 만큼 대사 애드리브가 많았을 것 같아요?
동현: 애드리브 거의 없었어요. 애드립 전에 감독님하고 미팅을 자주 하고 대사 수정을 미리 해놨어요. 나한테 어울리는 대사, 내 입에 착착 붙는 대사로 감독님이 바꿔주신 거죠. 액션 연기는 당연히 너무 힘들지만 저한테는 모든 연기가 다 힘들었어요. 그래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한 거라 소중했던 시간으로 남아있어요. 이 영화 전체가...
취재: 2006년 9월 18일 월요일 | 최경희 기자
사진: 2006년 9월 18일 월요일 | 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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