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가 누구야?” 무비스트 입사 전 다니던 매체 데스크에 인터뷰이(interviewee) 명단을 넘긴 뒤 들은 첫마디였다. 2004년 9월 <호텔 비너스>의 기자 시사회의 객석을 채운 건 스무 명 정도로 그나마 영화 관계자들이 반 이상이었다. 한국어로 제작된 최초의 일본영화 <호텔 비너스>는 쿠사나기 츠요시란 본명보다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일본 배우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었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스텝과 자본, 출연진의 반 이상이 일본인 이지만 모든 대사가 한국어도 진행되는 이 오묘한 영화 속에 배우 이준기가 있었다.
8명의 낯선 사람들이 두 시간 넘게 오해와 갈등 사랑을 이뤄내는 흔한 소재와 색다른 시도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이준기의 연기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2006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그의 요즘 근황으로 증명된 셈이지만 당시 완전 무명인 이준기의 인터뷰는 선배와 동료들의 핀잔과 걱정으로 점철됐고, 당시 사진 기자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터뷰 장소인 소속사 사무실로 향하는 내 어깨엔 촬영용 카메라까지 들려있었다.
영화관의 불이 꺼져서야 조심스레 입장한 몇 명의 어린 사내들 중 하나였던 이준기는 영화 속 권총의 빈 탄창을 돌려대며 악을 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뽀얀 얼굴과 해맑은 표정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11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던 얘기며, 부산에 계신 부모님에게 당당한 아들이 되고 싶단 속내를 수줍게 드러내는 찬란한 스물두 살이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동방신기의 멤버가 될뻔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알려져 난감해 하는 모습이나 <발레 교습소>를 함께 찍은 윤계상의 모습이 군입대와 맞물려 평가절하되는 게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하는 소소한 모습까지 기억나는걸 보면 이미 이준기는 순간으로 잊혀질 신인 이상의 배포를 지녔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도 이준기를 주목하지 않았다.
함께 연기를 했던 온주완과 김민정이 피 끓는 청춘 아이콘으로 급부상할 때 이준기는 되려 사극으로 돌아가 중성적인 캐릭터 ‘공길’에 영혼을 잠식하며 보냈다. 전국적으로 12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왕의 남자>는 이준기가 아니면 상상할 수도 없는 아우라를 내뿜었고 대중은 집단적 몸살을 앓았다. 이준기의 등장 이후 ‘매트로 섹슈얼’에서 그칠 줄 알았던 남성미는 ‘크로스 섹슈얼’까지 확장됐고, 기성사회에 대한 반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남성들의 숨겨진 여성성을 자극시킨다는 문화적 정의까지 내려졌다. 이제 그의 차기작 <플라이 대디>는 그 화제의 중점에 선채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영화 속 인생을 달관한 고3 싸움꾼 승석은 배우가 되기 위해 사회에 일찍 뛰어들었던 이준기의 과거와 닮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연기에서 배우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관객의 욕구는 <플라이 대디>에서 충족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날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이미 알았으나 몰랐던 사실들도 새것처럼 다가오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분명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눈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수정하지 않았음을 밝히며, 2주전 이준기와 나눈 뻔하지만 정감 넘치는 이야기를 공개한다.
근데 많이 피곤해 보여요.
스케줄이 빡빡한 것도 있고. 밥을 잘 못 먹어서도 있어요. 바쁘면 식욕이 없어져서.
영화 안 본 상태에서 너무 많은 인터뷰를 해서 더 지칠 거다. 질문이 거기서 거길 테니. 나름 재미있게 해본다고 팬들의 질문들을 직접 들고 왔어요. ‘준갤’에 들어가서 인터뷰한다고 yes or no 식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순간 눈이 반짝) 뭐 있어요? 보여주세요. 준갤 식구들이.. ‘하준세(하늘 아래 준기 세상-팬클럽 이름)’면 정리하기 힘드셨을 거예요.
나중에 체크 좀 해주세요. 지금 하면 되죠.^^ (열심히 체크하는 준기)
재미있는 거 너무 많지 않아요? 나름 질문들이 많아서 겹치는 거 빼고 정하느라 힘들었는데..
별로인데…...상상한 적? 노.노.. 예스. 음..이건.. 예스! 뭐야. 쉽잖아. 만점!
남자 팬들 의외로 많다고, 나중에 만나서 따로 술 마실 생각은 없으냐고 적혀있던데 그건 일부러 넣지 않았어요.
술이야 뭐 좋죠. 이거 아이스 커피예요? 나도 이거 주문해야지.
뭐, 그럼 커피 나올 때까지 편하게 얘기 들어가죠. 영화 안 본 상태에서 하는 질문은 거의 뻔한 거라 제 질문의 7할은 거의 팬들이 물어 온 거예요. <플라이 대디>가 이문식씨 때문에 출연했다고 많이들 알려져 있어서요, 거기에……
말하기도 지겹습니다. 몇 달째야.(웃음)
배운 점이 있는지 그 질문부터 시작하죠. 또 원작도 그렇고, 반말하시잖아요. 선배님한테 반말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
배운 점이라고 해도 제가 뭘 배웠다라고 하기엔 배운걸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고 워낙 에 많은걸 가지신 분이라 일단 선배님의 일거 수 일 투족이 다 저한텐 배울 점이었어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제가 많이 가져가는 게 있을 거예요. 그걸 연기적인 부분으로 논하기에는 제가 아직 많은 거에서 부족한 친구라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고, 하여튼 현장에서 선배님이 배우로서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라던 지 후배를 따듯하게 챙겨주신 점.
선배님 연기를 모니터 하면서 느끼는 건 다양한 부분에서 삶의 때를 묻어갈 수 있는, 그걸 연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배우시지 않나. 그런 점을 많이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저도 내실을 다지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고, 반말은 당연히 했고. 통쾌하진 않았구요. 재미는 있었죠. (웃음)선배님께서도 자연스런 연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받아 쳐 주시고 나쁘게 생각 안 해주셔서 제 입장에서는 너무 감사했어요. 뭐 슛 끝나고 나면 또 똑같이 선후배로 돌아가니깐 제가 많이 깍듯이 대하고 그랬죠.
운동에 능하신 편이라 그런 점에 있어서는 깍듯하셨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원래 ‘武’가 예를 많이 갖추잖아요. 그나저나 워낙 요즘에 빡빡하게 활동하셔서 영화에 집중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았을것 같아요.
그게 참 힘들죠. 아무래도. 사실 많이 어려웠어요. 현장에 돌아가면 감독님께서 우선 몰입할 시간을 계속 주셨고, 승석한테도 바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가능했어요. 촬영할 때가 제일 바쁠 시기였고, 그래서 현장에 들어갔을 때는 NG를 많이 내더라도. 더 승석에 가까운 쪽으로 하려고 엄청 노력했죠. 이문식 선배님께서도 연기에 있어서 많이 끌어주시고…… 영화는 공동체 작업이니까 한 사람이 쳐진다 싶으면 같이 끌어주는 게 있어요.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의외로 <플라이 대디>에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 중에 촬영장 에피소드는 별로 나와있지 않다. 그 점에 있어선 말을 많이 아끼시는 것 같은데. 이문식씨가 너무 짓궂어서 현장에서 방귀 끼고, 그렇진 않았을까 혼자 상상했었거든요?
그건 일상이시죠.(웃음)근데 없네요. 에피소드가. 별로 없어서 말을 안 한 걸 거예요.
사실은 영화를 완성된걸 보셨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기다리는 도중에 영화사분이 “준기씨도 아직 안 봤지만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게 잘 나왔다.”고 들었다. 못 본 상태에서 이런 질문은 그렇지만, 이 장면은 너무 재미있게 찍어서 꼭 봐달라 하는 추천 장면이 있다면?
없어요. 다 잘 나왔어요. 왜냐면 드라마니깐. 즐겁고 재미있었거든요. 비유를 뭐가 낫고 말고 할 신들이 없어서 보시고 난 후에 반응을 보고 얘길 할게요.
이래서 영화 안보고 인터뷰하는 게 곤란하다. (웃음) 이거 찍고 좀 쉬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화려한 휴가>를 들어가서 놀랐어요. 그건 비중이 작은데도 출연을 하셨다고 들어서 더 놀랐고. 원 톱인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왔을 거란 생각도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엔 어떤 선배랑 하고 싶어서 한 건가요?
제가 스타덤에 오른 이상 책임감을 져야 되고 내실을 다지긴 위해선 아무래도 많은 작업이 필요할 거란 생각엔 변함없어요. 제가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들과 작업을 해야 돼요. 그런 게 시급한 점이라고 느껴서 연기 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제일 빨리 많은걸 보고 배울 수 있는 건 선배님들과의 작업, 그 중에서도 <화려한 휴가> 같은 경우에는 규모가 큰 영화에 좋은 선배님들이 너무 많이 출연하셔서 제 입장에서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당연히 감독님도 한창 스타덤인 친구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셨던 것 같고. 저도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이야길 한 거고.
<호텔비너스>때부터 봐와서 하는 말인데, 아시다시피 스타에도 종류가 있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에 자기 생각을 적극 어필하는 배우거나 아예 함구하는 스타일. 준기씨는 그런면에 있어서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항상 배우 생활하면서 힘든 점과 아닌 점을 극명하게 구분시켜서 사는 것 같은. (단호히)네. 젊을 때 그렇게 살구요, 나이 먹으면 또 배운 만큼 실천하려 구요.
하긴, 그 말이 정답이긴 하네요. 제 생각이 명확해야 앞으로 하는 일에 있어서 확신을 가지고 할거 같고 그래야 실패를 하더라도 제 책임인 거죠. 그래서 내가 또 얻어갈 수 있는 거고. 그런걸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꾸준히 좋아해 주세요. 앞으로도 많이 변화가 있을 거예요. 왜냐면 그런 모습들이 재미있잖아요. 사람들이 맨날 똑같을 수 없고. 변화를 가질 거고. 젊을 때 다해보는 거니까. 뭐 굳이 제가 좋아하는 거를 숨길 이유도 없고. 싫은 것도 그렇고.
<호텔 비너스>때 나랑 나눈 대화에서 인상 깊었던 건 아직 배우로 치자면 ‘학생’일 뿐이라고 표현한 거였다. 지금은 변화되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지만 <플라이 대디> 끝나고 나서는 어느 단계쯤에 와있다고 생각하나요?
지금 막 스타트를 끊은 대학 4학년쯤 된 것 같고. 여기서 준비를 해서 더 큰 무대, 더 많은 프로들이 있는 곳으로 뛰겠죠. 지금은 선배들과의 작업이 너무 재미있고 언젠가는 저만의 작품을 보여드려야 될 거고, 그걸 위해서 마지막까지 준비를 많이 해야 해요. 인기가 좀 있다고 섣불리 제 주연 작을 선택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좀…. <플라이 대디>도 제가 주연으로 하려고 한 건 아니 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 이문식 이준기가 됐는데 사실은 이문식 선배님을 위한 작품이고 지금도 제가 주연을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플라이 대디>에서의 비중은 막강한 것 같다. 원래 제목도 원작처럼 <플라이 대디 플라이>였는데 이준기씨가 “<플라이 대디>로 갑시다!” 해서 바뀐 걸로 알고 있거든요. 기자들끼리도 우와, 대단해. 그 깡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막 그러고. 싸가지가 없죠. 하하하.
만약에 생 짜 신인이면 먹혀 들지 않았을 텐데. 감독님이 워낙 좋으시고 제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웃음) 비중이 크질 않아요. 근데 얼굴마담인가 봐요. 문제는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어색한 거고. 아직은 주연 타이틀이란 거, 부담이라기 보단 맞지가 않다고 생각해요. 단정지어 말하자면. 그래서 다음작품도 더 그런 쪽으로 쏠리는 것 같고. <플라이 대디>도 타이틀을 달았지만, 내가 ‘주연급이구나…’느낄 때쯤 하는 작품은 더 틀릴 것 같아요. 그런걸 빨리 찍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되는데 아직은 좀 그래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 캐파(CAPACITY)가 안 되는 것 같으니까.
감독님과 할거 같아요. 여배우에 대한 생각은 안 해봐서 오히려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영화를 찍는 그 순간들이 많은걸 생각할 수 있는 작업 이길 바라거든요. 뭔가를 좀 느끼고 갈수 있는. 물론 여배우와의 작업도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에 많은걸 생각하겠지만 폭넓게 본다면 감독님과의 작업이 더 아무래도 다양한 부분에서 논의할 수도 있고 그 분이 제가 모르는 많은 부분에서 경험을 살려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독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 ‘선배’의 존재를 특히 중요시 하는 것 같아요.
진짜 다 존경해요. 선배님들은. 다 해보고 싶고. 이문식 선배님도 그 분들 중에 한 분이었고. 이번에 <화려한 휴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는 거 이상으로 ‘우와~저분은 만나면 어떨까?’ 했던 분이 안성기 선배님이거든요? 요새는 자꾸 뵈니까 많이 챙겨 주세요. 그게 많이 신기하고. 제일 대부시잖아요. 너무 그런 그 위치에 계시면서 배려심을 잃지 않고 항상 자기의 모습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생각하는 게 너무 멋진 것 같아요. 그 분의 반만 봐도 성공이라고 봐요. 전 그 반도 힘들 것 같아요.
작품을 결정할 때 배우와 선배님들 감독님들 많이 보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연기 할 때 중점을 두는 건 배우의 성격인가요? 아님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음…중점은, 여러 가지예요. 매일매일 틀려서. 한가지로 꼽히는 건 없어요. 현장에서 맞춰가는 거고. 제가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 그 인물의 성격과 처한 상황, 배경 등을 미리 숙지하고 만들어놔야 된다는 거죠. 그 외에 것은 현장에서 나와 호흡을 맞추는 배우와 감독님과의 의견에 따라 그날그날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거 같아요. 기본적인 것은 그 캐릭터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드라마와 영화를 오고 가면서 여러 명의 인생을 산 셈인데 가장 이준기 다운 역할은 누구였나요?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던 인물, 없어요. 완벽하겐 없어요. 조금 조금씩은 제 모습이 있는 거고. 제가 연기하니깐 제 모습은 녹아있겠죠.
개인적으로 비너스의 ‘보이’였으면 했는데. 아쉽다.
보이는 그 나이 때의 비슷한 부분이 있었죠. 어릴 때였잖아요.(웃음)
<호텔 비너스> 얘기가 계속 나와서 그렇지만 그때 맡은 역할이 지금의 이문식씨같이 방황하고 누군가에 기대서 뭔가를 변화하고 싶어하는 역할이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정 반대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나이는 틀려도 그 사람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역할. 소감이 어때요?
소감은…좋겠죠. 뭐. 하하하.
음, 그럼 이준기 많이 컸다? 이정도?
그런 건 없구요. 음…지금은 모든 게 귀찮아요.연기만 하기에도 바쁜데 뭔가를 막 시키니까. 귀찮은 건 있는데 그것도 돌이켜 보면 연기의 연장선이니까. 좋아요. 즐겁고. 재미있어요.
하긴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피곤하고 지치기도 할 것 같아요. 스케줄이 워낙 많으니까.
피곤하진 않고 졸릴 뿐이죠.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일찍 큰 집을 짊어지게 된 건 아닌가 싶어서요.
우리끼리 얘기인데, 소속 사가 원망스러우시죠? 하하하.
아휴, 배우라면 다 그럴 거예요. 어쨌든 뭐 어딜 나가도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책임인데. 그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자꾸 돌아가니까 부담스러운 정도? 바라긴 했겠지만 이렇게 일찍, 더군다나 제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책임들이 따르니까 그런 게 조금은 아쉽죠. 내가 많은걸 가진 친구였을 때 왔다면 더 틀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하나하나 스케줄 채워가기 바쁜 거죠.
일전에 <발레교습소>때 변영주감독님께서 준기씨한테 “누구나 당연히 해야 될 것 같은 역할을 맡는 것 보다 ‘저 사람이 저 역할을 맡았단 말이야?’그런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게 배우다”라는 말에 적극 동감하셨다고 저한테 했던 말 기억하세요? 요번에 승석이란 캐릭터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것 같았던 캐릭터였나요? 아님 욕심이 났던 캐릭터였는지?
음……욕심이 나는 캐릭터였어요. 이번 건은. 왜냐면 일단 캐릭터 외에 것도 많이 욕심이 났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제 모습에 가깝게 순화시킬 필요가 있는 작품을 해야 했고, 무엇보단 다른 도전을 해야 하는 부분이 저한텐 필요했거든요. ‘승석’은 그게 제격이었던 것 같고. 그전까지 자꾸 제가 하는 것과 다른 역할을 맡아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게 되니까 ‘대중이 조금이라도 내 모습을 알아야 되지 않아? 비슷하게라도.’ 라고 생각할 즈음에 내가 원하는걸 깨달은 거죠.
아시다시피 원작은 오카다 준이치가 주연을 맡았잖아요. 준이치가 연기한 인물과 이준기가 다른 건 뭐라고 생각해요?
다 다르죠. 일본 사람이 찍은 거고.
사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에서의 데뷔보다 일본 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룹 쟈니스 소속의 초난강과의 작업이 먼저였고 그쪽에서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거죠. 그때 일본에 갔을 때 그쪽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고 해서 혹시 이 영화 찍기 전에 만나본 건 아닌가 싶어서.
많이 뵙긴 했는데 그분을 따로 만나진 않았어요. 원작에서는 그 분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더 얘기하면 자꾸 비판만 하게 될 것 같아요. (웃음) 서로가 비판이겠죠. 장점이 많다, 그 외엔 할말이 없는 게 솔직히 영화를 재미없게 봤거든요.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제발 그렇게만 안됐으면 좋겠어요. 일본 영화는 너무 재미없게 끝났잖아요. 원래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데 뭐랄까, 정서가 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찍는 방식이. 매력은 있지만 조금만 다르게 풀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인터뷰 말미에 드리는 질문인데, 지난번 무비스트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자기는 이세상 사람들이 변해도 배우 이준기의 초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많이 유명해지고 나서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혹시 그 인기 때문에 힘든게 요즘의 솔직한 심정인가요?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거고. 사실 지금 이정도 인기를 끌었던 분이 없었잖아요.(웃음) 이런 신드롬을 만든 배우도 없었고. 가수나 할 짓이잖아요. 상황자체가. 톱 가수나 하는 거. 그런 부분은 재미있어요. ‘배우생활에 이런 생활도 있구나. 없는 사람보다는 좋은 추억이지’ 하는 생각. 즐거워요. 매일매일. 힘들 때는 역시 수많은 억측을 늘어놓으시는 많은 분들. 항상 인기를 얻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50 싫어하는 50. 근데 싫어하는 50이 너~무 티를 낸다는 거죠. 그런 부분이 힘든 부분이고. (웃음)또 어쩌겠어요. 결국에는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 가 없는 게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날려 쓰는 거니까.
인기가 어떤 규모의 인기냐는 거죠. 인기를 왜 얻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를 좋아해 주시는 관객 분들이 있어도 지금의 규모는 너무 크잖아요 좋아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시니까 이게 언젠간 줄 거란 확신은 들고, 줄고 난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겠지만 그러면 더 편할 것 같아요. 신경 쓸 일도 없고. 쓸데없는 기사들 신경 쓸 필요 없고.(웃음)
그런 기사들은 잘 안 읽어보시죠? 할리우드 기사들은 사진만 보고 기사는 안 읽는다는데.
저도 그럴 때가 있지만. 많이 읽어봐요. 다. 왜냐면 뭔가 배울게 있을 거란 생각 때문에. 기자 분들도 100에 30정도는 좋은 말씀을 써주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정말 잘못 된 부분은 고쳐 달라는. 저를 욕하는 70프로는 그냥 자기만족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 하게 돼서 반가웠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라는 무난한 질문으로 끝을 맺죠.
그냥 뭐 이런 말할 때가 제일 쑥스러운데 그냥 열심히 살겠습니다. 큰 목표도 없구요. 다만 젊었을 때는 최대한 많은 부분에서 경험 쌓는 거! 그거 외에는 소중한 게 없어요. 그거 하나만 제 젊은 다 받쳐서라도 내 것으로 다 만들고 제대로 된 건 서른 살 이후로 봐달라는 거죠. 20대 안에 그걸 이룩할 수도 있어요. 정말 빨리 일취월장한다면. 배우는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실 테니깐.
카피를 그걸로 해야겠네요. ‘욕심 많은 배우 이준기의 본 모습 30대 이후에 보여드립니다.’이렇게. 그렇게만 쓰면 20대엔 자신이 없는 것 같으니깐 카피를 다른 걸로 해주세요.(웃음)
비만 오면 심하게 우울해진다는 그의 심정도 모른 채 모든 여자들의 꿈인 이준기는 그렇게 유리창 너머로 수십 명의 팬들의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킨 채 자신의 ‘할 일’한 가지를 힘겹게 끝냈다. 인터뷰 말미에 이준기는 <플라이 대디>에 관련해 수십 명의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도 아직 기사가 나온걸 보지 못했다며, 질문들이 거의가 다 똑같아서 재미없다는 푸념 아닌 푸념이 돌아왔다. 그 말에 찔금 한 기자는 “영화를 안 본 상태에서 하는 질문은 정해져 있고 기자들도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다.
분명 2004년도의 이준기와 <왕의 남자> 직후의 모습은 팬픽(fan fiction)의 중심에서 하루게 다르게 치솟는 인기를 버거워 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할말은 한다는 이준기의 행동을 기자가 아닌 ‘누나’의 입장에서 보건 데 길들여지지 않은 이 배우근성은 분명 언론에 충분한 ‘반감’을 제공할 정도로 거침없었다. 그 ‘건방짐’에 실망한 것도 잠시 녹음된 테이프를 돌려보며, 그 숨길 수 없는 성격자체가 아마 이준기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팬 미팅에서 보여준 그 색다른 모습과 인기에 가둬진 인간 이준기의 본능은 누가 가르치거나 깨닫는다고 가려질 희미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일주일 후 <왕의 남자>로 신인남우상에 국내 인기상, 해외 인기상까지 거머쥔 대종상 시상식 때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검은 옷 일색인 배우들의 물결 속에 하트를 그려 보이며 걸어 들어오는 그의 짙은 블루 의상은 이준기의 앞날에 청색 신호등이 켜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Fly! 준기! Forever!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우리들의 진심을 알아주길.
2006년 8월 2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2006년 8월 2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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