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지왕 주성치의 영원한 뮤즈 ‘막문위’가 영화배우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한국을 방문했다. 사실 그녀가 <타락천사>에서 잊혀지길 두려워하는 NO.5로 나왔을 때부터 나는 그녀를 줄곧 기다려 왔다. 영화 속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을 못 알아보는 여명의 팔을 물면서 “내 얼굴은 잊어도 내가 물었던 일은 못 잊겠지. 내 얼굴엔 점이 있어서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거야. 길에서 얼굴에 점 있는 여자를 보면 나인 줄 알아.”라고 외치는 순간 사랑에 미쳐버린 외로운 영혼을 나도 모르게 동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랑을 몰랐던 어린 나이에도 잊혀짐이 사람의 감정에서 얼마만큼의 고통을 주는지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 막연히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 무대 위에서 본 막문위는 환상의 몸매와 가창력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Let’s go out tonight’를 부르며 ‘로저’를 유혹하면서 난간 위에서 추는 춤은 흡사 한 마리의 유연한 고양이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브로드웨이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히는 <렌트>는 10년 동안 15개국언어로 번역되어 25개국에서 공연되었으며 OST판매량만 500만장에 달하는 인기 뮤지컬이다. 뉴욕 오리지널 캐스팅으로는 단 한번도 투어를 하지 않았으나 공연 하루 전날 돌연 사망한 조나단 라슨의 추모 10주년을 기리며 열리는 월드 투어에서 아시아 스타인 막문위를 특별 캐스팅으로 세계공연에 나선 것이다.
뮤지컬 <틱틱 붐>으로 유명한 조나단 라슨이 7년에 걸쳐서 작사, 작곡, 각본을 맡아 완성한 <렌트>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젊음과 열정을 그린 작품으로 푸치니의 명작 오페라 <라 보엠>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오디션을 따로 보지는 않았지만 아시아에서 ‘미미’역할을 소화해 낼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전화로 배역이 결정 났다는 소식을 듣고 5분간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니까요. 사실 <렌트>에 캐스팅 되고 나서야 처음 본 작품이지만 내용 자체가 중독성이 있고 출연할수록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마술 같은 작품이에요.”라며 자신의 출연 동기를 밝혔다.
영화배우인데도 뮤지컬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는 “항상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첫 작품을 브로드웨이 최고의 스태프와 일하게 돼 더 기뻤던 것 같아요. 미미는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내면에 여린 면을 가진 배역이라 더더욱 끌렸거든요. 영화 보다는 뮤지컬은 두 시간 내내 공연을 하는데 기본적인 체력이 기본이라 건강을 다지는 일에 특별히 공을 들였어요.”라며 뮤지컬 <렌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다는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워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면서 매일 밤 서울에서 새로운 인물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영국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를 둔 막문위는 5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지성파 배우로 이번 <렌트>기자 회견장 에서도 스탭들 간에 능숙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극중 영어 대사와 노래를 현지인과 동일하게 연기하는 그녀의 글로벌한 매력은 독일계 페르시아 피가 섞인 외할아버지와 웰시 출신의 친할아버지를 둔 직계 혈통이 말해준다.
그래서 인지 인터뷰 내내 캐런 목(Karen Mok) 이라는 영문 이름을 사용했다. “극중 미미는 거칠지만 섹시하고 여린 소녀 같다.”고 말한 막문위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소녀 같은 이미지다. 실제로도 작은 체구에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모자로 살짝 가린 모습은 영락없이 틴에이저의 모습이었다.
가수와 연기자로 오랜 시간 지내왔던 그녀가 말하는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점을 들어보자. “뮤지컬이나 영화나 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당연하죠.(웃음) 뮤지컬은 연기와 춤 노래, 세 박자가 맞아야 되고, 영화보다도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중요해요. 라이브기 때문에 실수가 허용되지 않아요. 관객의 반응이 바로 온다는 것도 영화와의 차이점이고. 영화는 조명과 편집 등 다른 요소가 많고 감독의 지시 하에 다르게 보여질 수 있지만 뮤지컬은 감정을 그대로 그려내야 해서 가장 특별한 것 같아요.”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주었다.
뮤지컬 <렌트>에서는 미미가 동료들과 부르는 ‘'No day but Today'’의 대목 중에는 오늘이 아니면 어떤 날도 안 된다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그 말은 흡사 “당신이 아니면 그 어떤 사람도 ‘미미’를 대신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공연을 보고 인터뷰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그녀에게 말해줬을텐데.
"캐런, 당신이 연기한 미미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이 잊혀지길 싫어했듯이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수밖에 없어요. "라고.
취재: 이희승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