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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퍼햅스 러브'의 진가신 감독이 보낸 진짜 러브레터
2006년 1월 9일 월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진가신’ 감독은 유쾌한 사람이고 열정이 넘치며 친절한 사람이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이어진 인터뷰 행렬 속에서도 한 번도 싫은 내색 안하고 오히려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의 근성이 엿보인다. 또박또박한 영어로 질문에 답을 이어가고 굳이 묻지 않았는데도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놓기 좋아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푸근한 아줌마의 인상이 떠오른 것 의외의 반응이 아닐 것이다.

엄청나게 긴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해 나가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진가신 감독은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는 그저 영화에 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설명해주기를 좋아하는 보기 드물게 열린 사람이란 것을. 한국 기자와의 인터뷰를 매우 좋아한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던 게다. 물론 그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한국 관객들에게 잘(고스란히)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과하게 풀어놨음을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그의 의도와 어투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그와의 인터뷰를 하나의 편지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아마, 진가신 감독의 섬세한 영화 사랑과 열정을 느끼는 꽤나 감동적인 러브레터로 읽힐 듯하다. 당신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그의 솔직한 사랑이야기 지금부터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 내려가 보자.


안녕하세요? 전 진가신 감독입니다. 영화 홍보 차 한국을 방문, 여러 한국언론인들과 한국 관객들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이번에 제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6년 만에 내놓은 저의 신작 <퍼햅스 러브> 때문입니다. <첨밀밀>로 인해 한국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걸 익히 알기에, 이번 신작에 대한 한국관객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런데 <퍼햅스 러브>는 저로서도 새로운 시도이자 모험인 영화입니다. 왜냐면 ‘뮤지컬’ 영화라서 그래요.

전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제 영화에서 음악은 배우들의 감정, 상황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모티브로 활용돼 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뮤지컬’ 영화를 자신 있게 만들었단 소리는 아니고요. 관객 여러분이 듣기에 결코 거북하지 않은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데는 자신 있다는 뜻으로 받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영화 <첨밀밀>을 사랑해주신 분들이 보기에도 드라마나 러브스토리도 촘촘하게 짜여 있어 그렇게 낯설게 보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를 여러분들 대신 인터뷰한 무비스트 최경희 기자님은 인물들의 관계가 그리 세밀해 보이지 않았다고 하네요.(ㅠㅜ) 저의 의도가 잘 전달이 안됐나 봐요. 영화의 느낌이란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거지만 한국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던 저로서는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퍼햅스 러브>에 관한 몇 가지 '오해' 혹은 몇 가지 '진실'에 관해서 수다쟁인 제가 구구절절 실토하는 자리를 마련했답니다. 이렇게 큰 지면을 할애해주신 무비스트 관계자에게 일단 감사 말씀 드립니다.

<퍼햅스 러브>는 사실, 대다수의 사람을 겨냥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빠진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와 닿은 이야기일 것 같아요. <첨밀밀>과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첨밀밀>은 제 영화를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싶지만, 사탕발림에 가까운 영화고 <퍼햅스 러브>는 사랑의 이면에 관한 냉혹한 러브스토리일 수 있기 때문이죠. 많은 분들이 <퍼햅스 러브>가 뮤지컬 형식의 작품이기 때문에 달콤한 멜로 영화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어느 정도 그 생각이 맞는다고 봅니다.

허나, <퍼햅스 러브>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 그 사랑이 끝난 시점부터 시작되는 사랑의 ‘고통’에 관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물들의 결점이나 이기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벗겨내는, 드러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답니다.

극 중 ‘손나’(주신 분)는 이기적인 여성이죠. ‘지엔’(금성무 분)과 조건 없는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지엔을 배신하고 떠납니다. 결국 <퍼햅스 러브>는 떠난 여인 때문에 고통 받는 지엔의 영화입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떠난 손나를 증오하고 그리워하며 고통 받는 지엔을 카메라에 많이 담았어요.


<퍼햅스 러브>의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 즉, 손나와 지엔의 러브 스토리가 꽤 상세하게 묘사돼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사랑에 관한 판타지 영화로 오인 받게끔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형식은 뮤지컬인데다 제작 규모도 커졌고 상업적인 타킷이 광범위한 영화이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워졌죠. 결국 촬영에 들어가서는 손나와 지엔이 사랑에 빠지는 그 러브스토리를 많이 삭제하고 찍었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 영화의 초점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있지 않고 사랑이 끝난 후의 후유증이나 그 뒤의 이야기에 있답니다.

한국에서 와서 보니 ‘금성무’의 인기가 참으로 대단하더군요. 그와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넘 아쉽고 한국팬들에게는 미안하네요. 금성무, 흠........남자인 제가 봐도 참 매력 있는 배우 맞습니다. 최기자님도 금성무의 팬임을 저 앞에서 감추지 못하더라고요.. 후후;; <퍼햅스 러브>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금성무가 연기한 ‘지엔’의 이야기입니다. 다들 처음엔 지엔의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거여요.

저는 정말 현실적인 사랑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반응은 아주 쬐~금 저를 당황하게 만들더군요. 그런데 금성무만이 유일하게 ‘지엔’ 캐릭터를 이해하고 현실감을 불어넣어주는데 성공했답니다. 사실 감독인 저보다 영화와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고 분석하더라고요. 놀라웠답니다. 그리고 고맙기도 하고요. 그 덕분에 제가 하고자 하는 주제가 제 의도 대로 영화 속에 쏘옥~ 녹아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퍼햅스 러브>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해줬는데도 최기자님은 저에게 또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것 있죠! 겉으로는 제 영화를 좋게 봤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아닌 것 같아 내심 우울했어요. 글쎄, 왜 장학우와 금성무의 춤과 노래가 뮤지컬 영화인데 고것 밖에 안 나왔냐고 따지는 거여요.

넵 그래요. 일부러 그랬어요. 뮤지컬은 영화 속 영화의 형식이고 그 이야기를 둘러쌓은 영화 속 실제이야기는 현실을 기저로 한 사실적인 드라마였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영화적 형식을 액자구성이라고 보통 부르더군요. 하여튼 영화 속 영화에서만 주연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퍼햅스 러브>는, 뮤지컬을 가장한 <첨밀밀> 같은 드라마입니다. 테이크만 달리 간 것뿐이죠.

당연히 금성무와 장학우의 춤과 노래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는 적게 나왔고 감독 입장에서 보자면 적절한 안배였다고 봐요. 뮤지컬 영화라고 <퍼햅스 러브>를 외관상 정의내릴 수 있지만 결국, <첨밀밀>과 <퍼햅스 러브>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같은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사랑이 떠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서 다르지만 말이어요. 또 하나 <퍼햅스 러브>는 관객 여러분들이 제 영화를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 즉 로맨틱한 감정은 하나도 없는 영화여요. 솔직히 전혀 로맨틱하지 않죠. 이번 작품은요. 실제로는 현실세계보다 큰 스케일로 보이겠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리얼한 얘기인 셈이죠. 테마면에서는 로맨틱하지 않은 이야기를 로맨틱하게 섬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제 말이 단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영화의 테마는 사랑의 이기심입니다. 보통의 뮤지컬 영화에서는 완벽한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 영화에선 안 그럽니다. 극과 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시면 되요. 사랑에 빠질 때와 사랑이 끝날 때의 전혀 다른 모습을요. 일종의 시도이자 실험이라고 말했던 위의 말에 대한 보충 설명을 더하자면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야기를 밀고 나갈려고 했는데 위에 나열한 이유들 땀시, 훨씬 더 복잡미묘한 영화가 되버리고 말았어요.ㅜㅜ 그래서 ‘지진희’가 분한 ‘몬티’ 역이 저를 대신해 영화 속에 등장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몬티’는 삼각관계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가까이에서 그들의 관계를 관찰합니다. 일종의 해설자로 볼 수 있는데요. 워낙에 이 이야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춤과 노래로 보여주는 데는 다소 한계가 있답니다. 그래서 장학우, 금성무, 지진희의 춤과 노래는 많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현실에 바탕을 둔 현실적인 드라마가 <퍼햅스 러브>이기 때문이죠.

저에겐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못 말리는 성격이 있답니다. 최기자님도 지적하신 대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 속에 빠짐없이 몽땅 집어넣죠. 실제생활도 그래요. 할말은 하고 보자는 주의죠. ‘몬티’는 저의 이런 성격적인 즉, 고집이 드러나 캐릭터입니다. 성격적으로 영화가 상징하는 바를 깊숙이 묻혀두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몬티’는 등장하자마자 제가 말하고픈 이야기를 바로 해버리죠^^;;. 이런 얘기는 이런 캐릭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을 거여요. 안 그랬다면 아마 제가 말하고픈 이야기는 어딘가에 묻혀 있었을 겁니다.

사랑의 절정은 여자가 문을 닫고 나가는 그 뒷모습에 있다고 봐요. <첨밀밀>에서 장만옥이 두 번이나 떠나죠. <퍼햅스 러브>에서도 주신이 뒷모습을 보이며 문을 닫고 떠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일반적인 견해에서 보자면 러브스토리는 여성이 나와야 성사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의 영화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여성에 관한 여성영화라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런데 아니어요. 제가 남자인데 어떻게 여성영화를 만들 수 있겠나요? 남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영화 속에 담지만 감독인 저도 그녀들의 사랑방식이 이해 안 될 때가 많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리는 여성들은 사랑에 무척 터프합니다. 상처 받는 건 대부분 남성들이고요.

제가 그런 실연의 상처를 받아서 그런지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갈 때가 많아요. 손나와 니웨(장학우)는 로맨틱하지 않은 일반적인 부부관계입니다. 그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서로의 결점이나 약점을 다 드러내고 시작한 사이이기도 해요. 그렇다고 그들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저도 그렇지만 부부란 일상의 공유자이기 때문에 로맨틱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되거든요.

경희기자님은 영화에서 니웨가 잠시 어디론가 도피를 하는 것을 보고 저에게도 그런 적이 없었냐고 물어보셨는데요. 아마 그 질문의 의도가 니웨와 저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 같은데, 사실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누구한테도 말은 안했지만 제 모든 러브 스토리 즉, 영화들은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카사블랑카>의 삼각관계를 모티브로 따온 영화랍니다. 처음 밝히는 사실이죠^^. 저는 영화 속 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 역할을 제 영화에 꼭 그려보고 싶었답니다.

질투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남편 캐릭터가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참 양면적인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장학우가 연기한 니웨는 <카사블랑카>의 그 남편에 대한 오마쥬 캐릭터라고 볼 수 있죠. 제 스스로도 닮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지엔의 사랑이 어떻게 됐나 돌아가 볼게요.
지엔이 손나에게 복수를 하고 떠났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 눈 속에서 손나를 끌어안습니다. 그제야 지엔의 사랑이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그녀가 10년 전에 떠났을 때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시절을 견뎌내고서 그 사랑이 끝나버린 거죠. 전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사랑은 결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해서 <첨밀밀>의 영화 제목은 ‘Almost a Love Story’, 거의 러브스토리이고 <퍼햅스 러브>는 퍼햅스 러브가 된 것이랍니다.

헉!! 쓰다 보니 엄청나게 긴 편지가 되었네요~ <퍼햅스 러브>에 대한 몇 가지 사소한 오해와 진실을 말한다는 게, 수다쟁이인 제 성격상 또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만을 남겨버리고 말았군요....

<퍼햅스 러브>를 처음 찍을 때는 이 영화가 제 감독 인생의 한 단락을 마무리하는 작품인줄 몰랐답니다. 그런데 찍고 나서 보니 제 감독 인생의 한 단락을 정리하는 영화가 되었어요. 그만큼 저에게는 특별한 영화라는 뜻이겠죠. 그러니 한국관객 분들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영화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영화로 한국팬들을 꼭 다시 만나 뵙고 싶네요.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

3 )
qsay11tem
좋은 활동을   
2007-08-10 12:03
kpop20
기사 잘 읽었어요   
2007-05-26 17:01
js7keien
시나리오와 음악이 따로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은 치명적 약점   
2006-10-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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