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흔히들 말하는 ‘트랜드’에 밀리지 않기 위해 취재차 내려간 부산에서 ‘비니’를 구입했다.
이러나 저러나 직업상 배우들을 인터뷰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자긍심을 가지자고, 유행을 선도하는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패션 센스 정도는 갖춰야 되지 않겠냐며 남색 비니를 구입한 건 한달 전. 정경호의 인터뷰가 결정 나고 자료 조사차 들어간 그의 홈피에 들어가자 유독 비니를 쓴 사진이 많이 올라왔기에 이번 기회에 쓰고 나가야겠단 생각에 냉큼 둘러 쓰고 약속돼있는 종로의 카페로 들어갔다.
다들 기억하는 화제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방영된 건 정확히 작년 이맘때. 그 당시 정경호를 인터뷰 하기는 정말로 하늘에 별 따기였다며 영화출연을 계기로 인터뷰 하기로 했다는 나의 말에 방송계에서 섭외의 여왕이라 불리는 선배한테 부러움 반 질투반의 한 소리를 들은 터라 “경호씨를 인터뷰 하게 될지 일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라고 넌지시 원망 어린 말부터 꺼내봤다. “왜 그러셨어요. 저 전혀 안 바빴는데.”라며 단박에 환한 미소를 날린다. 그 눈웃음에 수많은 여자들이 병원신세를 지고 수많은 남자들이 도탄에 빠졌다, 란 캐릭터 소개 그대로의 살인미소였다.
사고 나서 쓸 생각을 못했는데 요번에 정경호씨 인터뷰 한다고 해서 용기 내서 쓰고 왔다. 잘 어울리나요?
저도 비니 좋아해요. 원래 얼굴 긴 사람이 비니 잘 어울려요.
얼굴.긴…사람.
저도 얼굴이 되게 많이 길거든요. 야구모자 잘 안 어울리시죠?
네
저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잘 알죠.
이번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때문에 너무 바쁘시죠? 제작 보고회 때도 그렇고 기자 시사 때도 막내라 모두들 잘 챙겨주셨고 집보다 촬영장이 더 좋다고 해서 그 내막을 꼭 캐리라 결심하고 왔어요. 춥고 장난 아니었을 텐데 좋은 말만 하셔서.(웃음)
진짜 촬영장 너무 좋았어요.. 원래 제가 추위를 정말 많이 타거든요.미사도 겨울에 찍어서 너무 많이 고생한 기억이 있어요. 빠지고 비 맞고…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추운 건 별로 없었어요.
감독님이 대본 리딩때는 좀 어색했는데 막상 촬영 들어가니까 ‘원석 같은 배우’라고 칭찬하셨다.
제가요? 저는 원래 리딩을 잘 못해요. 드라마 할 때도 항상 혼나고 그랬어요. 현장 딱 들어가면 카메라 앞에 서면 용기가 생기는데 리딩때만 되면 부끄러워요. 잘못하겠어요.
TV속 스타에서 영화로 건너 오신건데 그 행보가 너무 의외였다. 시나리오를 고르고 골라 주연부터 시작 할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애 일주일>도 그렇고 <광식이 동생 광태>도 조연이다.
아직 신인이고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닥치는 대로 대본 보고, 주변사람들에게 이 작품 어떠냐고 물어보고 바로 들어가는 스타일이에요. 드라마다 영화다 구분 보다는 지금은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광식이 동생 광태>는 어떻게 하게 된 건지?
젤 처음 영화였어요. <내 생애..>보다 촬영도 먼저 했어요. 그 영화도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잖아요.그냥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같이 작업한 배우와 감독님이 모두 좋으시기도 했지만 뭔가 배우고 싶다란 생각이 훨씬 강했죠.
사실 이 시나리오 원본이 어떨지 영화를 보고나니 너무 궁금하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시나리오의 느낌이 많이 사신 것 같나요?
아니요 별로 안 산 것 같아요. 그래도 비슷하게는 나왔어요. 요원 씨에게 고백한 장면이 있어요. 좋아한다고. 그 부분을 재미있게 촬영 했는데 안 나왔더라구요.
주혁씨랑 요원씨랑 셋이서 술먹는 장면에서 경호씨의 연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각지게 잔 내려놓는 장면이나 좋아서 일부러 더 잘난 척하는 장면들. 그런데 그 연기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거라고 하던데.
아, 재미있게 보셨어요? 저는 별로더라고요. 그 부분도 진짜 웃으면서 재미있게 찍었는데 실제로 영화로 나온 거 보니까 별로 재미없었어요.
<광동광>의 캐릭터 소개를 보면 광식이와 광태를 ‘반반씩 섞어 놓은 캐릭터’란 말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광식이 같은 사랑을 하시는 편이세요? 아님 광태 같은 스타일인가?
처음엔 저도 (광식이 처럼) 고백을 못하구요. 주변사람 한 다리 건너 고백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가 고백하면 (광태처럼)집착하는 편이죠. 저는 ‘집착형’이고 ‘정착형’이예요. 그래서 여자를 만나면 굉장히 편안해 저요. 여자를 지금은 몇 년동안 못 만나고 있는데 만나게 되면 다 2,3년 넘게 사귀거든요. 오래가야 되요. 짧게 못 만나겠더라 구요. 3년이 가장 많이 사귄 거예요.
사실 영화 속 윤경이 하는 대사는 충격적이었다. “여자는 짐작으로만 움직이지 않아요”그말.같은 여자면서도 ‘아니, 뭐야.다 알고 있었으면서!!’ 막 그랬다.
한마디로 ‘독한 년’이죠.(웃음) 영화 찍으면서도 배우들끼리 무섭다고 막 그랬어요.
그 대사 하고 나서 경호씨가 자는 척 하면서 손을 슬쩍 잡아주잖아요. 그것도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러면서 ‘자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었다는 거네. 저 남자도 약았다’ 그런 생각이 바로 들던데…
원래 ‘일웅’이 역할자체가 좀 얄미운 캐릭터예요. 그런데 감독님이 얼굴이 선하게 생겨서 되려 귀엽게 보인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눈이 쳐져서요?
(앗!) 네.
저한테 얼굴 길다고 하셨으니 저도 공격 들어갑니다.
하하하하
계단 밟듯이 고생 안하고 바로 스타가 된 것 같다. 전공도 연극영화고 왠지 무명생활도 안한 것 같고.
그러니까요. 이제부터 고생 하려구요.(웃음) 농담이고요, 오디션 100번 넘게 안 떨어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당연한 거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1,2학년 때까지.무수히 떨어졌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일 하고 싶어했거든요. 아버지도 그쪽일 하셨고. 어려서 봐온 게 드라마 밖에 없어요.
현장에 데려가실 분이 아니신데..(웃음)
하하.그냥 놀러 갔죠. 희선이 누나 보러.어려서 봐온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연기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꿈이 바뀐 적도 없었고. 대학교도 아버지 몰래 시험을 봤고 공채도 몰래 봤어요. 그러면서 처음 잡지 모델도 했다가 오디션도 많이 떨어지고. 이 일하면서 그 정도 안 떨어진 사람이 없죠.
진서씨랑 되게 친한 것 같아서 말을 하는 건데, 사실 이런 비슷한 질문을 드렸었어요. 혜성같이 나타난 것 같아 왠지 오디션 없이 바로 배우가 된 느낌이라고.그랬더니 눈이 이~만해 지시면서 “아무리 혜성같이 나타나도 오디션은 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하셔서 이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구나 했는데 본의 아니게 했다.
아…진서는 자신만의 세계가 진짜 강한 애예요. 사상이 우주적이라고 할까? 너무 친해서 제가 막 구박하고 그래요. 아마 진서 구박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걸요? (웃음)
드라마 데뷔도 가수였는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가수(내 생애 아름다운 일주일)’거나 ‘노래’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광식이 동생 광태)이니 이런 질긴 인연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 한 곡도 편집됐어요. 아..계속 편집 얘기만 하네? 팝송이 있었어요. ‘헬로우’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안 나왔더라 구요. 이제는 뭐 할 때 노래 연습부터 해요. (웃음) <내 생애..> 찍을 땐 제가 가수인줄 알았어요. KM본방 있기 전에 먼저 촬영한 건데 순간 내가 가수로 데뷔하는 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번 <광동광>도 노래 연습 많이 했고, 첫 만남을 노래방에서 했어요. PD님이 장난으로 노랠 잘해서 캐스팅 했다고 하셔서 나 원래 노래 못하는데 왜 캐스팅 했냐고 따졌죠.
개인적으로 아쉬운 장면은 형제들의 사우나 장면에 왜 경호씨가 안 꼈을까 아쉬웠다. 준 형제나 다름 없었는데. 다른 배우분들과 호흡은 어땠나?
제가 거기 끼면 안되죠. 아중이 누나하고는 같이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현장에서 만난적은 없고 주혁이 형은 제가 정말 닮고 싶은 형이고, 태규형 감독님 이렇게 넷이서 만나면 할말 못할말 다 하니까 만나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요(웃음) 너무 행복했던 시간 이었죠.
막상 작품이 끝나니까 아쉬운 점이 많으시죠?
항상 한 작품 끝나면 안 아쉬운 게 없는 거 같아요. 그 아쉬움 속에서 더 잘할걸 하고 다짐하는 게 커가는가라고 생각해요.
아쉬운 부분 하니까 생각난건 데 아버님이 유명 PD라는 사실이 언론화 되고 나서 표면상으로는 앞길 창창한 배우가 그 부담에 죽는 게 아닌가 나름대로 걱정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든든함이 그걸 커버해 줄 거란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전혀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언론보도 후) 지금은 별로 상관 안 해요. 이제는 아버지의 도움을 좀 받을려구요(웃음) 너무 안 받았어. 그런데 절대 안 해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같이 살고 너무 친해서 존댓말 하는 그런 사이보다 굉장히 친한 그런 가풍이었거든요?
그렇게 친한데도 한번도 아버지한테 “연기 어땠어요?” 라고 물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제가 얘기 한다는 게 너무 건방진 것 같고 아버지도 얘가 나름대로 찾아가길 바라시는 것 같아요. 아버지한테 듣는 건 연기자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정신 상태, 그런걸 많이 듣는데 그렇다고 아버지가 드라마를 잡아주거나 그러면 소원이 없겠지만 그러시지도 않고. 그런걸 싫어하세요.
가풍은 ‘탤런트’인데 자신이 추구하는 건 ‘배우’시군요(웃음)
내 앞에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부끄럽지 않게끔 지금 막 준비 단계죠. 그런 수식을 달기 위해 지금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배우는 아니고. 얼마 전에 (차)태현이 형하고 술을 먹는데 어디 여행 갈 때 직업란에 배우라고 쓴지가 얼마 안됐대요. 너도 곧 그런 날이 올 거라고.
그런데 배우라고 쓰면 무슨 혜택이 있고 그런가요? 저도 어디갈때 ‘기자’ 이렇게 안 쓰거든요.
(웃으며) 없죠. 저도 아직까지 관광객으로 써요. 그냥 자아도취죠. 태현이 형이 좋은 말 많이 해주세요. 정말 좋아하는 형이에요.
영화를 마무리 하는 입장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
드라마는 내년에 할 것 같고 바로 영화 들어갈 것 같아요. 12월 중순쯤에. 아직 확정 된 건 아닌데 양아치 인생이에요. 인생의 밑바닥 약간 거친. 그런 역을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광식이 동생 광태>가 어떤 영화인지 멋진 소개 부탁 드려요.
음..이 영화에는 여러 타입의 남자가 나와요. 자기가 만나는 남자가 어떤 유형인지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진짜 바라는 건 남자들의 귀여운 흑심 같은걸 여자들이 귀엽다 생각하고 좀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그렇게 튕기지 마시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백하고.
취재_이희승 기자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