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중 하나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다. 이 영화의 각본가이자 수많은 여성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시애틀 잠 못 이루는 밤>의 감독인 노라 에프런이 새로운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로 다시금 찾아왔다. 그녀의 현재 나이는 64세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나이대의 여성들의 가슴을 웃고 울게 만드는 연출력은 그녀가 요술쟁이가 아닐까하는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
노라 에프런의 감각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온라인 영화 전 사이트 기자 2명과 연합으로 전화 인터뷰를 감행했다. 64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감각적인 연출력을 선보이는 노라 에프런의 힘은 젊은 마음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너무 빠른 영어와 이해하기 힘든 톡톡 튀는 유머로 알아듣기 어려운 인터뷰였지만 노련하게 통역 담당해 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인터뷰 내용 정리를 시작하겠다.
니콜 키드먼과의 작업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그녀는 내가 <그녀는 요술쟁이>를 만들고 싶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니콜 역시 내가 <그녀는 요술쟁이> 감독직에 관심을 갖기 전부터 이미 영화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자기 역할은 물론 스토리를 제안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게다가 니콜 키드먼의 코는 엘리자베스 몽고메리(TV 시리즈 원작 <아내는 요술쟁이>의 주연)와 똑같다. 이사벨 역에 그녀보다 더 완벽한 배우는 없었다.
잭 와이어트 역을 짐 캐리도 원했다고 들었다.
맞다. 잭 역할에 짐 캐리가 맨 처음 떠올랐고 캐스팅을 위해 저녁식사까지 했다. 우리 모두 짐 캐리를 원했지만 정작 그는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때 누군가 ‘윌 패럴은 어때요?’,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윌 패럴과 일하게 된 것이 오히려 엄청난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와의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60년대 유명 TV 시트콤을 영화로 옮기기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인가?
사실 TV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매체다. 요즘 TV를 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는 요술쟁이> TV 시리즈를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아내는 요술쟁이> TV 시리즈가 방송된 적이 있는가?
1970년대에 방송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기억하고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녀는 요술쟁이>를 통해 우리들 추억 속의 TV 시리즈가 아직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화하면서 강조한 테마는 ‘여성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라는 포인트였다. ‘사랑과 연애, 결혼이란 과정에서 여성이 자신의 파워와 영향력을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느냐.’는 지금도 중요한 주제다. 실제로 여성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힘이 없는 ‘척’을 해야만 할 때가 있지 않나. 이 작품의 테마는 여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요술쟁이>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하고는 다르잖아! <그녀는 요술쟁이>를 찍을 때 주의한 점은 주인공 이사벨 캐릭터가 지닌 순수한 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사벨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조직에 매여 살아가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야말로 현실 사회와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세상에서 온 매우 특별한 캐릭터인 것이다. 또한 내가 그려내는 모든 인물들이 똑같은 성향의 인물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사벨은 진정한 사랑 그 자체가 바로 마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 주제는 사랑과 로맨스 같다.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사랑이란 없으면 사람의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고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여성 감독은 당신을 비롯해 캐서린 비글로우, 미미 레더 정도밖에 없다. 여성으로서 할리우드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이고 장점은 또한 무엇인가.
장점과 단점? 장점이 과연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헐리웃에서 감독이란 직업은 그 자체만으로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여자라는 사실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엔 여성의 존재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만드는 영화가 널려있다. 게다가 그런 성향의 작품들이 ‘여자는 상관없어!’라는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 역시 <스타워즈> 나 액션영화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 하지만 영화시장에서 여성들에게 열려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한 사실이 여성감독들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을 쓰기도 했고, 수필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계속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은데 또 어느 일이 가장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의대에나 가볼까?
난 한 가지 일에 얽매이는 것보다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더 좋다. 생각해보니 내가 영화산업에만 묶여있지 않다는 점이 참 좋더라. 지금도 내가 원하는 대로 책이나 시나리오를 쓰고 잡지에 투고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난 참 행운아다.
물론 쉽지 않다. 델리아와 함께 숱한 영화 관련 작업을 해왔다. 작업할 때 델리아는 내가 담당하는 부분에 대해 눈치껏 인정하고 지지해준다. 공동 작업이란 기본적으로 줄다리기 싸움과 같다. 일정 부분을 서로 확보해야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동의한다면 공동 작업이 무의미하지 않겠나? 게다가 영화란 작업 자체가 수많은 외부인 예컨대 배우, 프로덕션 디자이너, 촬영감독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작업해야 하며 모두들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 특히 대사를 쓸 때 타인과 함께 작업하는 건 매우 유익하다. 사실 공동 작업은 원작을 각색할 때보다 오리지널 각본을 쓸 때 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원작이 있을 경우에는 아무래도 더 수월한 게 사실이다. 델리아와 나는 함께 자랐고 같은 걸 보고 웃을 수 있는 경험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파트너다. 그녀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나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녀와의 작업이 즐겁다. 때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각본으로는 <지금은 통화중>, 연출로는 <럭키 넘버> 이후 무려 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오래 기다렸다. 재충전을 위한 공백이었나? 아님 꾸준히 작품을 진행 중이었나?
쉬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릴 희곡 작업도 했고 차기작의 시나리오도 완성시켰다. 책도 한권 썼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지난 5년은 정말 바쁜 시간이었다.
평소에 마녀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다. 항상 마녀에 관한 이야기와 판타지 동화에 빠져 살았다. 사실 많은 여성들이 마법이나 좋은 마녀, 나쁜 마녀 같은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나 같은 경우 마녀에 관한 영화가 개봉하면 바로 보러 달려갔고, 스스로 마녀가 되었으면 바랐을 정도였다. <아내는 요술쟁이>를 TV에서 본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나도 마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코 한번 찡긋 거려서 다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맘에 안 드는 건 꺼져버리게 만들고 싶다고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뜬금없이 아이디어가 튀어나와서 작업한 게 아니고 그런 소망이나 흥미는 내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요술쟁이>를 만들게 됐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어페어 투 리멤버>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고 이번에는 1960년대 인기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하는 과정상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옛날 영화에서 미덕을 찾고 응용하거나 변형하길 즐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건 분명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즐기는 부분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들은 <카사블랑카>를 언급하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선 <어페어 투 리멤버>를 <유브갓 메일>에선 <대부>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평소에 책과 영화, TV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를 그리는 영화에서 그런 식의 대화가 빠진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영화는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순간 우리는 각자 자기 자서전의 한 구석을 써내려가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난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내 작품 속에서 다루는 걸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보호하기 위해, 즉 작가로 남기 위해 감독을 하는 거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시나리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자신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나?
반드시 자신만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잘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일은 기꺼이 즐기는 편이다.
내 성공에 대해서 만족하냐고? 물론 만족한다. 실패했을 경우보단 훨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게 사실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델리아와의 공동 각본 작업은 아주 상세한 아웃라인을 짜는 것부터 시작한다.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기에 몇 주씩 걸리기도 한다.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점심을 먹어대며 말이다. 스토리 개요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전체 골격을 세세하게 세우는 작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일단 아웃라인이 완성되면 그 아웃라인에 근거해 본격적인 각본 작업에 들어간다. 역시나 가장 어려운 건 아웃라인 작업인데, 작품 전체의 골격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영화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우정과 사랑 관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블라인드 데이트, <유브갓 메일>의 인터넷 채팅 등 세태와 유행에 따라 당신 영화의 남녀들도 다른 방식의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존 트라볼타가 사랑을 찾아주는 천사로 출연한 <마이클>과 마법에 비견될 만한 사랑의 힘을 강조한 <그녀는 요술쟁이>를 보면 이즈음 당신은 인연의 초현실적 마력에 부쩍 매혹된 것처럼 보인다.
난 <그녀는 요술쟁이>가 특별히 ‘인연’에 관한 작품이라곤 생각하진 않는다. <마이클> 역시 마법과 판타지의 요소를 갖고 있긴 하지만 초현실적인 인연에 관한 영화는 아니었고 <그녀는 요술쟁이>는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사랑, 동화 같은 마법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현실적인 마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다루는 사랑도 따지고 보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수긍할만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는 남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로 데뷔하던 무렵 잡지에 기고했던 에세이는 날카로운 풍자와 패러디가 특징이었고 <제2의 연인>, <실크우드> 등의 초기작도 냉소적이고 암울한 색체였다.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 장르로 각광받고 오래 매진했던 만큼 여러 시도처럼 당신에 대한 세간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은 욕망도 클 것 같은데...
굳이 로맨틱 코미디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좋아한다.
비결은 글쎄다. 나로선 오히려 좋은 배우들이 내 작품에 그런 열정을 보여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 작품 계획을 알려 달라.
지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문사 기자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내년쯤 만들 예정으로 뉴욕이 배경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아닌 드라마 장르이고 기대해도 좋다.
한동안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셜리 맥클레인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녀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은?
한마디로 영화 속 ‘엔도라’ 역에는 셜리 맥클레인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요술쟁이>의 팬이라면 누구나 영화에서도 재밌는 캐릭터 ‘엔도라’를 셜리가 연기하는 걸 꼭 보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연기하는 걸 보고 싶었던 사람 중의 한명이다. 셜리 맥클레인이 아닌 ‘엔도라’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꼭 맡아주었으면 바랬고, 그래서 셜리가 ‘Yes’라고 했을 땐 정말 기뻤다! 그녀는 함께 작업하기에 너무 즐거운 사람이다.
인터뷰: 최동규 기자
사진 제공: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