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그는 ‘알레그로(allegro)’가 아닌, ‘안단테(andante)’다. 누군가를 만난, 단 0.005초의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그는 원고지 수백 매도 불사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단 하나의 낱말을 선택하기 위해 몇날 며칠 편지지를 구겨댈 것만 같은, 섬세하고 다채로운 질감의 사람.
말하자면, 그가 서 있는, 아니 그에게 잘 어울리는 세계는 상큼하고 경쾌한 ‘이모티콘’의 세계보다 오랜시간 숙고한 조심스럽고 풍요로운 ‘언어들’이 춤추는 세계다. 대체, 무슨 근거로? 글쎄, 말이다. 하지만 <질투는 나의 힘>, <국화꽃 향기>, <인어공주> 등 그가 조금씩 변주를 시도하며 걸어온 영화들 속에는, 어딘가 스산함과 고뇌가 서려있어, 보노라면 마음이 출렁거리고, 괜시리 헛헛해진다. 그 속엔 ‘원상’, ‘인하’, ‘진국’이 아닌, 물기묻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박해일이 있다.
감출 수도 없게 됐지만, 그렇다! 기자는 박해일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거기엔, 3년 전 그를 인터뷰하면서 가졌던 ‘첫인상’도 작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시 ‘ㅅ’잡지 수습기자였던 기자는, 선배 기자를 따라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과 박해일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동석하게 됐다. 다소 어둑한 지하 스튜디오에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저만치서 호리호리하게 큰 키에 캐쥬얼 정장을 걸쳐입은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무슨 소개팅 자리도 아니건만, 가슴이 왠지 벌렁벌렁거렸던 기자는 그 성큼성큼 걸어오는 박해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가까이 다가온 그의 ‘눈’을 보자, 순간 머릿속에서 하트, 다이아몬드, 별같은 무수한 ‘감탄’의 도형들이 후두둑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후훗, 생각해보면 박해일은 지금보다, 더 호리호리하고 깊은 눈을 가졌던 것같다!).
그때, 선배기자는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보다, 맥주를 가볍게 마시며 진행하면, 그에게서 더 많은 말들이 진솔하게 흘러나온다고 귀뜸했었고, 예의 그 자리에도 몇 병의 병맥주들이 탁자 위에 늠름하게 도열해있었다.
설마했는데, 그는 천천히 맥주잔을 기울이며 무수한 질문들에 답했고, 그의 얘기(기자의 귀에는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는)를 듣노라니, 또한번 마음이 들썩거렸다. 진지한 표정에 걸맞는 진지한 말투도 말투였지만, 왠지 모르게 ‘별나라’말을 듣는 듯한 이상한 느낌들이 파고들었던 것. 그 원인을 헤아리니, 그는 느리면서도 침착한 템포에 일상 발화에는 잘 쓰지않는 문어체 어휘들을 구사하고 있었고, 이에 묘하게 혼란스런 어순이 병행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자는 몇 가지 느낌들로 ‘박해일’이라는 이 매력적인 배우를 일단, 결론지었다. ‘까만눈이 고독하면서도, 맑고 깊어보인다’, ‘생각보다 키가 크다’, ‘(긴장을 풀려는 나름의 방법이겠지만) 술을 좋아한다’, ‘낯설면서도 재밌는 어투를 가진 진지청년이다’로.
어느덧 몇 년이 흘렀고, <질투는 나의 힘>을 보고 개인적으로도 예상했듯, 그는 지속적으로 충무로의 러브콜을 받는 ‘스타’가 됐다. CF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때로는 봄빛같고 때로는 가을빛같은 청춘 스타(아~그렇긴 해도, 모피자 CF에서 보이는 그의 우스꽝스럽게 터프한 이미지는 무지하게 싫다, 싫어!).
지금 그에게도 3년전 느낌 그대로를 느낀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다. 기억에서 들추어낸 ‘첫사랑’은 강렬하리만치 매혹적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난 현실속의 ‘첫사랑’은 다소 밋밋하듯이.
하지만 <연애의 목적>으로, 몇 년 만에 그와 직접적으로 재회(?)하는 일이 기자에게는 일상의 지리함을 깨는 꽤나 신선한 일로 다가왔다. 그 설렘을 박해일에게도 감출 수가 없었다.
(박해일은 사실, 인터뷰를 그리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영화’가 아닌,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가십에 힘을 기울이는 인터뷰에는 피곤해한다는 편이 적확할 것. 그래서, <연애의 목적>을 보기 전, 그와 인터뷰하는 일이 기자에게는 무척 초조하고 걱정스러웠다)
네. 다음 영화를 또 준비해야 돼서요.
<소년, 천국에 가다> 찍으시다 오셨죠? 그거 끝나면 바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투입되시구. 음, 너무 충전없이 달리시는 거 아닌가요?
<인어공주> 찍고나서 한 1년여 가까이 쉬었는데, 그때 충전을 많이 했구...(웃음) 계획상 이렇게 된 건 아니었는데, 사실 <소년, 천국에 가다>가 <연애의 목적>보다 먼저 찍는 거였는데 스케줄이 좀 변경돼서요. 당황스럽진 않아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서. 2005년도에는 한번 달려보자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고 있습니다.
기억이 나실리는 없겠지만, 예전에 <질투는 나의 힘> 때문에 박찬옥 감독님하고 같이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뵈니 감개무량하네요. (웃음)
아, 그래요? 아휴, 반갑습니다.
그때와는 모든 것들이 많이 달라지셨죠?
글쎄요, 달라지는 면들도 있더라구요. 하다보니까 ‘이거는 내가 부족하네’라면서 충족해가는 것도 있고, 이거는 굳이 부각을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 내적인 어떤 것들이 있구요. 좀 많이 변한 건 변하고, 그대로 가지고 갈 건 가지고 가구요.
박찬옥 감독님과는 계속 연락하세요?
오늘 VIP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이원상'과 '이유림'간에 많은 차이를 느끼실 거 같은데...(웃음) 궁금해요. 어떻게 보실지.
사실 영화를 보고 난뒤 인터뷰 하고 싶었어요.
저도 그러셨으면 좋았을텐데...(웃음)
형식적인 질문들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웃음)
네...(웃음)
완성된 영화는 보셨죠?
못 봤어요. 진짜루. 기술시사회때 다른 촬영 때문에 제가 지방에 있었어요. 참석하지 못해서 되게 궁금해요.
강혜정씨가 먼저 캐스팅되고, 나중에 해일씨가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시나리오 받을때부터 정말 땡기셨어요?
시나리오 받고서 재밌었어요. 내용이 일단, 제 나이 또래의, <질투는 나의 힘>의 캐릭터라든가 <인어공주>의 어떤 순박한 청년 캐릭터를 달리하여 요즘 세대의 연애 방식이 많이 담겨져 있고, 가식없이 리얼하게 진행되어가는 영화라고 생각을 해서...‘흥미가 있겠다’라는게 첫 번째였지만, 둘째로는 내가 잘 할까. 잘 해낼 수 있을까 그게 제 숙제였던 것 같은데...부족한건 감독님과 혜정씨와 함께 만들어가자 해서 선택하게 됐죠.
사실 <연애의 목적>의 ‘이유림’ 캐릭터는 좀 의외였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일명 박해일 이미지라는게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눈에서 오는 깊은 느낌이랄까. 진지하고 깊어보이는...
(헛기침을 하며 웃으면서) 후후.
그런 한편으로, 지금 <소년, 천국에 가다>도 찍고 계시지만, 판타지가 어울리는 소년같은 맑은 이미지도 가지고 있구...
사실은 그런 이미지로 말씀하신거를 완전히 깨버리는 영화가 <연애의 목적>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한테는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지도 되게 궁금하구요. 좀 많이 달랐던, 다르게 생각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래서 혹시 그렇게 대중들이 박해일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깨뜨리고 싶었던 내면의 욕구가 있었던 건가요?
욕구? (웃음) 욕구불만도 없었는데 일단 재밌는걸 찾다 보니까요. 일단 읽었을때 재밌어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들어온게 이거였고, 욕구는 두 번째 문제인 것 같아요. 분명히 전작에 있는 느낌들을 살펴보죠. 내가 걸어왔던 느낌들에서 조금 새로운 방향, 그걸 선택하다 보니까...음, 말씀하신 느낌도 있어요.
전작들을 고를때 느꼈던 ‘재미’와 지금 세월이 약간 흐르면서 느끼는 ‘재미’ 와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치기어리고...음...치기어린 느낌이겠다..초반엔 그런 영화를 해왔다고 친다면, 이젠 갈수록 좀더 제 자신을 풀어버리고 싶고, 풀어놓고 싶고...움츠려있기 보다는 여유있는 어떠한 것들을 해나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마음 속에 있죠.
치기어린 역할이라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음악에 정열적으로 빠져있는 역할...또, <질투는 나의 힘>의 ‘이원상’도 사실 치기어린 자의식이 있잖아요. 그게 조금씩 <인어공주>를 하면서, <살인의 추억>은 좀 다른 느낌이겠지만, <인어공주>는 좀더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가...<연애의 목적>의 ‘이유림’같은 캐릭터는 아무래도 자기 욕심이 좀 있는 친구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러면서도 여유가 있는 친구거든요.
<질투는 나의 힘>이 데뷔작인데, 그 영화 한편이 박해일씨에 대한 참 폭발적인(?) 반향들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그 독특한 느낌 때문에, 박해일씨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은 감독들도 굉장히 많이 생기구요.
어휴, 소비라고 생각 안 해요. (웃음) 잘 활용한다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질투는 나의 힘>으로 많은 상도 받으셨고, 이래저래 좋은 느낌들을 많이 안겨줬기 때문에, 그 뒤로는 연기하실 때 부담이 크셨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해 나갈까 그 이후로. <질투는 나의 힘> 이후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지 했는데...우선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 목표를 설정하면서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포기할 것도 많고, 사람을 좀 다치게 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냥 흘러가듯이 한번 해보는건 어떨까. 내 욕심만 차리기에는 좀 모호하고...괜찮은 작품이 있는데, 그것들이 반은 내가 원하던 걸 할 수 있는 장과 50% 정도는 숙제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면 해보자. 그래서 해봤던게 그 이후의 작품들인데...
그래도 뭐 하면서, ‘아, 내 옷이 아닌가’라고 생각됐던 작품들도 있었어요. 작품을 해놓고 많이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었죠. 그래도, 최대한 후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조금씩 축적이 되면서 자양분이 되지 않나. 제가 좀더 커나가기 위한...그런 생각을 했죠. 사실 항상 100점 맞을 순 없잖아요. 다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날이 발전해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 역시 <질투는 나의 힘>에서 받았던 박해일씨 이미지에서 약간 못 벗어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이미지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할까. (웃음)
그런 취향을 좋아하시는구나. (웃음) 너무 개인적인 취향 아니세요? (웃음)
그래서그런지, 모 CF피자 이미지같은 경우는 상당한 충격파였죠. (웃음)
(웃으며) 지금 말씀하신대로, 저한테 어떤 뭔가가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는 놀랐다 그런 식으로. 제가 해야 되는 일 자체가 유지를 해 나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유지 자체가 진보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게 되니까. 또 저에 대해 원하시는 것도 다양한 모습일테고. 다양한 모습도 계속 나가다보면 현저히 줄어들게 되잖아요.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요. 그럼 그때가서 또 그것들을 연구해 나가야 될 것 같구. 그게 제 일의 숙제인 것 같아요.
배우는 자신이 그 캐릭터와는 확연히 다르다해도 슛이 딱 들어가는 순간, 보는 사람이 전율을 일으킬만치 그 인물이 철저히 되어버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치 <유리가면>의 ‘마야’처럼.
(장난스럽게 감탄하며) 하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애의 목적>에서 ‘이유림’은 박해일씨 실제 성격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연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다른 부분은 좀 많아요. 그런데 완전히 다르다고는 얘기할 순 없어요. 분명히 제가 했기 때문에 저의 어떤 속과 겉이 나오는 느낌들이 있을 테고...거기에 대해서 참조를 많이 했던 부분은 감독님이죠. 아무래도 감독님을 모델로 삼아서 괴롭히면서 끄집어내지 않았나 . (웃음) 혜정씨하고도 많이 얘기하면서, ‘아, 내가 보는 유림과 혜정씨가 보는 유림의 모습이 다르구나’하고, 그 다른 느낌들을 한번 되짚어보고, 이게 괜찮겠다 싶으면 그걸루 가구요.
촬영장에서 보니까 개구쟁이같이 밝으시더라구요. ‘컷’ 떨어지자마자 한재림 감독한테 달려가면서 O.K 냐구 손동작도 하시구. (웃음) 근데, 원래 그런 모습은 아니었죠? (웃음)
현장과 캐릭터에 따라서 제가 다르다는 걸 느꼈는데. 그 얘길 주위분들한테 들어요. 어느 현장에서는 차분하고 괜히 변태같고, 어떨때는 순박한 시골 청년같기도 하구. 분명히 맡은 캐릭터에 따라서, 현장에서의 그런 일상들이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어떤 분들은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 하는데 저는 조금씩 달라지더라구요.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같은 현장에선 대선배들도 있고 하니까 차분해지시구...
(웃으며) 군기가 들죠.
애로사항은 없었구요. 우선은 동네 형처럼...(웃음) 제가 대학로 사는데 옆에 한성대 있는데 살더라구요. 같이 칼국수도 먹으면서 얘기하고, 되게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영화 중간에 촬영 쉬는 날, 옆 동네 사는 감독님과 만나서 밥먹으면서 내일 촬영분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좋더라구요. 근데, 물론 형처럼 느껴졌지만, 분명히 감각적인 감독님이시고, 정확하게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박해일씨 필모그래피를 생각할 때 감독의 인지도를 특별히 따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스타로서의 궤도에 오른 지금은 혹시 신인감독이라고 했을 때는 조금 주저되는 부분이 있나요?
음...시나리오가 우선 먼저겠죠.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일단 시나리오고, 그리고 나서 감독님의 의도나 감독님이 앞으로 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풀어가실 것인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말씀을 듣고 싶은 자리가 있죠. 그런 자리는 꼭 갖게 되더라구요. 뭐, 술을 한잔하면서 더 진솔한, 영화 외적인 이야기도 하면서..사실 풀어가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전문적으로 해내는것도 중요하지만, 팀웍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얘기를 많이 나누고 그것들이 맞으면 맞을수록 촬영현장에선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이번에 강혜정씨도 그렇고, 그동안 호흡을 맞춘 여배우들이 박해일씨만치나 느낌좋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웃음) 배종옥, 장진영, 전도연...
우선 제가 운이 좋았죠. 그리고 제가 캐스팅한 것도 아니구. (웃음) 작품에 어울리시는 상대분들과 하게 돼서...감독님과 주위분들이 물론 선택하셨겠지만, 제가 여지껏 연기하는데는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편한 부분들이 많았죠.
장면 때문이 아니라 그 성적인 대사들의 수위 문제 때문에 예고편 등의 심의에서 문제가 쬐금 됐었잖아요. 솔직히 그런 노골적인 대사들을 입에 착착 붙게 연기하기가 어색하진 않았어요? (웃음)
초반에 많이 어색했죠. ‘이 느낌이 맞나?’ 생각하면서 촬영 때마다 항상 힘들었어요. 근데 한번 혼자 있으면서 술렁술렁 살아보자. 선생 역할인데도 술렁술렁. 학생들 때리지도 않고 동네 형처럼 대해 보면서 스탭들하고도 괜히 어깨 한번 더 흔들고 풀어지는 모습으로 준비했다가 촬영에 한번 들어가보자. 그런 식으로 다가갔던거 같아요. 제가 많이 진지하다 그러시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많이 없어졌어요.(웃음) 현장에서 많이 없어졌죠.
그건 저도 예고편만 봤을 때도 느껴지던데요. (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박해일씨는 영화를 찍는 동안, 어느 순간 정말 그 인물이 돼 있을 것 같아요.
될려고 막 발버둥을 치죠. (웃음) 근데, 진짜 뛰어난 연기자분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셔도 슛 들어가면 턱 나오는데 전 그게 안돼요. 막 뭔가 할려고, 그 사람이 될려고 했다가 슛 들어가니까 놓치는 부분도 많고. 좀 집중력이 상실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촬영현장에 가서 보니까 테이크가 상당히 많은 것 같던데요. 감독님이 굉장히 꼼꼼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네. 감독님이 우선 꼼꼼하게 컷을 정리하셨는데...아무래도 다이알로그도 많으니까 대사분량에 있어서 건망증이 심하셨는지 자주 까먹으셔서, 필름 많이 나간다고 욕도 많이 먹으시구...(웃음)
연기를 떠나서요, ‘유림’과 ‘홍’이라는 커플에 대해 공감은 됐었나요?
공감은 됐어요. 하지만 이게 내 방식의 연애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 이런 연애 재밌겠다’, ‘이런 연애방식이 있다’. 그 ‘있다’도 중요하지만, ‘재밌겠다’가 먼저였던거 같아요. 주위분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드렸을때 ‘어? 어? 그래! 나! 내가 하고 있어’라든가 아니면 ‘하고싶다’. 또는 ‘저런 연애는 나는 아닌 것 같아’ 라는 반응. 그래도 보시면 소스가 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도 했었구요.
좀 바보같은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박해일씨가 맡은 캐릭터는 상대여자, 그것도 연상녀들에게 좀 유치하게 말해서 애정에 대한 앙탈을 부렸던 캐릭터인 것도 같거든요. <연애의 목적>도 조금 그래보이구...(웃음)
바보같은 느낌이세요.(웃음)
그럼 ‘유림’은 어떤 캐릭터인데요?
귀엽고 명랑한 구석이 있어요. 보면서 ‘어, 느끼하네. 으~~~~~그러면서도 귀엽네!’라고 하기 때문에...애증?...이런 것들이 보여질 것 같기도 하고...
강혜정씨도 아시다시피 개인적으로, 애정전선 예쁘게 현재진행형이시고, 박해일씨도 그런데...아무래도 노출씬들 연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에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많이 얘기했어요. 초반에 들어갈 때 반대도 했었고...근데 최대한 이해시키려고 얘기를 많이 했었고, 사실 100% 이해를 시키고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미안한 구석은 있죠. 근데 영화라는거 제 일이기 때문에...제가 할만하고, 자신이 생기고 하는 것은 그래도 정확하게 최대한 이해를 시켜놓고, 영화를 하게 되는게 낫겠다 싶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건 앞으로도 여자 친구가 이런 걱정을, 걱정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할 때 더 많은 이해를 바라는게 아니라 만약에 한다라고 했을땐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영화든 간에...그게 좋은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친구도 읽어보면서 얘기 나눌 수 있고, 캐릭터에 대해서 다른 시선으로 얘기를 해 주는게 고맙구...그렇죠...
며칠 전에 강혜정씨 인터뷰를 했었는데, 박해일씨를 평가하길 ‘진지한 줄만 알았는데 엉뚱하기도 했다. 그래서 놀랐고 재밌었다’라고 얘기하던데요.
(장난꾸러기 버전으로) 아이, 뭐, 승우보다 재밌겠어요?
같이 작업해 보니, ‘강혜정’은 어떤 배우인거 같아요?
강혜정씨 멋진 배우죠. 우선은 여성스러움을 가짐과 동시에 보이쉬한 면도 있고. 현장에서 저한테 ‘형, 형!’그러더라구요.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현장에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참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게 정말 그 친구의 장점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것은 쭉 유지해간다’생각했어요. 괜찮은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걸 무척 높이 사고 싶고. 그런 모습을 봤을때 ‘아, 그런 건 나도 필요하다. 더 갖춰야되겠다. 연기 외적인 것이지만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호흡도 잘 맞았어요.
이 영화가 홍보 문구처럼 얼마나 솔직뻔뻔하게 연애에 대해 까발리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가 되거든요. 이 영화가 기존에 나온 연애물들과 비교해서 ‘연애’에 다르게 던져주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네네...무슨 질문인지 알아요. 근데 ‘던져준다’라기보다는 어떤 영화의 톤. 그래, 톤이라고 말씀드릴거 같아요. 연애영화는 충분히 있었죠. 앞으로도 많을 것이고...하지만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사실적인 것인데 사실적이면서 리얼감이죠. 최대한 극적인 것을 많이 배제하구요. 예를 들면, 영화 속의 장치. 판타지 느낌, 멜로구다리...뭐, 그런 얘기 많이들 하잖아요. 분명히 그런 거는 장르가 따로따로 배치돼 있잖아요.
근데 우리 영화는 아무래도 솔직한 감정으로써, 두 배우가 현실감있게 쭈욱 따라가는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좀 바보같은 얘긴데...(웃음) 보시면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말씀드린게 틀렸다면...글쎄, 그때는 다시 한번 얘기를 좀더 해봐야 할 것 같지만...제 생각은 그래요. 동네 주변의 연애하는 커플을 슬쩍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일 거라구 생각을 해요. 전 그 부분에 매력을 느꼈던것 같아요.
이번 <연애의 목적>이 그 연기에 대한 느낌을 생각할 때, 박해일씨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특별한 분기점을 세우는 영화가 된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분기점이요?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어야죠...크크크크크. (헛기침하며) 아, 흠흠 죄송합니다~
<살인의 추억>처럼 분량 자체가 많진 않지만, 그 강렬함이나 비중으로서는 컸던 역할. 말하자면 딱히 주연이라고 볼 순 없는 역할이라도, 매력있는 역할이라면...계속 연기할 의향이 있나요?
분명히 할 의사가 있죠. 분량보다는 어떤 흐름에 있어서 망가뜨리지 않고 연결 고리를 잘 만들어 줄 수 있는 역할, 매력있는 역할이라면 물~론 할 용의가 있죠.
<괴물>에선 확실하게 주연이시죠? (웃음)
아니에요. ‘괴물’이 주연이에요. 가족들은 다 조연이라는...(웃음)
활용이 될만한 부분들은 차용해서 생각을 해 보면서 해봤구요. 어디서 보긴 봤고, 느껴지고 이해가고, 공감도 가는데 경험이 없을 경우에는 떠올려보거나 한번 그렇게 연애해보자는 식으로 연기했죠. 연기는 진짜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해야하는거구...
예고편에서 처음에 해일씨가 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너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연애도 못해’라는 식의 가슴을 치는 대사를 하시면서...그거 보면서도 느꼈는데, 왜 그렇게 우는 연기를 잘 하세요? (웃음)
아니에요. 그때도 안 울라고 그랬는데, 혜정씨가 술을 많이 먹여갖구. (웃음) 그때는...영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림이라는 인물은 어떤 뻔뻔함과 명랑한 구석으로 한 여자에게 다가가잖아요. 너무 다가가는 것이죠...그런데 후반부에 어떤 계기로 인해서 욱하는 부분이 생겨서...(기자 왈, “그쵸, 학교에서도 짤리구...) 아, 아시는구나? 꼭 필요한 부분이고, 일부러 눈물을 흘려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는데, 좀 복받쳤나봐요. 저도 연기하면서. 그 인물을 생각했을때, 말씀하신대로 학교에서도 잘리구 뭔가 구질구질한 느낌이 들어서...예전에 대쉬했던 여자가 앞에 있는데도, 구차한 느낌들이 들다보니까...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조금 느끼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눈빛이 왜 그렇게 깊으세요?
어휴, 아니에요. 풀렸죠. (웃음) 뭐가 깊어요.
살면서 변화된 외모라고 생각하세요?
음...외모는 똑같은거 같은데, 다양한 감정선들을 느껴가다보니까...사람이 감정을 표출할 때 눈빛을 보면 느낌이 좀 다르잖아요. 눈빛만 봐도 그 감정을 알 수 있다라고 얘기하는데, 감정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지 않았나. 어떤 새로운 작품을 하면서도 그 작품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 몰랐던 감정들을 알아가면서 연기적으로도 발전하고 말씀대신대로 눈빛이 생기는 것도 같아요.
만약에요, 관객들이, 특히 기존에 박해일씨를 좋아했던 팬들이, 이 영화를 봤을때 ‘이유림’ 캐릭터에 대해 뭔가 낯설어하고 거부반응같은 걸 보이더라도, 후회는 없으세요?
우선 죄송하죠. (웃음) 크크크크. 근데 후회는 없을 거 같아요. 영화를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배우들과 감독님, 스탭들과 함께 ‘선택’이라는걸 한 거잖아요. 후회는 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고 찍어갔기 때문에 거기서 사실 끝난거 같아요. 그 결과물에 대해선 온전히 관객분들의 몫이죠.
연기를 할때, 많은 다른 영화들이나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응용하는 편인가요? 아님, 박해일씨에게 내재돼 있는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끌어내서 연기하는 편인가요?
사실적인 감정을 많이 알고 싶고, 몰랐던 감정들도 알고 싶고, 많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또, 그게 결국 사람과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생각해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속깊게 얘기를 나눠요. 그러면서 알게 되는 감정들이 오히려 자양분이 되는 거 같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 박해일씨 스스로 밝아진 부분이 있다고 해도, TV 쇼프로그램 같은 데서 박해일씨를 보게 될 순 없겠죠? 앞으로 어떤 영화에 출연하시더라도? (웃음)
뭐, 아직까진, 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고수하고 싶어요. 현재로선요...(웃음)
취재: 심수진 기자
사진: 이한욱
촬영: 권영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