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신>을 기획 제작한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는 “손해는 보지 않을 거 같다”며 영화의 흥행을 조심스레 관망했었더랬다. 결과는.... 조심스레가 아닌 대놓고 기뻐할 만큼 50만을 육박하는 기대이상의 첫 주 스코어를 기록, 그가 세상에 내놓은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진 상태다.
게다, 본인이 주워온 분홍리본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니 이런 저런 단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를 만난 건 화제작으로 떠 오론 영화의 제작사 대표라는 포지션 때문만은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광수 대표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제 업을 떨쳐버리고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운동전선에 나섰던 사람이다.
그러다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올곧은 입버릇과 행동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그는, 영화뿐 아니라 사회 정치 문제에도 끊임없이 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운신의 폭만이 아니라 영화인들의 문화 의식 지평을 넓히는 데 크나큰 역할을 주도해왔다. 물론, 아직까지도 최소한의 사회 정치적 의식이 부족하고 결여된 영화인들 숱하다. 적잖은 대중이 그들과 관계된 일에 밥그릇 싸움이네 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너나할 것 없이 거리로 나가 단결된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떨군 스크린쿼터 시위와 육체적 노동의 집약체인 촬영현장에서 흘린 땀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급을 넘어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기실, 그러한 연대는 그때뿐 냉혹한 현실에서는 눈물도 땀도 함께 떨구고 흘리기란 녹록지 않음이다.
해서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한쪽에 편중된 부가 공정하게 재분배되는 명랑한 영화판을 일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김광수 대표를 말이다. 한 없이 여려 보이지만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혼탁한 상황 속에서도 늘 소신 있는 태도를 견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부단 없이 실천하는 광수 형을 만나보자! 물론, 인터뷰는 개봉 전에 이뤄졌음이다.
● <분홍신>은 기존의 영화들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서대원 기자{이하 서): 개봉을 앞두고 지금 심정이 어떤가? 블로그(http://blog.naver.com/petrkim.do)를 들어가 보니...
김광수 대표(이하 김): 아 내 블로그를 자주 들어오나?
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다가다 들어가는 편이다. 여튼, 거기에 쓴 글을 보니 뭘 해도 새벽 5시만 되면 재까닥 일어날 정도로 초긴장 상태라고 하던데
김: 하하하! 그거 보셨구나! 맞는 말이다. 긴장이 많이 된다.
끊임없이 주변에서 이번엔 잘 될 거라며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는데 난 실감이 안 난다. <해피엔드> 이후 흥행에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어쨌든, 뚜껑을 열어봐야 알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정상이라고 하더라.
서: 아 '좋은영화사'의 김미희 대표가 한 말?
김: 아 그것도 봤나? 하하 그러니까 블로그에 쓴 거처럼 김미희 대표한테 전화했더니 모든 제작자는 다 그런다고 하더라. 개봉 때만 되면 말이다.
서: 그럼 심적으로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이 바쁘겠다.
김: 뭐 꼭 그렇지는 않다. 나 같은 경우는 개봉이 다가오니까 덜 바쁘다. 지난주까지는 바빴고, 이번 주는 덜한 편이다.
서: 어떻게 잘 될 거 같은가? 현재까지의 분위기를 보자면 그간 청년필름의 세 작품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에 비해, 가장 대중적으로 잘 먹힐 거 같다는 평이 지배적인데.
김: 어........손해는 보지 않을 거 같다. 어느 정도 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해피엔드>의 경우는 명필름이라 같이 해서 온전히 우리 작품이라 할 수 없고, 나머지 두 작품은 아시다시피 다 손해를 봤다. 결국, 그건 투자자한테 미안한 거고, 그만큼 관객들과 못 만났다는 거다. 우리가 전해주고자 했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 볼 수 있는 거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 되면 좋다.
김: 글쎄다. <분홍신>을 통해 다 청산하면 좋으련만 그게 뜻대로 될 지는....
서: 대관절 얼마나 되길래 그러는가?
김: 아~ 뭐! 제작자들 다 그렇다. 나뿐만이 아니라 하하!. 몇몇 큰 회사 빼고 형편이 다 여의치가 않다. 그리고 청년필름은 돈을 많이 쓰는 회사가 아니라서 생각보다 작을 수도 있을 거다. 나한테는 크지만...
서: 그럼 어느 정도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나?
김: 해외 쪽에도 팔렸고, 제작비도 웬만한 멜로 영화보다도 적게 써 100만 정도면 된다.
서: 그럼 그렇게 프리프로덕션에 따라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진행을 할 수 있었던 건 감독 덕분인가 김대표의 능력인가?
김: 난 아니고 감독이 많이 도와 준거다. 영화의 일정이랑 예산을 맞추려면 감독이 큰 욕심 안 부려야 되고 짧은 시간 안에 자기가 만들고자하는 그림을 잘 만들어야 되는데 그걸 김용균 감독이 잘해줬다. 고맙게 생각한다. 스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 아까 오전에 <분홍신> 기술시사 갔다 왔다고 했는데 어땠나?
김: 완성본을 처음 본건데 음.......나쁘지는 않더라.
서: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얘긴가?
김: 그런 건 아니다. 나름 만족스럽긴 한데, 워낙 많이들 기대를 해서 그런다.
서: 김혜수는 뭐라 하던가.
김: 자기생각보다 재밌었다고 그러더라. 자신의 연기에 만족스러워도 하고. 정말 김혜수의 연기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좋다.
서: 며칠 전 인터뷰 때 김혜수는 <분홍신>을 이렇게 말했었다. 어려운 영화가 아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쉬운 영화라고. 그렇다면 대중의 입맛에 전적으로 부합하지 않은 영화들을 내놓았던 청년필름의 작품들을 보자면 이번엔 좀 노선을 변경했다 볼 수 있나?
김: 물론이다. <분홍신>은 기존의 영화들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우리가 공동제작까지 합쳐 <귀여워>를 포함해 네 작품을 만들었는데 사실은 다 감독이 기획했던 작품들이다. 회사를 처음 만들 때 솔직히 말하면 5명의 후배감독을 데뷔시키는 게 내 인생 이 회사의 목적이었다. 네 명이 데뷔했고 한 명 남았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놓으면 현실적으로 이 영화가 장편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가늠하고 또 그렇게 가능하게 하는 일이 내 일이었다면 <분홍신>부터는 회사에서 아이템을 낸 거고, 회사가 만들고자하는 영화에 맞춰 감독을 찾은 거다. 그래서 그 전의 영화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기획됐고 만들어가는 과정도 달랐다.
● 처음에는 <우주전쟁>이랑 함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서: 영화감독으로 입봉시킨 그 네 명의 후배를 말하자면
김: 박찬옥(질투는 나의 힘), 정지우(해피엔드), 김수현(귀여워), 김용균(와니와 준하). 그리고 한 명 더 남았는데 이혜영 감독이다.
서: <더 클럽>을 준비 중인 감독! <나쁜 영화> <꽃잎>의 조감독 출신!
김: 맞다. 오래전부터 눈여겨봤던 학교 후배다. 예전에 <첫눈>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그걸 잘 풀지 못했다. 캐스팅 파이낸싱이 잘 안 돼서. 그래서 <더 클럽>까지 오게 됐다. 이혜영 감독만 데뷔하면 마음의 짐이 없어지는 거다.
서: 그럼, 천계영 만화 원작의 <더 클럽>은 잘 돼 가고 있는 중인가?
김: 안 그래도 지금 저쪽 방에서 회의 중인데, 당장은 캐스팅 중이고 9월말 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 또 그렇다면 청년필름이 진행 중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송희일 감독의 <굿로맨스>는?
김: 그것도 캐스팅중이다. 무엇보다 여자배우 캐스팅에 어려움이 있었다.
서: 왜?
김: 노출에 대한 것도 좀 있고, 아이가 있는 캐릭터 설정에 적잖이 거부가 있더라. 또, 30대 초반의 여자와 어린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콘셉이 전혀 다름에도 김정은 주연의 <사랑니>와 혼선을 빚을 수 있어 내년에 찍는 건 어떨까 감독과 얘기 중이다.
서: 그나저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기자시사도 2~3주 전에 하는 여타의 영화들과 달리 개봉주인 월요일날 하고. 감독 책임인가 제작자 책임인가.
김: (웃음)개봉을 당겨서 그렇다.
서: 원래는 7월 7일?
김: 맞다. 처음에는 <우주전쟁>이랑 함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장르도 다르고 모든 사람이 <우주전쟁>을 보지는 않을 거 아니냐? 뭐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른 제작자들이 전화해서 그러는 거다. <우주전쟁>과 맞장을 뜨는 건 타격이 좀 클 수도 있다고.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뒤로 미는 건 방법이 아니고 다른 공포영화가 있으니까 앞으로 좀 일정을 당겨 잡은 거다. 그러니까 뭐 결국 솔직히 말하면 <우주전쟁> 때문에 일정이 빡빡해진 거다.
김: 그러니까 서기자가 말한 대로 우선 물건을 줍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특히 여자가 공포가 있구나! 그걸 확인했다. 내가 원래 뭘 잘 줍는 편인데 물어보니까 여자들은 돈 아니면 안 줍는다고 하더라.
서: 왜?
김: 어떤 의도를 갖고 버린 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서: 결국, 찝찝하다?
김: 어떤 사연이 묻어 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물건을 줍는 이야기이면 일상적인 공포가 충분히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고 한번 해보자 그렇게 된 거다. 그런데 내가 주은 게 분홍리본이라 처음엔 그걸로 밀어붙였는데 분홍리본 이야기로 풀게 되면 할리우드영화처럼 와 닿는 거다.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공포가 아니고.
해서, 다른 물건을 찾게 됐고, 그런 와중 안데르센의 분홍신 동화가 생각난 거다. 동화는 다리를 자르는 걸로 끝나는데 다리를 잘린 누군가의 원혼이 신발에 붙어있으면 굉장히 무섭겠구나 하는 생각에 분홍신을 탐내는 사람들의 다리를 잘라버리는 이야기로 구상하게 됐다.
서: 또?
김: 그리고 또 여성관객들한테 분홍신라는 신발이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사람들한테 공포를 줄 거라 우리는 판단했고, 그건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적용되지 않나본다.
서: 동화가 원래 그렇지만 당대의 사회상 특히 기독교적 사상을 많이 반영하지 않나! 그렇다면 이 작품에도 현재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남성이 성적욕망을 가지는 건 사실 뭐 크게 무리가 없이 이 사회가 받아주는 반면 여성들은 아주 눈에 띄게 금기시 돼 있지 않나? 그런 억압된 구조 안에서 점점 커져가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 볼 수도 있다.
● 영화가 좋게 나올 거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서: 그나저나 <와니와 준하>에 이어 김용균 감독과 다시 작업한 이유는 뭔가?
김: 사실은 김용균 감독과 <분홍신> 말고 다른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다. <백수이야기> 라는 영화. 말하자면, <와니와 준하> 이후 이번엔 장르영화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서로 이야기 됐었다. <와니와 준하>가 장르에서는 좀 벗어나 있는 영화였고 또 실패했으니까.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은 장르를 해보고 그 다음엔 또 장르를 비트는 이야기로 풀어보자고 얘기를 나눴더랬다. 그런데 그 기획이 생각만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서: 그래서 대신 <분홍신>을 택했다.
김: 꼭 그런 건 아니고 <분홍신>은 내가 따로 기획하고 있었던 영환데 마침 감독이 필요했다. <백수이야기>가 잘 안 풀리던 차에 김용균 감독을 떠올리게 된 거다. 김용균 감독이 공포를 하면 어떨까 고민하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분홍신>이 여성성이 강조되는 공포고 <와니하 준하>가 그런 성향이 있었던 영화인 거다. 시나리오를 보내줬는데 제목부터 맘에 들어하더라. 그래서 같이 해보자고 하게 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서: 그럼, 김혜수의 캐스팅은 감독의 생각이었나 아니면 당신의..
김: 당연, 감독이 원했다. 김용균 감독도 나처럼 김혜수의 다른 면을 본 거 같더라. 그러니까 김혜수씨의 대표작 중에서 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곰탕'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김용균 감독도 '곰탕'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드라마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거다. 그런 김혜수를 머릿속에 그리며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그녀를 선택한 걸로 알고 있다.
서: 주저 없이....
김: 물론, 개인적으로 난 조금 걱정했다. 김혜수가 <쓰리>를 했고 또 잘 하긴 했지만 좀 더 대중적인 배우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일단 감독이 원했고 만났을 때 너무 느낌이 좋아서 우린 바로 하자고 했고, 김혜수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며 여지를 뒀었다. 결국, 2~3번 만난 끝에 영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 투자 받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겠다.
김: 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투자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니까.
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영화가 나오기까지 제작사 대표로서 꾸준히 한 일은 무엇인가? 영화가 죽일 거라며 입소문 내고 다닐 수도 있었을 테고...
김: 하하하! 사실 난 기자들은 물론이고 주변사람들한테도 큰 기대를 안 하게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니까. 그래서 그 동안 영화가 좋을 거라는 이야기는 한 적 없고 대신 전에는 안 그랬지만 요번엔 돼야 한다. 그러니 도와달라!는 말은 많이 했다.
서: 정말 애타게 헬프 미를 외치고 싶을 만큼 피 말리는 순간도 있었을 게다
김: 음.................영화 진행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건 우리영화가 한국공포 중 가장 먼저 여름의 포문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내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때문에 넉넉지 못한 일정 속에서도 제때 작품을 마무리해준 김용균 감독과 김혜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원래, 감독이 호홉이 긴 영화이긴 하지만 <와니와 준하> 때도 그랬고 촬영일정을 앞서가며 진행을 빨리 시키는 스타일이 아니다. 김혜수 역시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소화할 장면이 너무 많았다. 공포영화는 아시다시피 배우가 특히나 육체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는 영화 아니냐. 그래서 아플까봐 겨울에 걱정이 많았다.
김: 엔딩 신을 찍고 아팠던 건데 보면 안다. 아플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겠다.
서: 그래도 그 뒤 별 탈 없이 촬영을 마쳐 다행이다.
김: 그러게 말이다. 그때 한번 아프고 또 아플 수도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저 여자가 체력을 버틸까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도 잘 버텨줬고 너무 잘해줬다. 다시 얘기하지만 <분홍신>은 김혜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내가 다른 기자들한테 우리 영화 좋다는 말은 안 해도 김혜수 연기만큼은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 김혜수가 진짜 고마울 뿐이다.
서: 솔직히 이번 영화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김: 음..................특별히 아쉬운 건 없고 다만 이런 건 있다. 처음에 난 20대 초반의 대중이 반길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감독은 30대가 더 호응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자기가 20대 감성에 맞는 이야기를 잘 할지 모른다며 말이다. 그게 조금 불만이었다.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어린친구들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내 입장이었으니까.
또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욕망쯤으로 대변될 수는 20대가 아닌 복합적 욕망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많은 30대쪽으로 가면 장르적으로 깊이가 있어지는 반면에 선명해지지 않는 측면도 있어 혹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니 선택을 잘 한 거구나 하는 안심이 들더라. 감독이 잘 할 수 있고 잘 만들 수 있는 걸 하게끔 해줘야 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뒤늦은 생각이지만 지금 보면 30대가 아닌 사람이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닌데 하며 반색할 영화도 아니고....
서: 사후약방문식의 후회가 아니라 다행이다. 아 그나저나 담배 피우셔도 된다. 편하게.
김: 피긴 피는데 많이 안 핀다. 하루에 한 개 피 정도.
● 물론, 감독이 난 이 장면은 절대 못 잘라! 하면 설득은 해보겠지만 구속력은 없다.
서: 김혜수한테도 물어봤지만 김광수 대표는 어떤가? 촬영현장이든 후반작업이든 자주 얼굴을 내미는 편인가?
김: 번번이 드나들며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촬영장에도 굉장히 중요한 촬영이 아니면 안 가는 스타일이다. 같이 회의는 하지만 주로 프로듀서한테 맡기고 후반작업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서: 그 질문을 던진 건, 부쩍 요즘 들어 몇몇 감독을 빼놓고는 상업영화의 편집권이 감독의 권한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서글픈 푸념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김: 우린 워낙이 십 수 년을 한 팀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사실 누구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뭐 별로 그런 게 없다. 굳이 따진다면 감독의 생각이 더 중요하겠지만 어느 누구 하나의 의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전부터 한 팀으로 굴러왔기 때문에 서슴없이 서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물론, 감독이 난 이 장면은 절대 못 잘라! 하면 설득은 해보겠지만 구속력은 없다.
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은 마케팅 측면에서 좀 어긋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들었다. 한데, <분홍신>의 경우는 꽤나 성공적으로 홍보가 진행 중이라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나 역시 만족하는 편이다. <와니와 준하> 때는 포스터와 예고편 나올 때부터 마케팅 방향과 달라서 이 영화 실패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는 로맨틱 코미디고 예고편은 슬픈 영화고, 당최 이 영화가 어떤 영환지 모르게끔 나왔었다. 그래서 포스터와 예고편만 잘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서: 그건 누구 아이디어인가? 전철역에 나타난 분홍신을 품에 안은 소녀!
김: 아~그건 우리 기획실 아이디어다.
서: 꽤 반응이 좋던데...
김: 그런가? 난 그보다 더 성공했어야 돼! 라고 다그쳤는데 하하!
내가 원래 마케터 출신이고 그 전에 성공한 아이템들도 여럿 있어서 그런지 마케팅에 자신이 있었다. 아까 말했지만 <해피엔드>는 명필름과 같이 했기 때문에 잘했어도 전적으로 우리의 아이템이라 볼 수 없었고, 우리가 기획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은 둘 다 안 돼 사실 창피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외주 줄까 생각도 했었더랬다. 특히, 이번에도 안 되면 심각하게 고려해보려고 했는데 다행히 뜻하는 대로 됐다.
서: 지금 현재 LJ필름 마케부서에 있는 곽신애 이사와 오래 전 함께 했던 마케팅 회사 '바른 생활'때의 경험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됐겠다.
김: 당연하다.
● 청년필름을 만든 건 상업영화를 만들려고 시작한 거지 사회성과 정치성...
서: 라틴아메리카의 영화공동체 우카마우 집단을 한국에서도 실현시켜보고자 전문창작집단을 꿈꿨던 영화제작소 '청년'이 청년필름의 모태다. 그래서 그런지 좀 의식 있는 어려울 영화를 주로 할 거 같다는 오해를 본의 아니게 불러 일으켰던 거 같다. 청년필름이 지향하는 영화는 어떤 영환가?
김: 개인 김광수와 청년필름의 그것은 좀 다르다. 우선 우리 팀은 개성 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모토다. 어떤 영화를 만들든 남다른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단, 사회성 정치성을 함의하고 있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얼마나 담을 것인가 그건 뭐 감독에 따라 작품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작품에 그걸 담고자하는 건 아니다.
서: 그럼 개인 김광수는?
김: 청년필름의 대표가 아닌 김광수는 지속적으로 어쨌든 운동적인 관점에서 일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예를 들어 파병반대도 했었고 민노당 지지도 했었는데 그건 꾸준히 행동으로 옮기며 실천할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영화제작소 청년은 운동단체였지만 청년필름은 그냥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로 알아줬으면 한다. 물론, 사람들이 흔해 말하는 그런 기대가 고맙기도 하지만 가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청년필름을 만든 건 상업영화를 만들려고 한 시작한 거지 장편 안에 사회성과 정치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담으려고 만든 건 아니다.
서: 정치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발언을 해온 만큼 다른 질문을 드릴까 한다. '영화인신문고'는 최근 영화 현장에서 발생한 부당노동행위를 고발 받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는 스탭들 임금체불 문제로 몇몇 제작사를 고소하며 법적인 소송까지 벌였었다. 이러한 스탭들의 열악한 상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주먹구구식 계약서부터 시작해 개선해야 할 사항이 산적한데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가?
김: 일단은 스탭들이 자기 힘을 가져야 한다. 친한 후배도 많아 조수연대분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얘기하는 게 제작자들 중 몇몇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크게 기대하지 마라!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뭘 해줄 수는 있지만 그걸 믿고 기대하지 마라! 너희들이 힘을 키워서 자꾸 요구해야한다. 요구가 많아져야 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선 조직의 힘을 키우는데 매진을 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해준다. 물론, 나 역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뭔가 하는 거에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권익이 보장되고 강화된다.
서: 근데 그게 참 쉽지 않은 문제다.
김: 안다,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우선은 자기 힘을 키워야 하는 게 급선무다. 진보적이고 활동적인 제작가들과 계속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긴 한데 사실 아직 뚜렷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게 없다. 계속 고민 중이다.
서: 또, 이런 저런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뿐 아니라 현재 몇몇 대기업의 체인망으로 구성돼 있는 스크린 과점화 현상에 대해서도 숱한 논의가 필요가 시점이다. 좀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김: 그 문제에 대해 나도 <질투는 나의 힘>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서: 그 영화 CJ가 배급한 걸로 알고 있다.
김: 맞다. 그때 배급을 CJ가 했는데, 첫 주 77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가 이틀 지나 20개미만으로 다 떨어져 나갔다. 57개는 프린트 값도 못하고 폐기된 거다. 그런 영화로 따지자면 나름 와이드릴리즈였는데 아무 개념 없이 배급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급사에 대한 추궁이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다.
서: 그러니까 소규모로 극장을 잡아 장기 상영을 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다?
김: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데, 홍상수 감독이 <극장전>을 가지고 이번에 그런 시도를 했는데 너무 안 되더라! 정말 풀기 어려운 난제다.
서: 김기덕 감독의 <활>도 그렇고.
김: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외국사례를 연구하며 얻은 게 있다면 그런 류의 영화만 전문 배급하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일단락 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런 배급회사가 있긴 하지만 그 차원이 외국과는 좀 다르다. 다른 영화를 배급하는 회사에서 이런 부분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해서 하는 정도지, 예술영화만을 고집하며 전문적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없는 게 현실이다. 인디스토리하고 아트플러스와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더불어 영진위와도 논의를 해봐야 한다. 지금은 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 확보하는 일에 주력을 하고 있는데 그거 더하기 배급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회사라든가 사람을 창출하고 확보하는 일에도 서로 절실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서: 스크린쿼터 역시 빠질 수 없는 문제다. 다만, 그것과 연관이 있되 좀 비껴난 사안을 말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 스크린쿼터는 반박할 수 없는 성역화된 영역이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이런 요구도 나오는 있는 중이다. 스크린쿼터 문제뿐 아니라 제한상영가 등급보류 등 사전심의라 볼 수 있는 문제투성인 등급심의에도 영화인들이 뭔가 소리를 내야 하지 않냐?
김: 사전심의가 아닌데 사전심의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우리 나름대로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고 거다. 근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인회의가 지속적으로 하고는 있는데 나 역시 영화인회의 상임집행위원회 중 한사람이고 우리 딴에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얘들은 스크린쿼터만 매달리고 나머지는 열심히 안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 부분 역시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해결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서: 뭐 사실 거기에는 무비스트를 포함해 여러 매체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본다. 스크린쿼터야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니 취재를 나가고 그렇지 않은 현안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솔직히 많다는 거다.
김: 하하하...뭐....
서: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충무로에는 정말 풀어야할 숙제들이 산적한 거 같다. 그럼 그중에 김광수 대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사안은 무엇인가?
김: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다는 거. 수익이 났을 때 그 수익이 다음 영화를 위해 환원돼야 하는 재생산 구조가 갖춰줘야 한다. 스탭들한테도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지불돼 다시금 뭘 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좋은 인력이 들어왔다가도 저임금 구조에서 버틸 수 없으니까 금방 나가고 다시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고 그러다 또 나가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그런 폐단이 쌓이기 때문에 영화 필드의 전체 전문성이 떨어지고 원래 계획대로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특정한 몇몇 배우와 제작자에게 부가 편중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야 아직까지 수익을 낸 적이 없지만 만약에 난다면 아주 공평하게 나누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누가 봐도 고루 분배됐다고 느낄 만큼 노력할 계획이다.
김: 음...........지금 한국영화를 많이 사랑해주고 거기 더하기 한류까지 겹쳐 분위기가 좋은데 과연 이러한 뜨거운 열기가 얼마나 더 지속적으로 갈 거냐는 문제다. 자칫하면 바로 위기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분명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김: 그렇다. 긴장을 하고 관객들과 좋은 방향으로 만날 수 있도록 부단히 연구해야 한다. 좀 풀어진 상태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서: 그 문제도 있다. 현재 막강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배우를 보유하고 있는 매니저멘트사와 제작자들간의 첨예한 갈등. 그러니까 매니저멘트사가 영화의 공동제작, 지분 등 자본주의 생리에 따라 이것저것 요구를 하고 있고, 충무로 토착 제작사들은 이에 반감을 강하게 드러낸 상태다. 어제 그에 대해 대책회의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 이 사안을.....
김: 무리한 제안이라 말하고 싶다. 각자 전문성을 가진 자신의 일에 매진할 때라고 본다. 물론, 그들이 절대 제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매니저멘트사가 제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지적하는 거다. 다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배우를 얹으면서 아까 말한대로 지분을 원하거나 공동제작 크레딧을 요구하고 매니저 개인의 크렛딧까지 밀어부치는 경우도 있다. 이 배우랑 저 배우랑 끼어팔기하는 사례도 눈에 띄고. 이런식의 과다한 요구가 지금 당장 단기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다. 영화산업은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그에 따라 자연스레 찾아오는 관객들과의 관계가 탄탄하게 구축되야 발전하고 유지된다는 진실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 싶다.
서: 안 좋은 결과란 구체적으로?
김: 홍콩처럼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 재미없다.' '그 배우는 만날 그 역할만 한다' 이런 질타가 숱하게 나오기 시작하면 곤란하다는 거다. 사실 지금도 그런 몇몇 배우들 있지 않나 늘 똑같은 역할만 하는...그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재분배에 속하는 문제이긴 한데 제작비 안에 주연배우가 가져가는 캐스팅비용이 너무 크다.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분위기고. 그것이 제작비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결국, 배우들과 매니저먼트회사가 일정 부분 양보해야 된다고 본다. "많이 벌어서 잘 나눠갔자. 내가 이 영화에 한 게 있지 않냐 그러니까 그에 걸맞는 인센티브를 달라!"고 하는 게 정당하고 올바른 요구이긴 한데 그 이상으로 무리한 지분을 강요하거나 공동제작을 한게 아닌데 공동제작 크렛디을 제안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서: 그렇다면 김혜수의 캐스팅 비용은 별 문제 없었나? 혹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김: 얼마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적당한 선에서 서로 만족스럽게 잘 정리된 편이다. 잘 되면 서로 기분좋게 인센티브 주고 받자 뭐 그런식으로...
● 노동자가 있는 곳엔 노조가 있어야 된다
서: 청년필름은 국내최초로 노조가 생긴 영화사다. 사실, 이쪽 필드가 워낙 가족적이다 보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인데....그런 점에서 김광수 대표가 제일 먼저 시작을 했다는 점에서.....
김: 내가 하게 아니라 우리 노조원들이 한 거다. 난 탄압하지 않았을 뿐이다...하하!
난 그렇게 생각한다. 노동자 있는 곳에 노조원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두 명 이상이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까. 근데 그렇게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는 좀 걱정이 된다고 하고 노조원들한테는 청년필름 합리적인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노조가 생길만큼 문제가 있냐 그러더라.(웃음)
서: 노조설립에 대해 그만큼 심사숙고하며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김: 여튼, 노동자가 있는 곳엔 노조가 있어야 된다. 물론, 노조가 얼마나 노동자성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회사 노조만 하더라도 사실 스스로 노동자성이 있다고 인식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예를 들면 노동절 집회에 난 나가도 우리 노동자는 아무도 안 나온다.(웃음) 그런 불만이 내 나름대로 있다. 노동자로서 자기 인식을 확실히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걸 내가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스스로들 터득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아직 노조 탄압이 없어서 그런지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서: 그래도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다.
김: 물론이다. 노조가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기분 좋고 배우는 게 많다.
김: 노조가 있기 전에는 "이 정도 이야기하면 좋아할 거야! 난 합리적인 사람이자너" 하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게 "아 나도 어쩔 수 없이 사용자일 수밖에 없구나"하는 깨우침을 주더라. 진보적인 내 자신의 가치관과 상관없이 사용자는 사용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런 점에서 사용자로서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데 있어 노조가 견제를 해주는 측면이 있다. 또, 착하게 살아야 돼! 착하게 살아야 돼! 이렇게 되뇌며 다짐을 하지만 변질될 가능성을 분명 갖고 있다. 그걸 노조가 차단해주게 때문에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무시 못 한다.
서: 그럼....
김: 아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회사가 체계적으로 가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전에는 임금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그 체계가 잡혔다. 고맙게 생각한다.
서: 그래도 안 좋은 점도 있을 텐데.
김: 안 좋은 점이라면....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거다. 하하하! 분명 이게 합리적이라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에이~ C..........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렇게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서: 김혜수 인터뷰 할 때 1대 노조위원장인 문현정 팀장한테 물어봤었다. 노조가 생긴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어떠냐고.....현정 팀장 왈 “에구~~돈을 많이 벌어야지 노조활동도 활발해질 텐데...”(박장대소)
김: 맞다. 틀린 말 없다. 사실 작년에 임금 체불된 게 좀 있다. 그게 다 해결이 안 됐다. 한 달에 한 달 치씩 더 해 풀어가는 중인데 다음 달 정도면 다 해결이 될 거 같다. 이런 문제만 해도 난 그런 대로 합리적인 선에서 타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었을 거다. 영화를 찍든 안 찍든 회사가 당연 줘야 될 거고 당연히 받아야 되는 몫이니까....ㅜㅜㅜ
● 감독은 못 해도 정치는 나중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 한양대 연극영화과 83학번인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느라 그 쪽 일을 못하고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운동을 했었더랬다. 그 후 영화제작소 청년부터 마케터로 일했던 동숭시네마텍과 바른생활 그리고 청년필름 대표 등 그간 다양한 이력으로 충무로를 누볐는데 주변으로부터 감독데뷔 권유를 받았지만 늘 김광수 대표는 NO!라고 했다. 그 결심엔 변함이 없는 건가?
김: 학교 다닐 때부터 연출을 해 본적이 없다. 지금도 연출을 하기엔........여러 모로 아니다 싶다. 나를 잘 아는 건데 뭐라 그럴까 창의력보다는 사람들 조율을 잘하는 쪽이랄까. 아 저 사람은 저걸 잘해! 이 사람은 이걸 잘해! 그런 걸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거 같다. 그리고 그런 인재들을 서로 엮어주는 일에 남다른 재능이 있지 않나 싶다. 이게 결국은 프로듀서의 역할 중 중요한 하나인데 내가 봤을 때 프로듀서와 감독의 제일 큰 차이는 얼마나 창의력이 뛰어나고 덜 뛰어나냐! 그거라고 본다. 연출을 하기엔 난 창의력이 부족하다.
서: 그간 소신 있는 정치적 발언을 적잖이 해왔는데 그렇다면 역으로 정치를 할 생각은 있나?
김: 나중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은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로 유명해져서 그 힘을 갖고 정치를 할 생각도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가 안정이 되고 내가 영화를 안 하고 떠나도 유지가 된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얘기다.
서: 정치를 한다면 구체적으로
김: 그러니까 국회의원을 한다는 건 아니고 좀 더 운동적인 성격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참여연대나 그런 류의 단체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지금 영화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회를 좀 더 진보적으로 개혁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서: 무비스트를 포함해 영화매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거다.
김: 일단은 자기 색깔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온 오프라인이든 자기매체로서 자기 색깔을 정확하게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또는 업무적으로 친한 것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기준에 안 맞으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맞으면 옹호해주고 그랬으면 한다. 물론 나도 영화를 만들고 마켓을 하고 그런 입장에서 우리 영화를 다 좋게 써줬으면 하는 그런 맘 왜 없겠나?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 발전하려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본다. 비판하는 척하다가 좋게 써주는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말이다. 특히, 온라인은 더 심하지 않나 싶다.
서: 좀 찔리기는 하지만 좋은 말씀이다.
김: 근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너나 잘해! 그런다. 하하하!
서: 청년필름의 대표가 아닌 인간 김광수로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김: <러브스토리> 또 바바라 스트라이샌드가 나오는 <추억>. 주로 멜로드라만데 그 안에 사회와 계급의 문제가 잘 녹아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서: 오늘 처음 뵀지만 굉장히 섬세한 거 같다. 블로그에 가 봐도 아침프로에 나오는 요리사마냥 음식 만들기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으시고.
김: 아! 요즘은 잘 못한다. 너무 하고 싶은데 영화 때문에 시간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요리하는 거 좋아한다. 또 여성성 남성성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여성성이 많은 편이다. 일하다는데도 도움을 주고.
서: 그나저나 김광수 대표와 본 기자와 공통점이 있더라! 대학을 10년 동안이나 다녔다는 거.
김: 하하하하! 그런가?
서: 뭐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다른 점은 김광수 대표와 달리 본 기자는 아무 생각 없이 심하게 놀았다는 사실이다.
김: 아니다. 나도 놀았다.
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거 같다. 김광수 대표는 어느 누구보다 치열한 청년기를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묻는데 당시 가슴에 품고 있던 김광수 대표의 불타는 가치관이 지금 현재에는 어떤 식으로 진화중인지 궁금하다. 물론, 당신은 지금도 혈기방장한 청년이다.
김: 아니다. 이제 40이 넘었는데...(웃음)
음.....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났으니까. 아 나도 기성세대가 됐구나 그런 느낌을 종종 받는다. 특히, 젊은 친구들과 만나 소통할 때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 개혁을 못 했구나’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래도 내 나이 또래의 사람과 또는 나이와 상관없이 조직에 묶여 있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인, 개혁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중이고....
서: 마지막으로 김광수 대표가 품고 있는 꿈을 말해 달라!
김: 이번에 흥행이 잘 됐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 청년필름이 떠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해결도 하고 우리 청년필름 식구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정말로....
인터뷰: 서대원 기자
사진: 권영탕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