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방문했고, 봉준호 감독 영화를 통해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됐다. 최근 찍은 영화중에 3페이지 분량의 한국어 대사를 하는 영화가 있다. 거기서 어떻게 한국어 대사를 했는지 봉준호 감독이 궁금해 하더라. 한국어 너무 어렵다(웃음).
한국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로 잘 알려져 있다. <캡틴 아메리카>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의미일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큰 영화에 출연하면 다른 많은 기회들이 주어질 수 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과 미팅도 할 수 있었을 거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큰 영화가 작은 영화에서 일할 때만큼 만족스럽지 않거나 보람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큰 영화들을 통해서 작은 영화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작은 영화 같은 경우는 알려진 배우의 이름이 필요할 때가 있고 투자에 보탬이 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 히어로고 <설국열차>는 인간 히어로에 가깝다.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두 역할이 굉장히 다르다. 캡틴 아메리카는 타고난 히어로라서 자신보다 남들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고 히어로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반면 커티스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열차에 타기 전은 물론이고 열차를 탄 후에도 사람들을 죽이고 나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주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히어로가 된 케이스다.
사실 영화를 선정할 때 감독을 제일 우선시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크립트 중에 내용이 좋은 것들은 많지만 영화화되면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스크립트는 종이에 있는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스크립트를 살리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세계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같이 작업해본 봉준호 감독은 어땠나?
봉준호 감독의 매력은 콜라보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감독은 자기의 아이디어나 비전을 배우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최고를 이끌어내고 본인의 비전도 강요하지 않는 등 콜라보 능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중간 중간 다양한 리딩을 많이 진행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구축됐다. 봉준호 감독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많이 물어보고 대화를 이끄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정말 안심하고 일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 입장에서 완전히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
다른 국적의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외국에는 실력파 배우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과 함께 일할 기회는 흔치 않다. 연기를 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세트 밖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인보다 좀 더 수다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세트 안에서 한국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몰입은 정말 놀라운 정도다. 언어를 보면 배우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촬영을 하고 나서는 느낌을 소통할 수 있었다.
커티스를 연기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은?
커티스라는 캐릭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거다. 내면에 싸움이 계속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뭔가에 대해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의 죄책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매일 죄책감과 수치심이 들어야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언제였던가를 계속 생각해야했다. 그래서 계속 암울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17년 전 열차 꼬리칸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이야기들을 플래시백이 아닌 커티스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그 신을 연기할 때 어땠나? 배우에게 그런 장면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전 생활이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리퀄을 만들만큼 자료가 있을 것 같다(웃음). 이들이 기차를 어떻게 타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구가 급속도로 얼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차를 타기 위해서 정말 미친 듯이 달려들었을 거라 예상되고, 일단 꼬리칸에 탔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잔혹하고 해서는 안 될 폭력적인 일을 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죄책감을 꼬리칸에 탄 이들 모두가 안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감정을 살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연출을 하는 것이다.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연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거다. 물론 막상 연출을 하고 감독으로 형편없는 결과를 내놓는다면 다시 연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웃음).
답변 중에 프리퀄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설국열차>의 프리퀄이 제작된다면 출연할 의사가 있나?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지 않더라도?
봉준호 감독이 연출할 때만 출연할 거다. 봉준호 감독이 한다면 무조건 한다.
2013년 8월 7일 수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제공_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