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이 ‘감독’으로 불리기전 그의 직업이 구성작가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그 당시 획기적인 코너를 이끌던 사람이 불현듯 영화감독으로 변신, 그 이후 기발한 작품들을 여럿 만들어 냈다. 아니다, 로봇 변신하듯 3단 변신을 하기 전 그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도 당선되었고, TV의 고정패널로도 활동했었다. 그렇다고 그의 나이가 불혹을 바라보니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춘 문예에 당선됐을 때가 스물 넷이니, 꽤 어린 나이에 성공한 셈이다. 혹자는 그를 천재라고도 부른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마다 이런 얘길 해요. 하도 어렸을 때 시작해서 매스컴이 그런 인물이 필요하기도 해서 그렇게 된 거 같다고…6개월 천재하려면 안하고 말죠. 뭐 하나 잘 만들었다고 천재라고 하면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렇다면 과연 장진은 천재란 말인가? 하나가 아닌 이미 여러 개 잘 만든 ‘작품’을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가 영화계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충무로는 그를 비웃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란 반응을 보였다. 서울예전에서 연기와 연출 능력으로 이미 소문이 났었던 그였지만 초창기 그의 행보에 매스컴은 인색한 반응을 보였고 그 당시를 회고 하는 장진 감독은 “그 때 하도 당해서(웃음)..그 때를 계기로 귀는 열되 심장까지 상처 받지는 않게 됐어요.”란 멋진 말로 대신한다. 인터뷰를 하기 전 카메라를 세팅 하는 짧은 사이에도 어찌나 여기저기서 불러대고 인사를 하고 받고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제가 인기가 많은 게 아니고 작품이 있을 때만 그래요. 내가 일이 없으면 아무도 안 불러줘.”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예외 없이 개구진 모습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 제작 보고회 때 두 배우를 능가하는 능청스러움으로 좌중을 압도한 말 빨(?)은 온데 간데 없다. 이미 시사회전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치러냈고 앞으로도 인터뷰에 시달릴 걸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을 고르다가 겹쳐진 질문이 있어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사실 대놓고 그건 인터뷰이의 숙명이라고…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아님 말고. 식의 ‘장진스러운’ 발언을 해볼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음. 그럼 그런 질문이 나오면 내가 말을 해줄게. 편하게 해.”라며 어느새 말을 놔버린 장진감독을 보며 이왕 편하게 시작한 거 사적인 질문부터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간담회 때 왼손 약지에 끼고 온 반지가 안보이길래 시사회 때는 왜 안 끼고 왔냐고 물어보니 “무슨 반지? 아…부적 말하는구나. 그 반지는 촬영할 때 쓰는 촬영부적 같은 거예요. 그거 &%#가서 세일할 때 5만원인가? 그거 주고 산 거야. 촬영 끝났으니까 당연히 안 끼지.”라는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적이라니. 장진도 <박수칠 때 떠나라>속 무당씬 처럼 일종의 무속신앙을 믿는 것일까? 뭘 하든지 막지 않는 집안에서 자라났다는 소문이 있었던 터라 뜬금없이 집안 가풍을 물어봤다. “뭘 하든지 잘 막지 않는 집안은 뭘 하든지 잘 안 도와줘요.(웃음) 고등학교 이후에 학비서부터 웬만한 거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게 편하고 당연하게 자란 거죠. 제 진로에 대해서 변화가 많았던 시기에 믿어주셔서 지금도 감사하고 있어요.” 집안의 막내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랐을 타입의 장진은 그렇게 온실 밖의 화초처럼 세상을 사는 법을 일찍이 깨우쳤다.
사실 그의 영화는 어떤 거창한 가르침이나 감동을 아우르는 작품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감동을 애잔하게 전해 주는 스타일이다. 그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팬들은 ‘평범한 것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탁월한 감독’이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저는 뭐…특별한걸 만들어 내려고 일부러 노력하진 않아요. 제 일상에서 손쉽게 나와 만나는 것들을 내가 바라고 싶은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거 뿐이죠. 그걸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생각, 그런 것에 대한 변별력이 생길 때 ‘저 사람은 특이해, 혹은 특별해.’하고 말하는 거 같아요. 사실 그런 거에 대한 특별한 생각도 없거든요.”
자신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그가 한 매체에 기고한 단편을 살짝 언급하자면, 갑자기 회사를 관둔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가족들은 모두들 실업자가 되려는 아버지를 말리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걸 원하지만 그 중 가장 이성적으로 나오는 어린 아들이 ‘부당한 해고에 대해서 사장에게 정식 건의하겠다’란 의견을 내고 가족들은 어린 아들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를 회사 사장실로 올려 보낸다. 회사에 다녀온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내 뱉는다 “아버지 아무리 기분 나쁘고 아니꼬와도그렇지, 사장을 그 지경으로 패놓으시면 어떡해요? 아버지 자수하세요. 경찰들 좌~악 깔렸어요"라고. 가장의 실직을 가장 가슴 아프게 덤덤히 받아들일 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기발한 반전이다.
이런 차별적 사고 방식을 가지려면 어떤 계기가 되는 일이 있지 않고서야 힘들터.이런 기발한 사고방식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취조(?)를 가장한 질문은 인터뷰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질문.. 많이 받는 편인데 늘 감동받고 감명받고 그런 게 있는 건 아니야. 사실 특별히 그런 대상은 없어요. 시작이 문학이다 보니까그런거지. 내 창작의 진원지가 그곳이거든. 음…그런 경향은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이야기를 대칭으로 보는 노력은 항상 하거든. 그럼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냐구? 지금 <박수칠 때 떠나라>가 흥행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언젠가 연극으로 다시 갈 꺼 란 생각이 들어요. 극장도 스튜디오도 지금 회사에서 제작하면서 좋은 글 쓰면서 그냥 소박하지는 않지만 그게 제 바람이에요. 인간적으로는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 가장 어려운 거죠. 가장이 되는 게.” 말은 많이 해도 개인적인 바램까지 들을 줄은 몰랐는데 오호라. 횡재했다. 인간적으로는 좋은 가장이지만 일 적으로는 글 쓰고 관련된 일을 진행 한다니 ‘역시 철두철미 하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흔히들 ‘사단’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같이 작업을 해왔다. 믿을 만한 배우들과 항상 작업해 오면서 스스로도 커짐을 느낀다는 얘기도 스스럼 없이 해왔다. 그에게 믿을 만한 배우란 과연 뭘까? “저는 정말로 운 좋게 늘 믿을 만한 배우랑 해 왔던 거 같아요. 저같이 프로덕션에 대해서도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감독은 배우 선택에 많은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 것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 영화 못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는 배우의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거든요. 다행히 작업할 때 마다 그런 배우들을 만난 거고.”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이 겹치는 것처럼 여자주인공의 이름이 거의 비슷하거나 겹치는걸 알게 된다.
<간첩 리철진>의 ‘화이’는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나오고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한다. 한 작품의 페르소나가 같다 보면 전작의 주인공과 연결되는 건 아닌지 혹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해석하게 되기 마련이다. ”제일 간단한 이유는 이름 짓기가 힘들어서지.(웃음) 이름 때문에 캐릭터가 문제되지 않는 한 그냥 가요. 의외로 해석하려 드는 관객은 많지 않아요. 지금 이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나 기자들이 자기만의 시각에서 보려고 하니까 그런 거예요. 내가 그 이름이 편하고 캐릭터가 편하면 가는 거구요. 사람들이 그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죠. 그래서 내가 바꾸려고…..”하며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약았다. 장진. 관객들은 해석하지 않으니 그 관계자들을 바꿔버린단다.
어쨌거나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개봉을 했고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의 명대사 명 장면은 어떤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송교도소에서 죄수 나오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거기 대사에서 ‘내가 칼로 놈을 쑤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그런 말이 있어요. 내 상상으로 극단적인 사람을 표현한 대사인데 찔리는 사람보다 찌르는 사람이 더 제정신 아니지 않나 라고 그러잖아. 내가 명확하게 알고 리서치를 통한 게 아니라 내 느낌대로 나오는 그런 장면이 좋아요. 전 작품 할 때 절대 리서치를 하지 않아요. 리서치를 하면 남들이 다 아는 대답이 나오잖아.” 이로써 궁금증은 풀렸다.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은 자료수집에 기초한 게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상상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장진 式 웃음 코드'라는 말에도 정말로 모르겠다고, 난 코미디에 손 뗐다라고 까지 잘라 말했다. 코미디가 과하면 진지함을 흩어놓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그가 차린 회사의 이름은 ‘film it suda다. 한글로 그대로 풀면 ‘필름있수다”란 기발한 멘트로 돌변한다. 장진에게 '수다'란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어 살기가 힘드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세상에 넣는다고 하면 내 삶의 욕구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니까 그게 의미 있는 거잖아요. 외부적 가치는 그렇고, 내 정신 세계적으로 보면 내가 그 집단에서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 집단의 색깔을 만들고 돌아가겠지. 딸 키우면서 드는 생각 같아요. 내 딸을 어딘가에서 좋은 가족이 될 거구. 아이를 낳고..뭔가 될 거고 그런 게 ‘수다’ 같아요. 지금 7,8년 같이 왔는데 그 동안 내가 사회 생활하면서 내 창작의 자유로움을 욕구를 조금 더 도움 받고 구속 받지 않기 위해서 차린 건데 ‘등 떠밀고 한번 해봐!’ 했던 그런 몇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제게는 수다지 내가 수다는 아니거든요. 그 집단은 나에게 그런 의미입니다.” 수다스러운 장진에게 수다를 물어봤지만 그가 대답한 건 자신의 ‘회사’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실 그 말이 정답이다. 즐거운 문화창착집단을 만들기 위해 세운 회사를 만듦과 동시에 그는 놀기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놀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도맡은 거였다. 어쨌거나 겹치는 질문이 있는지 내내 가슴 졸이며 했던 인터뷰는 짧지만 즐겁게 옆집 아줌마와 수다 떤 기분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줌마들 중에서도 박학다식하지만 까다로워 왠지 쉽게 친해지기 힘든 타입일 거라고 생각한 건 기우였다. 이 사람은 알고 보니 누구보다 수다스럽고 간섭 잘하는 아파트 ‘부녀회장’감이었던 것이다. 하긴 영화 속에서 연쇄 살인범이든 남파 간첩이든 옆집 형처럼 친근하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주특기를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었지만.
취재: 이희승 기자
영상: 권영탕 PD
사진: 이한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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