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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미디어에서 황진이가 뜨는 이유 집중분석!
2006년 10월 19일 목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황.진.이.
소설 『나, 황진이』의 작가 김탁환은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고 말한다. 누구나 알지만 모르는 여성. 비단 이 말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터울만으로 생긴 무지가 아님을 꼬집고 있다. 송도3절(서경덕, 박연폭포, 황진이), 송도명기라는 딱딱한 단어로 현대의 국사책에 등장하는 황진이와 뛰어난 창작자의 소설에서 거듭 태어난 황진이 사이에서 2006년 현재 우리는, ‘황진이’를 어떻게 기억(기록된 역사)하고 있으며 어떻게 반추(현실의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글깨나 읽은 선비의 지체 높은 자만심을 묵사발로 만들어줄 만큼 황진이는 음악과 시문에 밝았다. 두보와 이백의 시를 읊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자 한 자 그 의미를 재살필줄 알았다. 현대로 치자면 뛰어난 시인으로 대접받았을 그녀가 단지 기생이란 이유만으로 그 재주용함을 남성편력에 이용했다는 폄하 섞인 역사적 기록들은 되레 황진이를 역사의 그늘 속으로 숨기기만 할뿐이다.

결국, 동시대 대표적인 두 미디어에서 환생하는 황진이를 근거로 과거의 황진이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의 황진이가 어떠했는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 현대인이 황진이를 지금 왜 보고 싶어 하는지, 그게 중요하다. 지금의 시대적상황과 황진이가 결코 별개일 수 없다는 말이다. 더불어 황진이가 이 시대에 도착하기까지 사극(TV드라마를 기준)에서의 여성상의 변화 또한 지금의 황진이를 이해하는데 간과될 수 없는 문제다.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대장금>은 여성드라마의 중흥을 이끌었다. 소프드라마(불륜, 복잡한 애정관계를 다룬 드라마)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여성드라마는 2000년 이후 제작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일련의 대작 사극드라마로 인해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시장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여성드라마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획득한다. 여성의 억눌린 욕망을 해소시키는 기능만 따져 갖고서는 여성드라마를 더 이상 해석하긴 어려워 진 것이다.

사극(드라마 기준)에서 여성성은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모양처와 악녀. 군부독재정치 시절부터 김대중 정권시절까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에서 여성은 잔꾀 많은 표독한 대상으로 그려졌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장희빈, 장녹수다. 그들은 왕의 애정을 권력 삼아 정권을 어지럽히는 훼방꾼 그 이상의 의미는 부여받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장희빈의 라이벌 인현왕후는 외유내강형의 현모양처로 묘사되면서 장희빈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제거돼야 마땅한 악녀로서의 역할을 위임받았다. 장희빈으로 분한 여배우가 표독스러운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 가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을 정도다. 물론 연기력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두 가지의 단순한 여성상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사극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현대의 가부장제 관습을 견고히 한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

사극의 목적이 여성을 폄하하는 데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극이란 장르로 통칭되는 드라마나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에 제작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과거를 빗대어 현실을 되짚는 과정이 역사극의 목적일 것이다. 되풀이 되는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또한 과거 어느 시점의 일과 비슷하리라는 추측은 거의 정설에 가깝다. 정권이 바뀌거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을 때마다 사극이 지금 처한 위기를 타파하는 ‘롤모델’을 제시해 왔음을 부정하진 못한다. 정권이 바뀔 때는 <태조 왕건> 등의 건국드라마가 인기를 끌었고 정당끼리 권력다툼을 할 때는 조선시대 파벌정치를 빗대어 현실을 꼬집었다. 단지 지금의 잣대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태도에서도 여성만큼은 열외였음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9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극에서 여성 캐릭터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식으로 재단되거나, 남성주인공의 정치신념을 응원하는 조력자로 기능하는 데 만족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역사극에서의 여성 캐릭터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드라마 <명성황후>(2001년 5월) <여인천하>(2001년 2월)에서 주인공 여성들은 남녀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스스로의 의지와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을 획득해나간다. 명성황후는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 속에서도 개화기 조선을 지키는 굳건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정왕후와 정난정을 주인공으로 한 <여인천하>는 권력을 움켜쥐기 위한 여성들의 단합과 승리를 그리고 있다. 역사극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들 여성은, 전의 사극에서 등장한 동일인물과도 역사적 해석의 잣대나 묘사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명성황후는 난세를 타파할 영웅호걸로 해석됐고, 본처를 죽인 악랄한 후처로 알려진 정난정은 신분제도를 이겨낸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렴청정으로 후세에 악명을 떨친 독재자 문정왕후 또한 남성우위 시대에 기득권을 획득한 지혜로운 권력자로 재조명되었다.

현모양처나 악녀로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이 같은 재해석은 2000년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강금실, 박근혜, 전영옥 등등 다수의 여성들이 변방이 아닌 정권의 핵심부에 위치하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롤모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 쪽은 남성이 주도한 사회였던 만큼 새롭게 권력의 핵심으로 위치한 여성 정치인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남성보다 더 많은 덕목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대중의 암묵적인 요구는 역사극을 통해 표출됐다.

정치와 권력을 중심으로 <여인천하>와 <명성황후>가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면 김혜수 주연의 드라마 <장희빈>(2002년 11월)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이 권력의 중심에 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견고한 가부장제 사회가 자신들이 납득할 정도에서만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역사극을 통해 엿보는 건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여성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충돌을 일으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여성상을 역사에서 찾아냈다는 거다.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대장금>은 지금 시대가 원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여성상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장금이는 훌륭한 요리사이며 의술에도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의지와 신념이 강하면서 남자 못지않은 의리도 자랑할 줄 아는 여성이다. 더욱이 그녀는 편법을 쓰지 않고 자신이 뜻한 바에 도달한 올곧은 인물로 묘사된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장금이의 모습을 통해서 부와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을 대입 해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대장금은 야심가형의(남성적인) 여성정치인보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자혜로운 여성정치인의 롤모델이다. 장금이가 만들어낸 여성상은 비단 정치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는 게 영상매체인 만큼 매일매일 정세가 변하는 정치권의 변화는, 정치와 권력을 주 주제로 삼는 사극에 가장 발 빠르게 영향을 미쳤음이 당연지사다.


장희빈을 거쳐 장금이까지 사극은 시대가 원하거나 혹은 경계해야 할 여성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현대에 불러들였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현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을 ‘대장금’으로 완성해 놓고, 2006년 현재 ‘황진이’를 재발견하려는 미디어의 시도는 다른 관점(숨은 의도)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장금>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미디어가 제2의 장금이를 꿈꾸며 황진이를 주목한다고 섣불리 결론 내려서도 안 된다.

조선중기(중종시대) 송도에서 황진이는 관기 진현금의 여식으로 태어났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 어미의 신분을 이어받아 황진이 또한 관기로 키워졌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게 태어났더라도 관기의 자식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황진이는 원하지 않아도 기생이라는 신분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대부의 유흥을 북돋기 위한 존재, 기생. 단순히 지체 높은 양반들의 놀이상대 혹은 놀이감으로 살다질 한낱 기생의 삶을, 정녕 황진이 본인이 원했는가는 그녀가 남긴 시와 범상치 않은 행적들이 이것들을 반증하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여성 장금이와 달리 황진이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천한 관기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시대를 잘못 만난 인물이다. 장금이에게 없지만 황진이에게 있는 게, 바로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감정의 경험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여성의 단합과 우정, 경쟁과 질투는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 시련은 있어도 장금이에게 실패는 없다. 또한 장금이에겐 사랑보다는 야망이 우선이다. 반대로 황진이는 성차와 신분의 굴레에서 진정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한 여성이다. 엄격한 신분제도 시대에 기생은 다른 여성에 비해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직업이었을 거다. 직업의 특성상 황진이는 서경덕, 벽계수, 지족선사, 이언방 등등 다양한 남성을 만나 시와 음률 그리고 학식을 교류했고 또한 사랑했다. 교류할수록 꿈은 커져만 갔을 것이고 사랑할수록 이별은 짙어졌을 것이다. 기생 황진이는 신분과 성차의 굴레 때문에 매번 꿈을 좌초시키고 이별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황진이의 뛰어남과 화려한 남성편력이 시대를 앞서나간 진정한 자유인으로 그녀를 기억하게 만들지만, 그것만 가지고 쉽게 단정 짓기에는 황진이는 너무나 비범한 여인네였다.

단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장금이는 성공한 여성, 황진이는 실패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뛰어난 외모와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황진이가 실패한 여성이라는 정의는 동시에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여성상의 표본 장금이만으로는 현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개성의 여성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린 숙지할 필요가 있다. 장금이를 ‘보완’하는 여성이 아닌 장금이를 ‘대안’하는 여성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환생하는, 황진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불패의 여신 장금이는 단지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상향일 뿐이고 황진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을 대변할 만한 현실적인 여성상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가부장제의 잔재는 성차를 가지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계급을 구분 짓는다. 장금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고 해서 여성의 꿈이 이루어질 일 만무하다는 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가부장제와 계급사회의 폐단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했던 황진이는 분명 시대를 앞서 태어난 죄로 그 꿈을 만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황진이의 실패가 현대 여성의 실패로, 역사가 반복되듯, 되풀이 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해 혹은, 알려주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로 '황진이'가 제작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장난 비슷하게, 실제의 황진이가 시대를 앞서 태어났다면 2006년 환생하는 2명의 황진이는, 실제의 황진이가 꿈꾼 그 앞선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김탁환의 『나, 황진이』원작, 드라마 <황진이>는 예술가로서의 황진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황진이의 사랑과 이별이 그녀의 예술혼을 일깨우는 밑바탕으로 그려질 예정이라 한다.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는 북한 작가 홍석중의『황진이』를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다. 영화는 조선중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시대상에서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아를 성찰하는 황진이를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대에 영화와 드라마로 태어나는 두 명의 황진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황진이는 매체에 차이만큼 딱 그만큼씩 다를 것이다. 확실한 건, 영화 속 황진이든 드라마 속 황진이던지 간에 실제의 황진이보다는 현 시대가 보고 싶어 하는 황진이를 그릴 거라는 사실이다. 시대를 앞서 태어난 여성이 아닌 시대를 주도한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롤모델’ 황진이로 말이다.

글_ 2006년 10월 19일 목요일 | 최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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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ovv
무비스트가 근래 방송쪽에다가도 영역을 넓히는것 같네요....아니면 기자님의 개인적 취향;;? 그래도 발전하는 모습 보기좋네요. 제 무릎을 치면서 읽었어요 흥미로운 기사 잘 읽고갑니다.   
2006-10-20 02:09
jujusg
황진이 드라마가 웬지 땡기네요...봐야겠군   
2006-10-19 17:42
gracehpk
다음에 한번 꼼꼼히 읽어봐야 겠지만 (지금은 자기 직전에 살작 훑었음;;) 여성상에 대해 나름 생각을 많이 하신 거 같네요; 한동안 나도 좀 많이 페미니스틱 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때랑 조금은 다르지만 여전 공감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남성이나 여성으로 갈리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올곧게, 최선을 다해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드라마 작가도 표현하고 싶은 거 같지만, 어쨌든 이야기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 만큼 더욱 지향하는 '여성상'이란 말을 지울 수 없는 거겠죠. 핫핫..인간의 길이란;;   
2006-10-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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