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
자수성가한 영웅! 배트맨의 탄생비화 | 2005년 6월 9일 목요일 | 서대원 기자 이메일


배트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십 수 년이 지났건만, 본 필자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대관절 왜 그놈의 기괴한 미소와 함께 조커가 날린 “달밤에 악마랑 춤춰 본 적 있나!” 이 대사가 그리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팀 버튼에 이어 배트맨 프랜차이즈를 책임진 조엘 슈마허의 두 편의 연작이 심히 아동틱한 비주얼과 분위기로 일관해 많은 이들의 심기를 살짝 건드렸음에도 여전히 이 깜장 복장 사내의 인생살이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배트맨의 저러한 대책 없는 기기묘묘한 대사와 분위기, 이미지의 향연 때문일 게다.

어쨌든, 8년이라는 장고 끝에 다시금 돌아온 <배트맨 비긴즈>가 전작과 절연한 채 선택한 전략은 이전 시리즈의 프리퀄에 해당되는 ‘배트맨’의 왕년의 이야기 즉, 탄생비화다. 브루스 웨인이 왜 박쥐인간으로 변모했고 부패로 찌든 고담시의 안녕을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는지 영화는 그 기구한 운명의 파노라마를 심히 상세히도 펼쳐 보인다. 물론, 배트맨 원 편에 이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긴 했지만 거의 맛배기 수준에 불과하다.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를 실현하고자 배트맨의 권능에 가려 있는 ‘인간적 면모’를 말이 되게끔 리얼리티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이며 최대치로 부각시킨다. 그럼으로써 당 영화는 죄의식과 분노에 시달리며 분열증적인 자의식으로 혼란스러운 배트맨의 내면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놀란 감독의 전작인 <메멘토>와 <인썸니아>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배트맨 역시 신경쇠약의 남자다.

결국, <배트맨 비긴즈>는 신화적으로 드리워진 배트맨의 야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서의 드라마에 꽤나 무게를 둔다. 본격적으로 고담시의 나쁜 놈들을 단죄하고자 배트 슈트를 제대로 갖춘 배트맨의 등장 시점이 중반 이후라는 사실은 <배트맨 비긴즈>가 얼마나 브루스 웨인의 질풍노도와 같은 성장 시기를 중요하게 다루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악역의 면모에서도 이 점은 드러난다. 살인 예술가를 자처한 조커, 펭귄맨, 캣우먼 등 배트맨의 존재를 넘어서는 종래의 악당과 비교하자면, 뭔가 있어 보이긴 하나, 밀리는 형국이 역력한 점 역시 배트맨이라는 인물에게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물론, 극한의 속도감을 과시하며 눈과 귀를 빼앗는 보편적 블록버스터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소 밋밋하고 지루하게 와 닿을 수 있는 단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같은 시청각적 갈증을 중반을 넘어서며 속 시원히 해갈해준다. 곡선미를 뽐내며 섹시하기까지 했던 기존의 배트 모빌 대신 탱크적 힘을 뿜어내는 노가다용 배트카, 상당히 예스러운 수공업적 액션 설계 등 원초적이며 묵직한 힘이 넘쳐나는 사실성에 바탕을 둔 박력 있는 이미지를 전시하며 절대 가볍지 않은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과시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은폐함을 우선 시 해야 할 배트맨이 나 여기에 있다고 광고하는 거 마냥 야광스런 노란색 바탕의 심벌마크를 가슴팍에 달고 다닌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뭐 팀 버튼의 배트맨은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공간으로,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오색찬란한 배경으로, 놀란 감독의 배트맨은 리얼리티가 강조된 누아르의 정서로 저마다의 영화적 색깔을 내비췄다, 볼 수 있다.

박쥐인간은 수많은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태생적으로 혹은 우짜다가 저짜다가 얻은 초능력으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초인이 아니다. 재력을 밑천 삼았을 뿐이지 유년시절 트라우마를 땀과 노력으로 돌파하며 자력으로 힘을 키운, 경제적 측면을 제외하자면, 자수성가한 영웅이다.

자수성가한 배트맨은 완전무결한 영웅 슈퍼맨, 원더우먼과 한 솥밥을 먹는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지만 당 영화에서 만큼은 마블 코믹스의 그들과 더 유사한 측면이 부지기수다.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반빙신이거나 자신의 정체성에 하루가 멀다 하고 골몰하는 헐크,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의 캐릭터와 가깝다는 것은 결국, 블록버스터의 미덕인 볼거리와 면죄부로 통하는 찰기 있고 탄탄한 얼개의 이야기를 작심하고 함께 보여주려는 놀란 감독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까딱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되는 악수이기도 하지만.

허나, 다행히도 놀란 감독은 블록버스터라는 외관으로는 융화하기 벅찬 두 가지 영화적 요소를 궁극의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흔들림 없이 안정되게 끌어안으며 매끈하게 아우른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이런 인생역정을 거쳐서 배트맨이 됐걸랑!”

바로 그 자수성가한 탄생비화를 진중한 시선으로 세심하게 그려낸 블록버스터 <배트맨 비긴즈>는 분명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나는 뭐 이렇게 성공했네! 돈 벌었네!”하며 자수성가한 자신을 지 스스로 상찬하며 내놓은 오만가지 성공신화물 도서보다 볼 만한 가치가 더 있다는 말이다.

(총 17명 참여)
gagahoho
이번 배트맨 기대되네요.......글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2005-06-10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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