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추억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중년들의 청춘 회고록 | 2004년 1월 14일 수요일 | 용필이 이메일

교복, 이소룡 추억의 시절
교복, 이소룡 추억의 시절
최근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일컬어 새로운 관객의 창출이라 이름짓는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관객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통통 튀는 십대들의 극장나들이가 새로운 관객의 창출이 아니라 결혼과 함께 극장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회귀를 부추기는 영화들을 새로운 관객의 창출이라 부르고 싶다.

최근의 <실미도>가 그렇고 그 뒤를 이을 <말죽거리 잔혹사> 역시 그런 부류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70년대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학교의 모습에 10대들 역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영화 속 장면을 실제 몸으로 겪어야 했던, 지금은 40대 언저리의 중년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련함이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련함이여
인사가 시원치 않아서, 복장이 불량해서 교문 한쪽에 엎드려뻗쳐 있는 검은 교복의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내양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는 버스랑 몰래 맛있는 반찬을 숨겨 먹던 도시락이랑 도색잡지 그리고 이소룡과 고고장 등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배치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통기타와 라디오의 추억은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보여줬던 추억보다 특별하다. 한번쯤 기타를 배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왜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남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습하는지. 물론 이것은 남과 여의 미래에 대한 복선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기타를 배우는 사람이 가장 먼저 퉁기는 게 로망스고 다음 단계가 바로 노래를 곁들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영화는 초반 이런 추억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극을 끌고 가는 대신 1978년을 살았던 청춘들의 일상을, 그리고 그들의 교실을 비춘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나보면 추억이라 했듯 그들의 교실 풍경이 살갑게 다가온다. 땅값이 상승할 것이란 어머니의 선견지명 덕에 말죽거리로 이사와 전학 온 현수와 한 주먹 하는 우식의 만남과 이들이 쌓아 가는 우정은 영화 초반을 책임진다. 소심하고 수줍어하지만 서서히 반항아적인 기질이 증폭되는 현수와 거칠 것 없이 달려가는 우식의 캐릭터가 영화를 끌고 간다.

선생들의 폭력이 묵인되듯 학생들의 폭력 또한 묵인되던 시절. 주먹과 배짱으로 서열이 정해지던 시절을 훑고 지나가면 영화는 서서히 로맨스로 이동한다. 말죽거리의 올리비아 핫세의 등장으로 현수와 우식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시작되지만 영화는 이들의 감성을 세심하게 따라가지 않는다. 돌아보면 그때 그랬었지 하는 식으로 둘의 관계를 뭉뚱그려 놓을 뿐이다. 어쨌든 이런 로맨스가 삽입되면서 영화 <친구>의 노선을 걷던 영화는 확실히 자신이 갈 길을 제시한다. <친구>가 제목처럼 친구들의 우정을 향해서만 직선적으로 달려나갔다면 <말죽거리 잔혹사>는 우정 역시 청춘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가슴 아리게 쳐다봤던 첫사랑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 들끓던 청춘시절을 막 빠져나가는 시기에 다시 만난 첫사랑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상우야 말죽거리는 우리가 지킨다
상우야 말죽거리는 우리가 지킨다
영화의 중심 축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이동하는 사이 느슨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뭔가 끝맺음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청춘에 무슨 확실한 끝맺음이 있었던가. 그것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유 하 감독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 것일 수 있다. 그 자신 역시 시인에서 이제 영화 감독으로 또 다른 삶을 걷고있다 할 수 있다. 때문에 영화는 일부 사실적인 싸움 장면을 제외하고 색다른 시도나 뛰어난 영상미를 추구하지 않는 대신 안정감을 택했다. 뭔가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 우리의 삶은 늘 진행형일 뿐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늘 결론을 요구하는 게 바로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사랑도 우정도 목표도 잃어버린 청춘들의 반항을 그린 이 영화는 그래서 많은 조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 살 많다고 으스대는 김인권, 늘 불안불안 시비를 걸어오는 선도부장의 이종혁, 도색잡지 전문 공급원 박효준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청춘들의 아련한 추억 속의 떡볶이 집 아줌마 김부선까지 들쭉날쭉 없이 고른 연기를 선보인다. 갈수록 안정감을 찾아가는 이정진의 성장도 주목된다. 다 잊고 지냈던 시절, 하지만 작은 힌트 하나에도 엉킨 실타래의 실이 술술 풀려 나오듯 끊임없이 생성되는 추억들. 영화는 바로 내게도 그때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묵은 청춘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총 5명 참여)
gaeddorai
난 사실 유하감독의 영화를 재밋게 본 적이 없는것같다   
2009-02-21 20:34
mckkw
멋지다, 멋져.   
2008-12-29 17:07
ejin4rang
권상우 최고   
2008-10-15 17:19
callyoungsin
정말 재미있고 멋졌던   
2008-05-19 14:32
ldk209
권상우에 대한 이미지가 좀 바뀐 영화....   
2007-01-2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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